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음악이야기

연주 양식에 대하여/독주 반주 합주 지휘자

kyeong~ 2009. 3. 4. 14:40

독주
어떠한 악기가 단독으로 연주할 때 이를 독주(Solo)라고 한다.
그런데 악기는 그 사용법에 따라 독주악기와 합주악기로 나눌 수 있다.
또한 합주악기 중에서도 주로 화성적으로 사용되는 악기(트롬본.호른. 튜바 등)를 화성악기라고 한다.
그러나 그 구별의 한계는 명확치 않으며 첼로와 같이 독주나 합주용으로 사용되는 경우도 있으며,
호른처럼 합주용이 독주할 경우도 있기 때문이다.
독주악기로는 주로 선율을 연주하는 것이 상례이나 선율과 동시에 화성도 연주할 수 있는 악기가 이상적이다.
이렇게 볼 때 피아노가 가장 이상적이며 이 밖에 바이올린,첼로, 플룻 ,클라리넷 등이 독주에 사용된다.
그러나 이외의 악기도 독주에 사용될 경우도 있으며 특히 현대에 있어서는 비올라,콘트라 베이스 ,파곳 ,튜바
등과 같이 과거에는 독주악기로는 쓰이지 않던 악기들까지 독주악기로 사용하고 있다.


반주
반주는 일반적으로 독주의 부족한 화성을 보충하고 또한 독주의 효과를 돕기 위해 가창이나 독주악기의 연주에 반주가 붙게 된다.
그러나 반주의 형식은 여러 가지가 있으며, 슈만의 가곡 「탄식(Ich grolle nicht)」이나
슈베르트의 「바닷가에서(Am Meer)」에서 보는 바와 같이 주로 화음을 붙이는 경우 또는 슈베르트의 가곡집 「아름다운 물방앗간의 처녀」 중의 '방랑(Das Wandem)'이나 '어느 곳으로(Wohin?)'처럼 분산화음을 사용하는 경우도 있다. 그러나 때로는 비제의 「스페인 소야곡」처럼 대위법적으로 취급되는 수도 있다.
그러나 어떠한 경우든 반주는 주선율에 대하여 종속적이며 2차적인 위치에 있다.
만일 반주가 어떠한 개성을 조장하게 되면 주부의 효과는 줄어들게 되며, 어떤 평론가가 슈만의 가곡을 평한 것처럼 노래를 반주로 하는 피아노곡이 되어 버린다.
그러나 슈만 이래 반주는 중요한 위치를 차지하게 되어 과거처럼 단순히 화음 정도를 붙이는 것이 아니라 주부와 반주가 밀접한 연관성을 가진 동등한 위치에서 기교적으로 처리하게 되었다.
반주는 화성적으로 취급되는 외에 음색의 효과나 리듬을 위해서도 중요한 역할을 한다.
예술적인 작품일수록 반주도 정밀하고 효과적으로 꾸며져 있으며, 만일 반주가 빈약하거나 평범하면 전체 작품성의 가치도 높이 평가받을 수가 없는 것이다. 오늘날의 반주는 주부에 못지 않게 또한 주부의 일부로 처리하게 되며, 정서적이면서 화성 . 리듬 또한 음색이나 음향의 효과 면에서도 치밀하게 구성되어야 하는 것이다.
반주악기는 피아노만이 아니라 오르간이나 합창 또는 합주나 관현악을 사용하는 경우도 많다.
순수한 반주는 아니지만 조주, 즉 오블리가토(Obligate)라는 것이 있는데, 이는 독창이나 독주에 색채적인 변화를 주기 위해 행해진다.
예컨대 독창에 피아노 반주와 더불어 바이올린이나 플룻의 오블리가토가 붙는 경우로 이는 주선율과 대위법적으로 처리되어 재미있고 흥미 있게 진행하게 된다.


합주
2개 이상의 많은 악기가 한 자리에서 연주하는 것을 합주(Ensemble) 라고 하는데 이 합주의 양식은 여러 가지가 있다.
2개 내지 3, 4개의 악기간 대등한 위치에서 합주하는 중주, 즉 실내악으로부터 현악기만이 모여서 합주하는
현악 합주 또는 관악기만으로서 합주하는 관악 합주,
다시 말하면 취주악 등이 있고 더 나아가 교향곡 . 협주곡 등의 관현악에 이르기까지 다양하다.
