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동향교(喬桐鄕校)
교동향교에 찾아 들었을때 만나는 표지판
둘레길을 좋아하다보니 반가운 표지판
강화나들길9코스중 교동1코스 "다을새길"에 속하는 교동향교
이길을 걸어보면
교동 역사의 깊이와 문화를 알수 있는 곳이다
발목이 아파서 이번에는 이곳저곳 차를 타며 구경하지만
가을쯤에는 걸어서 돌아볼 참이다.
교동향교 초입
주차장에서 조금 걸어가야 한다
왼쪽에는 말에서 내려서 가라는 하마비가 있다
이 풍경 좋은 곳,
조용한 곳에 들때에는 말에서 내려서 가는 것이 당연한 것이리라.
수령변장하마비(守令邊將下馬碑)
대부분의 향교 하마비에는 '대소인원개하마(大小人員皆下馬)'
즉 대소인원 모두 말에서 내리라고 적혀 있다
그런데 교동향교 하마비에는 '수령변장하마비(守令邊將下馬碑)'라고 적혀 있다.
지위가 높으나 낮으나 모두 공자를 모신 사당인 향교 입구에서는 말에서 내리라는 세운 하마비(下馬碑)이다
교동도에서 높은 사람은 수경과 변장이니까 꼭 찍어서 적었던것 같다.
변장은 군사의 우두머리, 이곳 향교에서 말을 타고 가면 안된다는 것이다.
교동향교(喬桐鄕校)
교동향교(喬桐鄕校)는 인천광역시 강화군 교동면에 있는 향교이다. 1995년 3월 1일 인천광역시의 유형문화재 28호로 지정되었다. 1127년에 현유(賢儒)의 위패를 봉안, 배향하고 지방의 중등교육과 지방민의 교화를 위해 창건되었다. 창건 당시 화개산 북쪽에 있던 것을 조선 중기에 부사 조호신(趙虎臣)이 지금의 위치로 이건하였으며, 1966년에 중수하였다. 현존하는 건물은 대성전·동무(東廡)·서무(西廡)·명륜당·제기고(祭器庫) 등으로 구성되어 있다. 대성전 안에는 5성(五聖)·송조2현(宋朝二賢) 및 우리 나라 18현(十八賢)의 위패가 봉안되어 있다.
조선시대에는 국가로부터 전답과 노비·전적 등을 지급받아 교관이 교생을 가르쳤으나, 현재는 교육적 기능은 없어지고 봄·가을에 석전(釋奠)을 봉행(奉行)하고 초하루·보름에 분향을 올리고 있으며, 전교(典校) 1명과 장의(掌議) 여러 명이 운영을 담당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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향교 뒷산은 교동도에서 가장 높은 화개산으로 높이 269m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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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르는 길에는 석양빛을 받아 아카시꽃이 화사하게 피어나고 있었다.
교동향교 전경
외삼문
교동향교 편액
먹물로 쓴듯 아주 소박하다.
- 명륜당
- 일반적으로 앞면에 짝수칸을 쓰지 않는 한국의 목조건축에서
- 특이하게도 앞면 4칸, 옆면 2칸이라는 칸수를 채택하고 있다.
- 중앙의 2칸은 대청으로 하고 양옆면을 대칭으로 앞면 각 1칸씩 온돌방을 배치하였다.
- 중앙의 대청은 앞면을 띠살문의 들어열개로, 뒷면은 판장문 미닫이를 두었다.
- 오른쪽 온돌방 주변에는 함실을 두어 윗쪽을 수납공간으로 사용했다.
- 좌우측 온돌방의 앞면 창호는 상부에 두어 진입은 대청을 통해서만 가능하도록 했으며,
- 5량 구조로서 민도리 형식의 소박한 가구를 갖추고,
- 외무의 보뺄목 밑에 헛첨차 형태의 구조가 밑을 받치고 있다.
- 막돌초석에 방주, 팔작지붕의 홑처마로써 단청을 제외하고는 일반 민가의 건축적 구조를 보여주고 있다.
- 명륜당 뒷면과 내삼문 사이의 공간에는 계단 양쪽에 조경이 조성되어 있고,
- 진흙을 쌓고 그 위에 항아리를 거꾸로 세워놓은 듯한 굴뚝과 함께 계단 왼쪽에는 음각으로 명문이 새겨진 한 기의 괴석이 있다.
명륜당 후면
대성전에서 바라본 명륜당
서재
서재는 앞면 2칸, 측면 3칸의 ㄱ자형태로 동재보다 규모가 다소 작은데,
측면 2칸은 칸막이가 없이 온돌방으로 되어 있다.
앞면 2칸은 흙바닥의 광(창고)을 이루고 있으며, 온돌방 앞면은 띠살창호,
뒷면은 상부에 빗살창호를 두고 광에는 판장문 외의 채광창을 두지 않았다.
