음악을 감상하려면
. 음악을 감상하려면
음악은 누구나 들을 수 있고 이해할 수 있다
음악이 인류의 정신 생활의 귀중한 산물이며 누구나 이를 향유할 수 있는 권리와 가격이 있다고 할 수 있겠다. 따라서 음악 전문가, 비전문가를 막론하고 만인이 공유만한 문화유산이라 하겠다. 그렇다면 음악 감상이란 무엇인가?
음악 감상은 지극히 주관적인 경험이기 때문에 모든 사람이 공감할 수 있는 정의를 내리기란 쉬운 일이 아닐 뿐만 아니라 음악을 듣고 어떤 감정을 느끼느냐 하는 것 역시 옳고 그름을 판단할 수 있는 문제가 아니다. 음악전문가라는 사람들 사이에서도 음악을 통해 느끼는 감정에 대해서는 의견이 일치하지 않는 경우가 허다할 뿐만 아니라 상반된 경우도 자주 볼 수 있다.
음악감상은 "음악을 예술적으로 즐기는 능력" 또는 "음악을 이해하고 미적인 내용을 즐기면서 이해하는 체험"이라고 한다. 감상은 감각에서 시작하여 감정을 통해 인식으로 끝나는 심리적인 작용이라고 할 수 있다. 아름다움이란 눈이나 귀로 그것을 받아들이는 인간이 판단하는 것이기 때문에 자신의 음악적 기호를 남과 비교하며 부끄러워할 필요는 없다. 물론 누가 음악을 더 잘 감상할 수 있는가를 따지는 것도 의미없는 일일 것이다.
그렇다면 어떻게 하는 것이 음악을 안다는 것이 되며 또한 어떤 전문 지식이 있어야만 음악을 듣게 된다는 것일까 ?
청각신경에 이상이 없는 한 우리의 본성과 생리는 어떠한 소리도 즉각적으로 감지할 수 있으며 이 소리에 의해 마음의 변화를 가져오게 된다. 그러므로 아무리 음치라고 하더라도 음이 강하고 약함, 높고 낮음을 판단한다든가, 자신은 정확한 박자나 리듬(율동)을 표현하지는 못할지라도 귀로는 판단할 수 있을 것이다. 또한 경쾌하고 활달한 곡을 조용한 곡이라고 단정할 사람은 없을 것이며, 슬픈 곡을 유쾌한 곡이라고 판단할 사람은 없을 것이다. 그렇다면 음악에 소질이 있건 없건 간에 모든 사람은 다 음악을 들을 수 있는 기본적인 조건을 갖추고 있다고 보아야 할 것이다. 그러면 음악을 알 수 없다는 것은 음악에 대한 기초 지식이 없기 때문일까? 물론 음악에 대한 기초 지식, 즉 곡의 이름이나 곡의 종류, 그 곡의 구조나 형식, 작곡자의 전기나 작곡 동기 그리고 연주자의 기술적인 면과 곡의 해석 등 사전에 기초 지식을 갖고 있으면 없는 것보다는 도움이 될지 모르나, 꼭 음악에 관한 지식이 있어야만 음악을 들을 수 있는 것은 아니다. 왜냐하면 음악의 뜻을 안다는 것과 음악의 지식은 본질적으로 다른 것이며, 음악은 듣고 지식을 넓히는 것이 아니라 듣고 느끼는 것이기 때문이다.
고전 음악을 감상하기 위해 대단한 지적 노력이나 엄청난 음악적 기술이 필요한 것은 아니다. 음악에 빠져 들다 보면 자연스럽게 많은 것을 알게 될 수는 있지만, 음악을 즐기기 위해 일부러 음악전문가가 될 필요는 없다. 모차르트의 거의 모든 작품에서 제1악장의 초반부가 음의 계속적인 반복으로 이루어졌다는 것을 알게 된다고 해서 음악을 즐기는데 더 도움이 된다고 생각하는가? 아니면, 그런 사실을 알게 되었다고 해서 음악에 대한 신선함과 신비감이 사라져 아름답게만 들리던 멜로디가 별안간 시시하게 느껴질까? 악보를 읽을 줄 알고, 악기를 잘 다룬다고 해서 음악을 듣고 느끼는 감정이 더 풍부해지는 것은 아니다.
