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슴 한쪽 비워둔다면

photostory-山

2016.2.28. 일. 문학산

kyeong~ 2016. 2. 29. 01:11

 

 

 

 

 

우리집에서 가장 가까운 산

인천에서 가장 낮은 산이라 생각하는 산

산이라기보다..둘레길처럼 여기는 산

두시간이면 다녀오리라 단순한 생각을 하며

핸드폰만 주머니에 넣고 산을 오른다

 

햇볕은 없고 겨울보단 춥지 않고 봄보다는 추운 날씨

낮은 산이라도 길은 갈래 갈래...인간의 마음처럼 갈 곳이 여러길이다.

어디로 어떻게 오르고 내려가야할지...

일행을 따라 쉬운길로 편하게 올랐다.

얄팍하게 옷을 입고 왔지만 오르는 동안 등에 땀이 난다.

정오를 넘어서자 바람의 온도가 하강을 한다

으시시하다. 다시 추워지려는지....

겨울의  아찔한 추위가 쾌감을 전해줄때가 있어서

 겨울이 좋다 좋다...뇌새김을 하지만 어느한쪽에서는 따듯한 봄을 기다리기도 한다.

 

문학산과 연경봉 노적봉까지...일요일 휴식 삼아 걷기에 딱 좋은 길이고 거리이다.

아침을 먹고 소화를 시킬겸 슬슬 나섰다가....점심먹을때즘 내려오기 좋은 코스이다.

 

산우님들이 준비한 막걸리와 먹거리를 공짜로 폭풍 흡입하고...내려오는 길

눈발이 날리기 시작한다

바람이 부는대로 춤을 추는 눈발

아직도 마음은 젊은 날인지라 날리는 눈발이 반갑고 즐겁다

점점 짙어져가는 날씨, 눈은 함박눈으로 변했다

 

갈 때 보았던 길과 똑같은 그 길을 돌아서 왔지만 확연히 다른 느낌의 길

문득...아무리 같은 길을 걷더라도 그 길이 결코 같지 않다는 생각이 인생과 비유가 되었다

같은 길을 걸어서 출근하고 거의 같은 사람과 일을 하고 같은 집으로 돌아오지만

지금 이순간이 가장 소중하다고 생각하는 날이 있었던가

무심코 집을 나서고 무심히 집으로 돌아오는 나날

결코 같은 길이 아니므로 소중히 살아야 겠다는 평범한 생각을 긴시간동안 하게 되었다. 

빈 손으로 길을 나섰으나 길을 안내해주는 대장님과

 산우님들이 준비한 이것저것 먹거리로 배를 채우고

축복처럼 내리는 함박눈 속을 걸어서 돌아오니 온몸에 피로가 모두 사라진듯하다.

 

2016.2.28. 토요일. 인천 문학산에서

 

첫번째 쉼터에서...

우리 젊은 날처럼 첨에는 거침없이 쉽없이 앞을 향해 가죠

 

 

멀리 빌딩숲 송도가 보인다

 

 

낮익은 연수구의 모습

 

 

문학산성文鶴山城

복원된 모습이다.

 

 

문학산성文鶴山城

 

인천광역시 기념물 제1호.

해발 224m의 산정부를 테뫼식(산 정상을 둘러 쌓은 성)으로 에워싼 석축산성이다.

『세종실록지리지』에는 남산석성(南山石城)이라 하여 둘레가 160보(步)이고, 성안에 봉수대가 있다고 하였고,

『신증동국여지승람』에서는 남산고성(南山古城)의 둘레가 430척(尺)이라 하였다.

『동사강목(東史綱目)』에서는 이 성을 비류(沸流)의 옛 성이며, 성안에 비류정(沸流井)이란 우물이 있다고 하였다.

 

『인천읍지』에서는 이 성을 미추홀(彌鄒忽) 고성이라 하고,

임진왜란 때에 인천부사 김민선(金敏善)이 옛 성을 수축하여 지키면서 여러 차례 왜적을 무찌르다가 병으로 죽자,

김찬선(金纘善)이 이어받아 끝까지 성을 지켰으며, 동문 밖 100여보 되는 곳에 왜군이 쌓은 성터가 있다고 하였다.

 

성벽의 길이는 577m이고, 이 가운데 현존하는 부분은 339m나 된다.

이 중 육안으로 성벽을 알 수 있는 부분은 220m인데, 성벽의 높이는 약 1.5m∼4m로 남았다.

성벽은 장방형의 면을 가지도록 수평고임쌓기로 정연하게 축조하였다.

성벽의 외측 기단 아래에서는 2∼3단을 안쪽 방향으로 10∼15cm씩 들여쌓거나, 경사가 완만한 기초부의 보강축조가 있어 견고하다.

