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우길11구간 산골길을 걸어서 강릉시 죽헌동으로 나오면
오죽헌을 만난다
담장에 기대어 가는 감을 바라보며 담장을 따라 걷다보면
오죽헌 정문을 만난다.
[강릉 오죽헌] 보물 제165호(1963.01.21 지정)
강원도 강릉시 율곡로 3139번길 24 (죽헌동) '오죽헌'은 조선시대의 대학자 율곡 이이와 관련하여 유명해진 강릉 지역의 대표적인 유적지이다. 오죽헌은 조선 초기의 건축물로, 건축사적인 면에서 중요성을 인정받아 1963년 보물 제165호로 지정됐다. 이 곳 몽룡실(夢龍室)에서 율곡 이이(李珥)가 태어났다고 한다. 문성사는 율곡의 영정을 모신 사당이며, 어제각은 율곡의 저서 <<격몽요결>>과 율곡이 유년기에 사용 하였던 벼루(용연)를 보관하기 위한 유품소장각이다. 한편 율곡기념관은 율곡의 저서와 신사임당의 유작을 비롯하여 매창·옥산 이우 등, 율곡 일가의 유품 전시관이다. 한편 강릉시는 1961년부터 현재까지 매년 10월 25, 26일 율곡을 추모하는 율곡제전을 봉행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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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장료를 지불하고...
율곡이이의 동상
견득사의(見得思義) : 이익을 취할 때는 그것이 옳은 가를 생각하라 .
오른쪽에 이율곡선생께서 남기신 말을 새겨두었다.
한번쯤 새겨볼 말이다.
정문에서 10분여 걸어오면
자경문에 이른다.
자경문 안쪽 모습
1.자경문. 2.유택정화기념비 3.문성사 4.오죽헌(몽룡실) 5.바깥채 6.안채 7.어제각 8.유물전시관 9.임지문
율곡기념관
자경문을 들어서면 넓은 광장이 나오고 맞은 편에는 율곡기념관 오른쪽 문으로 들어가면 오죽헌과 문성사 그리고 어제각을 관람할수가 있다.
조선초기의 건축물로서 주택건축물로서 가장 오래된 역사를 지닌 오죽헌 오죽헌의 몽룡실에서 율곡 이이가 태어났다고 한다.
오천원권 지폐의 배경이 된 곳이기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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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죽헌으로 들어가볼까요?
문성사文成祠
1975년 오죽헌 정화사업 때 율곡 이이 선생의 영정을 모시기 위해 지은 사당이다.
‘문성’은 1624년 8월 인조대왕이 율곡 선생에게 내린 시호로 '도덕과 사물을 널리 들어 통했고
백성의 안위를 살펴 정사의 근본을 세웠다.
(道德博聞 安民立政)'라는 의미가 담겨 있다.
원래 이 자리에는 율곡 선생이 쓴 <<격몽요결>>과 벼루를 보관하기 위해 건축된 어제각이 있었으나
사랑채 북쪽으로 자리를 옮기고, 문성사를 건립하여 율곡 선생의 영정을 모셨다.
율곡 이이 선생 영정은 이당 김은호가 그린 것으로 1975년에 표준영정으로 선정되었다.
선비들의 평상복인 심의를 입고 검은색 복건을 쓰고 있다.
현판 글씨 ‘문성사’는 박정희 대통령이 썼다.
이율곡 영정
김은호 화백이 그렸다
이이(李珥)
이이(李珥, 1537년 1월 7일(1536년 음력 12월 26일) ~ 1584년 2월 27일(음력 1월 16일))는 조선 시대의 문신, 성리학자이며 정치가, 사상가, 교육자, 작가, 시인이다.
성혼, 송익필, 김장생 등과 함께 기호 지역이 기반인 서인(西人)의 종주로 추앙된다. 아홉 차례의 과거에 급제해 구도장원공(九度壯元公)이라는 별칭을 얻었다. 16세 때 어머니 신사임당이 죽자 3년간 여묘살이를 한 후, 아버지가 계모 권씨를 들인 뒤 금강산에 들어가 승려가 되었는데, 이 때문에 훗날 그가 죽은 후에까지도 '머리를 깎고 승려가 되려다가 환속한 사람'이라고 동인과 남인이 공격하는 빌미가 되었다.
