눈이 내리고 다음날
밤새 눈이 내렸다
절간으로 오르는 길과
돌무덤을 쌓으러 왔던 길이 지워지고
나뭇가지마다 눈이 한 줌이다
기도하는 일,
사랑하는 일,
지워지는 김에
지난 것들이 모두 지워졌으면 좋겠다
아무것도 빌지 않고 그냥 사는 것은
눈발처럼 가볍게 앉았다가 사라지는 일
바람의 혼을 빌어
공중 부양하는 눈
온몸에 성에가 돋는다
빈속에 마신 독주처럼 싸하다
그래도 지워진 길을 무심코 찾아내며 걷는다
사는 일이 아무것도 아니다
가슴에 복제된 길만으로도
어디든 갈 수 있으리라.
梁該憬
2012. 12. 23. 팔공산 파계사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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