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슴 한쪽 비워둔다면

poem-아직도 모르지만 441

20240818 어답산

어답산/ 梁該憬 이 더위에 산에 가느냐고 뒤통수를 때리는 말을 등지고 어답산에 간다 날씨가 덥다고 정든 이를 멀리할까 어답산은 몇 번 본 친구이고 환상적인 물안개를 선물로 받았었다 잊기 전에 내가 먼저 찾아가야지 찜통더위에 코를 박으면서도 참고 오르는 건 두 팔 벌리고 기다리는 장송이 있어서지 태양아 얼마든지 내게 오라고 장송 앞에서 두 팔 벌리고 있어야지 그동안 꺼내놓지 못한 속내는 건너편 호수에 물그림자로 띄우고 체온보다 더 뜨겁던 여름은 나무 등걸에 올려놓고 오늘은 칠월 보름날 만난 김에 평각의 자세로 벌건 보름달도 봤으면 좋겠다 2024.0818.일. 횡성 어답산에서...

20240723.원추리 연가(덕유산에서)

원추리 연가/梁該憬 올여름은 우울증 심한 여인 같다이집저집 창문으로 뛰어드는 소나기였다가무슨 화가 그리 났는지 벌겋게 달아오르는 정오뿌리까지 타들어가다가정분난 바람과 비가 되어뒤엉켜 돌아다니더니여린 꽃 상처 난 것도 모르네 어르고 달래는 것도 하루이틀보따리 싸서 덕유평전으로 갔다여름의 낮잠 같은 안개가 멀리 있는 사람 잊고가슴에 있는 사람 잊고낮잠 안에 든 것만 보라 한다 안갯속에  환한 미소덕유의 기억이 되는 원추리 수천 년을 건너온 여름이우울증 심한 여인 닮았더라도한지 같은 안개에 원추리를 탁본하느라가슴을 두드린다 20240723. 덕유산에서

20240720. 백련(시흥 관곡지에서)

백련 白蓮 / 梁該憬구구절절 말하지 않아도물 위에 뜬 꽃은 슬프다꽃잎 자락 잡고 있는 그림자흰 적삼 부여잡고 물속에 잠기네요단 강 건너가는 꽃상여같이아무도 함께 건너지 못하고먼발치에 나는 서있고홀로 건너가는 꽃상여생의 마지막 모습처럼고요한 얼굴로물 위를 건너가는 백련마지막 꽃잎이 떨어질 때까지흰 적삼 고운 꽃그리하여, 상여에 피는 꽃이 그리 예뻤나.2024.07.20. 토. 관곡지에서

20240225.일.

2월은 가고 있다/ 梁該憬 이월과 삼월의 경계처럼 하늘과 맞닿은 산능선에 눈이 선을 그린다 땅속 깊숙이 올라오던 봄이 무릎을 세운곳의 경계가 산을 일으킨 둥근 봉우리 참 이상하기도 하지 어지럽게 내리는 눈이 서로를 잘 통과하여 경계를 일으키고 있지 나 아닌 곳에 쌓여가는 눈 지그시 누르는 무게 때문에 잠시 침묵하는 봄 허리에도 무릎에도 차고 있는 저 눈은 투명한 기운으로 봄을 일으키고 있다 이월과 삼월의 경계에서 2월 하순, 눈 오는 날의 관악산에서

20240218. 계룡산 바람

바람 연정/ 梁該憬 아무리 찾아도 보이는 건 없는데 어찌 이리 나를 반기는가 온몸을 붕대처럼 감고 도는 이 기운 내가 오기를 그토록 기다렸는가 텅 빈 곳에 서있어도 요란하게 들리는 소리 겨울 내내 행방을 찾았는데 여기서 만날 줄이야 옷깃을 풀지 않아도 껍질을 다 벗은 산 때문에 주춤했는데 기세좋게 달려드는 바람에 머리카락 헝클어진 몸을 전부 내어주었네 그리고 하루종일 그냥 걷는다 너를 만났는데 또 그냥 걸어야 한다 가부좌 틀고 있는 바위옆을 지날 때에도 허리굽은 노송옆을 지날 때에도 수십 년 정분이 가슴에 있는데 너를 만났다는 이야기를 하지 못했다. 2024.02.18. 계룡산에서

20231111.갈대밭에서(금강변 마실길에서)

