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슴 한쪽 비워둔다면

photostory-寺

파계사- 가슴에 복제된 길만으로도 어디든 갈 수 있으리라

kyeong~ 2012. 12. 28. 13:42

 

 

 

 

눈이 내리고 다음날

 

밤새 눈이 내렸다

절간으로 오르는 길과

돌무덤을 쌓으러 왔던 길이 지워지고

나뭇가지마다 눈이 한 줌이다

 

기도하는 일,

사랑하는 일,

지워지는 김에

지난 것들이 모두 지워졌으면 좋겠다

아무것도 빌지 않고 그냥 사는 것은

눈발처럼 가볍게 앉았다가 사라지는 일

 

바람의 혼을 빌어

공중 부양하는 눈

온몸에 성에가 돋는다

빈속에 마신 독주처럼 싸하다

그래도 지워진 길을 무심코 찾아내며 걷는다

사는 일이 아무것도 아니다

가슴에 복제된 길만으로도

어디든 갈 수 있으리라.

 

梁該憬

2012. 12. 23. 팔공산 파계사에서.

 

 

 

대구 팔공산 [八空山]

2012.12.23.일요일 맑음

파계사주차장(9시)-파계사-파계재-한티재

원점회귀산행.널널하게 4시간 소요

 

대구광역시 동구 용수동과 경상북도 영천시 신령면, 군위군 부계면의 경계에 있는 산.

높이 1,193m. 1980년 5월 도립공원으로 지정되었다.

산세가 웅장하고 하곡이 깊어 예로부터 동화사(桐華寺)·파계사(把溪寺)·은해사(銀海寺) 등 유서 깊은 사찰과

염불암(念佛庵)·부도암(浮屠庵)·비로암(毘盧庵) 등의 암자가 들어서 있다

 

 

 

 

 

 

 

 

 

 

 

 

 

 

 

 

 

 

 

 

파계사 [把溪寺]

파계사의 좌우로는 9개의 계곡이 있는데, 이것은 곧 구룡(九龍)을
상징한다고 한다. 파계사의 사찰명은 곧 이들 아홉 마리의 용이
한꺼번에 나와 사회를 혼란시키지 못하도록 잡아둔다는
(잡을 파, 把) 뜻에서 유래하였다고 한다.

 

대한불교조계종 제9교구 본사인 동화사의 말사이다. 804년(애장왕 5)에 신라 헌덕왕의

아들인 심지왕사(心地王師)가 창건한 절로 그 연혁은 자세히 알려져 있지 않다.

그뒤 1605년(선조 38)에 계관(戒寬)법사가 임진왜란 때 소실된 원통전(圓通殿)을 중건하고,

1695년(숙종 21)에 현응대사(玄應大師)가 중수하여 오늘에 이르고 있다.

1976년 6월 원통전의 목조관음보살좌상을 개금할 때 불상 안에서 영조의 어의(御衣)가 나와

영조대왕과 인연이 깊은 절이었음을 알 수 있다.

현재 경내에는 2층 누각인 진동루(鎭洞樓)에 들어서면 법당인 원통전(대구광역시 유형문화재 제7호)이 높은 기단 위에 서 있고

그 좌우에 적묵당(寂默堂)과 설선당(說禪堂)이 있다. 이 건물 뒤쪽으로 기영각·산령각·응향각(凝香閣)·미타전 등이 있는데

그중 기영각은 숙종·영조·정조의 어필(御筆)을 보관하고 있다고 해서 어필각(御筆閣)이라고 했으나

지금은 어필이 전해지지 않는다.

중요문화재로는 원통전에 봉안되어 있는 목조관음보살좌상(보물 제992호)을 비롯해 삼장보살도(1707)·팔각석 등이 있다.

또한 절의 서쪽으로 200m 떨어진 곳에는 원의대사의 부도와 비(1648), 전명대사의 부도와 비(1658), 현응대사의 부도와 비(1701)가 있다.

 원통전

관세음보살을 모시는 법당으로 관음전이라고도 한다.

 

 

 진동루

대법회가 있을때 불전의 행사가 이루어 지던곳

대구 광역시 문화재자료 10호

건물양식은 기둥 위에 짠 공포부재를 소의 혓바닥처럼 조각하여

두 개 겹쳐 놓은 모양으로 장식한 조선후기  이익공二翼工 양식이다.

*이익공二翼工 : 기둥머리에 두공과 창방에 교차되는 상하 두 개의 쇠서로 짜여진 공포

 

 

 

 파계사 일주문

이문을 지나 쉬엄쉬엄 올라가면

그리크지 않은 사찰 파계사가 나오고

뒷판 가파르지 않은 산길을 따라 팔공산 산행을 할 수가 있다.

 

보호수

느티나무 250년

높이 15m

둘레 4.1m

오래된 사찰 입구에는

오래된 나무가 점잖게 서서

방문객을 맞이하고 있기마련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