음악감상을 위한 첫걸음
흔히 음악감상은 “음악을 예술적으로 즐기는 능력" 또는 “음악을 이해하고
美적인 내용을 즐기면서 이해하는 체험"이라고 한다. 감상은 감각에서 시작하여
감정을 통해 인식으로 끝나는 심리적인 작용이라고 할 수 있다.
음악은 작품과 연주 그리고 감상 등으로 나누어 볼 수 있는데 이것은 여타의 예술
보다는 복잡한 점이라고 하겠다.
예컨데 그림은 화가의 손을 거쳐 곧 화상에게 넘어가 대가를 받지만 음악은 연주를
통해야만 한다. 즉 음악은 미술에 비하여 한 단계가 더 있는 셈이다.
작품, 연주, 감상 등, 이 모두가 창조적인 행위이지만 흔히 작품, 나아가서는
작곡을 창작이라고 한다. 작품은 작곡자의 정신감동인 동시에 생활의 반영이며 그
시대의 반영 등 여러 가지로 논의되고 있다. 연주는 세월이 흐름에 따라
변화하는데 오늘에 와서는 그 시대가 요구하는 객관적인 연주여야 한다는 것이다.
감상은 시대에 부합한 객관적인 감상이어야 한다. 사실 작품과 연주의 궁극적인
목적은 감상에 있다. 그러므로 근래에 와서는 무엇보다도 감상을 우위로 친다.
더구나 교육적인 면에서는 더욱 중요시되고 있다.
격조 높은 작품을 명연주가에 의해 창조된 내용으로 감상자에게 교류시키는
아름다운 감화야 말로 참다운 감상이라 하겠다. 감상을 함에 있어 그 감흥이
고조되어 극치에 이르게 되면 자기와 감상과의 구별이 없는 상태에 이르게 된다
이런 면으로 보면 가창과 감상은 같은 위치에 있는 것으로서 거의 구별이 없다.
그러므로 결국 본질이 다른 것이 아니라 과정의 차이라는 것을 알 수 있다. 따라서
발동적인 상태의 경지에서 발표하면 가창이 되고 그 같은 경지에 이르지 못 할
때는 받아들이는 감상이 된다.
감상에는 전문적인 입장과 아마추어의 경우가 있는데 여기서는 주로 음악 애호가의
편에서 언급하고자 한다. 우리가 "음악감상"이라 하면 퍽 쉬운 것으로 생각하게
되지만 따지고 보면 실로 어려운 것이다. 음악은 구체적인 것이 아니라 추상적인
것이기 때문이다.
위에서 언급한 바와 같이 감상이란 용이한 것 같이 생각된다. 음악은 세계의
공통어라는 말이 있다. 인간은 그 생김새랄까 사람의 구조 조직이 같기 때문에
동양인이나 서양인, 인종과 민족에 의한 근본적인 차이가 별로 없다는 것이다.
그러므로 슬픈 음악을 듣고서 동양 사람이 슬프게 느낀다면 서양인도 슬퍼하고
또한 상쾌한 음악을 감상하면서 동양인이 기뻐하면 서양 사람도 같이 기뻐할 수
있다는 것이다. 그런 의미에서 음악은 세계공통어로 통하고 있다. 노래인 경우 그
내용인 가사는 그 나라의 말로 되어 있기 때문에 그 음악은 민족적인 경향이
농후하계 느껴지고 기악곡으로 된 것이라면 다분히 세계성을 띠게 된다는 것이다.
한편으로 생각할 때 감상 또는 창작이니만큼 심미관을 통해 작품 속에 담긴 참다운
가치를 찾아 법열의 경지에 이르도록 노력해야 하겠다. 음의 예술은 기술적으로 그
넓이가 무한하기 때문에 예술의 깊이도 그 한계를 알 수 없다. 그러므로 음악에
대한 기초적인 이론과 지식이 필요하다.
겸하여 역사적인 발자취를 아는 것이 상책이다. 예컨대 어느 작곡가가 어느 시대에
나서 우리들에게 어떤 유산을 남겼는가, 말하자면 역사의식이 없이는 과거나 현재
또한 미래도 알 수 없을 것이다. 지난 날을 알지 못하고 오늘을 바르게 판단할
수는 없을 것이며 오늘의 올바른 판단 없이 내일의 보다 좋은 설계를 꾸밀 수는
없을 것으로 본다.
