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척 죽서루 (三陟 竹西樓) 보물 제213호 강원 삼척시 죽서루길 44 (성내동)
이 건물은 창건자와 연대는 미상이나 <동안거사집>에 의하면, 1266년(고려 원종 7년)에 이승휴가 안집사 진자후와 같이 서루에 올라 시를 지었다는 것을 근거로 1266년 이전에 창건된 것으로 추정된다. 그 뒤 조선 태종 3년(1403)에 삼척부의 수령인 김효손이 고쳐 세워 오늘에 이르고 있다. '죽서'란 이름은 누의 동쪽으로 죽장사라는 절과 이름난 기생 죽죽선녀의 집이 있어 ‘죽서루’라 하였다고 한다. 지붕도 천장의 구조로 보아 원래 다른 형태의 지붕이었을 것으로 생각한다. 지붕 처마를 받치기 위해 장식하여 짜은 구조가 기둥 위에만 있는 주심포 양식이지만 재료 형태는 다른 양식을 응용한 부분이 있다. 또한 기둥을 자연암반의 높이에 맞춰 직접 세운 점도 특이하다. 그 중 ‘제일계정(第一溪亭)’은 현종 3년(1662)에 허목이 쓴 것이고, ‘관동제일루(關東第一樓)’는 숙종 37년(1711)에 이성조가 썼으며 ‘해선유희지소(海仙遊戱之所)’는 헌종 3년(1837)에 이규헌이 쓴 것이다.
(문화재청 발췌) 창건자와 연대는 미상이나 <동안거사집>에 의하면, 1266년(고려 원종 7년)에 이승휴가 안집사 진자후와 같이 서루에 올라 시를 지었다는 것을 근거로 1266년 이전에 창건된 것으로 추정되고 있다. 그 후 조선(朝鮮) 태종(太宗) 3년(1403) 삼척부사(三陟府使) 김효손(金孝孫)이 중건하였다 하며, 누 동쪽에 죽장사(竹藏寺)라는 절과 명기(名妓) 죽죽선녀(竹竹仙女)의 집이 있어 죽서루(竹西樓)라 이름하였다 한다.
오십천(五十川) 층암절벽(層岩絶壁) 위에 세운 이 누는 자연암반(自然岩盤)을 초석(礎石)으로 삼고 암반 높이에 맞춰 길고 짧은 기둥을 세운 5량구조(五樑構造)의 팔작집인데 공포(공包)에서는 익공계수법(翼工系手法)과 다포계수법(多包系手法)이 혼용(混用)되었는데 천장구조(天障構造)로 보아 맞배집이었을 가능성도 있어 조선(朝鮮) 후기(後期)까지 여러 번의 수리(修理)로 많은 변형(變形)이 있었던 것으로 보인다. 서액(書額) 중 '제일계정은(第一溪亭)'은 현종(顯宗) 3년(1662) 부사(府使) 허목(許穆)이 쓴 것이고 '관동제일루(關東第一樓)'는 숙종(肅宗) 37년(1711) 부사 이성조(李聖肇)가 썼으며, '해선유희지소(海仙遊戱之所)'는 헌종(憲宗) 3년(1837) 부사 이규헌(李圭憲)이 쓴 것이다. 이 밖에 숙종, 정조(正祖), 율곡(栗谷) 이이(李珥) 선생 등 많은 명사(名士)들의 시액(詩額)이 걸려 있다. 본 누의 남쪽에는 별관(別館)인 연근당(燕謹堂)이 있었다 한다. 두타산의 푸른 숲, 굽이쳐 흐르는 오십천, 기암절벽(奇岩絶壁) 등과 어울려 절경(絶景)을 이루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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죽서루의 정문
정문앞에는 넓은 주차장이 있어서..방문하는데 어려움은 없다
입장료도 없고....그저 지나는 길에 휴식처처럼 머물다 갈 수 있는 곳이다.
고향땅의 명승지이지만...죽서루가 거기쯤있고...안다는 것으로 마음에서 방치되어 있는 곳이다.
명절을 맞아 잠시 바람을 쐬러 나왔다가 몇장 찍어 보았다.
정문을 들어서면 바로 넓고 시원한 죽서루가 한눈에 들어 온다.
죽서루 현판을 당겨서 담아 보았다.
‘죽서루’와 ‘관동제일루(關東第一樓)’라는 현판은
1715년(숙종 41) 삼척부사 이성조가 쓴 글씨로 죽서루를 관동에서 제일가는 누각으로 표현하고 있다.
