브람스/클라리넷 3중주 a단조, 작품 114
브람스라는 독일 낭만파의 작주곡가 내보인 作風은
다분히 중압적이면도 사색적이다. 그냥 가볍게 흘려보내도
흘려보내도 좋을 델리키트한 사색이 아니라 인생의 횡단과
종단이 織造되어 나타난 관조의 사색이다.
64 평생을 살면서 단 한번도 결혼이라는 굴레를 쓰지 않고
자유스러웠던 브람스였지만, 그렇다고 사랑할 대상자를 찾
지 못하거나 외면해 버린 것만도 아니었다. 다만 그의 마음
속에 자리잡고 있는 사랑의 실체가 평생을 따라다니면서도
밖으로 표출할 줄 몰랐던 북독일적 은근함으로 짓눌려 있었
을 뿐이었다. 그 실체는 아가테(Aagathe)일 수도 있고 클
라라일 수도 있다. 이 모든 것은 함부르크의 사나이 브람스
의 음악작인 요소를 결정짓게 해준 내적 외적 요인이기도
했다.
이러한 브람스적 特質은 네 개의 교향곡과 실내악 분야에서
두드러지게 나타나 있다. 특히 클라리넷을 사용한 만년의
실내악곡들(클라리넷 3중주, 클라리넷 소나타, 클라리넷 5
중주)은 브람스의 음악을 이해해는데 아주 중요한 단서를
제공해 주고 있어서, 고독했던 한 늙은 홀아비의 심경을 투
명하게 읽어 볼 수가 있는 것이다.
브람스는 나이가 들어감에 따라 더욱 고담스러운 경지로 자
신을 몰입시켜 가고 였었다. 어쩔 수 없는 인생의 에필로그
가 눈 앞에 서서히 모습을 드러내면서 브람스는 한 여성을
생각하게 되고 마침내 그 여성의 訃音을 듣게 된다.
평생을 적당한 거리에서 지켜보고 사랑해 왔던 클라라 슈만
이 바로 그 여성이었다.
1896년 5월 20일, 병약하던 클라라가 프랑크푸르트에서 지
친 육신을 거두게 되자 브람스는 64세의 노구를 이끌고 빈
에서 그곳으로 달려갔다. 그러나 브람스가 프랑크푸르트에
도착했을 때에는 이미 모든 장례 절차가 끝나고 시신은 본
으로 운구된 뒤였다. 다시 그곳까지 쫓아간 브람스는 싸늘
한 무덤가에 한줌 흙을 뿌리며 울었다. 64세의 늙은이가 흘
린 눈물은 참으로 비감에 젖었으리라.
그렇지않아도 간장암이란 병마에 시달리던 브람스는 이 무
리한 장거리 여행으로 크게 건강을 상해 마침내 1897년 4월
3일 아침에 조용히 눈을 감았다. 후기낭만파의 거장에었던
브람스의 죽음은 베토벤 이후 그에 의해서 되살아 났던 절
대음악의 붕괴를 뜻한다. 브람스가 고집스레 지켜 가고자
했던 그 절대음악 속에는 한 인간의 고뇌에 찬 자화상이 音
刻되어 혈관을 흐른다.
뜨겁지만 끓어 넘치지 않고, 차겁지만 응고되어 굳어버리지
않는 열정이 그 혈관 속에 함께 흐른다.지나치지도 않고 모
자라지도 않았던 한 인생의 음악 언어가 한 가지로 뭉뚱그
려진 실상을 여기서 보게 되는 것이다.
브람스가 남긴 실내악곡들은 이러한 인간적인 배경의 이해
를 토대로 접근할 때 그 감동은 더욱 짙을 것이다. 특히 클
라리넷을 주선율로 하여 쓰여진 일련의 실내악곡들에서 그
러한 고적감은 더욱 짙게 표출되어 나타난다.
