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8.10.12.금. 인천 6시 출국수속및 출발
2018.10.12.금 선내 저녁식사
2018.10.13.토 선내 아침식사
2018.10.13.토. 단동 9시 도착및 입국수속
2018.10.13.토. 버스로 봉황산으로 90분 이동
봉황산아래에서 점심식사
오후 12시경 봉황산 트래킹
산입구에서 셔틀버스로 이동
케이블카로 봉황산 중턱 도착
봉황산 836미터, 4시간30분소요
자양관-관인각-쌍용배-봉황동굴-장군봉-토이봉-노우배-전연봉-신마봉-기판정-통천교-흑풍구-찬운봉
오후 6시하산후 석식 호텔투숙
2018.10.14.일 조식후 압록강 유람선 탑승(청성교)
호산장성탐방
압록강철교탐방
오후2시 중식후 단동 여객터미널로 이동
오후7시 출국 수속후 단동출항
2018.10.14. 오전 7시 선내조식
오전 9시 인천 도착후 해산
압록강 유람선 여행을 한후 호산장성으로 이동
호산장성
장성 유적의 인근에서 주민들의 의해 발견된 석산이 드리워져 있는데,
안타깝게도 이 석산은 고구려의 성인 박장성이 철거되어 생긴 석산이다.
호산이란 의미는 "멀리서 보면 호랑이가 앉아있는 것처럼 보이기 때문에 호산(虎山)"이라고 한다.
압록강을 사이에 두고,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과 중화인민공화국이 국경을 둔다.
현재는 장성 유적을 산책할 수 있도록 정비되어 있다.
호산장성 매표소 입구
하지만 목적으로 세워진 건축물이다. 명 말기, 후금의 세력 아래에 들어가며 파기되었다.
1989년, 하늘에서 랴오닝 성의 장성을 조사해서 명사대로 호산에서 시작해 서쪽으로
푸슨, 선양, 랴오양, 안산, 진저우를 통해서 허베이 성과의 경계의 산하이관까지 이어져 있음을 확인하였다.
호산의 600여 m의 장성 유적을 발굴하고 1990년, 뤄톄원(羅哲文) 등의 장성 전문학자들에 의한 실지조사에서
명나라 시기 장성의 동쪽 끝 기점으로 인정되었다.
이때까지 산하이관이 동단이라 알려졌지만 이 발견으로 인해 중국 장성은 1000여 km 연장시켜 호산을 장성의 동쪽 끝 기점으로 바꿨다.
1992년에 380만 위안을 투자하여 600여 m의 호산장성을 수리하고, 처음으로 장성 최동단의 전모가 나타나게 되었다.
더욱이 2000년, 2,230만 위안을 투자하여 1000여 미터 장성의 주체 복구를 완성했다.
호산으로부터 동쪽에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 평양까지 이르는 장성은 연나라의 장성으로, 후일 진나라와 연결되는 연진장성이다
실제로는 명나라의 장성이 아니라 고구려가 세운 박작성(泊灼城)으로 이는 중화인민공화국의 통일적 다민족 국가론에 입각한 동북공정이다.
한족의 명나라가 만주를 제압하고 있었다는 것을 보여줌으로써 만주가 옛날부터 중국의 지방정권 내지 영토임을 과시 및 홍보하기 위한 공작이다.
출입문 성곽문이 대국답게 웅장하고 크다
출입문을 들어서서 본 호산장성 출입문
출입문을 들어서자 앞에 산하나 높이 있다
압록강하나만 건너면 중국땅
옛고구려땅이었고 고구려인이 세웠던 장성이라고 하니
역사공부를 하는 마음으로 들어갔다
호 산(虎山)은 생김새가 누워 있는 호랑이처럼 보인다고 해서 붙여진 이름이다.
본래 압록강 하구에 있던 고구려의 박작성(泊灼城)으로 추정되는 곳이다.
박작성은 요동반도에서 평양성으로 이어지는 교통로를 방어하는 역할을 담당했었다.
그런데 1990년 중국이 이곳에 새롭게 명나라식 장성을 쌓고 관광지로 개방한 것이다.
동북 공정의 일환으로 후 산 장성이 만리장성의 동쪽 끝이라며 선전하고 있다.
하지만 만리장성의 동쪽 끝은 산하이관(山海关)이라는 사실을 알 사람은 다 안다.
박작성의 흔적을 완전히 지워 버려서 한국인에게 외면받을 법하지만, 북한의 산하가 지척에서 보이기 때문에 많이들 오른다.
총 길이는 1,250m 정도로 산등성이를 따라 제법 가파르게 이어진다.
압록강에서 바라보는 신의주가 멀게 느껴졌다면 후산 장성으로 가 보자.
