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hotostory-山

2019.10.19~20 삼척 쉰움산

kyeong~ 2019. 10. 19. 13:14

 

 오대산 비박을 간다고 길을 나섰는데 오대산쪽으로 가는 차량행렬이 만만치가 않다

영동고속도로에서 일행들과 의논끝에

내가 자주 오르던 두타산 자락의 쉰움산으로 행선지를 바꾸었다

온산이 단풍으로 물드는 계절 어디로 가든 아름답지 않은 곳이 있을까

비박은 날씨가 관건인데 날씨까지 따라주니 어디를 가든 마음은 즐겁다

오대산 보다 훨씬 먼거리 그래도 집을 나섯다는 기쁨은 저 하늘의 구름처럼 가볍다

거기에 가을날의 동해를 맘껏 볼수 있는 행운이 함께 하는 길이다

가을날의 동해는 하늘을 닮아 한층 더 푸르다

한여름과는 달리 인적이 많지 않은 푸른 바다를 보며 7번 국도를 달려서

삼척의 쉰운산 깊은 골짜기에서 하루의 여장을 풀 것이다

가장 청정한 산소를 공급받는 강원도 오지의 쉰움산은 두타산의 기를 받아서 한번 걷고나면 절로 기운이 나는 곳이다

바위가 빚어낸 풍경과 단풍이 어울려 있을것을 생각하니 어여 도착하여 산을 오르고 싶은 마음이다

토요일이지만 영동고속도를 벗어나 7번국도쪽으로 나오자 차량은 많지 않다

쉰움산에도 사람이 많을 것 같지는 않아서 다행이다

쉰움산은 기우제를 지내는 산으로도 유명한 곳이다

이제 사진을 통하여 하나씩 쉰움산의 속살을 들여다 보기로 하자


 

2019.10.19토~20.일

첫번째날

오전 6시 30분 인천 출발

쉰움산 입구 천은사 12시 도착

산행시간 4시간-6키로

천은사 인근 비박


두번째날

아침 6시 추암에서 일출 봄

10시 인천 출발-점리고갯길 경유

영월 한반도 지형 입장

인천도착 오후 5시 


 

천은사 입구

오늘의 산행 출발지이다

고찰답게 입구에는 오래된 나무들이 일주문처럼 서있다

자주와본 곳이지만

오지에 편안히 들어앉아 있는 사찰

사찰옆으로 난 길을 따라 오늘의 산행을 시작해본다


강원 삼척시 미로면 동안로 816

구(지번) 주소미로면 내미로리 785 (지번)

전화 033-572-0221


천은사 옆길을 따라 완만한 길

아직은 가을빛이 들지 않은 녹색의 길이다

맑은 공기가 한꺼번에 밀려오는 듯한 길을 따라 산행을 시작해본다


마을 사람들의 식수가 되는 계곡

사람들이 들어갈수 없게 휀스가 쳐져 있다

시원한 물소리를 들으며 좁은 오솔길을 따라 오른다


두타산줄기는 언제봐도 소나무가 건강하고 시원하게 하늘을 본다

아름드리군락을 이루는 오지의 땅

소나무의 기운이 느껴지는 산이다


잠시 쉬면서 옆을 보니 두꺼비를 꼭 빼닮은 바위가 올라앉아 있다

우연하게 탄생한 바위들이

짐승을 영낙없이 닮은 모습을 볼때마다 신기하다


누리장꽃


쉰움산 기도터

태백산 못지 않게 기가 세다는 쉰움산 이곳에 기도의 흔적을 볼수 있다

이곳에 기자석(남근석)이 있다

 

 ▲큰바위 은선암

 

산맥이는 집안신앙으로 산신과 조상을 대접하고 자손의 발복을 기원하는 신앙이다.

삼척 산멕이는 3월 삼진날이나 4월 초파일, 5월 단오 등 주로 봄에 행해진다.

