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음악 이야기]
첼리스트
첼로도 바이올린과 마찬가지로 프랑스에서 근대적인 기반을 잡았다.
마르탱 베르토(1700-1771)는 그 선구적인 역할을 한 사람이었다.
베르토는 루이 18세의 궁정 음악가를 지낸 조셈 장송을 키웠는데,
장송의 제자 샤를르 니콜라 보디오(1773-1849)는 1795년에 문을 연
파리 음악원에서 초대 첼로 교수를 역임했다.
또한 베르토의 제자인 장피에르 뒤포르(1741-1818)는 그 보다 더 큰
영향력을 미쳤다.
그의 뒤를 이어 로바쉬-노블랭-에강-마레샬 등이 프랑스 첼로계를
이끌어 갔다.
역시 뒤포르의 제자인 니콜라스 플라텔은 브뤼셀 왕립 음악원에
첼로과를 선설하여 세르베를 위시한 '벨기에 악파'를 키워냈다.
또한 뒤포르의 드레스텐 시절 제자인 크리크는 '드레스텐 악파'의
선구자가 되어 독일과 동구권 첼리스트들에게 지대한 영향을 미쳤다.
그 외에도 이 초기 시절엔 다비도프, 백커, 피아티고르스키의 선생인
크행겔, 영국 첼로의 선구자인 피아티 등이 유럽 각지에서 근대 첼로
연주사의 선봉에 섰다.
그러나 20세기 첼로 역사를 이야기하려면 역시 파블로 카잘스를 가장
먼저 꼽아야 할 것이다.
그를 20세기 첼로사의 출발선에 놓고 이야기하는 것은 카잘스가 개척한
현대적 주법, 레퍼토리 발굴, 후학들에게 끼친 영향 그리고 인격적 모습
등을 모두 종합한 것이다.
그 모든 것이 스스로 배우고 개발한 것이라는 사실은 더욱 놀랍게 만든다.
이후 첼로계를 이끌어간 인물들 - 카사도, 포이어만, 푸르니에, 토르틀리에,
파르나스 등 -은 길거나 혹은 짧게라도 카잘스의 가르침을 거쳐야만 했다.
특히 카잘스의 바흐의 <무반주 첼로 모음곡>에 대한 이야기는 유명하다.
카잘스는 이 곡으로 인해 첼로의 전설이 되었지만, 이 곡 또한 카잘스로
인해 첼로의 성서가 되었다.
카잘스 이후의 인물들을 나라별로 살펴보면, 우선 프랑스에선 '첼로의 귀족'
피에르 푸르니에를 필두로 하여 폴 토르틀리에, 모리스 장드롱 등이 20세기
중반의 세계 첼로계를 이끌어갔다.
토르틀리에의 음색이 아주 낭만적인데 비해 장드롱은 훨씬 아카데믹한 모습을
보여주었다.
68년 카잘스 콩쿠르와 69년 카사도 콩쿠르에 우승한 르노 폰타나로사와 같은
이가 토르틀리에의 제자였다.
스페인엔 카잘스가 가장 사랑했다는 제자 가스파르 카사도가 있었다.
섬세하면서도 고풍스런 깊이가 있었다.
이탈리아엔 엔리코 마이나르디를 이어 안토니오 야니그로 같은 이가 활동했다.
그러나 정작 마이나르디는 이탈리아보다는 독일 베를린에서 주로 활동했다.
20세기 중반에서 현재에 이르기까지 독일을 대표하는 첼리스트라면 지그프리트
팔름을 들수 있다.
현대음악의 해석에 있어선 거의 독보적인 거장으로 떠받들어진다.
그 뒤를 잇는 독일의 주자가 있다면 앙드레 나바라를 사사한 하인리히 쉬프를
우선적으로 꼽을 수 있다.
오스트리아 출신의 첼리스트로는 에마누엘 포이어만이라는 천재를 들 수 있다.
16세의 나이로 쾰른 음악원 교수가 된 그는 이후 미국으로 이주했지만 불행히도
마흔의 나이로 세상을 떠났다.
네덜란드에는 원전 연주자들이 강세를 나타냈다.
그 누구보다도 안너 빌스마라는 명인의 이름은 커다란 무게를 갖고 있다.
영국에선 유독 여성 첼리스트들이 두각을 나타냈다.
엘가의<첼로 협주곡>을 초연한 베아트리스 해리슨도 그렇지만, 그 보다는 자클린느
뒤 프레라는 존재가 있기 때문일 것이다.
연주로서나 삶으로나 그녀는 불꽃 그 자체였다.
