뜻하지 않은 용서/梁該憬
갈길 물어보지 않고 떠나온 산행
기어서 오르며 생각한다
우리끼리니까 다행이지
다른 사람들 앞이라면 부끄러웠을까
천금을 준다 해도 기는 것 못하지
산이니까 아무렇지 않다
갈길은 먼데
네발로 기어오르다 보니
고개 들어 정상을 가늠할 여유가 없다
용조봉은 왜 이리 멀까
알게 모르게
모질게 말했던 것
여자의 마음이라 까발리기 싫어
끝없이 냉정하였던 것
모두 용서하오
어차피 기어가는 김에
뱀처럼 기어서 용서를 구하노니
시야는 온통 땀에 젖을 때
나뭇잎사이로 곰보자국 같은 햇살이
감지덕지더라
이산은 왜 이리 할 말이 많은 건지
세월 지나면 무뎌진다는데
굽이굽이 날을 세우며
거친 숨을 공양받아
천년만년 기고만장할판이다
네발로 기었던 이날을 기념하라
뜻하지 않았던 용서를 기념하라
무릎에는 인증마크하나 시퍼렇게.
2023.06.04. 일. 가평 용조봉을 오르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