이준경이 죽기 직전 붕당의 폐에 관한 유차를 올리자 '죽음에 이르러 말이 악하다'고 공격하였으며 이후 이준경의 처벌까지 가기도 했다. 그러나 후일 당쟁이 현실화하자 스스로 크게 뉘우치고 동인, 서인 사이의 당쟁 조정을 평생 정치 이념으로 삼았다.
공납(貢納)의 폐단 시정책인 대공수미법(代貢收米法) 실시를 주장하고, 병조판서로서 여진족 이탕개의 침입을 격퇴한 후, 10만 양병설을 주장해 임진왜란을 예언했다는 명성을 얻었다. 붕당을 조정하지 못한 한을 남긴 채 죽었으며, 사후 의정부영의정에 추증되었다. 그 뒤 그를 문묘에 제향하는 문제를 놓고 인조 반정 이후 50년간 논쟁의 대상이 되다가 숙종 때 경신환국으로 서인들이 집권한 후 문묘에 종사되었다.
본관은 덕수, 자는 숙헌(叔獻), 호는 율곡(栗谷), 석담(石潭), 우재(愚齋)이며 아명은 현룡(見龍), 시호는 문성(文成)이다. 강평공(康平公) 이명신(李明晨)의 5대손이며, 중종 때의 재상 이기, 이행 형제의 재종손[3]이자 통덕랑 사헌부감찰을 지내고 사후 증 숭정대부 의정부좌찬성에 추증된 이원수(李元秀)와 정경부인 신사임당의 셋째 아들이었다. 휴암 백인걸의 문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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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죽에 둘러싸인 문성사
율곡과 신사임당과의 세월을 함께 한 노송이 그옆에 자리하고 있다.
문성사 옆 노송~율곡송(栗谷松),
600년된 배롱나무
사임당 배롱나무라고 한다..
이배롱나무와 문성사 뜨락옆의 노송, 몽룡실앞의 율곡매는
신사임당과 율곡이이의 오랜세월의 숨결이 베어있는 나무라고 할수 있다
문성사와 ㄱ자형식으로 자리잡은 오죽헌
오죽헌은 조선전기 민가의 별당에 해당하는 건축물이다. 정면 3칸, 측면 2칸의 평면 건물로 4칸짜리 대청과 2칸짜리 방과 마루로 구성돼 있다. 대청에는 우물마루를 깔고 천정은 고미반자를 두었으며 삼면은 창호문으로 둘렀다. 주심포와 유사한 이익공계 형식을 보이고 있어, 주심포 집에서 익공식 집으로 넘어가는 변천과정을 보여준다. 조선전기 주택을 살펴볼 수 있는 자료로서 완벽한 모습을 보여주는 구조적 가치 외에도, 이 곳 몽룡실에서 율곡 이이가 태어남으로써 더욱 유서 깊은 곳이 되었다.
오죽헌은 원래 수재 최응현의 집이었는데, 둘째 사위인 이사온에게 상속되었다가 이사온의 딸 용인 이씨에게 상속되었다. 재산을 물려줄 때 외손 이이에게는 조상의 제사를 받들라는 조건으로 서울 수진방 기와집 한 채와 전답을 주었고, 권처균에게는 묘소를 보살피라는 조건으로 오죽헌 기와집과 전답을 주었다. 외할머니로부터 집을 물려받은 권처균은 집 주위에 검은 대나무가 무성한 것을 보고 자신의 호를 오죽헌(烏竹軒)이라 했는데, 이것이 후에 집 이름이 되었다. |
오죽헌의 뒷모습
오죽헌의 율곡매
붉은 매화가 만발한 오죽헌을 잠시 생각해본다.
신사임당의 화폭에 그려졌을 홍매화....
오죽헌주변의 오죽숲
오죽헌 사랑채 툇마루 기둥에 걸려있는 주련
정면 앞기둥에 4개, 뒤에 3개, 측면에 3개로 총 10개가 걸려있다.
주련의 내용은 명나라 진계유(陳繼儒, 1556~1639)의 암서유사(巖棲幽事)이며,
客過草堂,叩餘岩棲之事,余倦於酬答,但拈古人詩句以應之。
(객과초당 고여암서지사 여권어수답 단념고인시구이응지)
객이 초당을 지나다 바위산에 사는 일에 관해 나에게 묻길래
내가 답하기 싫증나 그냥 고인의 시구를 가지고 응답했다.
