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1.3.20.토 두타산 신선봉 (문간재)
나의 살던 고향은 꽃피는 산골..
봄이 오는 길목에 어머니의 생신이 있다
고향을 올 때마다 엄마품처럼 생각하는 무릉계곡
골짜기마다 절경을 자랑하는 산자락
하필 아침부터 비가 부슬부슬 내려서 갈피를 못 잡겠다
비가 오니까 산행은 포기하고 심곡항 바닷가로 갔는데
파도로 인해 부채길이 막혀 있다
정오를 넘어서자 비가 그치기 시작한다
등산화를 신지 않았지만 간단하게 다녀올 수 있는 무릉계곡 신선봉을 향해를 자동차를 달렸다
주말마다 많은 사람들이 찾는 곳이지만 오전 내내 비가 온탓인지 사람들을 거의 볼 수 없는 텅 빈 계곡이
봄비에 젖은 인사를 한다
눈을 감고도 오를수 있는 고향 산자락을 반가운 마음으로 걸어보고자 한다
2021.3.20. 토 /비 온 후 흐림
산행거리 약 6킬로
산행시간 넉넉하게 3시간
오후 2시~오후 5시
두타산 무릉계곡 입구
지역주민은 입장료 무료
성인은 2000원
멀리 두타산 정상이 보이지만 안개로 뒤덮여 있다
봄비 속에 갇혀 있는 두타산 무릉계곡
봄은 어디까지 왔을까
두타산과 청옥산의 거대한 봉우리로 올라가는 중간쯤
신선이 놀다간 만큼 수려한 경관을 가진 신선봉
90분 정도면 도착할 수 있는 거리이다
관리사무소를 지나 바로 나타나는 반석교에서 바라본 무릉계곡
저끝에 고찰 삼화사가 보인다
청옥산 능선이 안개로 뒤덮여 있어서 산을 오르더라도 조망이 있을까 걱정이 된다
운동삼아 걷는 것이니 오늘은 조망은 포기하고 다녀오리라 미리부터 생각했다
반석교를 지나자마자 배틀바위 릿지길 이정표가 나왔다
얼마 전까지만 해도 산행 금지구역이라 몰래 다니곤 했는데
위험구간 정비를 했나 보다
큰 이정표를 세워둔걸 보니....
발목이 시원치 않아서 릿지 구간은 피하고 싶은데
다음에 내려오면 기필코 가봐야겠다
베틀바위로 올라가는 입구에 새집 조형물...
삼화사 입구에 핀 봄의 전령사들
매화꽃이 이제야 피었고요
버들강아지도 탐스럽게 봄을 알린다
흔히 말하는 무릉계곡의 둘레길 이름은 용오름길
굳이 이름을 붙일 필요가 있을까
무릉계곡 하면 다 아는 길인데 다른 이름을 붙여서 의미를 부여했다
삼화사 입구에서 본 무릉계곡
산세가 급하다고 바위로 이루어진 계곡
강수량이 많은 여름철에는 계곡의 물이 엄청나게 흐르고 폭포가 발달되어 있는 곳이다
무릉계곡 초입에 핀 벚꽃과 버들강아지
삼화사
삼화동 무릉계곡, 두타산(1351m)의 북쪽에 위치하고 있다. 삼화사는 인근 천은사, 영은사, 지상사 등과 더불어 영동 남부지역의 중심 사찰로 선종의 종풍을 가진 깊은 역사성을 갖고 있으며 삼공암, 측연대, 중대사라는 이름을 갖고 있다. 이 사찰과 관련하여서는 세가지 창건 설화가 전해지고 있으며, 삼화사사직, 진주지 등에 의하면, 신라 선덕왕 11년(642)에 지장율사가 흑연대를 창건한 것이 그 시초가 되었다고 하나 신빙성은 없다. 한편 <동국여지승람>에는 신라말 굴산사의 개창주인 범일국사가, <척주지>에는 신라 흥덕왕 4년(829)에 범일국사가 산에 들어와 불사를 지어 삼공암이라고 하였다는 기록이 있다. 이들 기록과 아울러 현존하는 유물들을 감안하면 삼화사는 대체로 신라말에 창건되었다고 볼 수 있다. 이 사찰은 본래 동쪽 약 1.3km의 반릉 부근에 있었던 것을 무릉계곡 내에 있는 현재의 위치로 이건하였다. 여러 차례 화재로 인한 소실과 중창을 거듭한 삼화사는 1905년에 삼척지방 의병들의 거점으로 이용되었으며, 1906년에 일본은 의병의 거점 파괴라는 이유를 붙여 대웅전, 선당 등 200여 칸에 이르는 건물을 모두 불태워 버렸다. 그 이듬해인 1908년 대웅전. 요사채. 칠성당 등을 다시 건립하여 유지해오다 1977년 현재의 위치로 옮겼다. 지금은 대웅전을 비롯하여 삼성각. 범종각, 육화로, 천왕문, 요사채 등의 건물로 이루어져 있으며, 주요문화재로는 삼층석탑과 철불, 목조지장보살상, 부도 및 비가 있다. |