개개인이 하는 경우와 무당이나 경을 읽는 전문가 복자를 데리고 가 집안이나 마을 여러집이 모여서 가는 것이 보편적이다.

만물이 소생하는 봄날에 가신家神 가운데서도 생명의 잉태와

수명장수를 관장하는 삼신, 군웅신, 용신에게 자손의 번창,가축의 번창,곡식의 번창을

기원하는 산멕이는 산촌인들의 신앙이다.


 

웅장한 은선암 하늘을 향해서 ~

옆으로 돌아가면 밧줄을 타고 오르는 구간이 있는데

조금 위험하긴 하지만 스릴이 있다

밧줄을 잡고 힘한번 크게 주고 산을 올랐다

 

 


너럭바위위에 돌탑이 있는 쉼터~

기도터가 있다보니 소원을 비는 돌탑군이 자리하고 있다

 

돌탑주변의 정원수처럼 멋진 소나무들

쉰움산을 올때마다 소나무에 눈길을 많이 준다

아름드리 소나무들


쉰움산으로 가는 길을 비교적 산이 편하다


우물이 지나서 바위에 오르면 건너편 보이는 산이 사실은 쉰움산인데

다들 두타산 방향으로 오르기때문에 쉰움산은 생략한다

두타산 방향으로 오르면 유명산 오십개의 움이 있기 때문이다

'오십정' 또는 '쉰움'이라고도 하고..

오십개의 우물이 있는 곳을 쉰움산이라고 생각하는데 사실은 건너편 봉우리가 쉰움산이다


바위에 곱게 피는 들국화


흑백과 칼라로..


여기까지 오르니 멀리 동해바다가 보이고

내미로면이 보이기 시작한다


오십정까지는 밧줄을 잡고 올라야 하는 구간

어렵지는 않지만 조심해서 ...

 


기우제를 지내는 기도터가 보이면 오른쪽으로 오십정이 있다

흔히들 두타산을 타고 이쪽으로 하산을 하면서 지나치기 쉬운 곳이다

 

오십개의 우물이 있어서 기우제를 위한 기도터로 정한듯 싶다

바위에 기도문을 실로 묶어 둔 모습들이 있다

우물은 여성을 상징하기 때문에 남성을 상징하는 바위를 많이 세워두었다고도 한다


오십정의 풍경

오십정에서 바라본 쉰움산

 

오십정에서 바라본 두타산

드디어 단풍이 들기 시작한다

저곳까지 올라야 하는데 늘 여기서 멈춘다

언젠가는 저곳까지 오르고 산을 접으리라...

안개가 산머리를 가리고 있다
두타산의 두타는 번뇌를 버리고 깨끗하게 불법을 닦는 스님을 일컷는다.

 

오십정을 소쉰움산이라고도 한다

오십정에서 바라보는 두타산 협곡의 모습도 절경이다


쉰개의 움들..

 

▲소쉰움산 돌우물,

 

쉰움산은 신라시대 이전부터 민속신앙의 성지였다. 

두타산 품안에  해발 670m 쉰움산의 쉰움정(오십정:쉰우물)이 있고, 1km북쪽에는 소쉰움산이 있다.

쉰움정五十井은 넓은 바위에 50개의 크고 작은  돌우물이 있다.

주변에 제단을 쌓고,그 위에 돌기둥을 세워 음양을 이뤗다. 돌무덤은 산메기 삼신당터이고, 쉰움정 옆의 돌제단은 조상당으로 제사터이

산멕이는 산을 먹이고 산을 대접한다는 의미이다. 현재까지 산멕이를 가장 활발하게 전승하는 지역은 삼척이다.

 

『신증동국여지승람』등 조선시대 기록에도 1년에 두 차례 오십정산에서 산제를 지낸다고 하는데

산멕이를뜻한다. 또한 가뭄에는 원당에 올라와 기우제를 지냈다.

쉰움산 원당의 움을 '여근'으로 보아서 음기가 너무강하다고, 쉰움정 옆에 돌제단을 쌓아  기자석 즉 남근석을 대신했다. 