得閒多事外(득한다사외) 번잡한 일을 벗어나 한적함을 얻을 수 있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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問:是何感慨而甘棲遁? (시하감개이감서둔) 위 주련의 글씨 : 感慨甘棲遁(감개감서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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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채의 벽에 걸려있는 글씨와 그림들
저기 안쪽에 방치하듯 떨어져 있는 액자는 뭘까...
좀 기분이 그렇다.
오죽헌의 사랑채와 안채
행랑채부엌
이이의 저서 "격몽요결"과 어릴적 사용했던 벼루
사진을 잘못찍었지만 그래도....
정면에 오죽헌의 뒷모습이 보이고
사랑채와 행랑채가...한눈에 들어오는 풍경
오죽헌의 안채와 사랑채 출입문
5000원권의 지폐모델이 된 풍경의 포토죤
귀부:거북 모양으로 만든 비석의 받침돌
강원도 문화재자료 제2호 『강릉귀부 (江陵龜趺)』
강원도 문화재자료 제4호 『강릉옥천동석탑재 (江陵玉川洞石塔材)』
보물 제86호 굴산사지당간지주 모형 등이 전시되고 있는 향토민속관 옆 야외전시장,
율곡기념관을 나와 입지문을 나서서...
트랙킹도중의 오죽헌 방문이라서 시간상 박물관에는 들르지 못했다.
신사임당 동상(申師任堂 銅像),
踰大關嶺望親庭 유대관령망친정 / 신사임당
慈親鶴髮在臨瀛 자친학발재임영 늙으신 어머님을 고향에 두고
身向長安獨去情 신향장안독거정 외로이 서울로 가는 이 마음
回首北村時一望 회수북촌시일망 이따금 머리 들어 북촌을 바라보니
白雲飛下暮山靑 백운비하모산청 흰 구름 떠 있는 곳 푸른 산이 저무네
(동상 뒤에 새겨진 신사임당의 시)
"율곡은 '어머니께서 임영(臨瀛)으로 근친(覲親)을 가셨는데 돌아오실 때 자친(慈親)과 울면서 작별을 하고
대관령 중턱에 이르러 북평(北坪)을 바라보고 백운의 생각(白雲之思)을 견딜 수 없어
가마를 멈추게 하고 한동안 쓸쓸히 눈문 짓고 다은과 같은 시를 지었다'고 했다.
당시 율곡은 6세, 사임당은 38세, 친정 어머니는 62세였다."
신사임당 초충도 화단
오죽헌 앞뜰에서는 농악놀이가 한창이다.
가을이라...농악놀이가 더욱 풍요롭게 느껴진다
강릉농악(江陵農樂)
강릉농악(江陵農樂)은 태백산맥 동쪽 지역인 영동 농악의 대표 격으로
1985년 12월 1일에 중요무형문화재 제11-4호로 지정된 농악을 말한다.
강릉농악은 ‘농사풀이 농악’이라고도 불리는데,
그 이유는 농경 생활을 흉내내어 재현하는 농사풀이가 있기 때문이다.
「강릉관노가면극」
「강릉관노가면극」은 연희자들이 구한말까지 강릉부에 속했던 관노들에 의해 전승되었다.
매년 단오 때마다 관노들이 놀이판에 직접 참가하여 탈놀이를 하였다.
무언극의 형식으로 진행되는 이 「강릉관노가면극」은
조선시대의 다른 가면극처럼 풍자가 혹독하지 않고 춤과 동작위주로 이루어져 있다.
내용은 양반광대와 소매각시를 통한 화해와 사랑,
시시딱딱이를 통한 벽사의식, 장자마리의 풍요추구 등 성황신제 계통극의 전형성을 갖추고 있다.
[출처] 한국학중앙연구원 - 향토문화전자대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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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죽헌관람을 마치고 나오는 길
강릉관노가면극을 마당에서 하고 있엇다
처음부터 관람하지는 못했지만
해학적이라 관람객들의 웃음을 사는 가면극이었다.
바우길11구간을 걷는 도중의 관람이라 면밀하게 보지는 못했지만
오랫만에 찾아드는 오죽헌...
고향의 발걸음인듯 반갑게 보고 아직 못다걸은 바우길을 걷기 위해 발길음 옮겼다.
2014.9.27.토요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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