무채색의 힘이랄까
안개가 산자락을 덮고 있는 절집은 더욱 고요하게 하고
나도 모르게 손을 모으게 한다
안으로 스며들 것 같은 안개가 기도로 모이는 순간이다
홀로 선 홍매가
우중충하게 흐린 날의 절집 분위기를 살려준다
수려한 풍경과 절집과 매화
오랫동안 함께 하기로 약속하고 그 자리에 있는 듯
두고두고 기억할 풍경이다
부부바위처럼 서로 마주 보고 있는 바위
40여분 오르면 오른쪽으로 거대한 장군바위가 나타난다
어디로 보아서 장군바위라 칭한 건지는 모르지만
목을 뒤로 젖히고 바라봐야 할만치 높이 솟아 있는 바위다
장군바위 앞 이정표
예전보다 큰 이정표로 바뀌어 있다
관리소에서 2.3킬로 지점 오른쪽으로 철다리를 건너야 한다
예전에는 돌다리였다
비가 오면 건널 수가 없었는데
안전하게 정비를 해두어서 고마운 마음이다
산을 좋아하는 남동생과 함께 걸으니 심심하지도 않고 서로 사진을 찍어주며
즐거운 짝이 되었다
철교 옆 계곡 풍경
비가 온탓인지 수량도 풍부하고 맑은 물소리에 가슴이 시원하다
철교를 건너면 바로 가파른 계단이 연속적으로 이어진다
눈이 오면 미끄러울 것 같은 계단
빗물이 묻어 있어서 조심조심 오르고 내렸다
가파르게 철교를 오르면 문간재로 오르는 이정표를 만난다
이곳에서 문간재까지 대략 300미터
가파른 철계단이 이어지지만 안전하게 오를 수 있다
문간재에서 숨을 고르고 이정표를 올려다봅니다
광개토왕비라는 이정표가 있어서... 이곳에 어떻게 있을까
의문을 가졌는데
건너편 산자락에 넓은 비석 같은 바위가 있는데 마치 광개통왕비를 닮아서 이름을 붙였다고 한다
문간재에서 50미터쯤 오르면 신선봉에 이른다
신선봉까지 오르는 길은 바위구간
정상 10미터 전에 바위 쉼터에서 바라본 풍경
여기만 봐도 올라온 보람을 느낄만치 기막힌 풍경을 자랑하는 곳이다
안개가 산봉우리를 전부 덮고 있으리라 우려를 했는데
안개가 많이 걷혀 있어서 마치 산수화 한 폭을 선물 받은 느낌이다
함께 온 동생이 왜 이제야 여기를 알려주었냐고 한다
두타산의 골짜기마다 명품 바위를 품고 있지만
이곳은 최고의 풍경을 자랑하는 곳이다
소나무와 깎아지른 절벽과 안개가
망부석처럼 나를 그 자리에 서있게 했다
마치 정상에 다 온 것처럼 움직일 줄 모르고 바라볼 뿐이다
카메라 앵글로 다 담을 수가 없어서
핸드폰으로 담아 본 파노라마
저 골짜기의 물들이 아래로 흐르며 폭포를 이루고 강을 이루는 것이다
파노라마#2
파노라마#3
심장이 멈출 것 같은 풍경
이리저리 앵글에 아무리 담은들 실제의 풍경을 그대로 담을 수 없다
자연은 인간을 이렇게 꼼짝 못 하게 잡아둔다
뭐라고 말하지 않는데도....
안개감옥 영원히 갇히고 싶은 감옥
두타산 신선봉
높이가 표시되지는 않았지만
대략 400미터 정도 될듯하다
봉우리 같지는 않지만 여기서 발길을 멈추어야 하는 절벽 위
봉우리 이름 하나 지었다
누구라도 신선이 될 수 있는 기쁨을 맛보는 신선봉
안개비가 내리는 신선봉에서 빵과 커피로 신선의 식사를 했다
지금 앞에 보이는 절경 외에 식사는 느낌이 없다
이곳에 움막을 짓고 산다면 저절로 스님처럼 소식을 하겠다
신선봉에서 본 풍경#1
신선봉에서 본 풍경#2
신선봉에서 본 풍경#3
신선봉에서 본 풍경#4
신선봉에서 본 풍경#5
신선봉에서 본 풍경#6
신선봉에서 본 풍경#7
신선봉에서 본 풍경#8
신선봉에서 본 풍경#9
신선봉에서 본 풍경#10
12폭 병풍을 그리듯 이리저리 맘껏 담아본 풍경들
무슨 말이 필요하겠는가
당대 최고의 산수화를 무더기로 얻었는데
축복받은 시간은 하염없이 흘러가고...
날은 왜 저물어가는지...
동생이 어두워지기 전에 어서 하산을 하자고 재촉을 한다
가긴 가야지....
생강 꽃이 피고 진달래가 피던 날
안개 가득한 무릉도원 신선봉에서 제대로 신선처럼 시간을 보냈다
두타산 쪽에 비대신 눈이 내렸나 보다
줌을 당겨서 보니 눈이 내린 게 확인된다
좀 더 당겨서 한컷...