그러나 크게 나누면 중주와 부주로 구별할 수 있다.


지휘자
교향악이나 그 밖에 관현악 또는 합창 등 많은 사람이 같이 합주 또는 합창을 할 때 주자들을 통솔하고 연주를 통일 시키는 사람을 지휘자(Conductor)라고 한다.
오늘날 관현악 연주나 합창 연주와 같은 단체 연주치고 지휘자가 없는 연주는 없을 것이다.
우리는 어느 오케스트라의 연주회에 가나 무대 중앙에 나와 손짓과 몸짓을 해가며 주자들에게 지시를 하고 연주를 지휘해 가는 지휘자를 보게 된다.
세기적인 지휘의 거장 토스카니니(Arturo Toscanini, 1867-1957)가 그의 만년에 심혈을 기울여 단시일 안에 세계적인 교향악단으로 육성한 NBC 교향악단에서 은퇴한 후로는 당분간 그 악단에서는 지휘자 없이 연주한 일이 있다.
이 악단을 1954년 토스카니니가 은퇴하자 그 해에 악단은 해산되었으나 단원은 그대로 남아 '심포니 오브 디
에어(Sym phony of the Air)'로 개칭, 연주활동을 계속했는데 토스카니니가 은퇴한 이듬해인 1955년에 내한하여 중앙청 광장에서 소어 헨들이란 사람의 지휘로 연주한 바 있다.
또한 소련의 모스크바에 있는 '펠심판스'란 교향악단에서는 지휘자없이 연주한다는 이야기도 있으나 이러한 예는 아주 특수한 경우이다.
오늘날 어느 조그마한 교향악단에도 반드시 지휘자가 있으며, 세계 일류 교향악단에서도 다투어 우수한 지휘자를 맞아 그들의 특색 있는 연주를 자랑하고 있다.
그렇다면 반드시 지휘자가 있어야 하는 것인가, 물론 지휘자의 존재가 절대적인 것은 아니지만 많은 사람의 합창이나 합주에는 역시 속도와 박자를 맞추고 표정을 한 곳으로 모으는 어떤 행동의 기준이 있는 것이 효과적이다.
지휘자의 역사는 그다지 오래되지 않았다.
지휘자의 역할이 뚜렷해진 것은 17세기 초부터이고, 지휘의 필요성은 훨씬 옛날부터라고 한다.
파리의 국립 도서관에 남아 있는 옛 기록에는 13세기경 독일의 미네젱거로 유명한 하인리히 표 마이센이라는 사람이 합창단과 반주자를 앞에 놓고 기다란 지휘봉을 들고 지휘를 하고 있는 그림이 남아 있다.
17세기 초부터 이탈리아의 오페라가 성행함에 따라 지휘의 필요성이 뚜렷해졌다고는 하나 아직 지휘자라는 독립된 존재는 없었고, 대개의 경우 작곡자가 자기의 작품을 연주할 때 하프시코드나 챔발로(피아노의 전신) 앞에 앉아서 자기도 관현악과 함께 연주하면서 사이 사이에 손을 흔들거나 몸짓을 하고 때로는 발을 굴러 박자를 잡아가기도 했다.
이와 같이 하프시코드를 연주하면서 지휘하는 방법이 널리 이탈리아에서 사용되었고, 프랑스로 건너가 륄리나 라모 등에 의해 보급되 었으며, 륄리의 제자 퍼셀에 의해 영국에서도 널리 사용되었다.
한편 독일의 오페라 작곡가 쉬츠(Heinrich Schiltz, 1585-1672)가 이탈리아의 페리(Jacopo Peri, 1561-1633)의 오페라륫릿謀졌?Dafrie)」를 독일로 가져가 드레스텐에서 처음 공연하였을 때 지휘법도 동시에 수업하여 처음으로 지휘했다고 한다.
이러한 방법은 19세기 초까지 유럽 전역에 걸쳐 사용되었으며, 이와 병행해서 지휘자가 따로 있어 긴 나뭇가지나 악보를 둘둘 만 것으로 박자를 저으며 지휘했다고 한다.