 

성에는 동문과 서문이 있었다고 하나 지금은 없어졌으며, 동쪽에 작은 수구(水口)가 남아 있다.

 성안에는 동문에서 서북쪽 150m 지점에 우물이 있었으나 매몰되었고, 정상에는 봉수대가 있었으나 역시 없어졌다.

정상의 동측 아래로 김민선을 모신 사당인 안관당(安官堂)이 있었으나 역시 없어지고,

성안에서는 삼국시대 이래의 토기편과 기와 조각이 발견되고 있다.

이 작은 산성에서 임진왜란때 왜적을 물리친 것은 역사상 특이한 예로서 중요한 의미가 있다.

 

 

문학산성을 살펴 볼 수 있는 데크가 설치되어 있다.

 

 

성곽주변의 돌을 다시 쌓고 산성을 가까이서 볼 수 있는 전망대로 오르는 계단을 만들었다.

 

 

잠시 따듯해졌던 날씨에 저렇게 푸른 잎이 났었나보다

누군가 저렇게 꽂아두었다.

 

 

나뭇잎모양을 본뜬 둘레길 표지판

연수둘레길은 문학산을 거쳐 청량산과 승기천으로 이어어진다.

 

 

산이라기보다 둘레길 같다.

그렇게 힘들지도 않고 살방살방 거닐기 아주 좋은 길이가.

 

 

오후2시경이 되자 하늘이 검어지고 날씨가 점점 하강을 한다.

 

 

드디어 눈발이 날린다.

눈을 몰고 오는 바람이 일기 시작한다.

 

 

노적봉과 문학산사이의 안부에 삼호현이라는 안내판이 있다.

 

 삼호현
문학산의 봉우리와 노적봉 사이에 관교동에서 청학동으로 넘어가는 긴 고갯길이 있는데

이 길을 삼호현, 함호재고개, 사모지고개 라고 부른다.

 

이 고개는 백제의 근초고왕 때(372년)에 중국으로 가는 바닷길을 연 한나루로 가는 길목이다.

지금부터 1600 여년전 백제의 사신들이 중국으로 가는 배를 타기 위하여

이 고개를 넘으면서 사신을 배우하는 사람들고 이별을 나눈 곳이라고 한다.

이곳까지 따라온 가족이나 친지들이 능허대 쪽으로 멀어져 가는 사신을 무사히 잘 다녀오기를 빌면서

 떠나는 사람을 세 번 크게 불렀다하여 생긴 이름이라고 한다.

 

 

점점 많이 쏟아지는 눈발

함박눈으로 바꼈다

아무준비없이 산을 나선 것을 후회하는 순간이다.

혹여 내려갈때 미끄러울까 걱정을 했다.

 

 

렌즈에 눈발이 붙기 시작하여 사진을 찍기 쉽지 않다

모두 흐려진 사진..

그래도 이 눈때문에 1시간 가량 즐거웠고

그 즐거운 기분을 남긴다는 이유로 지우지 않고 그대로 올린다.

 

 

봄이 온다는 것이 그리 쉬운가

마음은 날마다 봄같은 날을 기다리고

인생또한 봄날이길 간절하지만

올듯말듯...

 

전망좋은 곳에서 눈을 만나니

눈을 처음보는 사람처럼 갈길을 늦추기 시작한다.

올겨울 적설량이 적어서 아쉬움이 많았던 탓에

눈을 만나니 이렇게 반갑다.

 

 

올때 보았던 성곽이 다른 풍경처럼 보인다

 

 

우리나라는 수많은  분열과 분단과 침입을 겪어 온 탓에

성곽이 참 많은 것 같다

하기사 한양전체가 도성으로 에워쌀정도로 침입을 수없이 겪어왔으니 말이다.

 

 

한꺼번에 쏟아진 눈이 이렇게 눈꽃을 가득 피게 했다.

 

 

아무것도 보이지 않을 만큼 시야가 흐려졌다.

 

 

 

 

 

 

 

 

 

 

 

 

가볍게 다녀오려고 했던 길이

이렇게 뜻하지않았던 눈의 축복때문에

기분이 업 되었다.

 

축복이라는 운은

부지런히 길을 나서고

무한히 도전하는 자에게 얻어지는 것이고

갈때 보았던 풍경과 돌아서 올때 풍경이 다른 것처럼

지금 하지 않으면 안될 일은 기회를 놓치지 말라고 말하고 싶다

돌아올때 그모습이 있으라는 보장도 없고

다른 장애물에 의해 또다른 길로 변해 있을지도 모르므로

지금 해야 할 것은 미루지 말아야 할 것이다.

 

사진을 정리하는 지금...자정을 넘겼지만

이번겨울들어서  가장 많은 눈을 감상한 하루였고

마음이 한동안 흔들렸던 그 순간이 지금도 참 좋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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