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슴 한쪽 비워둔다면

poem-아직도 모르지만

눈이 내리고 다음날(팔공산)

kyeong~ 2013. 4. 29. 20:23

 

 

 

 

 

 

눈이 내리고 다음날

 

밤새 눈이 내렸다

절간으로 오르는 길과

돌무덤을 쌓으러 왔던 길이 지워지고

나뭇가지마다 눈이 한 줌이다

 

기도하는 일,

사랑하는 일,

지워지는 김에

지난 것들이 모두 지워졌으면 좋겠다

아무것도 빌지 않고 그냥 사는 것은

눈발처럼 가볍게 앉았다가 사라지는 일

 

바람의 혼을 빌어

공중 부양하는 눈

온몸에 성에가 돋는다

빈속에 마신 독주처럼 싸하다

그래도 지워진 길을 무심코 찾아내며 걷는다

사는 일이 아무것도 아니다

가슴에 복제된 길만으로도

어디든 갈 수 있으리라.

 

梁該憬

2012. 12. 23. 팔공산 파계사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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