또한 현판 중에는 ‘제일계정(第一溪亭)’이라 하여 허목의 글씨가 있는데,
이것은 오십천의 계류와 기묘한 조화를 이루고 있는 죽서루의 아름다운 모습을 나타낸 것이다.
1788년 단원 김홍도가 그린 죽서루의 모습으로 오십천이 S자형으로 크게 감돌아가는 석벽이 눈에 띈다.
죽서루 아래에서 반대 방향으로 돌아가는 하천은 오늘날 직강으로 바뀐 상태다.
관동에서 제일가는 죽서루
關東第一竹西樓
누각 아래 푸른 물 도도히 흐른다
樓下溶溶碧玉流
오랜 세월 돌과 물이 어우러진 경치
百年泉石如相待
천고의 문장으로도 다 표현할 수 없도다
千古文章不盡遊
- 〈차죽서루판상운(次竹西樓板上韻)〉오십천이 감돌아가는 물돌이의 절벽, 그 벼랑 위에 날아갈 듯 죽서루(竹西樓)가 아름답게 서 있다.
1875년(고종 12) 삼척부사로 부임했던 심영경(沈英慶)은 죽서루의 빼어난 모습에 감탄하여 이렇게 노래하고 있다.
정면 7칸 측면 2칸의 겹처마 팔작지붕건물. 보물 제213호.
삼척시의 서쪽을 흐르는 오십천(五十川)을 내려다보는 절벽 위에 세워져 있는데, 예로부터 관동팔경의 하나로 유명하다.
고려 충렬왕 때 이승휴(李承休)가 창건하였고, 1403년(태종 3) 삼척부사 김효손(金孝孫)이 중창하여 오늘에 이르고 있다.
죽서루로 올라가는 길
용문 옆으로 난 길이다.
현재의 크기는 정면 7칸, 측면 2칸의 장방형 평면을 이루고 있지만,
본래는 정면 5칸, 측면 2칸이었다고 생각되는데,
그 이유는 좌우 각 1칸에 놓인 공포(栱包)의 모습이 다르고,
또 내부 천장에 당초 측면 밖으로 나와 있던 도리의 뺄목들이 그대로 남아 있음을 볼 수 있기 때문이다.
공포는 기둥 윗몸에서 소첨차(小檐遮)를 보의 방향으로 놓고,
이 위에 대접받침을 놓아 초제공에 놓은 첨차를 받치고,
이 첨차는 외이출목도리(外二出目道里)의 장여를 받치고 있는 주심포식(柱心包式)의 건축이지만,
각 부재들은 오히려 다포식의 모습을 더 많이 지니고 있다.
가구(架構)는 7량(七樑)으로 앞뒤 평주(平柱) 위에 대들보를 걸고,
이 위에 첨차와 소로[小累]로 싸여진 포작식(包作式)의 동자기둥을 세워 종량(宗樑)을 받치고,
이 종량 위에 초각된 판형(板形)과 대공(臺工)을 놓아 종도리를 받치고 있다.
해선유희지소(海仙遊戱之所)는 1837년(현종 3) 부사 이규헌(李奎憲)이 쓴 것이다
이 밖에 숙종, 정조, 율곡 이이 선생 등 많은 명사들의 시(詩)가 걸려 있다
‘제일계정(第一溪亭)’이라 하여 허목의 글씨가 있는데,
이것은 오십천의 계류와 기묘한 조화를 이루고 있는 죽서루의 아름다운 모습을 나타낸 것이다.
죽서루와 오십천은 양양 낙산사의 의상대와 함께 송강 정철의 〈관동별곡〉에 소개된 관동팔경 가운데 하나다.
죽서루는 지방관아에서 지은 공루로 창건연대와 처음으로 지은이는 정확히 알 수 없다.
다만 고려시대였던 1266년(원종 7) 《동안거사집(動安居士集)》이라는 문헌에 서루(西樓)로 표기되었는데,
이 누각이 지금의 죽서루 위치에 지어졌던 것으로 보고 있다.
그러므로 1266년 이전에 이미 지어졌던 것으로 추정되어 죽서루는 매우 역사가 깊은 누각임을 알 수 있다.
현재의 죽서루는 1403년(태종 3) 삼척부사 김효손이 옛터에 중창한 후 수차례의 중건을 거쳐 오늘에 이르고 있다.
죽서루는 정면 7칸, 북쪽 측면 2칸, 남쪽 측면 3칸으로 지어진 특이한 형태의 누각으로 현재 보물 제213호로 지정되어 있다.
죽서루는 관아에 바로 붙어 있는 누각이다.남원의 광한루는 주변에 고정원을 크게 조성했지만 죽서루는 지금까지의 발굴조사에서 고정원과 관련된 유구가 발견되지 않았다.