프랑스에서 륄리가 그의 많은 오페라를 하프시코드 앞에서 지휘한다든가 궁정 음악회나 무도회에서 금속제의 커다랗고 화려한 지휘봉을 흔든 이야기는 당시 화제거리가 되었는데 륄리는 너무 기분을 냈든지 그가 자랑으로 여긴 그 기다란 지휘봉을 잘못 흔들어 무릎을 다쳐 그로 인해 1687년에 사망하였다고 한다.
여하튼 이때부터 화려한 것을 좋아한 파리에서는 지휘봉이 유행하였고, 독일이나 영국처럼 보수적인 곳에서는 하프시코드를 연주하면서 사이사이 몸짓으로 하는 지휘가 환영받았다.
이러한 2가지 형태는 상당히 오랫동안 계속되었고, 그 당시 지휘의 역할이란 박자를 맞추고 합주를 정돈시키는 정도가 가장 큰 임무였다.
그러나 관현악에서 하프시코드를 사용하지 않는 경우라든가 작곡자가 그 자리에 없을 경우에는 사정이 달라진다. 이럴 때에는 콘서트 마스터라고 하는 악장이 중요한 임무를 맡게 된다.
오케스트라의 중심은 바이올린이었고, 이 바이올린의 수석 주자가 중요한 지위를 갖게 되어 이 사람을 콘서트 마스터라고 하여 오케스트라의 사실상의 책임자가 되었다.
오늘날에도 현악합주단에서 지휘자없이 리더가 연주를 이끌어 가듯이 연주의 시작이라든가 박자나 속도 또한 복잡한 부분에서 바이올린의 활을 가지고 지휘했다.
하이든이 런던에 갔을 때 그에게 교향곡 작곡을 부탁해 온 잘로몬이란 사람이 바이올린을 연주하며 오케스트라를 지휘했다는 기록이 남아 있다.
이때에는 챔발로에서 피아노로 바뀌어 피아노 협주곡도 나오게 되었고, 대부분의 경우 작곡자가 피아노를 연주하며 지휘했다.
모차르트도 그의 피아노 협주곡을 자신이 연주하며 지휘했다고 하지만 실제 연주회에서는 콘서트 마스터가 중요한 역할을 했던 것이다.
그러나 1810년경을 지날 무렵부터는 악장이 바이올린의 활을 가지고 지휘하는 대신에 오늘날과 같은 짤막한 지휘봉이 등장하게 되었고, 이 지휘봉을 가지고 독자적으로 지휘하는 사람을 지휘자라고 부르게 되었다.
1817년에 베버가 이 깔막한 막대기로 지휘했 다는 기록이 남아 있다.
이와 같이 음악이 차차 복잡해짐에 따라 지휘자가 필요하게 되어 독립된 지휘자라는 자리가 생기게 되었다.
그러나 아직 오늘날의 지휘자와 같이 곡의 해석이나 표현에 파고드는 일은 없었다.
1824년 5월 7일에 베토벤의 「교향곡 제9번」이 초연되었는데, 이때에 베토벤은 움러라고 하는 지휘자가 지휘하는 곁에서 손짓 몸짓을 해가며 연주를 돌보았는데, 이는 당시 지휘자들의 충분한 곡의 해석이나 이해 없이 표면적인 악상의 진행에 대한 작곡자의 불만족을 나타내 주는 한 예이다.
물론 고전 음악 시대의 지휘자들은 현대의 지휘자들처럼 전문적인 기술이 필요치 않았을 것이다.
관현악의 구성도 간단했고, 한 악곡 안에서 박자가 바뀌는 일도 그리 많지 않았으며, 속도도 낭만파 이후의 작품들처럼 변화가 그리 심한 것도 아니었으니 말이다.
그러나 관현악의 합주 기능이 시대와 더불어 발전하고 악곡의 내용이 차차 복잡해져서 고도의 표현 효과를 요구하게 되자 지휘자의 역할이 단지 박자만 젓는 데 그칠 수가 없게 되었다.
따라서 작품을 통 한 작곡자의 의도와 악곡의 내용을 정확히 해석하여 연주에 반영시키는 일이 가장 중요한 임무로되었다.
이는 1820년경부터 표면화하게 되었는데 낭만주의 경향에 따라 인간의 솔직한 감정이나 섬세한 정서 등을 강하게 표현하려는 작품이 많아졌고, 그와 동시에 관현악의 편성이 커지고 표제음악이 발달함에 따라 이와 같은 해석이 연주를 좌우 하게 된 것이다.