가구는 5량, 팔작지붕에 홑처마, 그리고 민도리 양식의 소박한 형태다.
두 건물 모두 벽체를 방화벽으로 하여 화재에 대한 엄격한 보호구조를 택했고,
전성기 향교에서 보이는 평면구조와는 현저한 차이를 보인다.
거의 일반 살림집의 짜임새를 보여주고 있는 것이다.
서재후면
동재
동재는 정면 3.5칸, 측면 5칸의 ㄱ자 형태로서 장방향의 3칸과 단방향의 2칸을 온돌방으로 구성하고
중앙에 정면 1.5칸 측면 2칸 규모의 부엌 공간을 배치시켰다.
중정을 향하는 장방향 부분의 온돌 앞면에는 툇마루를 두고
단방향 부분에는 온돌방 전면에 전실형태의 퇴간을 부엌과 온돌방에 걸쳐 내부 공간으로 구성하였다.
온돌방들은 앞면 모두 띠살창호로 뒷면은 모두 윗부분에 살창을 두었다.
내부는 5량 구조로서 민도리 형식의 가구 구조로 팔작지붕에 홑처마이다.
동재 앞과 외삼문 사이에는 사선 방향으로 명륜당의 것과 같은 진흙으로 하단을 만들고
나무로 윗부분을 만든 납기둥 모양의 굴뚝이 마련되어 있다.
동재에는
명륜당의 것과 같은 진흙으로 하단을 만들고
나무로 윗부분을 만든 납기둥 모양의 굴뚝이 마련되어 있다.
대성전에 바라본 명륜당과
대성전으로 오르는 길
작약꽃이 곱다.
보이는 전각은 '제기고'이다.
제기고
옆문으로 대성전으로 들어설때 ...맞은 '서무'가 보인다.
대성전
공자의 우패를 모신 전각이다.
- 약 1.2m 높이의 막돌허튼층쌓기로 만든 기단 위에 지어졌는데,
- 앞면 5칸, 옆면 1.5칸의 맞배지붕으로 양쪽에 풍판을 두었다. 겹처마이며 전체 건물에 단청을 하였다
- 퇴간부에만 팔각추 형태의 장주형 주춧돌과 원형 기둥을 쓰고 나머지는 네모난 초석에 네모난 기둥으로 되어 있다.
- 향교내의 유일한 초익공 형식의 공포를 갖추고 있으나 그것도 후면부에는 민도리 형식으로 보뺄목만 내놓은 상태이다.
- 대성전 가운데 앞면 3칸에는 띠살창호로 들어열개문을 달고
- 가구는 1고주 7량 구조로 윗부분 종도리 밑에는 판대공으로 간단히 받치는 구조를 취하였다.
- 대성전 앞면에 있는 방형의 판석은 가로 2.05m에 세로 1.19m로 생단(牲壇)으로 여겨진다.
대성전 측면
맞배지붕에 비바람을 막기 위한 풍판을 대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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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무 내부
교육하시는 관리인
- 내삼문
- 대성전과 동서무가 있는 제사공간으로 들어가는 입구로 명륜당 바로 뒤에 있다.
- 계단 오른쪽 아래에 노룡암(老龍巖)이라는 작은 바위가 있다.
- 교동현 관아 동헌의 북쪽 층계에 있었던 돌로써 숙종 43년(1717년)에 이봉상이 '노룡암'이라는 글자를 새겼고,
- 영조 49년(1773년)에 이달해가 글을 지어 새겼던 것을 1982년에 지금의 위치로 옮겨 오늘에 이른다.
노룡암
동무
대성전옆문
밖으로 나가면 제기고가 보인다.
대성전에서 명륜당으로 내려가며
벽면과 어울리는 작약꽃을 찍어보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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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고 아담한 교동향교
석양빛에 향기를 품는 아카시아향기도 좋았고
화려하지만 소담한 작약꽃이 이뻤던 곳이다.
우리나라 최초의 향교가
서북쪽 섬마을에 있었다니...
그 의미가 큰 것도 같다
연육교가 생겨서 쉽게 드나들수 있는 곳이 된 교동도
시간을 내어 좀더 들러볼 요량이다.
아차도에 들렀다 정해진 뱃시간 때문에 강화도에 나오고 보니
짜투리 시간을 이용하여
화개산 자락의 화개사와 읍성, 그리고 교동향교를 들러보고
이 교동대교를 건너 장화리 일몰를 보러 서둘러 떠나는 길이다.
교동대교를 건너는 순간 마주보는 산은 강화 별립산이다.
20150 5. 24. 일요일
오늘의 여정
강화외포리선착장-아차도-강화외포리선착장-교동대교-교동읍성-화개사-교동향교-강화장화리일몰
참 알찬하루 였네요
고마운 두친구의 동행덕택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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