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래도 다행인 건
높은 고지 길은 어두웠다
허공을 찾지 못한 길은
세상에서 가장 긴 뱀처럼 누워있다
어디서나 빛나던 햇살은
그물처럼 촘촘한 숲을 뚫지 못했다
유월의 잠을 가르지 못한 들꽃은 보이지 않고
지독하게 살아가는 잡풀만 무성하다
기대했던 들꽃과 새소리가 없는 길은 빈 뜰이다
그래도 다행인 건
최신형 네비도 가끔 오작동을 하는데
단 하나의 길만 따라가면 된다
그늘 깊은 외길을 가는 동안
햇빛은
심지처럼 끌어올린 나무 끝에서 빛나고 있는지
세상 모두 다 끌어안고 살다가
함박꽃에게 빚진 키스를 퍼붓고 있는지
오지의 심장을 거쳐 나온
물소리가 들릴 때까지
묵비권 행사하는 것처럼 걸었다
그늘이 깊은 길
살아왔던 젊은 날과 같다
이 생각 저 생각할 틈도 없이 살아가는데
새의 부리로 툭툭 치며
이제 그만 내려놓고 살라고 한다
내려놓을 게 없다
그래도 다행인건
길은 끝나지 않는다는 것.
梁該憬
2022.6.19. 일
구룡령에서 응복산 산행을 하고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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