때문에 지휘자가 하프시코드나 피아노를 연주하며 지휘할 수 없게 되자 작곡자와 분리하여 독립된 자리를 갖게 되었다. 기록에 의하면 지휘봉을 들고 역사상 처음 지휘한 사람은 작곡가인 동시에 바이올린 연주가인 시포어(Louis Spohr, 1784-1859)라고 하나 그가 1820년에 쓴 기록에는 "요즈음에는 교향곡이나 서곡을 연주할 때 피아노를 치면서 지휘하는 사람을 볼 수 없게 되었다"라고 적혀 있다.
그리고 1829년 5월에 멘델스존이 런던에서 자기의 교향곡을 지휘할 때 피아노에 앉아 지휘한 것이 구식 지휘법의 마지막이라고 한다.
낭만주의 시대 중기부터 후기에 이르는 사이에 지휘자의 임무나 위치가 더욱 중요하게 인식되어 근대적인 지휘법이생기게 되었다.
당시 바그너라든가, 리스트 같은 사람도 작곡뿐만 아니라 훌륭한 지휘자들 이었으나, 보다 유능한 지휘자는 뷜로(Hans Guido Freiherr von Billow, 1830-1894)라는 사람이다.
이 뷜로에 의해 오늘날과 같은 지휘자의 존재 의의가 확립되었다고 보아야 할 것이다.
지휘자가 작곡가와 별도로 전문적인 지휘만을 전담해야 하고, 작곡가와 오케스트라의 증간에서 곡을 해석해야 한다는 인식을 일반에게 준 것도 뷜로의 공적이다.
물론 오케스트라는 지휘자 없이도 연주할 수는 있다.
그러나 지휘자가 있을 때와 없을 때의 연주 효과는 달라질 것이다.
또한 연주 곡목에도 한도가 있을 것이다. 하이든이나 모차르트 또는 베토벤의 교향곡 등은 지휘자 없이도 연주할 수는 있을 것이다.
그러나 현대음악처럼 도중에 속도가 자주 바뀐다든가, 박자가 잘 변하고 복잡하다든가, 리듬이 다 양하다든가 하면도저히 지휘자 없이 연주할 수가 없다.
토스카니니가 지휘자로 데뷔한 것은 19세 때이며, 그 전해에 이탈리아의 파르마 음악원을 졸업한 후 리우데자네이루의 오페라극장에서 첼로 주자로 있을 때이다.
베르디의 유명한 오페라 「아이다」를 공연할 당일에 갑자기 지휘자가 사임하여 공연을 중지할 운명에 놓였을 때 아직 어린 토스카니니가 지휘대로 올라가 당장에 3시간 가까이 걸린 이 「아이다」를 악보없이 무난히 지휘하여 일약 유명해졌다.
이러한 경우에서 역시 지휘자가 필요하다는 것과 지휘자는 능력이 있어야 한다는 사실을 알 수 있다.
지휘자는 연주하는 악곡의 사활에 관한 열쇠를 쥐고 있다 해도 과언이 아니다.
오늘날 지휘의 가장 중요한 임무는 악곡의 정확한 해석 (Interpretation)에 있다고 하겠다.
어떻게 하면 가장 타당하게 작곡가의 의도와 작품 성격을 반영시켜 예술적인 음악으로 만드느냐가 문제인 것이다.
지휘자는 악보(Score)를 빠르고도 바르게 읽어서 그 형식은 물론 악곡의 내용을 파악한 후 이를 가장 타당성있게 표현해야 한다.
따라서 지휘자는 속도 . 박자 . 리듬 . 강약 분절법은 물론 관현악법까지 결정하는 수가 많다.
물론 이러한 것은 악보상에 적혀 있다고는 하지만 이를 실제로 결정하는 것은 지휘자이며 이 해석을 실제로 음악상에 연출하는 것도 지휘자에 따라 다르기 때문에 동일한 작품일지라도 지휘자에 따라 받는 인상이 달라진다.
이를테면 베토벤의 「교향곡 제 5번」도 카라얀이 베를린 필하모니를 지휘할 때와 푸르트벵글러(Wihelm Furtwangler, 1886-1954)가 같은 베를린 필하모니를 지휘할 때와는 느낌이 달라진다.
