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슴 한쪽 비워둔다면

poem-아직도 모르지만

그래도 다행인건 (구룡령~응복산)

kyeong~ 2022. 6. 21. 15:04

 

그래도 다행인 건

 

높은 고지 길은 어두웠다

허공을 찾지 못한 길은

세상에서 가장 긴 뱀처럼 누워있다

어디서나 빛나던 햇살은

그물처럼 촘촘한 숲을 뚫지 못했다

유월의 잠을 가르지 못한 들꽃은 보이지 않고

지독하게 살아가는 잡풀만 무성하다

기대했던 들꽃과 새소리가  없는 길은 빈 뜰이다

 

그래도 다행인 건

최신형 네비도 가끔 오작동을 하는데

단 하나의 길만 따라가면 된다

그늘 깊은 외길을 가는 동안

햇빛은

심지처럼 끌어올린 나무 끝에서 빛나고 있는지

세상 모두 다 끌어안고 살다가

함박꽃에게 빚진 키스를 퍼붓고 있는지

오지의 심장을 거쳐 나온

물소리가 들릴 때까지

묵비권 행사하는 것처럼  걸었다

 

그늘이 깊은 길

살아왔던 젊은 날과 같다

이 생각 저 생각할 틈도 없이 살아가는데

새의 부리로 툭툭 치며

이제 그만 내려놓고 살라고 한다

내려놓을 게 없다

그래도 다행인건

길은 끝나지 않는다는 것.

 

 

梁該憬

2022.6.19. 일

구룡령에서 응복산 산행을 하고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