브람스가 작곡의 붓을 놓고 만년을 담담한 마음으로 뒤돌아
보며 살고자 결심한 것은 1890년 경에었다. 이 무렵에 브람
스는 현악 5중주 제2번의 대곡을 마무리한 뒤였고, 그것으
로 창작의 일선에서 물러나려 한 것이다.
그해 가을, 브람스는 자신의 신변을 정리하기 시작했다. 사
물을 챙겨고 유서까지도 써두었다. 하나 둘 자기 곁을 떠나
가는 그리운 사람들의 죽음이 브람스의 마음을 무겁게 내려
눌렀다. 브람스는 그 순리에 순응하면서 자신도 위대한 마
침표의 '준비' 를 서두른 것이다.
그러나 작곡가 브람스의 생명은 여기서 끝나지 않았다. 다
음해인 1891년 3월에 마이닝겐 궁정을 방문했을 때, 이 궁
정악단의 클라리넷 주자인 리하르트 뮐펠트를 알게 된 것이
그 계기였다.
뮐펠트의 클라리넷 연주를 들은 브람스는 이 악기에 대하여
매우 충격적인 창작욕을 불러 일으켰다. 작곡의 붓을 놓기
로 결심했던 브람스는 다시 한번 펜을 들고 클라리넷을 사
용한 일련의 실내악곡들을 써나가게 되었다. 클라리넷 3중
주를 필두로 한 두 곡의 클라리넷 소나타, 그리고 브람스의
실내악을 총체적으로 결산한 클라리넷 5중주가 그것이다.
그렇게 해서 브람스는 노년기의 고담한 심경을 클라리넷에
란 목관악기를 통해 풀어헤치게 된 것이다.
클라리넷 3중주 a단조는 그렇게 해서 쓰여진 최초의 실내악
곡이다. 마이닝겐에서의 클라리넷에 대한 인상을 마음 속에
품고 그곳을 떠난 브람스는 7월에 휴양지인 이슐에 도착,
여기서 단시일 안에 작곡을 마쳤다.
여름 동안에 클라리넷 3중주 작곡을 완료한 브람스는 그해
가을 다시 마이닝겐을 찾아와 뮐펠트의 클라리넷과 브람스
자신의 피아노, 그리고 마이닝겐 궁정악단의 첼로 주자가
참가하여 사적인 초연을 보았다.
그러나 이 곡이 좀더 본격적인 의미로 공개 연주된 것은 12
월 12일 베를린에서였다. 마이닝겐에서 베를런으로 옮긴 브
람스는 이 a단조 3중주곡의 공개 초연을 갖기로 하고 빈에
서 시타이너라는 클라리넷 주자를 불러 왔다.
이 때의 초연에서도 브람스는 역시 피아노를 맡았으며, 그
의 친구인 하우스만이 첼로를 맡았다. 베를린에서 이 곡이
초연되었을 때 그 반응은 실로 대단한 것이었다. 지금까지
어떤 작곡가도 시도해 보지 않은 클라리넷, 첼로, 피아노라
는 세 개의 악기가 어우러져 실로 완벽한 음의 조화를 빚어
내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가이링거는 이 곡을 듣고 난 뒤에 "창의력에 가득 찬 주제의
착상은 관악기의 정신에서 태어난 듯하다"라고 말했으며,
시타인바흐는 "제5교향곡에 대한 야망으로 태어난 걸작"이
라고 평가했다.
세 개의 악기가 서로 사랑에 빠져 놀라운 충만감을 표출해
내는 이 3중주곡은 클라리넷 대신 비올라를 사용해서 연주
해도 좋다고 지시해 놓고 있다(그것은 클라리넷 소나타에서
도 마찬가지다).
전곡은 모두 4악장으로 확대되어 있으며, 어느 악장에서든
지 클라리넷과 첼로의 융합이 훌륭하게 어우려져서 실내악
의 새로운 묘미를 체험하게 해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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