우리가 서양음악 하면 다 같은 것으로 생각하기 쉽지만 나라마다 정치와 종교,
경제, 자연환경 등이 각각 다르듯이 나라마다 고유한 음악을 가지고 있다.
그러므로 역사를 통해 음악이 변화된 과정을 파악해야 한다. 음악감상은 감상자의
음악적인 교양, 바꾸어 말하면 자기 자신이 쌓은 실력으로서만 감상된다. 그러므로
저 유명 한 드뷔시의 말대로 마치 거울 앞에 선 자신과 같이 숨길 수가 없다는
것이다. 자기의 음악적인 교양 수준의 한도 내에서 향수되기 때문이다.
작곡가가 쓴 작품을 다시 창조하는 사람은 연주가이기에 이를 재창조자라고 한다.
연주가는 작곡자의 무형의 작품 대상으로부터 마음 속에서 유형의 작품을 창조한다.
감상자는 연주가의 좋은 개성과 연마되어 숙달된 기교로써 창조된 예술, 즉 그들의
작품 속에 무한히 비축되어 있는 미를 비축해야 할 것이다. 거기서 받은 우수한
예술성은 분명히 생명을 지니고 있다. 음악의 기초적인 요소에는 '국민적인
특성'과 '형식적인 구조', '시적인 사상, '묘사' 등이 있는데 이는 상술한 이론과
역사 등을 공부하면 능히 해득할 수 있을 것이다.
예술은 생활 속의 사치품이란 말도 있듯이 음악을 전혀 몰라도 우리들은 생활할 수
있다. 그러나 교양있는 인간 형성을 위해서는 예술의 이해력과 감상 능력을
배양함이 바람직하다.
감상 경험 중에서 긴요한 것은 지적인 면보다는 오히려 정서적인 데에 있다. 이로
인해 우리 생활에 윤택한 빛을 발하게 될 것이다. 우리에게 호소하는 힘은 지적인
면보다는 정서적인 것이 크다고 생각된다.
음악을 그리스 신화에 나오는 술의 신 디오니소스적(Diongsisch, Dionysos)인 것과
부드러운 광명의 신인 아폴론적(Apollo, Apollinisch)인 대조적인 두 가지 신으로
비교한다. '다오니소스적' 음악은 감성적인 열광을 표현하는데 적합하다. 이것은
정서적이며 주관적이고 동적이며 직관적 감동적이며 낭만적인 것의 상징이다.
이와는 달리 '아폴론적' 인 음악은 형식과 완성 그리고 완성에의 예술의 상징이다.
그것은 명확하고 엄격함이 절대적인 가치를 가진 것으로서 객관적이며 고전적이고
절대음악인 것이다.
이 두 가지의 성격을 가진 음악이 시대의 흐름을 따라 수레바퀴처럼 빙빙 돈다는
것이다.
감상자에 따라서는 '디오니소스적' 인 음악을 주관적으로 해석하여 감정적으로
이해하는 사람도 있다. 따라서 그들은 작품에 문학적인 표제를 붙여 가면서
파악하려 한다.
그것은 특히 순수 기악곡에 있어서 작품을 왜곡하게 되는 수가 많다. 오스트리아의
비평가 한슬릭 (E. Hanslick 1825~1904)의 말을 빌리면 '감정에 치우친 감상은
병적이다" 라고 배격하였다. 겸하여 그는 '내용과 형식이 없는 음악은 없다' 고
했다.
한편 음악을 객관적, 분석적으로 파악하려는 "아폴론'적인 방법을 쓰는 감상자도
있다. 이는 조직된 음악의 구성체를 주의 깊게 귀로 또는 직관적으로 더듬어
나가려는 방법이다. 작품이 이루어진 원인을 이해하고 작곡자의 사회적인 배경도
체득하려는 감상자이다.
기술적인 문제만을 대상으로 관심을 갖는 감상자도 있다. 물론 기술을 완전히
습득해야만 연주는 가능하다. 헝가리의 유명한 바이올리니스트 시게티 (J. Szigeti
1892~1973)는 "음악이 예술로 되는가 못되는가는 완전한 기술이 있는가 없는가에
따라 먼저 정해진다'고 했다. 이것을 보면 연주에 있어서 기술이 얼마나 비중이
크다는 것을 가히 짐작할 수 있다. 그러나 기교는 연주의 한 부분이지 전부는
아니라고 생각된다. 그러나 감상자는 기술이 없으므로 자기가 쌓은 음악적인
교양으로서 마음을 움직임이 필요 하다. 마음이 움직여져 그 의미를 찾고 그
대상을 따르는 점에서는 능동적인 재창조의 행위가 된다고 본다. 음악감상의
초보자들은 대개 "아름다운 톤, 소리' 혹은 기교에 반해 버리는 수가 있는데
이것도 물론 필요하지만 그것이 음악의 전부는 아니라는 것을 재강조한다. 사실
감상만큼 자기의 내용 발전을 꾀하는데 당할 만한 좋은 예술은 없다고 생각한다.
