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슴 한쪽 비워둔다면

poem-아직도 모르지만

2021.9.25. 만복대에서

kyeong~ 2021. 9. 29. 00:12


만복대에서

만복대로 가는 길
집채만 한 파도가 밀려오는 소리
머리 위로 바람이 지나간다
등대 같은 달빛을 따라
그만그만한 봉우리를 항해하듯 넘어간다

아침햇빛이 만복대를 일으켜세우는 시간
파도처럼 밀려왔던 바람은
반야봉에 걸터앉아
안개를 부풀리고 있다
섬과 섬같은 만복대와 반야봉
경계가 사라져 간다

안개가 골짜기를 지우고 있는 시간
반야봉이 아침햇빛에 이슬을 털고 있는 동안
억새의 은빛털이 바람 속으로 가는 동안
만복대에 걸터 앉으니
마음은 원하는 바 없다
지난밤 바람따라 누웠던 풀잎
풀잎에 맺힌 이슬처럼 맑은 피가 흐른다

오늘이 다 가도록
바람이 안개를 다 지우도록
슬픈빛깔 고요함이 깊은 골짜기를 메우도록
반야봉이 먼 섬같이 머뭇거리는 사이
그러고 보니 나는 바람이었네
만복대를 지나는 이름없는 바람이 었네

梁該憬
2021.9.25.토. 지리산 만복대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