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3.4.26. 금
경복궁 침전영역
향오문
이곳이 궁궐의 침전영역으로 들어가는 문이다.
경복궁에는 왕과 왕비의 침전영역이 둘로 구분되어 있다.
하나는 왕의 침전인 강녕전(康寧殿)이고, 다른 하나는 왕비의 침전인 교태전(交泰殿)이다.
궁궐에서 침전은 왕과 왕비가 일상생활을 하는 곳이며, 내외 종친을 불러 연회(내진연)를 하는 곳이기도 하다.
그렇다고 해서 정사와 관련한 일이 전혀 이루어지지 않는 것은 아니다.
왕이 신하들을 불러 은밀히 정사를 논의하는 곳 또한 침전이다.
강녕전(康寧殿)
강녕전은 왕의 침전(寢殿)으로, 사정전 바로 뒤 경복궁의 중심축선상에 있다.
향오문(嚮五門)을 통해 강녕전 영역에 이르게 된다.
이곳 영역은 강녕전을 중심으로 부속건물인 연생전과 연길당이 동쪽에 있고,
경성전과 응지당이 서쪽에 자리하고 있다.
강녕의 뜻은 <서경> 홍범구주(洪範九疇)의 오복→오복(五福) 수정 중에 셋째인 강녕(康寧)에서 유래했다고 한다.
즉 '일상적으로 거처하는 가운데 늘 덕을 쌓고 황극을 세우면 오복을 누리게 되는데,
오복의 가운데가 바로 강녕이고 이는 오복을 모두 차지하기를 기원'하는 뜻이라고 한다.
강녕전이란 이름은 태조의 명을 받들어 정도전이 지어 올린 것이다.
강녕전의 외형적인 특징 중 하나는 강녕전의 지붕이 '용마루가 없는' 무량각 지붕으로 되어 있는 것이다.
경복궁의 교태전, 창덕궁의 대조전, 창경궁의 통명전에서 보여지는 것처럼 용마루가 없는 전각들은
대부분 왕 또는 왕비의 침전으로 쓰였다는 공통점이 있는 것은 사실이다.
강녕전 후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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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녕전내부
강녕전은 남쪽에 월대를 두고 정면 3간은 대청마루로
좌우 3간은 온돌방으로 되었으며 둘레에는 방과 마루로 구성된 퇴간을 두었다.
퇴간에 포함된 방에는 지밀상궁들이 왕을 보필하며 근무를 하던 곳으로 추정된다.
강녕전의 부속건물 경성전
강녕전의 부속건물 연생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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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녕전의 남쪽 행각
양의문(兩儀門)
교태전 남쪽 행각의 문이다. 1867(고종 4)년, 경복궁을 중건할 때에 만들었다.
‘양의(兩儀)’란 본래 ‘양과 음’을 의미한다. 여기에서 유래해 ‘하늘과 땅’ ‘남자와 여자’의 뜻도 지닌다.
양의문 현판의 ‘양(兩)’자는 속체로 쓴 까닭에 중앙의 세로 획이 생략되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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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녕전의 굴뚝
양의문 양쪽에 붉은 굴뚝으로 된 굴뚝이 있는데 이것은 강녕전의 온돌을 뒤로 빼서 이곳에 붙여 세운 것이다.
강녕전과 교태전 사이 굴뚝을 놓을 공간이 마땅치 않은데다가 온돌과 굴뚝의 거리를 멀게하여 화기를 오래 담아
난방효과를 더 오래 가게했던 선조들의 지혜가 대단하다.
서쪽의 굴뚝에는'만수무강' 동쪽의 굴뚝에는 '천세만세'라는 글 문양을 넣었다.
양의문(兩儀門)후면
교태전(交泰殿)
교태전은 왕비의 침전(寢殿)으로, 중궁전(中宮殿)이라고도 하며 강녕전 바로 뒤 경복궁의 중심축선상에 놓여 있다.
조선왕조에서 왕비가 갖는 지위와 역할은 내외명부(內外命婦)를 총괄하고 왕실의 각종 공식업무 등을 주관하였기 때문에,
엄밀한 의미에서 교태전은 왕비의 공식 집무실로 봐야 할 것이다.
교태전의 뜻은 주역의 원리를 통해 설명될 수 있다.
즉 태(泰)는 주역의 괘인데 태 괘의 형상은 양을 상징하는 건(乾)이 아래로 가있고,
음을 상징하는 곤(坤)이 위로 가 있는 형상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