신으로부터 수묵화 한점 얻었다
누구의 묘지인지는 몰라도 신선이 되려다 이곳에 묻혔는지
묘비명이 없는 산소가 자리하고 있다
숨 가쁘게 올랐던 철계단을 따라 다시 하산길이 시작되었다
비에 젖어 있어서 철계단이 좀 미끄럽게 느껴졌다
젊고 건강한 남동생 걸음을 따라가느라 몸이 바쁘다
원점회귀
왔던 길 그대로 하산하는 게 가장 빠르다
오전에 비만 오지 않았더라도 하늘문과 관음사를 통해서 하산하면
얼마나 좋았을까
나무 밑동에도 이끼가 봄을 아려주고요
둘메나무라.... 처음 보는 나무
물푸레나무과에 속한다고 한다
깊은 산의 골짜기나 냇가에 자라는 큰 키 나무이다.
높이 30m, 지름 2m까지 자란다. 수피는 연한 갈색이다.
잎은 마주나며, 홀수 1회 깃꼴겹잎으로 작은 잎은 보통 9-11장이다. 작은잎은 타원상 피침형으로 길이 8-22cm, 폭 2-8cm, 끝은 뾰족하다. 잎 뒷면 맥 위에 털이 있고,
밑부분에 갈색 털이 있다. 꽃은 5월에 암수딴그루에 피며, 묵은 가지의 잎겨드랑이에서 나온 겹 총상 꽃차례에 달린다.
꽃잎은 없다. 열매는 시과, 장타 원상 피침형, 길이 2.5-4cm이다. 우리나라 전역에 자생한다.
러시아, 일본, 중국에 분포한다. 목재는 가구재, 건축재, 선박재로 쓰고, 껍질은 약용한다
우람한 바위가 많은 무릉계곡
올라갈 때도 합장
내려갈 때도 합장
길 밖으로 지나가면서도 불자의 마음은 나도 모르게 경건해진다
산골 계곡이 깊다 보니 아래로 내려오면서 수량이 많아서 저절로 넓은 계곡을 형성한듯하다
이 주변에 양사언 석각이 있지만 서둘러 내려오느라 사진에 담지는 않았다
이곳을 오르내리면서 여러 번 언급한 적이 있어서 또 쓰는것이 귀찮기도 했다
'武陵仙源 中臺泉石 頭陀洞天(무릉 선원 중대천석 두타 동천)'이라 쓴,
조선 전기 4대 명필의 한 사람인 蓬萊(봉래) 楊士彦(양사언, 1517-1584)의
호쾌한 필력이 넘치는 글씨가 새겨져 있다.
金蘭亭(금란정)
금란정(강원문화재자료 제5호)
앞면 3칸, 옆면 2칸의 규모이며 앞면에는 '금란정'이라는 현판이, 옆면에는 '경중 별업'이라는 현판이 걸려 있다.
한말까지 유림들은 향교 명륜당에 모여 유학 강론에
전념하였으나 한일합병을 당하여 폐강하기에 이르자 이에 분개하여
우의를 다지는 금란계를 결성하고 이를 기념하기 위해 정자를 건립하기를 결의하였다.
그러나 일본 관헌들에 의해 제지당하여 뜻을 이루지 못하였다.
그 뒤 1945년 해방을 맞이하자 금란 계원과 그 후손들이 선인의 뜻을 계승하여
정자를 짓기로 합의하고 1949년 봄에 건립하였고 1956년 9월에 현재의 위치로 이전하였다.
이곳에 앉으면 무릉반석이 한눈에 들어온다
금란정 백주년 기념비
금강 사군첩
동해 무릉계곡(금강 사군첩-무릉계-단원 작)
금강 사군첩이라는 명칭은 널리 알려진 趙熙龍의 壺山外史에 나오는
命寫金剛四郡山水 라는 구절에서 비롯된 것이다.
본 산수화는 1788년(정조 12년) 정조의 어명으로 단원 김홍도가 44세에 금강산 및
관동팔경 지역을 돌아보며 그린 화첩인 금강 사군첩으로 조선시대에는 海山帖이라고
불렀다. 무릉계를 그린 작품으로 무릉반석에서 풍류를 즐기며 백두대간의 산세와
소나무 한그루까지도 상세하게 묘사한 것이 특징이며 세월의 변화상을 비교하여
볼 수가 있다.
오늘 산행 끝...
끝이라고 해서 정말 끝이 아니다
언제나 그랫듯이 또다른 시작의 의미이다
동생과의 시간은 여유롭고 생각이 닮아 있어서 기분 좋다
기분 좋은 풍경 앞에서 멈추어 느낌을 얻고 싶어 하고
일기를 탓하지 않아서 좋고
떠나는 즐거움이 삶의 이유라는 것도 안다
긴 산행은 아니지만 함께 했던 여운은 길게 남을 것 같다
21.3.20. 토 by gyeong~