많은 사람들은 흔히 음악을 들으면서 그 음악과 우리 주위에서 일어나는 구체적인 현상을 관련시켜 보려고 한다. 이를테면 어떠한 줄거리를 가지고 있는지 또는 어떠한 풍경을 그리고 있고 어떠한 인물을 묘사하고 있는지 더 나아가 작곡자의 작곡 동기, 곧 연인에 대한 연모의 정이라든지, 애국정신을 표현한 것이라든지 하는 문학적 혹은 미술적인 해석법을 가지고 음악을 감상하는 사람이 있다. 그러나 이는 음악 자체가 지니는 본질과는 거리가 먼 것이며, 문학이나 미술을 음악에서 찾으려 한다든가 음악을 구체적인 현상과 관련시키려고 노력하는 것은 올바른 심미적 태도라고 할 수 없으며, 오히려 음악의 참뜻을 왜곡시키는 결과를 가져오기 쉽다. 음악의 아름다움은 어디까지나 음악 자체에서 찾아야 하며 음악을 순수하게 받아들여 자기 감성에 호소해야 하는 것이다. 따라서 음악의 뜻이란 아름다움을 말하는 것이며, 이는 그 악곡의 내용이 충실하고 풍부한가에 따라서 악곡의 우열이 결정되는 것이다.
음악을 감상한다는 것은 그 뜻을 느끼며 마음에 새기는 것을 말한다. 이때 그 음악이 주는 감흥이나 감동에 따라 듣는 사람은 나름대로 여러 가지 연상이나 공상을 하기 쉬우며 해석을 붙이게 되는데 이는 감상자의 자유이며, 어느 면에서는 감상에 도움이 될 수도 있는 것이다. 예를들면 어떤 곡을 듣는 가운데 전원의 풍경이 머리에 떠오르고 그것이 어렸을 때 자랐던 고향 산천의 모습으로 변하고 악곡이 진행됨에 따라서 여러 가지 추억 속의 재미있었던 일, 슬펐던 일, 즐거웠던 일들이 교차되는 가운데 흐뭇한 마음이 음악과 융합되었다고 하자. 물론 이러한 추억이나 생각은 그 음악을 작곡한 작곡자는 알 바 아니며, 그렇다고 감상자의 그러한 머리 속에 그려진 연상을 부정한다든지 억제 할 수는 없는 것이다. 이는 그 악곡의 본래의 뜻과는 다소 거리가 있다 하더라도 감상자의 느낌과 음악의 뜻이 자연적으로 결합된 현상인 것이다. 그렇다고 처음부터 미리 준비해 두었던 자기의 연상을 그 음악에 결부시키려 드는 것은 무모한 일이며 잘못된 감상 태도라 할 수 있다.
음악을 감상할 때에는 가장 솔직한 태도로 연주된 음악을 그대로 받아들여야 한다. 해설이나 해설자가 뭐라고 하든 참뜻은 본인이 들어 보아야 할 일이며, 그 음악을 듣는 길이나 각도는 감상자의 지식이나 교양 그리고 인생 체험의 정도에 따라 달라질 것이다. 여하튼 그 음악의 구조나 음악적 내용이 어떻든 간에 결국 자기 자신의 마음에서 우러난 예술적 체험에 의존하게 되는 것이다.