봄이면 드넓은 옥수수밭에서 북한 농부들이 일하는 모습을 볼 수도 있다. 장성 자체로 평가한다면 그리 매력적이지는 않다.
만리장성동단기점-호산장성
만리장성의 시작점이라고 크게 안내를 하고 있는데
고구려의 박작성이라고 하니 기억해 둘 일이다
호산 장성의 길이는 1250m
호산장성의 시작점
오르기전 먼저 호산장성 뒷편에
한국인들이 이곳에 오면 항상 찾는 곳이 있다고 하여
그곳을 먼저 가보기로 햇다
길거리에서 찍은 먹거리들..
초록무도 있고 빨간 옥수수
사과는 우리나라랑 빛깔이 같다
중국땅이지만 한복도 보이고...
강건너 신의주 어적도
이곳에 왜 왔냐면
북한과 가장 가까운 곳이다
바로 앞에 보이는 땅이 북한땅이다
건너뛰면 바로 닿을 것 같다
원래는 이것보다 더 가까웠는데 수로를 더 깊게 파서
뛰어서 건널수 없게 폭을 넙혔다고 한다
수양버들도 바람한자락이면 북한을 오고갈것 같은 지척의 우리땅
왠지 한발짝 건너뛰어보고 싶은 곳이다
일보과(一步跨)
압록강의 섬으로 이루어진 북한 땅이 바로 한 발 건너 뛰어도 될 정도로 가깝다고 해서
일보과(一步跨)라고 하는 곳이 성의 뒤에 위치하고 있다.
일보과(一步跨)란 한 걸음 넘으면 중국에서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으로 넘게 된다는 뜻이다.
중국은 한글로 ‘일보넘음’이라고 통역하고 있다. ‘일보과’나 ‘일보넘음’이나 어색하기는 마찬가지다.
한국사람들이 오면 제일 가까운 곳에서 북한 땅을 볼 수 있다고 하여 많이 찾고 있다.
어쨌든 중국은 압록강 국경 가까운 곳을 관광지로 개발하고 있지만 그리 기분이 썩 좋지 않다.
지척(咫尺)
지척은 지금도 많이 사용된다
하자로는 적기가 어렵지만 지척의 지(咫)는 여덟 치 정도의 짧은 거리를 의미하고,
척(尺)은 재는 도구인 자를 의미한다
척은 30.3cm이고 1/10척인 치는 3.03cm이니 여덟 치인 지는 대략 24.2cm 가량을 나타낸다
그러므로 지척은 그저 한뼘 정동인 25~30cm에 지나지 않는다
지척이라는 단어가 현실에서는 눈앞에 있다는 뜻으로
엎어지면 코가 닿을 곳을 나타낼때 쓰이는 말이다
호사장성을 오르기위해
다시 성문으로 돌아왔다
웅장한 호산장성 성문
성곽을 걷기 위해서 누각쪽으로 올라갔다
호산장성위는 여러명이 손잡고 걸어도 될만큼 넓다른 길이다
1키로가 넘는 저 꼭데기까지 가려면 제법 땀좀 흘려야한다
성문 밖으로 신의주 땅이 보인다
저기가 우리땅이 었다니...신의주땅을 연신 내다보게 된다
북한쪽 헐벗은 산들이 보인다
신의주땅이 훤히 보이는 호산 산성
한국에 느끼는 것처럼 살벌한 기운은 하나도 없다
중국은 그저 한국의 정서를 이용해서 돈벌이에 잘 이용하고 있는듯한 느낌이다
한국의 역사를 가진 박작성을 없애고
중국의 호산산성을 급조해서 만들었지만
담쟁이는 무엇을 알겠는다...붉게 붉게 계절을 읽고 있다
중간중간 통과하는 출입문위에는 몇번째 문인지 호수가 적혀있다
시간이 빡빡해서 다 올라가지 못하고
중간에 되돌아 왔다
끝까지 오를 시간을 주지 않고 수박 겉핧기식으로 시간을 주는 것이 아쉬웁기 그지 없다
여기는 박작성이 아니라 중국의 호산장성임을 알리는 표지석
중국땅임을...
중국의 성임을 알리지만
장사는 한국인을 상대로 하나 검은 속...
한복을 걸어놓고 양심없는 돈벌이를 하는 듯하다
얼렁뚱당 구경을 마치고 다시 돌아나가는 길
단동여행을 하면서 가이드가 전하는 말
중국과 북한사이의 압록강이 있다
압록강에 있는 섬들을 북한에 전부 넘겨주는 조건으로
중국과 북한의 국경이 백두산의 중간을 지나게 되었다고 한다
쓸모도 없는 압록강의 섬과 백두산의 국경을 바꾼것이다
그중에 쓸만한 섬들은 중국에서 장기 임대를 하고 있다고 한다
마지막 여행지 압록강 철교 다음편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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