군생활의 마지막 휴가를 나온 아들
삼일이라는 보배로운 시간을 엄마에게 나눠 주었다
얼마만인가..이 설레이는 나들이 시간이 말이다
아침에 나섰지만 길은 삼일의 연휴를 즐기러 나온 차량으로 만원이었다
차량 속도계기판은 낮은 속도를 내내 가르키고 있었지만 지나가는 차량 이야기나
눈에 띄는 안내표지판을 가지고도 아들과의 이야기는 길에 가득찬 차량보다 많았다
언제 뚫릴지도 모르는 고속도로를 벗어나 38번 국도를 달렸다
강원도 외할머니도 뵐겸 강원도를 향해 전진하고 있었다.
제천을 지나 영월 즈음
법흥사 안내표지판은 마음을 흔들었다
이미 날이 저물어 오는 시간인데 낯선 산사로 들어가는 것이 무리겠지만
차머리는 이미 법흥사 안내판을 하나들 스치며 찾아들고 있었다.
저 곳이 적멸보궁이라지
5대 적멸보궁중에 못가본 법흥사
법흥사의 이정표를 따라 가는 길은 제법 멀고 꼬불꼬불 했다
아들의 의사를 묻지 않은체 꺾는 핸들을 아들은 무반응이었다
그저 어디를 가든 아들은 엄마와의 시간을 간직하는 것에 의미를 두는 모양이다
길을 가는 마음이 이런거구나
예고 없이 찾아드는 이정표가 별일 없는 날 또다시 나의 아름다운 안식처가 되리라.
梁該憬
2013.3.1.영월 법흥사
위치 강원 영월군수주면 법흥리
사자산 법흥사는 신라의 고승 자장율사가 나라의 흥륭과 백성의 편안함을 도모하기위해
643년 신라 선덕여왕 12년에 사자산 연화봉에 부처님의 진신사리를 봉안하고 흥녕사(興寧寺)로 창건했다.
중국 선종의 중흥조인 마조도일 선사로부터 선(禪)을 전수받았던
신라의 선승 도윤칠감국사의 제자 징효절중(澄曉折中)이
886년 이곳에 선문을 여니 이것이 바로 라말여초 구산선문 중 하나였던 사자산문(獅子山門)이다.
1163년 고려 의종 때 다시 중창하였으며,
1730년 조선 영조 6년, 1778년 조선 정조2년,
1845년 조선 헌종 11년까지 역사의 부침속에서도 소실과 중창을 반복하며 그 맥을 이어왔다.
그 후 폐사지에 가까웠던 흥녕사가 1902년 대원각스님에 의해 법흥사로 개칭되고 재건되었다.
1912년 또다시 화재로 소실되었던 것을 1933년 지금의 터로 적멸보궁을 이전 중수하였다.
1991년 삼보스님이 적멸보궁을 다시 증축하였고
1999년 도완스님때에 이르러 법흥사 전모를 혁신하는 불사를 진행하고 있다.
현재 법흥사의 유적으로는 옛 흥녕선원의 위세를 짐작하게 하는 3개의 석탑과
1개의 수호석불좌상, 자장율사가 수도하던 토굴, 적멸보궁, 사리탑(강원도 유형 문화재 73호),
흥녕사 징효대사 보인탑(보물 612호), 징효대사 부도(강원도 유형문화재 72호),
흥녕선원지(강원도 지정 기념물 6호)가 있고 종이가 없던 시절
인도 영라수 잎에 범어로 기록한 패엽경 등의 소중한 삼보종재가 남아있다.
법흥사 주변에는 금강송림으로 우거져있으며 천연기념물 제242호인 까막딱다구리가 서식한다.
*5대 적멸보궁
경상남도 양산군 영축산 통도사, 강원도 평창군 오대산 상원사, 강원도 인제군 설악산 봉정암(鳳頂庵),
강원도 영월군 사자산 법흥사(法興寺), 강원도 정선군 태백산 정암사(淨巖寺)로 알려져 있다.
법흥사 안내도
만다라전
티벳만다라
'적멸보궁'이란
'온갖 번뇌망상이 적멸한 보배로운 궁'이라는 뜻이다.
적멸보궁을 향하여 올라갑니다.
이길을 따라 500미터쯤 올라가면 적멸보궁을 만나게 됩니다
적멸보궁으로 오르는 길에 '제2보궁 약사전'
다시또 사자산 산중턱으로 올라갑니다.