그러나 음악도 하나의 예술이고, 인간의 창작이라는 과정을 거쳐 형성되는 것이기 때문에 거기에는 형식이라든가 어떠한 형태 또는 연주 양식 등의 제약을 받고 있으므로 다소나마 이러한 예비 지식을 가지고 있으면 음악을 이해하는데 간접적인 도움이 된다. 이 예비 지식 중에서 일반적으로 가장 흥미를 갖는 것은 그 음악의 내용이며 작곡자가 무엇을 그리려 하고 있는가 하는 것인데, 감상자는 음으로 나타낸 줄거리보다 말로써 표현할 수 있는 구체적인 내용들을 미리 알고 싶어 한다. 그러나 그림이나 조각 그리고 연극이나 영화는 우리들의 눈 앞에 어떠한 형태로서 나타나기 때문에 곧 이해할 수 있고 문학에 서도 구체적으로 설명이 되어 알 수 있으나, 음악은 순간적으로 사라지는 음으로 구성되어 있기 때문에 다른 예술보다 추상적이며 원래가 어떤 사건이나 줄거리를 설명하는 서술적인 예술이 아니므로 음악은 그 자체로서 직접 감상자에게 사상과 감정을 전달하게 된다. 때문에 같은 곡을 듣더라도 연주자나 감상자에 따라 느끼는 정도와 해석이 달라지는 일이 많다.
이렇게 생각해 본다면 어떠한 음악이든 이해할 수 없다는 일은 하나도 없을 것이다. 만일 알 수 없다면 그는 음악에 그다지 필요치 않은 일을 추구한 데에서 생기는 현상일 것이다. 어떠한 음악이든 간에 또한 어떻게 느껴지든 간에 그것을 잘 음미해서 마음에 새겨 볼 일이다. 거기에서 생기는 의문이나 필요한 지식은 그때그때 해득하고 넓혀서 음악을 여러 각도에서 연구해 볼 수도 있는 일이다. 자기의 견해와 취미를 연마시켜, 아름다운 심미력을 기르고 일상 생활에서 빚어진 고통과 번뇌를 위안과 희열로 바꿀 수 있는 생활의 벗으로서의 음악을 가까이 하고 음악에서 안식처를 구할 수 있도록 노력해야 되리라 생각한다.
음악을 어떻게 들을 것인가?
우리는 음악회를 비롯하여 과학 문명의 혜택으로 라디오나 레코드를 통하여 항상 좋은 음악과 가까이 하고 또한 감상하는 기회를 자주 갖게 된다. 그리고 영화를 구경할 때에도 흘러나오는 음악과 장면의 환각이 융합되어 우리에게 흐뭇한 감동을 주기도 한다. 물론 라디오나 레코드 또는 영화에서 흘러나오는 음악, 즉 기계를 통해 들리는 음악이 실제로 들을 수 있는 음악의 연주보다 못하다 할지라도 고도로 발달된 재생기술의 덕택으로 우리가 음악을 감상하는 데에는 그다지 불편을 느끼지 않는다.
그러면 음악을 어떻게 들어야 하는가? 물론 감상하는 방법에는 여러 가지가 있고 사람에 따라 모두 다를 것으로 생각되나, 크게 나누면 작품을 중심으로 하는 감상법과 연주를 중심으로 하는 감상법으로 분류할 수 있다. 앞의 것은 작품과 작곡자의 예술성을 대상으로 하는 감상법이며 뒤의 것은 연주자의 연주 기술과 악곡의 해설을 대상으로 하는 감상법이다.
작품, 즉 악곡을 중심으로 감상하는 사람은 베토벤(Ludwig van Beethoven, 1770-1827)을 위대하다고 할 것이며, 그의 유명한 피아노 소나타 「월광」에서 호수에 비치는 달빛이나 달밤에 베토벤과 눈먼 처녀와의 사랑의 이야기를 생각하기도 하고 혹은 귀차르디라는 귀족의 딸에 대한 작곡자의 열렬한 연애 감정을 느끼기도 할 것이다. 슈베르트 (Franz Schubert, 1797-1828)를 천재적 작곡가라고 감탄하는 사람은 그의 가곡 마왕을 듣고 어두운 밤에 아버지와 어린 아들이 숲속으로 말을 달리면서 죽음을 유혹하는 마왕에 대한 공포를 느끼고 "마왕"이라는 곡을 충분히 이해했다고 생각할 것이다. 나아가 좀더 정도가 높은 감상자는 작품의 조바꿈(전조)이나 정교한 구성을 즐길 것이며 색채적인 관현악법이나 형식미를 감동적으로 받아들일 것이다. 이와 같이 작품의 내용, 그를 표현하는 형식과 기교는 연주를 통해서 감상하는 방법이 일반적이지만, 악보를 읽는 힘을 가지고 있는 사람은 연주를 듣지 않고서도 악보를 통해 능히 작품을 감상할 수 있는 것이다.
