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숲에서
나는 발이 있어서 참 행복하다
쉰 해를 걸어서 여기까지 왔으니 말이다
걷고 있으면 고요하고
올려다보면 한없이 시원한 대숲
어떤 이는 속이 비었다고 말하지만
과거의 삶 전부가 여백이었고
앞으로도 한량없는 여백뿐
민가지, 빈자리를 위한 이유다
천지가 늦더위를 먹고 지쳤지만
발밑에서 하늘 끝까지 푸른 대숲
눈속, 입속, 귓속까지 비었던 날
댓잎 비비는 소리가 날 때마다
너에게 빈자리 내어놓겠네.
梁該憬
2010.9.5. 담양 죽녹원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