무속신앙을 하는 사람들 사이에선 쉰움산 기도터가 태백산 만큼이나 영험하단 이야기이다.

그야말로 쉰움산 산멕이는 우리나라 민간신앙의 살아있는 현장이다.  

 

오십정과 협곡

우리나라 최대의 석회석 산지인 동해,삼척의 독특한 지질이 만들어 낸

기이한 형상이다.

 흙한줌 없는 바위위에 굳건하게 자리한 소나무가 인상적이다

 

멀리 동해바다가 있고 미로면이 보이고...

이곳에 앉아 있노라면 근심걱정이 없다

수려한 산새와 마음을 든든하게 하는 소나무와 쉰개의 우물의 풍경이 사람의 마음을 사로 잡는다

 

쉰움산

쉰움산은 삼척시 동쪽 15km 지점의 전국적 명산인 두타산의 북동쪽 상에 솟은 작은 한 봉우리다.

이 산은 태백산과 마찬가지로 무속의 성지라 이를 만한 곳이다.

산 곳곳에 치성을 드리는 제단, 돌탑 등이 즐비하다.

어느 할머니가 이곳에 놀러왔다가 그만 신이 내려 무당이 되었다는 일화도 전한다.

쉰움산은 실은 산봉의 정상이 아니라 여기저기 수많은 웅덩이가 패인 암반지대다.

쉰움이란 지명은 이처럼 오십개의 움이 팼다는 뜻으로, 한자로는 오십정산이라고도 표기를 한다.

쉰움산에는 이승휴의 “제왕운기”가 쓰여진 역사깊은 사찰이 있는데 천은사가 그것이다.

역사적 의미가 소중하여 사적 441호로 지정되었으며,주변의 두 아름도 넘는 노거목 숲의 풍치가 기막히다.

 

 

다시 또 두타산을 올려다 보았다

그새 안개가 더 내려왔다

 

움과 두타산

 

근사한 정원수같은 소나무

 

아무리 가물어도 마루지 않는다고 한다

수초까지 자라는 돌우물

 

 

 

 

 

 

 

우물은 음기를 뜻한다고 해서

양기를 뜻하는 기자석을 수두룩하게 세워 두었다

 

비가 올것만도 같아서 한없이 앉아 있고 싶지만 다시 하산을..

 

강행을 하는 산행을 버리니

썩은 나무그루터기도 벗이된다

 

가을엔 어딜가나 국화꽃이 제일이지

 

솔향이 나는 쉰운산 산행

 

세월에 장사없다고 청정계속에 살아도 죽은 나무도 있다

 

 

올라갈때 보았던 너른바위위에 돌탑들..

 

흙한줌 없는 바위에 분재처럼 자라는 소나무

 

단풍이 좀 늦은 느낌이다

붉게 물들어가는 가을 길

 

천은사에 살고 있는 다람쥐~

 

천은사

올라갈때 들리지 않았던 천은사를 하산길에 들렀다

 

 

 

천은사 天恩寺

백련대(白蓮臺), 흑악사(黑岳寺) 

 

강원도 삼척시 미로면 내미로리 두타산(頭陀山)에 있는 절.

대한불교조계종 제4교구 본사인 월정사(月精寺)의 말사이다.
758년(경덕왕 17)에 두타삼선(頭陀三仙)이 백련(白蓮)을 가지고 이곳으로 와서 절을 창건한 뒤 백련대(白蓮臺)라고 하였다.

839년(문성왕 1)범일국사(梵日國師)가 극락보전(極樂寶殿) 등을 건립하고 규모 있는 사찰로 만들었으며,

고려 충렬왕 때 이승휴(李承休)가 중수하고 이곳에서 대장경을 열람한 뒤 간장암(看藏庵)이라고 하였다.

