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슴 한쪽 비워둔다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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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5.5.24.일. 교동도 '교동읍성'

kyeong~ 2015. 5. 30. 00:59

 

교동도(喬桐島)

인천시 강화군 북서부에 있는 섬. 섬 자체가 교동면을 이룬다. 면적은 46.25km2이다.

북부 해안선이 휴전선 남방 한계선으로 되어 있다.

고구리·인토리·양갑리·삼선리·무학리 일대의 넓은 충적 평야와 간척으로 얻은 넓은 농토에서 쌀·고구마·감자 등이 생산된다.

넓은 간석지는 물고기들이 알을 낳기에 알맞아 도미·조기·삼치의 어장을 이룬다.

고적으로는 우리 나라 최초의 향교인 교동 향교와 교동 읍성·삼도 수군 통어영지·조선 분묘군 등이 있다.

 

 

(인천=연합뉴스) 배상희 기자 = 인천 강화군 교동도 주민에 한해 20일부터 교동연륙교를 24시간 통행할 수 있게 됐다.

강화군은 해병대2사단과 지속적인 협의를 벌인 결과 연륙교 통행 제한을 일부 해제했다고 밝혔다.

교동도 일부 지역이 민통선 북방지역이어서 연륙교를 통과하려면 군(軍) 검문을 받아야 하고 통행 시간도 제한돼 있었다.

섬 출입증을 가진 교동도 주민의 연륙교 통행 시간은 오전 4시 이후부터 자정까지였으나 24시간으로 제한이 없어졌다.

 

그러나 주민 외 방문객은 일출 전 30분부터 일몰 뒤 30분까지로 이전과 같이 통행 시간이 제한된다. 

강화군 관계자는 "일반 방문객도 통행 제한 없이 자유롭게 연륙교를 이용할 수 있도록 군부대와 지속적으로 협의하겠다"고 말했다. 

앞서 강화군은 24시간 통행을 위해 2억5천만원을 투입, 군검문소 이전과 도로 확장 등의 작업을 벌였다. 2015.5.20일자보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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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차도에서 강화로 나왔으나

해는 아직 눈이 부시도록 밝고

그래서 교동도로 향했다.

섬이었는데 이제는 섬이 아닌 교동도

교동도 섬길을 좀더 편하게 걸어볼수 있게 되었다

 

강화나들길 10코스 다을새길이 욕심이 났으나

짜투리 시간을 이용하는 길이라

그냥 일부 유적지만 돌아보기로 했다.

 

교동도에 가려면 연육교 입구 군 검문소에서 출입신고서를 쓰고 출입증을 받아야 한다.

 

 

이정표에서 보이는대로 다니다보니

생각지도 못했던 읍성을 만났다

일찌기 보아왔던 낙안읍성이나 해미읍성보다는 규모가 작지만

이 외딴 섬에도 읍성이 있었다니...

허물어지긴 했지만

반가운 읍성이다.

 

 

교동읍성喬桐邑城

인천광역시 기념물 제23호 (1995년 3월 1일)

인천광역시 강화군 교동면 읍내리 577

인천광역시 강화군 교동면 읍내리에 있는 조선시대 후기의 읍성

 

 

둘레 약 430m. 높이 약 6m. 인천광역시 기념물 제23호.

이 성곽은 강화도 서편의 교동도에 축조된 고을성으로 1629년(인조 7)에 쌓은 것이라 한다.

성을 쌓은 목적은 예로부터 서해안의 방어를 위한 것이었으며

조선시대 후기에는 이 성 안에 삼도수군통어영(三道水軍統禦營)의 본진이 주둔하여 왔다.

원래 이 성에는 세 곳에 문루를 갖춘 성문이 있었는데 동문에는 통삼루(統三樓),

북문에는 공북루(拱北樓), 남문에는 유량루(庾亮樓)란 문루가 있었다고 한다.

1753년(영조 29)에는 당시의 통어사 백동원이 성곽과 여장(女墻)을 고쳐 쌓았고,

1884년(고종 21)에는 통어사 이교복이 남문을 중건하고 또한 문루와 성벽을 수리하였는데 공사를 끝내지 못하였다.

 

그 뒤 1890년(고종 27)에도 동문과 북문을 고쳐 세웠는데 세월이 흘러 무너졌다고 한다.

특히 남문의 유량루는 1921년의 폭풍으로 무너졌으나 홍예(虹霓) 부분만은 지금까지 남아 있다.

 

우리나라의 서해안에는 도서와 해안을 끼고 있는 지역에서 외적의 방어를 위해 고을성을 많이 축조하여 왔는데

교동읍성 이외에도 인근의 강화읍성, 충청남도의 해미읍성과 안흥성, 전라북도의 고창읍성, 전남 진도의 남도석성 등을 들 수 있다.

 

 

교동읍성 후면

 

허물어지기 쉽상이다

위험하다는 표지판은 있지만

보호용 가드레일이라도 쳐서 좀더 잘 보호 하였으면 좋겠다.

 

 

 

조심해서 위로 올라가서 ...

 

옛것을 만나면 이렇게 반갑다

이리저리 일단 찍어보고 인터넷검색을 통해서 자료를 찾을 요량이다.

 

 

읍성앞 거북이(?) 석상

 

 

 

 

조선 인조 7년(1629)에 처음 쌓았으며,

영조 29년(1753) 고쳐 쌓았고, 고종 21년(1884)에는 성문을 다시 세웠다고 전한다.

고종 27년(1890) 동문과 북문을 다시 세웠다고 하나,

현재는 3문이 모두 남아있지 않다. 동문과 북문은 언제 없어졌는지 확실하지 않으며,

남문인 유량루는 1921년 폭풍으로 무너져 반원 형태의 홍예문이 남아 있다.

 

후면을 돌아보고 나오는 길에 다시한번 찍어보고....

 

 

읍성과 함께 줄어지어 선 옥수수밭..

 

 

 

무슨 의미인지는 모르지만 돌에 새겨진 한자.

 

조선시대 그 옛날 읍성앞에

세월이 흘러 기와집과 슬레이트 지붕의 시대와 어우러져 있는 풍경

 

 

읍성에 기대어선 읍내리 농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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준비없이 찾아든 교동도

교동향교를 찾아가다가

표지판을 따라 찾아든 교동읍성

덤으로 만나서...더욱 반가운 곳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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