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hoto-山, 발길 머무는 곳에

2014.12.14. 일요일 송년산행-삼성산

kyeong~ 2014. 12. 23. 00:24

 

2014.12.14.일요일 송년산행

 

석수역-불영암-삼막사 삼거리-서울대입구

대략3시간

 

일년의 산행을 마무리 하는 날...

늘 한햇동안 걸어온 길을 뒤돌아봅니다

많이 걸었지만 지루하지 않았고

그래서 우린 영원히 걸어갈 생각을 합니다.

세월이 바뀌고

풍경이 바뀌고

걸어가는 벗이 바뀌어도

지나간 추억은 늘 그자리에서 웃고 있습니다.

어느 누구와 걷더라도 그날은 그 사람과 가장 행복했던 순간으로 기억합니다.

아무리 많은 세월이 흐른다해도

산은 우리에게 기억해야 할 추억을 선물해 주었고

그 선물은 가슴에 영원히 간직하게 되었습니다.

일년동안 함께했던 친구들과의 산행이 무지하게 행복했습니다.

 

 

다음에, 불영암!!

이 곳을 지난다면

저 가마솥에서 익어서 나오는 음식을 맛보고 싶다

절간의 굴뚝이 세상에서 가장 따듯하게 느껴진다.

 

 

 

아담한 대웅전 법당 앞에는 길 양쪽으로 멋진 돌탑들이 늘어서 있다. 그중 한 탑은 부처님의 얼굴을 네 개나 지고 있다.

 

불영암 대웅전

닫혀있는 문...

잠겨져 있지야 않겠지만

가끔은 부처님앞을 그냥 지나가기도 한다.

문을 열어보지 않고

그냥 지나쳐 왔지만....

왜 그랬는지도 모르겠고

그래서 저 곳을 가봐야겠다는 생각을 하지도 않았다.

 

내안의 부처와

저 대웅전안의 부처와

어느 산중의 이름 모를 부처와

각기 다름인 것일까

 

아니면 마음에서 간절히 바라는 소원을 아직 찾지 못해서

그냥 지나쳐 왔는지도 모르겠다.

 

 

저 사이사이에 끼워둔 돌이 툭 떨어질것 같지만

저 돌하나가 어느 것이라도 빠지면

무너지질 것 같지만

무너지지 않고 세월을 잘 견디어 가는 것 같다.

 

 

 

모양도 다르고

크리도 다르고

꾸밈도 없는 돌탑...

수가 많지 않아서 경이롭지도 않다

 

참 평범하기 그지없는 탑

어느 누가 서있도

탑의 기세에 눌리지 않겠다.

 

불영암 앞에는 금천구 전경이 한눈에 들어온다.

가끔 이렇게 암자에서 서울시내를 바라보는 기분

여유로움을 얻어갈 기회이기도 하다.

 

 

 

 

불영암에는 부처님의 얼굴을 4개나 가진 불두상이 있다

대웅전에 뒷편에도 있지만 접근이 안된다..

 

 

세상에서 가장 소박한 범종각 이다

눈이 오거나 비가 오면 그대로 범종을 스쳐가겠다

세상에 어느 것이라도 스치는데로 소리가 날 것 같다.

우리가 스쳐가듯이...

누구나 스쳐 갈 수 있는 범종각.

 

 

 

 

한우물

한우물(天井)은 호암산 정상에 있는 길이 22m, 폭12m의 작은 연못 규모의 우물로 네 주변을 화강암으로 쌓았으며,

산 정상에 있으면서도 늘 물의 양이 변함없고, 항상 맑은 상태로 고여있어 신비로움을 더해 주고 있다.

한우물은 용보라는 별칭을 가지고 있으며, 가뭄 때에는 기우제를 지내고 전시에는 군용에 대비하였다 한다.

이 연못 모양의 우물이 만들어진 정확한 시기는 알 수 없으나

보수를 위한 발굴당시 확인된 바로는 삼국시대에 만들어진 연못이 현재의 연못 밑에 묻혀 있었으며,

그 위에 어긋나게 축석한 연못이 다시 조선 초기에 만들어졌음이 밝혀졌다.

 

한우물의 조선시대 석축지는 동서 22m, 남북 12m, 깊이 1.2m의 장방형이고,

그 아래에서 동서 17.8m, 남북 13.6m, 깊이 2.5m의 통일신라시대석축지가 확인되었다.

우물은 지표 밑 30cm까지는 백자편을 비롯한 조선시대 유물이 출토되고,

그 아래에는 유물이 거의 없는 굵은 모래층이 있고,

이 모래층 아래에서 교란되지 않은 뻘층이 계속되고 여기에서 통일신라시대의 유물들이 출토되었다.

 발굴된 유물의 중심연대는 7∼8세기로 추정되고 있다.

 

우물의 석축구조는 남동 모서리의 경우 모두 13단으로 쌓여져 있고,

석축의 제일 아랫단은 약 20cm 가량 앞으로 내어 쌓고, 위로 가면서 들여 쌓는 방법을 취하고 있는데,

이러한 축조방법은 안압지의 축조수법과 동일한 것이다.

또한 한우물에서 남쪽으로 약 300m로 떨어진 곳에서도 남북 18.5m, 동서 10m, 깊이 2m로 석축된 제 2우물지가 확인되었다.

 

한우물

국가사적 343호

 

석구상(石狗像)

한우물 동북방 50m지점에 동물석상 1구가 있는데 조선왕조의 도읍설화와 관련된 해태상으로 알려져 있다.

즉, 경복궁의 해태와 마주보게 하여 관악산의 화기를 누름으로써 서울 장안의 화재를 막기위해 세웠다 한다.

그러나 이 석상의 형상이 해태로 보기 보다는 개의 형상에 가깝고,

경기읍지(1956년) 등 기록에 의하면 석구상으로 보는 것이 옳을 둣 싶다.

조선시대 것으로 추정되는 개의 석상으로, 사실적으로 잘 조각되어 이목구비가 뚜렷하고 발과 꼬리도 잘 묘사돼 있다.


 

 

급하지 않은 경사를 따라

천천히 오르다가

넓은 바위에 서서 복잡하고 각박한 서울시내를 바라다 본다

저 곳을 벗어나 가끔 이렇게 바라보고 있을때

나는 어느 별에서 온 외계인처럼 저 곳이 낯설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