예전에는 주로 작품을 중심으로 감상하는 것이 상례였으나, 음악이 일반에게 보급되고 차차 악보를 읽게 되자 요즈음은 감상의 중심이 연주로 옮겨가는 경향이 많다. 청중은 작품의 감상만으로는 만족하지 못하고 나아가 연주자의 예술을 감상하게 되었다. 우리들이 오늘날 음악회에 간다는 것은 베토벤의 음악이 나오니까 또는 새로운 작품이 소개되니까 간다는 것도 있지만 오히려 누가 베토벤의 교향곡을 지휘하고 어떤 사람이 슈베르트의 가곡을 부르는가에 관심을 두고 가는 경우가 많다. 즉 작품을 감상하는 동시에 그 연주를 듣고 연주 효과를 평가하는 것이다. 이러한 감상법을 연주를 중심으로 하는 감상법이라 한다.
이 감상법은 연주가의 연주 기교가 대상이 되며 그 보다도 모든 기교를 초월한 전체의 효과가 중요한 문제점이 된다. 다시 말하면 연주자가 그 작품을 어떻게 해석하느냐에 따라 연주 결과에 차이가 생긴 다. 따라서 연주자의 정확한 악곡의 해석과 그를 표현하는 기술의 우열이 평가의 대상이며 감상의 초점이 된다. 그러나 이러한 정도까지 발전하려면 감상자는 작품 자체를 알고 있어야 하며 연주 기교에 대한 상식을 갖추고 있어야 한다.
베토벤의 유명한 「교향곡 제5번 운명」을 감상할 때 이 곡의 제I 악장이 작곡자의 운명에 대한 투쟁이며, 제2악장이 마음의 상처에 대한 위안이라는 것은 누구나 알고 있는 일이지만 지휘자의 해석에 따라 다소 성격이 달라진다. 또한 러시아와 세르비아가 터키와의 전쟁에서 승리하는 모습을 나타낸 차이코프스키(Pyotr Il'yich Tchaikovsky, 1840-1893)의 통속적인 「슬라브 행진곡」을 듣고 스스로 악곡의 가치를 비판할 수 있게 되어야 하며 그러기 위해서는 음악을 듣는 법을 좀더 연구해야 된다. 여기에 같은 베토벤의 「운명 교향곡」의 음반을 듣는다 하더라도 토스카니니(Arturo Toscanini, 1867-1957)의 지휘와 스토코프스키(Leopold Stokowski, 1882-1977)의 지휘, 그리고 아바도(Claudio Abbado, 1933- )의 지휘와는 악곡의 느낌이 달라지며 각기 특색이 있는 법이다.
또한 슈베르트의 "미완성 교향곡」을 오만디(Eugene Ormandy, 1899-1985)가 지휘하는 경우와 발터(Bruno Walter, 1876-1962)가 지휘하는 경우는 각기 성질이 다르며, 지휘자의 해석이 다르기 때문에 우리에게 주는 감흥이 달라진다. 이처럼 같은 악곡이라도 연주자나 지휘자에 따라 그 효과에 차이가 생기며 이러한 경우 어떠한 것이 타당한 해석인가가 문제가 되며, 감상자는 이러한 정도까지 향상되어야 한다. 물론 평론가가 일반인을 위해 전문적인 비평을 가해 주기는 하나 감상자 스스로가 많은 음악을 자주 듣고 가까이 하여 듣는 힘을 기르는 동시에 많은 평론을 읽고 음악 감상의 소양을 향상시키는데 노력해야 한다.
