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51101.눈길 (대둔산에서) 눈길/梁該憬 수없이 밟고 간 눈길에내 발길이 닿는다무심히 발자국을 얹으면서같은 길을 걸었다고 인생을 맞대어 보지만어디든 멀찌감치 벗어났으리 길을 잃을 뻔한 산지에서 찾은 발자국에 정을 느꼈다허울 같은 발자국 위에그대로 얹어가며자빠지지도 않고 용하게 걸었다 어느 날 눈이 내리고 다시 걸어본 그 길길고도 먼 길에 남긴내 발자국 위에 누가 또한 걸었을까 20250111. 토 대둔산에서 poem-아직도 모르지만 2025.01.13
20240818 어답산 어답산/ 梁該憬 이 더위에 산에 가느냐고 뒤통수를 때리는 말을 등지고 어답산에 간다 날씨가 덥다고 정든 이를 멀리할까 어답산은 몇 번 본 친구이고 환상적인 물안개를 선물로 받았었다 잊기 전에 내가 먼저 찾아가야지 찜통더위에 코를 박으면서도 참고 오르는 건 두 팔 벌리고 기다리는 장송이 있어서지 태양아 얼마든지 내게 오라고 장송 앞에서 두 팔 벌리고 있어야지 그동안 꺼내놓지 못한 속내는 건너편 호수에 물그림자로 띄우고 체온보다 더 뜨겁던 여름은 나무 등걸에 올려놓고 오늘은 칠월 보름날 만난 김에 평각의 자세로 벌건 보름달도 봤으면 좋겠다 2024.0818.일. 횡성 어답산에서... poem-아직도 모르지만 2024.08.20
20240723.원추리 연가(덕유산에서) 원추리 연가/梁該憬 올여름은 우울증 심한 여인 같다이집저집 창문으로 뛰어드는 소나기였다가무슨 화가 그리 났는지 벌겋게 달아오르는 정오뿌리까지 타들어가다가정분난 바람과 비가 되어뒤엉켜 돌아다니더니여린 꽃 상처 난 것도 모르네 어르고 달래는 것도 하루이틀보따리 싸서 덕유평전으로 갔다여름의 낮잠 같은 안개가 멀리 있는 사람 잊고가슴에 있는 사람 잊고낮잠 안에 든 것만 보라 한다 안갯속에 환한 미소덕유의 기억이 되는 원추리 수천 년을 건너온 여름이우울증 심한 여인 닮았더라도한지 같은 안개에 원추리를 탁본하느라가슴을 두드린다 20240723. 덕유산에서 poem-아직도 모르지만 2024.07.27
20240720. 백련(시흥 관곡지에서) 백련 白蓮 / 梁該憬구구절절 말하지 않아도물 위에 뜬 꽃은 슬프다꽃잎 자락 잡고 있는 그림자흰 적삼 부여잡고 물속에 잠기네요단 강 건너가는 꽃상여같이아무도 함께 건너지 못하고먼발치에 나는 서있고홀로 건너가는 꽃상여생의 마지막 모습처럼고요한 얼굴로물 위를 건너가는 백련마지막 꽃잎이 떨어질 때까지흰 적삼 고운 꽃그리하여, 상여에 피는 꽃이 그리 예뻤나.2024.07.20. 토. 관곡지에서 poem-아직도 모르지만 2024.07.22
20240225.일. 2월은 가고 있다/ 梁該憬 이월과 삼월의 경계처럼 하늘과 맞닿은 산능선에 눈이 선을 그린다 땅속 깊숙이 올라오던 봄이 무릎을 세운곳의 경계가 산을 일으킨 둥근 봉우리 참 이상하기도 하지 어지럽게 내리는 눈이 서로를 잘 통과하여 경계를 일으키고 있지 나 아닌 곳에 쌓여가는 눈 지그시 누르는 무게 때문에 잠시 침묵하는 봄 허리에도 무릎에도 차고 있는 저 눈은 투명한 기운으로 봄을 일으키고 있다 이월과 삼월의 경계에서 2월 하순, 눈 오는 날의 관악산에서 poem-아직도 모르지만 2024.02.26