갈대밭에서/ 梁該憬 낯선 곳에 나를 내려놓았다 조금 걸어야겠다고 강으로 간다 잘 가라 잘 가라 손을 흔드는 갈대들 속으로는 가을바람이 야속해 서로 부둥켜안고 산다 약속도 없이 왔는데 무리로 손을 흔드는 갈대들 갈대밭 너머에는 강물이 흐르지만 내키 만한 큰 갈대숲에 들어서서 갈대처럼 서있어 본다 함께 기대어 서있으니 가을빛에 길어진 그림자를 묻어버린다 지금 이 순간은 벅찬 약속도 아픈 이별도 생각하지 않는다 평생 함께했던 그림자마저 잊고 갈대에게 보고 싶었다는 말을 전하네 갈대숲은 흔들릴 때마다 내 마음을 흘러가는 강물이었다 갈대강에서 참 보고 싶었다 말을 전하네 내일은 다시 또 혼자가 되어 허리 긴 그림자를 돌아볼지라도. 2023.11.11. 금강변 갈대밭에서

20231101 가을 빈가지(우이령 길에서)

가을 빈 가지 / 梁該憬 무수한 가지들이 단풍잎을 빼곡히 들고 있네 그중에 잎을 갖지 못한 나뭇가지 무성한 단풍잎에 묻혀 보이지 않네 지난여름이 얼마나 힘들었길래 붉은 잎 한 장 내밀지 못하네 하필 마른 나뭇가지에 새 한 마리 앉았다 가네 떠나는 새를 향해 흔들 잎이 없어 단풍잎 사이로 고개를 묻네 밤새 돌아누워 붉은 잎의 등을 긁으며 흐린 하늘 속으로 숨어든 새를 기억하네 그래도 붉은 잎 아래서 밤을 맞이하니 그게 어디야 단풍마저 지고 나면 그 아래가 전부 벼랑이지 마른 나뭇가지, 새에게는 잠시 길이었지. 20231101. 수 우이령길에서

구봉산 죽은 소나무

구봉산 죽은 소나무/梁該憬 구봉산 윤회봉 앞에서 바람이 일거나 눈이 오거나 산에 좋아하는 맹신자를 기다리다 하늘의 처분에 병든 것도 모른 체 요지부동 거처가 되었네 살아서 보금자리 죽어서 극락이 된 거처에서 삭쟁이하나 떨어질때마다 선계에 드는 적멸 산에 올때마다 그 많은 나무 중에 금강송에 기대던 맹신도들 병들어 죽고 나니 잡목이나 금강송이나 이제 그늘조차 만들 수 없는 몸이지만 꼿꼿이 선체로 해탈하는 죽은 소나무 가지가 불어질 때마다 성불의 목탁소리 들린다 2023.09.17.일. 영월 구봉산에서

20230521 소백산 철쭉

소백산 철쭉/梁該憬 소백이 주신 땅 너른 초원 위에 연분홍 곱게 차려입고 누구를 기다리나 멀리서 보아도 나를 기다리는 것 같아 겨울날 이 자리에서 눈 속에 빠지던 발의 깊이만큼 기뻐서 울컥 이번 봄날은 비로봉에서 연화봉까지 길다 격렬한 바람이 하늘을 흔드는데 고요한 저 빛깔은 소리를 쓸어 담네 가장 낮게 앉아 바람에 누운 풀잎들의 등불이 되는 연분홍 낮게 앉아도 연분홍 등불아래 그림자 있네 그림자 끌어안고 누운 풀잎 아무리 길어도 좋은 봄날 2023.05.21.소백산에서

연두 연서(월영산에서)

연두 연서/梁該憬 언제 저리 돋았는가 아직은 밤기운이 찬데 새부리같은 잎을 하늘에 띄우고 햇빛한모금 그때마다 반짝이는 숨결을 가지위에 쏟아낸다 가지런히 발을 딛고 나뭇가지를 건너는 연두 겨울동안 간직한 고요를 깨고 먼데까지 연두를 보낸다 산길 어느 바위에 앉아도 비늘처럼 반짝이는 연두 나는 초록이었나 어린 연두에게서 눈을 떼지 못하겠네 부디 달아오르는 햇살을 피해 오랫동안 연두이게나 2023.04.16. 충북영동 월영산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