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가 오는 일은
이제 참 익숙한 일이다
우산을 써야겠지만
맞아도 될 것 같고
한여름에 비를 맞는 일은 아주 익숙한 일이다
비를 맞으며 산으로 가는 일이나
산으로 오르는 사람을 무시하고
센 걸음으로 달려오는 빗방울이나
그동안 알면서도 모르는 것 같이
모르면서도 아는 것 같이
한여름을 지나가고 있는 나의 풍경이다.
비가 오는 날엔
가슴은 물방울처럼 투명해지겠지만
사실은 너에 대해 무심하다
비에 흠뻑 빠진 산을 걷노라면
산이 뭐 별건가
내가 산이지
비에 흠뻑 빠진 내가 산이라는 거지
비에 젖은 산이 되어봐
너에게 마음 줄 겨를이 있겠는가
이렇게라도 난, 비에게 주었던 마음을 돌려받아
언제 녹을지도 모르는 소금 편지를 쓴다
미안하다. 너무 익숙한 것에게
마음을 내어주는 일은 습관이란다.
비가 사는 세상에 들어서봐
세상에 비 아닌 것이 있겠는가
모든 것이 이름없이 떠돌다
비는 비일뿐이고
너에 대해서도 무색 투명한 비일뿐이고
우린 찬란한 가슴을 가졌다가도
비가 사는 세상처럼
아무것도 아닌체로 산을 내려가는 것
그래서 난 너에게
또 편지를 쓴다
습관처럼 마음을 내어주는 일은
비같이 아무것도 아닌 일이란다.
梁該憬
2012. 7. 15. 삼각산 탕춘대능선 우중산행중에
이름도 없고
얼굴도 없는
비를 맞는 다는 것은
이름도 없고 얼굴도 없는 나와 동행을 하는 것
비와 동행하는 일은
소리없이 무던해지는 일
같이 걸어도
그와 같이 걷는 것이 아니라
홀로 걷는 것이 된다는 것
그래서 난
빗속에서 돌아와 다시 그날을 기억할때
딱히 무엇을 써야할지
비에게서 벗어나지 못한다
아, 비에게 눈치 없이 나를 너무 내어주고 왔었나?
우리 나이에 어떤 것에게라도 온전히 내어준다는 것은
쉽지 않은 일
다시 어디서라도 비속에 흠뻑빠진다면
모든 것이 내어주리니.
'photostory-山' 카테고리의 다른 글
설악산- 내가 아직 너를 부르지 못하는 것은 설악에서 벗어나지 못함이라 (0) | 2012.08.28 |
---|---|
칠보산- 더러는 제멋대로 생긴 구름처럼 살고 싶습니다. (0) | 2012.07.30 |
신불산- 그대 마음 가는 곳이 길이 아닐런지요 (0) | 2012.06.26 |
지리산-아득히 먼 곳, 참 산봉우기가 많기도 하다 (0) | 2012.06.13 |
소백산- 소매 밑 하얀 살이 설탕처럼 녹아내릴 때 (0) | 2012.06.01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