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해가 간다는 아쉬움이 막바지에 다다른 시간
무엇을 해도 어색하고 맘에 들지 않는 밤이다.
가는 해를 보내는 통과 의례처럼 후회를 섞어 반성을 하고
다가 오는 해를 위한 계획을 세워 보는 반복을 이젠 하기 싫다.
세우던 안세우던 마찬가지
앞으로 다가서는 것과 하고 있는 것을 다하기도 힘이 딸린다는 것을 알기 때문이다.
옆지기랑 우두커니 앉아 있는것도 싱거울것 같아
조금 있으면 나가버릴 것 같은 아들을 잡고
"한해를 보내는 의미 있는 시간은 가족이 함께 보내는 거란다"
그랬더니 아들 왈 "그럼 우리 종각으로 가요"
"그러자" 내 대답같은 것은 아랑곳 하지 않고 길을 나서는 두부자
낙원상가옆에 이미 여러겹으로 덧댄 주차를 하고 보신각쪽으로 향했다.
종로통~
우리만 조용하게 있을뻔 했구나
가는 해의 쓸쓸함을 잊고 이렇게 모여 함께 있었던거구나
매캐한 화연이 달빛을 흐리게 했고
어디에서 그많은 사람들이 쏟아져 나왔는지 발 디딜 틈이 없는 거리
쏘아 올리는 폭죽이 그야말로 장난이 아니다.
빗발치듯 차오르는 폭죽
아들은 이 환락의 밤을 즐기고 싶었던 거로구나.
혼자 올수 없었던 거리
한국의 가장 멋진 밤을 한국인답게 보내려는 듯
종로 장터를 들뜨게하는 사물 놀이패들
노랑머리도 사물놀이패를 따라 고개를 돌리고
검정피부도 휘몰이 장단에 팔다리를 흔들며
폭죽시대의 현란한 밤을 지샌다.
정각 12시
환성과 기대에 찬 새날
부푼 희망의 화살을 쏘듯 일제히 날아가는 기쁨의 불빛들
시청앞을 밝히는 루미나리에 잔치는 소나무밑 패잔병 같은 눈발
쿵쾅거리는 징소리는 풀쩍풀쩍 뛰는 젊은 남녀들의 가슴같은 울림
폭죽의 퍼포먼스는 밤이 짙은 까닭에
잃음과 얻음이 있는 날인 까닭에 지칠수 없는 열광일수 밖에.
젊은이들이 지키고 맞이한 이밤의 숲에 있던 덕택에
난, 아직 뛸수 있다는 기쁨과 각오를 얻은체
종로통을 빠져나와 청계천 물흐르는 소리를 따라 걷노라니
어느 다리밑 추운 날씨를 비집고 울려대던 무명가수의 목청에 걸음을 늦춘다
젊지 않은 나이
머리카락을 대충 묶어내리고
깊이 눌러 쓴 모자때문에 어느 이유로 노래를 부르는지 표정을 읽을 수는 없지만
몇명의 관객에게는 그것도 즐거움인가보다
길가는 관객이 어리건
나이가 들었건
스치는 관객에 대해선 아랑곳 하지 않은체
어두운 입자사이에 자신의 노래를 빼곡히 끼워 놓는다.
빌딩이 성기게 짜놓은 도시 속
콩과 좁쌀을 흔들어 채워놓은 듯한 밤
도시의 계곡 속으로 파고드는 갖가지 행위들
멀리서 보는 것과 달리 내가 함께 흘러 간다는 것은
모를 깎는 각도와
입자의 크기가 달라진다는 생각을 해보는 시간
청계천 저 끝까지....물소리보다 얼마나 더빠른지는 모르겠지만
흐르는 것이 많은 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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