감상에 필요한 지식
음악에 대한 지식을 가지고 있음으로써 감상에 많은 도움이 된다. 음악은 하나의 창작물이기 때문에 창작자의 음악적 내용을 표현하는 데에 공통된 어떤 방법이 있을 것이며, 필요한 형식이 마련되어 있기 때문에 이러한 기초 지식을 알고 있는 것과 없는 것에 따라 감상의 척도가 달라진다. 때문에 음악의 아름다움을 더욱 깊이 느끼고 이해하기 위해서 감상자는 가급적 많은 음악 지식을 가지고 있는 것이 좋다. 그러나 음악 지식의 범위가 넓고 종류가 많아서 전문가가 아닌 일반 감상자가 모든 음악 이론을 공부한다는 것은 어려운 일이며 또한 그다지 필요성을 느끼지 않는 부분도 있어 우선 감상에 필요한 몇 가지 지식, 이를테면 악보에 대한 지식, 즉 악전과 형식론 그리고 연주 양식 및 음악사와 악기론 정도는 알아 두는 것이 좋다.
악전이란 넓은 의미로는 음악을 연주하는 데나 적는 데에 필요한 여러 가지 표나 규칙에 관한 것을 말하지만 보통 악보를 읽는 법을 가리킨다. 음악을 감상하는 데 악보를 볼 수 있느냐 없느냐에 따라 감 상의 차이가 생기며, 악전의 지식 없이 음악을 듣는 것은 마치 글을 모르고 문학 작품을 대하는 것과 같은 것이다. 악전의 모든 표나 규칙을 모조리 암기하는 것은 어려운 일이나 그 뜻만이라도 알아 두는 것이 도움이 될 것이다.
형식론은 악곡이 구성되는 형식에 관한 이론을 말한다. 음악은 일정한 형식에 의하여 구성되어 있는 것이 보통이며, 형식에 관한 이론을 알고 있음으로써 소나타 형석이나 론도 형식 등 기초 이론에서 악곡의 형태나 구성을 직접 분석하여 보는 응용 형식에까지 감상의 힘을 기를 수 있는 것이다. 더 나아가 화음과 화음을 동시에 결합시켜 움직여 나가는 화성학 그리고 선율과 선율을 동시에 결합, 진행시키는 대위법 등에 관한 지식을 기른다면 더욱 감상하는 데 보탬이 될 것이다. 음악사는 음악 자체의 발달사인 동시에 음악가, 특히 작곡가의 전기도 포함된다. 발달사는 음악의 변천 과정, 즉 작품에 간접적으로 영향을 주는 시대적 배경, 시대적 감정 그리고 각국의 민속성의 개요를 말해주며 전기는 작곡자의 사상, 작품 생활 그리고 작곡 당시의 사정과 동기 등을 말하는 것인데 이는 감상자에 절대 필요한 예비 지식이다. 모차르트(Wolfgang Amadeus Mozart, 1756-1791)의 작품과 슈만(Robert Schumann, 1810-1856)의 작품은 시대적으로 어떻게 다른가 또는 바흐 (Johann Sebastian Bach, 1685-1750) 시대의 소나타와 베토벤 시대의 소나타는 본질적으로 어떻게 다른가 하는 음악의 시대적인 변천을 연구 하는데 음악사는 중요한 역할을 하며, 베토벤이 언제 태어나서 언제 사망했다는 사실보다 작품의 발달 그리고 작곡자의 사상 경향과 개성 등 그의 음악성과 작곡 의도가 보다 중요시 된다.
악기에 대한 지식도 감상에 커다란 도움을 군다. 여러 가지 악기의 음색과 특성을 이해함으로써 연주자의 예술을 깊이 이해할 수 있으며, 음악에 따라 악기의 사용법 그리고 관현악의 편성에 관한 묘미를 감상할 수가 있는 것이다. 또 작곡자에 따라서 그리고 시대에 따라서 악기의 사용법이나 편성법이 다르며 각기 특색이 있기 때문에 역사적으로도 흥미있는 연구 자료가 된다. 그리고 감상자가 많은 악기를 다룬 다는 일은 어려운 일일지 모르나, 피아노나 오르간 또는 바이올린 등 한 두 가지의 악기로써 간단한 곡이나마 다룰 수 있는 소양을 갖도록 노력하는 것이 좋다. 이는 악기를 잘 다루고 못 다루는 것이 문제가 아니라 악기를 가까이 하고 그 기능을 이해함으로써 음악 전반에 대한 관심도가 달라지며, 감성을 연마하는 데에도 큰 도움이 되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