바람소리와 산뜻한 산골공기를 느끼며 걷다보면 적멸보궁에 오르게 됩니다
삼국유사>에 따르면 자장율사는 선덕여왕 5년( 636)에 중국 오대산에 가서 문수보살의 진신(眞身)을 친견한 것으로 전해진다.
스님은 중국 오대산 태화지(太和池)에 있는 문수석상 앞에서 간절한 기도 끝에 문수보살을 친견하고선덕여왕 12년(서기 643년)에 부처님 사리 100과와 부처님께서 입으시던 가사 1벌을 당나라로부터 가져 와
오대산 이곳 저곳을 옮겨 다니며 기도를 계속했다.
오대산에 월정사와 상원사, 설악산 봉정암, 사자산에 흥녕사(지금의 법흥사), 태백산의 갈래사(지금의 정암사) 등이 창건된 것은 이런 인연에 의해서다.
저 법당안으로 들어서면
통유리문으로 사자산이 훤히 보인다
부처님 진신사리가 모셔진 적멸보궁에는 따로 부처님을 모시지 아니한다
밖에서통유리문으로 법당안을 찍어 보았다.
영월 법흥사 부도
부도란 스님의 유골이나 사리를 모신 일종의 묘탑을 말한다.
저 손에 동전을 올려놓고 간사람은 누구 일까.
자장스님이 불사리를 봉안하고 수도하던 토굴
수많은 소원
소원을 위해 밝히는 초가 참 예쁘다
바람에 꺼지지 않게 프라스틱 보호막을 씌워 놓은 것이 기발하다.
저 아름다운 소원 모두 이루어지게 하소서!!
사찰의 풍경 끝에는 물고기 문양이 늘 매달려 있었는데
안내목판이 물고기 모양이다.
사찰의 풍경에 물고기를 달아두는 것은
1.풍경이 매달려 있는 푸른하늘을 올려다보면
마치 푸른 바다처럼 보인다
풍경이 바람에 흔들릴때마다 바다에 헤엄치는 물고기 같다.
사찰은 목조건물이 많아서 불이 나지 말라는 뜻이 담겨있다.
2.물고기는 자나깨나 죽어서도 눈을 감지않는 생명체이다
수행하는 사람은 자나깨나 부지런히 도를 닦으라는 의미가 담겨져있다고 한다.
제2보궁 약사전
징효대사 보인탑비
보물 612호
징효대사 부도옆에 보이는 비인데
멀리서 찍어서 자세히 보이지 않는다
비를 받치고 있는 거북이가 여의주를 물고 있다.
징효대사
징효대사 절중
징효대사의 법명은 절중(折中, 826-900)으로 황해도 봉산출신이다.
아버지는 선당(先幢, 光幢), 어머니는 박씨(朴氏)이며, 아버지 선당은 지방토호였던 것으로 보인다.
7세에 출가하여 오관산사(五冠山寺) 전진스님의 제자가 되었고,
15세 때 부석사(浮石寺)에서 화엄(華嚴)의 법계연기를 열 가지 차원에서
이론적으로 체계화한 십현연기설(十玄緣起設)의 깊은 뜻을 탐구하였으며,
19세 때 청양 장곡사에서 구족계를 받았다.
이때 중국에서 남종선 계통인 마조(馬祖)의 수재자 남전 선사에게서
법을 받고 돌아온 도윤(道允)스님이 금강산에 있다는 소식을 듣고 찾아가 수도하였고,
그 뒤 자인스님의 문하에서 16년 동안 신라를 탐구하였다.
징효대사 부도
강원도 유형문화재 72호
어느 사찰을 가나
사찰의 수호신 처럼 지키고 서있는 위풍당당한 나무를 만날 수 있다
미끈 한 소나사이로 저녘이 스며 들고 있다
늦은 시간에 찾아든 산골의 사찰
따듯한 날 누군가의 손을 잡고 다시 찬찬히 살펴보고 무심의 기도를 하리라.
삼월임에도
지붕에나 마당에 잔설이 남아있다
추운 바람이 윙윙대는 겨울을 난 법흥사에는
많은 사람들이 불당 마당을 밟고 있었다.
사자산 법흥사 일주문
일주문을 벗어나 어디를 가야하나...
무작정 가다가 눈에 띄는 이정표 하나 만나면 그곳이 나를 반겨주는 곳이 되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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