그녀가 죽은 이후의 영국 첼로계는 린 해럴 같은 연주자가 대표하고 있다.
러시아엔 그레고르 피아티고르스키라는 서정미 넘치는 첼리스트가 있었다.
그러나 피아티고르스키는 혁명기에 유럽으로 건너와 베를린 필의 수석주자로 일했
으며, 이후엔 미국에 정착하여 호로비츠, 밀슈타인과 또는 하이페츠, 루빈슈타인
과 트리오로 활약했다.
현역 첼로계의 대부라 칭할수 있는 므스티슬라프 로스트로포비치는 소비에트 시민권을
박탈당하면서 서방 세계에 정착한 사람이다.
초인적인 힘과 테크넉으로 경탄을 자아내던 그는 칠순이 넘은 지금까지 그 쟁쟁하고
깊은 소리를 잃지 않고 있다.
그의 제자인 미샤 마이스키는 서정적이고 따스한 선율미를 장기로 한다.
로스트로포비치와는 달리 러시아를 떠나지 않은, 그래서 상대적으로 좀 덜 알려진
연주자이지만 그의 연주는 훨씬 깊이와 품위가 있었다.
'미국 첼로계의 대부' 는 단연 레너드 로즈가 맡아야한다.
독주자로서, 교육자로서, 또한 스턴, 이스토민과의 트리오 멤버로서 대단한 영향력을
발휘하였다.
그는 줄리어드와 커티스 음악원에서 린 해럴, 요요 마, 매트 하이모비츠와 같은 연주자
들을 줄줄이 배출하였다.
그 중에서 요요 마는 이미 거장이란 칭호가 무색하지 않을 경지가되었다.
탁월한 리듬감과 폭넓은 레퍼토리가 그의 장기다.
또한 이 와중에 결코 빠트릴 수 없는 인물, 헝가리 출신이지만 미국에서 주로 활동한
야노스 슈타커가 있다.
"불과 얼음이 뒤섞였다"는 그의 연주는 언뜻 냉정하면서도 항상 심연을 드리우고 있다.
요요마 이후의 신세대 연주자들의 면모를 보면 아직은 장래를 점치기 힘든 부분이 많다.
그 만큼 가능성이 있다는 뜻과 그 만큼 불확실하다는 뜻이 섞여있다.
오프라 하노이나 소피 볼랜드는 뛰어난 미모를 바탕으로 뒤 프레의 이미지를 이어받으
려했지만 역부족이라는 평가가 지배적이다.
노르웨이 출신의 트룰스 뫼르크는 섬세한 표현력을 지녔지만 스케일에서 문제가 있으며,
이스라엘의 메트 하이모비츠는 현대음악에서 장점을 지니지만 아직 풍성한 맛을 느끼기엔
너무 어리다.
안너 빌스마의 후예인 피터 비스펠베이는 바흐와 현대음악에서 골고루 재능을 발휘하고
있지만 아직 빌스마의 아류처럼 느껴지는 것을 어찌한수 없으며, 영국의 스티븐 이설리스는
탁월한 테크닉으로 다양한 레퍼토리를 섭렵하고 있지만 대가의 깊이를 느낄 수 있을진 아직
미지수다.
그리고 그 사이에 한국의 다니엘 리나 장한나 같은 연주자도 있지만 나이가 주는 프리미엄을
벗어난 후에나 판단할 일이다.
<들을만한 음반>
1. 바흐 /무반주 첼로 모음곡 - 빌스마 - Sony S2K 48047
2. 브람스/2중 협주곡- 피아티고르스키,밀슈타인, 보스톤 심포너/ 라이너 - RCA 61485
3. 슈베르트/아르페지오네 소마타,브리지/첼로 소나타, 로스트로포비치 /브리튼 Decca 443575
4. 엘가/첼로 협주곡 - 뒤 프레, 바비롤리 - EMI 55527
5. 드보르작/첼로 협주곡, 로스트로포비치, 베를린 필/카라얀 - DG 413819
6. 브루흐/ 콜 니드라이, 드보르작/ 첼로 협주곡, 차이코프스키/로코코 변주곡
- 슈타거, 런던 심포니/ 도라티 - Mercury 432001
7. 코다이/무반주 첼로 소나타 작품8 - 슈타커 - 델로스 DE1015
8. 쇼스타코비치/첼로 협주곡 제1, 2번 , 쉬프_,바이에른 국립 오케스트라/말심 쇼스타코비치
- Philips 412526
9. 카잘스 앙코르집 (새의 노래)- 카잘스, Sony SMK66573
10. 자장가 모음집 - 로이드 웨버 - Philips 4424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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