20240218. 계룡산 바람 바람 연정/ 梁該憬 아무리 찾아도 보이는 건 없는데 어찌 이리 나를 반기는가 온몸을 붕대처럼 감고 도는 이 기운 내가 오기를 그토록 기다렸는가 텅 빈 곳에 서있어도 요란하게 들리는 소리 겨울 내내 행방을 찾았는데 여기서 만날 줄이야 옷깃을 풀지 않아도 껍질을 다 벗은 산 때문에 주춤했는데 기세좋게 달려드는 바람에 머리카락 헝클어진 몸을 전부 내어주었네 그리고 하루종일 그냥 걷는다 너를 만났는데 또 그냥 걸어야 한다 가부좌 틀고 있는 바위옆을 지날 때에도 허리굽은 노송옆을 지날 때에도 수십 년 정분이 가슴에 있는데 너를 만났다는 이야기를 하지 못했다. 2024.02.18. 계룡산에서 poem-아직도 모르지만 2024.02.20
20231111.갈대밭에서(금강변 마실길에서) 갈대밭에서/ 梁該憬 낯선 곳에 나를 내려놓았다 조금 걸어야겠다고 강으로 간다 잘 가라 잘 가라 손을 흔드는 갈대들 속으로는 가을바람이 야속해 서로 부둥켜안고 산다 약속도 없이 왔는데 무리로 손을 흔드는 갈대들 갈대밭 너머에는 강물이 흐르지만 내키 만한 큰 갈대숲에 들어서서 갈대처럼 서있어 본다 함께 기대어 서있으니 가을빛에 길어진 그림자를 묻어버린다 지금 이 순간은 벅찬 약속도 아픈 이별도 생각하지 않는다 평생 함께했던 그림자마저 잊고 갈대에게 보고 싶었다는 말을 전하네 갈대숲은 흔들릴 때마다 내 마음을 흘러가는 강물이었다 갈대강에서 참 보고 싶었다 말을 전하네 내일은 다시 또 혼자가 되어 허리 긴 그림자를 돌아볼지라도. 2023.11.11. 금강변 갈대밭에서 poem-아직도 모르지만 2023.11.13
20231101 가을 빈가지(우이령 길에서) 가을 빈 가지 / 梁該憬 무수한 가지들이 단풍잎을 빼곡히 들고 있네 그중에 잎을 갖지 못한 나뭇가지 무성한 단풍잎에 묻혀 보이지 않네 지난여름이 얼마나 힘들었길래 붉은 잎 한 장 내밀지 못하네 하필 마른 나뭇가지에 새 한 마리 앉았다 가네 떠나는 새를 향해 흔들 잎이 없어 단풍잎 사이로 고개를 묻네 밤새 돌아누워 붉은 잎의 등을 긁으며 흐린 하늘 속으로 숨어든 새를 기억하네 그래도 붉은 잎 아래서 밤을 맞이하니 그게 어디야 단풍마저 지고 나면 그 아래가 전부 벼랑이지 마른 나뭇가지, 새에게는 잠시 길이었지. 20231101. 수 우이령길에서 poem-아직도 모르지만 2023.11.02
구봉산 죽은 소나무 구봉산 죽은 소나무/梁該憬 구봉산 윤회봉 앞에서 바람이 일거나 눈이 오거나 산에 좋아하는 맹신자를 기다리다 하늘의 처분에 병든 것도 모른 체 요지부동 거처가 되었네 살아서 보금자리 죽어서 극락이 된 거처에서 삭쟁이하나 떨어질때마다 선계에 드는 적멸 산에 올때마다 그 많은 나무 중에 금강송에 기대던 맹신도들 병들어 죽고 나니 잡목이나 금강송이나 이제 그늘조차 만들 수 없는 몸이지만 꼿꼿이 선체로 해탈하는 죽은 소나무 가지가 불어질 때마다 성불의 목탁소리 들린다 2023.09.17.일. 영월 구봉산에서 poem-아직도 모르지만 2023.09.19
20230521 소백산 철쭉 소백산 철쭉/梁該憬 소백이 주신 땅 너른 초원 위에 연분홍 곱게 차려입고 누구를 기다리나 멀리서 보아도 나를 기다리는 것 같아 겨울날 이 자리에서 눈 속에 빠지던 발의 깊이만큼 기뻐서 울컥 이번 봄날은 비로봉에서 연화봉까지 길다 격렬한 바람이 하늘을 흔드는데 고요한 저 빛깔은 소리를 쓸어 담네 가장 낮게 앉아 바람에 누운 풀잎들의 등불이 되는 연분홍 낮게 앉아도 연분홍 등불아래 그림자 있네 그림자 끌어안고 누운 풀잎 아무리 길어도 좋은 봄날 2023.05.21.소백산에서 poem-아직도 모르지만 2023.05.2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