이승휴는 또 이 절이 있는 용계(龍溪)에서 제왕운기(帝王韻紀)를 저술하였고,

71세 되던 해에는 그가 머물렀던 용안당(容安堂)의 현판을 내리고 간장사로 바꾼 뒤, 이 절에 전답 등을 시주했다고 한다.

조선 선조 때는 서산대사(西山大師)가 이곳에 와서 절을 중건하고, 절의 서남쪽에 있는 봉우리가 검푸른 것을 보고 흑악사(黑岳寺)라고 하였다.

1899년에는 이성계(李成桂)의 4대조인 목조(穆祖)의 능(陵)을 수축하고 이 절을 목조의 원당으로 삼았는데, 이때부터 천은사로 고쳐 부르게 되었다.
6·25전쟁 때 불탄 뒤 명맥만 유지해 오다가 주지 문일봉(文一峰)이 부임하여 정면 3칸, 측면 2칸의 법당과

육화전(六和殿)·영월루(暎月樓)·삼성각(三聖閣) 등을 신축하였고, 요사채를 중수하여 오늘에 이르고 있다.

문화재로는 불상을 개금(改金)할 때 나온『법화경』이 있으며, ‘嘉慶三年戊午四月十六日改金(가경3년무오4월16일개금)’이라고 쓴 글이 나와서

이 불상이 1779년(정조 3)에 개금된 것임을 알게 되었다.

또 절 아래에는 고려 때부터의 도요지 자리가 있어 청자 파편과 청기와 등이 출토되고 있으며, 절 주위의 계곡은 매우 수려하다.

[Daum백과] 천은사

 

 

 

여름날 잠시 절집에 들러 목축이는 시간은 참 좋겠다

 

 

대웅전

 

천은사 범종각 현판

 

천은사 절집을 걸어나오는 길

 

 

천은사 아래에는 천은 이승휴의 사당이 자리하고 있다

 

 

천은 이승휴

1274년 원종이 죽자 연경에 있던 세자가 호복을 입고 장례 치를 것을 염려하여,

원나라로 가서 황제 세조에게 상복을 고려식으로 할 것을 권유, 허가를 얻어냈다.

14세에 아버지를 여의었고, 1253년 몽골군의 침입으로 길이 막히자 두타산록 구동의 용계 옆에 집을 짓고 직접 농사를 지으며
홀어머니를 봉양했다.  

1270년 삼별초 항쟁이 일어나자 그 점거지에서 왕이 있는 곳으로 탈출했으며, 왕의 눈에 띄어 중용되었다.

1273년 황후와 황태자 책봉을 하례하는 사신을 보낼 때 서장관으로 발탁되었고, 충렬왕 즉위 후 본격적인 정치활동을 전개했다.

우사간이 되어 양광·충정의 2도를 안찰할 때 7명의 장리를 탄핵, 가산을 적몰했고,

1280년 왕의 실정과 부원 세력가들의 횡포를 비판하다 파직되는 등 개혁적 삶을 살았다.

 

현재 전해지는 그의 저작으로는 〈제왕운기〉와 둘째 아들 이연종(李衍宗)이 편집한 문집인 〈동안거사집〉이 있다.

특히〈제왕운기>는 1287년(충렬왕 13) 충렬왕에게 군왕으로서 본받고 경계해야 할 점에 대해 교훈을 주려는 목적으로 저술했는데,

중국과 우리나라의 역사를 7언시(七言詩)와 5언시(五言詩)로 엮은 서사시(敍事詩)이다.
이것은 고려 후기의 격동하던 국내외 정세 속에서 당시 대표적인 지식인의 한 사람이었던 이승휴의 역사인식과 현실인식을 보여주는 귀중한 자료이다.

[Daum백과]

 

천은사에서 500쯤 내려오면 넓은 공터가 있다

그곳에 나의 하룻밤 아지트를 틀고 산속의 백만불짜리 산소를 맘껏 사용하며 하룻밤을 묵고나니

아침이 참 거뜬하다

 

나의 백만불짜리 숙소~

 

천은사 근처의 이슬먹은 아침풍경