또한 발터(Bruno Walter, 1876-1962)가 빈 필하모니를 지휘했을 때와 베를린 필하모니를 지휘했을 때에도 오케스트라의 음색이라든가 감각이 달라질 수도 있으나, 이 때에는 동일한 지휘자이기 때문에 거기에는 어떤 공통된 음악의 형태가 이루어지게 되며 이것이 곧 지휘자 특유의 해석법이라 하겠다.
해석이라는 것은 곧 연주자가 곡을 어떻게 연주하느냐 하는 것인데, 이는 곧 연주자의 개성이 개입되기 마련이다.
마찬가지로 관현악의 경우 지휘자의 개성이 그 연주를 특징 지어 주게 된다.
그러나 피아니스트나 바이올리니스트처럼 자기 악기를 마음대로 연주하는 것과는 좀 사정이 다르다.
왜냐하면 관현악이라는 커다란 악기는 각기 성격이 다르고 각기 개성이 다른 사람의 집단이기 때문이다.
따라서 지휘자는 이 주자들을 통솔하여 자기의 의사를 전달시켜 자기가 생각하는 방향으로 끌고 가야 할 것이다. 때문에 지휘자의 손짓이나 몸짓 등의 동작도 잘 알 수 있도록 보편성이 있어야 한다.
중요한 것은 작곡가의 의도를 오케스트라에 전달하고 이를 다시 표현이라는 것을 통해 청중에게 전달하는 것을 지휘자가 맡게 되는 것이다.
이때 객관적으로 다루는 경우와 주관의 정도에 따라 지휘자의 특성이 달라지고, 주관이 많이 개입될 때 지휘자의 개성이 강하게 떠오를 것이다.
결국 좋은 지휘자는 작품의 정확한 해석 . 판단과 주관이 개입하더라도 원곡의 뜻을 그르치지 않고 작곡자의 의도를 바르게 전달하는 사람을 가리킨다.
또한 지휘자는 마음대로 오케스트라를 이끌어 갈 수 있는 능력이 있어야 하고, 여러 가지 악기의 연주 기술이나 그 성능 및 효과 등에 깊은 이해가 있어야 한다.
그리고 많은 단원을 통솔하는데 신뢰와 존 경을 받을 수 있는 인격과 교양을 갖추어야 한다.
근대의 세계적인 대지휘자라고 하면 독일의 니키시와 바인가르트너, 프랑스의 라무뢰나 피에르네를 지적할 수 있으며,
현대에 활약한 사람 중에는

 

독일의 푸르트벵글러와 발터, 이탈리아의 토스카니니, 오스트리아의 클라이버(Erich Kleiber,1890-1956), 스위스의 앙세르메(Ernest Ansennet, 1883-1989), 미국의 스토코프스키(Leopold Stokowski, 1882-1977),
오먼디, 쿠세비츠키(Serge Kussevitzky, 1874-1951), 로진스키(Artur Rod-zinski, 1894-1985), 프랑스의 뮌시(Charles Munch, 1891-1968) 등이 일류 급에 속하는 지휘자들이다.
그리고 우리 나라에서의 연주를 마치고 돌아간 직후 미국에서 세상을 떠난 셀(George Szell, 1897―1970)을 비롯하여 카라얀, 번스타인(Leonard Bernstein, 1918-1990), 뵘(Karl Bohm, 1894-1981) 등도 현대 지휘계의 거장들이다.
이 밖에 이탈리아 출신의 아바도, 줄리니(Carlo - Maria Giulmi, 1914 ~ ), 네덜란드의 하이팅크(Bernard Haitink,1929- ), 아르헨티나 태생이지만 이스라엘 국적의 바렌보임(Daniel Barenboirn, 1942- ), 헝가리의 솔티(Gyorgt Solti, 1912- ), 독일 출신이지만 미국에서 주로 활동한, 그리고 런던교향악단의 수석지휘자로 있을 때 우리 나라의 정경화를 데뷔시켜준 프레빈(Andre Previn, 1929- ), 미국의 마젤 (Lorin Maazel, 1930- ), 이탈리아 출신의 무티
(Riccardo Muti, 1941 ~ ), 러시아의 므라빈스키(Eugene Mravinsky, 1903-1988), 로제스트벤스키(Gennady Rozhestvensky,1932- ), 인도 출신의 메타(Zubin Mehta, 1936- ) 등이 유명한 지휘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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