감상에 있어서 주관적인 해석은 금물이다. 자기 마음대로 감상에 직접적인 영향을
주는 것은 연상(연상)인데 개인적인 연상은 오히려 감상을 해치는 수가 많다.
그리고 우러는 해설에 관한 책을 읽게 되는데 그것이 지적인 준비로서는
필요하지만 마음의 준비까지로는 되지 못한다.
감상자는 작품에 있어 미를 스스로 발견해야 하며 자신의 힘으로써 마음 속에서
창작하는데 의의가 있는 것이다. 말하자면 남이 발견하지 못한 것을 창작해 내는
것이 바람직한 일이다.
작품은 보통 성악과 기악으로 크게 구분하는데 시대에 따라 그 양상을 달리한다.
미국의 음악학자 아펠 (W.Apel)의 조사에 의하면 1500년 이전의 음악이라면 대개가
성악을 뜻했고 16세기 음악 하면 90%가 성악, 17세 음악은 성악과 기악이 반반,
1750년 이후는 기악곡이 단연 우세하다는 것이다.
전반적으로 성악곡은 감상하기가 다소 쉽지만 기악곡은 보다 추상적이기 때문에
초보자에게 있어서는 다소 어려울 것이다. 그러므로 레코드(CD)일 경우 여러번
반복해 듣는 것이 음악을 이해하는데 도움이 될 것이다.
감상은 자기 귀로 듣는 데서 시작하여 거기서 끝나기 마련이다. 작품의 대상에
반해야 하며 광범위하게 반복 감상을 해야야 한다.
연주된 음악은 작품전체에 걸쳐 하나의 정신 감동이 흐르고 있다. 연주가 작곡자의
정신 감동과 일치한다면 가장 이상적이라 하겠다. 음악의 참모습은 정신 생활의
표현이며 그 인격의 발현이다. 훌륭한 인격이 연주를 통해 표현됨으로써 비로서
그를 위대한 음악가, 연주가, 나아가서는 존경할 만한 예술가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그러므로 예술의 고귀한 점은 인격자의 영적인 표현에 있는 것이다. 감상자가
연주가의 인격 표현의 힘을 느끼지 못하고 단지 기교만으로 좋고 나쁜 것을 가릴
수는 없다. 인격적인 표현 없이는 사람을 감동시킬 수 없는 것이다.
공자(孔子 552-479 B.C.)는 '미(美)를 다 하고 선(善)을 다한 음악' 을 말했다.
여기서 미를 다한 음악이란 음악의 형식의 완비와 기교를 발달시킨 것이라 하겠고
선을 다한 음악은 자기의 인격을 완성하기 위해 진지한 노력을 다하는 음악을
말한다. 진지한 노력을 다한 음악을 표현한 것이야말로 참으로 이상적인 예술이라
할 수 있을 것이다.
바흐(J.S Bach 1685~1750)는 말하기를 음악은 "신에 이르는 갈'이라 했고,슈만(R.
Schumann 1810~1856)은 “최고의 예술은 도덕과 일치한다'고 했다. 세상에는 여러
종류의 음악이 많다. 우리는 먼저 이 순수하고 고상한 음악에 귀를 기울여야 할
줄로 생각한다.
따라서 부단히 음악에 대한 교양을 쌓는 것이 바람직한 일이다. 그리고 자기
자신이 연주할 수 있다면 이보다 더 바랑직한 것은 없을 것이다. 그리고
가능하다면 예술 전반에 걸친 광범위한 이해가 필요하다고 생각한다.
음악적인 교양 없이 자신의 마음의 내용이 빈약하면 자연히 자기 불만이 되고
만다. 자기 마음의 빈곤을 때로는 작품이 나쁘다고 단정해 버리는 수가 있다.
그것은 객관성을 잃은 주관으로 간주했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우리는 음악에 대한
지식을 쌓는 교양이 무엇보다도 필요하다고 생각된다. 음악적인 교양을 높이고
음악을 계속 감상함으로써 음악과 친할 수 있을 것으로 확신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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