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리산을 오르며 / 梁該憬
물 두병 떡 한 봉지 배낭에 넣고
캄캄한 지리산을 오른다
발 끝에 걸리는 돌에 넘어지지 않으려고 애를 쓰며
달리 아는 길이 없어
남들의 뒤를 따라 정신없이 오른다
이 길이 천왕봉으로 간다 하여
핏기 잃은 낙엽이 밟히는 것도 모르고 산을 오른다
집채만 한 등짐을 지고 가는 사람
랜턴 하나 달랑 들고 누군가와 같이 가는 사람
하지만 그들은 언제나 타인
외로움보다 덩치 큰 어둠 속에서
쪽달을 보며 엄마 쪽머리가 그립고
별 몇 개에 마음 전부를 걸던 시간
중턱쯤에 이르러서야
어둠이 껍질을 벗고 있다
걸어온 길이 돌밭이었구나
갈 곳도 아득히 먼 저기
너무 많은 것이 보이는 세상은
등짐보다 더 무거운데
운무만이 하얗게 다가선다
2022.11.20. 지리산 무박산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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