이것은 죽서루가 있는 오십천 주변의 경관이 너무 아름답기 때문에 별도의 정원 시설을 조성하지 않은 것으로 보인다.
죽서루의 동쪽에는 대나무 숲이 있는데 그 옛날 죽림 속에는 죽장사(竹藏寺)라는 절이 있었다고 한다.
죽서루라는 이름은 여기에서 유래한 것으로 죽장사의 서쪽에 위치한 누각을 의미한다.
죽서루에는 많은 편액이 걸려 있다.
누각의 명칭과 의미를 나타내는 현판, 죽서루의 역사를 기록한 편액, 죽서루와 오십천의 풍광에 관한 경관시를 수록해놓은 편액 등
수없이 많은 액자가 누각을 장식하고 있다.
죽서루를 받치고 서있는 암석들.
초석과 기둥이 모두 다른 죽서루...여기에 자꾸만 눈이 간다.
각기 높이가 다른 기등과 다듬지 않은 초석
오십천위의 죽서루는 자연의 생김새대로 지어진 누각이다.
죽서루의 기단과 기둥
특히, 이 누각에서 주목되는 것은 기단(基壇)과 초석이 없이 두리기둥 밑면을 그렝이질하여 자연암반 위에 직접 세운 것이다.
누각 바닥은 우물마루이고, 천장은 연등천장[椽背天障]이며,
우물마루바닥 밖으로는 계자난간(鷄子欄干)을 두르고, 기둥 사이는 벽체나 창호 없이 모두 개방하였다.
죽서루는 이름에도 붙어 있듯이 대나무가 많다
오죽과 어우러진 죽서루
죽서루(竹西樓) 정면에 걸려 있는 죽서루와 ‘關東第一樓(관동제일루)’라는 대액(大額)은 숙종 때의 부사 이성조(李聖肇)가 건 것이다.
죽서루 누각에서 바라본 오십천
울창한 숲사이로 푸르게 흘러가는 오십천
그리고 강물위를 날아가는 바람이 간간이 죽서루 위로 올라온다.
죽서루 마루에서...잠시....앞뒤 풍경을 바라보며
눈을 감았다가 떴다가..
누각에 걸려있는 글귀들을 바라보다가..
아내가 조선의 선비였던가.
딱 그 기분이다.
죽서루의 대나무들.
죽서루옆에 위치한 바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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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죽서루 용문바위)
용문(龍門)바위
죽서루의 동쪽 연근당 자리 곁에 위치한 '용문바위'이다. 용문바위 주위는 거대한 돌 무더기들이 산재하고 있다.
그 옛날에는 이곳이 바다였다고 하는데 오랜 세월동안 풍화작용을 거치고,
바다가 현재는 육지로 변하는 과정에서 이렇게 오묘한 바위들을 남겼다고 한다.
행초서로 '용문(龍門)' 이라 새긴 음각글씨가 남아있으며, 바위 상부에 성혈유적이 있다.
용문바위 전설에는 죽서루 벼랑의 생성유래가 담겨 있는데,
삼국을 통일한 신라의 문무왕이 죽어서 바다를 지키는 용이 되어,
동해바다를 순행하다가 삼척 앞바다에서 지금의 죽서루 아래 오십천으로 뛰어들어 빼어난 경관을 감상하였다고 한다.
송강 정철 가사의 터 표석
관동팔경 關東八景 이란
통천의 총석정(叢石亭), 고성의 삼일포(三日浦), 간성의 청간정(淸澗亭), 양양의 낙산사(洛山寺),
강릉의 경포대(鏡浦臺), 삼척의 죽서루(竹西樓), 울진의 망양정(望洋亭), 평해의 월송정(越松亭)을 들어 관동팔경이라 이르나,
월송정 대신 흡곡의 시중대(侍中臺)를 넣기도 한다.
대관령의 동쪽이라 하여 ‘관동’이라는 말이 붙여졌지만, 현재는 망양정과 월송정이 경상북도에 편입되었고,
삼일포·총석정·시중대는 북한지역에 들어 있다. 본래 강원도의 동해안 지방에는 명승지가 많기로 유명하지만,
특히 이들 팔경에는 정자나 누대가 있어 많은 사람들이 여기에서 풍류를 즐기고 빼어난 경치를 노래로 읊었으며,
또 오랜 세월을 내려오면서 많은 전설이 얽히게 되었다.
송강 정철이 강원도 관찰사로 부임하면서 지은 관동별곡에는 임금에 대한 그리움이 숨김없이 등장한다.
그 중에서 눈에 띄는 부분이 하나 있다.
‘태백산 그림자를 동해로 담아 가는 모습을 보니 차라리 그 그림자를 한강의 남산에 대고 싶구나’ 라는 대목이 바로 그것이다.
여기에 나오는 남산은 임금이 있는 서울을 말한다. 그는 뛰어난 경치를 바라보면서 선조의 안위를 걱정했다.
정철은 죽서루 아래로 흐르는 오십천을 보고 이런 묘사를 한 것인데, 오십천에는 태백산맥의 그림자가 수려하게 흐르고 있었던 모양이다.
오십천에 비친 경치가 너무 훌륭하니까 그 그림자를 임금에게 보여주고 싶다고 생각했으니 말이다.
심미적 감수성이 뛰어난 송강이 임금에게 보여주고 싶을 정도로 너무 좋았다는 죽서루. 그래서 옛 사람들은 강릉 경포대를 ‘천하제일경’이라고 했고,
삼척 죽서루를 ‘천하제일루’라고 불렀다.
죽서루 /松江 鄭澈
關東仙界陟州樓(관동선계척주루):
관동의 신선 경계에 있는 삼척의 누각
虛檻憑危夏亦秋 (허함빙위하역추)
난간높이 걸려 있어 여름 또한 가을 같다.
天上玉京隣北左 (천상옥경린북좌)
하늘위의 옥황상제 궁전이 북쪽 왼편에 이웃해 있고
夢中銀漢聽西流(몽중은한청서류)
꿈속에 은하수 서쪽으로 흘러감이 들린다.
疏簾欲捲露華濕 (소렴욕권로화습)
성긴 주렴 걷고자 하나 이슬이 축축하고
一鳥不飛江色愁(수) (일조불비강색수)
한 마리 새 날지 않으니 강의 모습 시름겹다.
欄下孤舟 將入海(난하고주장입해)
난간아래 외로운 배 문득 바다로 들어
釣竿 應拂欝陵鷗(조간응불울능구)
낚싯대 흔들리니 언덕의 갈매기 우울하겠구나.
죽서루 /이이 율곡
누가 하늘 도와 이 아름다운 누각을 세웠는가?
그 지나온 세월 그 얼마인지 알 수가 없구나.
들판 저 멀리 산봉우리에는 검푸른 빛 서려있고
모래사장 부근에는 차가운 물고여 있네.
시인은 본래 남모르는 한이 많다지만
깨끗한 이곳에서 어찌 나그네의 근심을 일으켜야만 하리오.
온갖 인연 떨쳐버리고 긴 낚시 들고 와
푸른 절벽 서쪽 물가에서 졸고 있는 갈매기와 놀아보리.
저녁무렵...어둑해지는 시간
서둘러 빠져 나오며..다시 돌아본 죽서루
마루에 어둠이 가득해져 온다
몇번째 들러보는 이곳...
언제 보아도 고향집 같이 정스럽다.
만약....친정어머니가 멀리 가시고...삼척에 올일이 없어질지도 모르지만
죽서를 떠올린다면 고향집 처럼 그리워질 것이다.
죽서루를 감싸고 돌아가는 강은 오십천이다.
오십천은 삼척시를 가로질러 동해로 흐른다.
동해안에서 가장 긴 하천으로 ‘오십천’이란 이름은 발원지에서부터 동해까지 50여 번 돌아 흐른다고 하여 붙여진 것이다.
오십천은 감입곡류, 즉 물돌이가 많은 하천이다.
오십천 협곡의 암벽들은 장기간에 걸친 침식과 퇴적작용으로 현재와 같은 다양한 지형을 형성했다.
죽서루가 위치한 곳은 오십천 협곡이 끝나는 곳으로 하천과 주변 협곡, 죽서루 절벽, 배후의 석회암 지형과 길게 늘어진 송림 등이
급경사의 산지와 어우러져 절경을 자아낸다.
명절...차례를 지내고
서둘러 며느리와 강원도 화천 시어른 산소에 달려갔다
며느리보고 첫해니 인사를 시켜야 할 것 같아서이다.
차가 밀려서 어둑해진 시간에 부랴부랴 인사를 하고 내려오니...갑자기 강원도땅이라 친정엄니께로 가고 싶어졌다
아들과 며느리는 집으로 보내고 우리 두내외는 추석의 긴연휴를 친정에서 보내고자 내려왔는데
가만이 집안에 있는것 또한 답답하다..
걷기도 할겸...근처 죽서루에서 두어시간을 보내면서 걷고나니...추석의쌓인 피로가 그나마 풀어지는 느낌이다
가까운 곳에 거닐고 싶은 것이 있다는 것은 축복이다.
2015.9. 추석연휴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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