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슴 한쪽 비워둔다면

photostory-寺

2013.8.1. 고려산 적석사와 고인돌

kyeong~ 2013. 8. 15. 18:05

 

 

 

2013.8.1.목요일

 

 

적석사

 

  • 분야

  • 유형
  • 시대
  • 성격
  • 건립시기/연도
  • 소재지
  •  

     

     적석사 범종각

     

     

     

     

     

     

     

     

     

     

     적석사

    2층은 대웅전

    1층은 관음굴

     

     

     대웅전 내부

     

     관음전 내부

     

     

     

     관음전 내부

     

     

     관음전 문살

     

     

     적석사 불유각(佛乳閣)

    불유각 현판에는 "불유의 맑은 샘 마음을 적시고 유미의 단맛은 갈증을 풀어주네" 라는 글이 쓰여 있다.

     

     

    적석사 마당의  부부나무

     

    夫婦木

    그들은 함께 서서 다른 곳을 바라보는 자가 아니라

    각각의 자리에서 한 곳을 바라보는 자다

     

    처녀는 아내로되 어머니가 되고

    총각은 남편이로되 아버지가 되었다

     

    인연 따라 돋은 새 살들이

    어머니의 모습이며 아버지의 모습이며

    그 틈새 태중의 아이의 모습이다.

     

    이를 일러 부부목이라 이름하니

    이곳 스치는 인연이여

     

    그대 곁 나여서 한없이 미안하고

    내 곁 그대여서 한없이 고마워하며

     

    적석사 법당앞 수수백년 지켜온 부부목을 닮아

    부디부디 행보가게 해로 하시라.

     

     

    이나무가 아내 나무인듯

    가슴이 봉긋한걸로 봐서....

     

    가운데 얼굴 형상은 부부사이의 아이를 의미하는 듯 하다.

     

     

     

    요사채

     

     

     

     적석사 삼성각

     

       

     

     

     낙조대 해수관음 보살상

     

     

     

    적석사사적비각(積石寺事蹟碑閣), 시도유형문화재 38

    인천 강화군 내가면 고천리 산74

    적석사는 ¨전등사본말사지¨등의 기록에 의하면 백련사 및 청련사와 함께 고구려 장수왕 4년(416)에 창건되었고,

     처음에는 적련사(赤蓮寺)였다는 전설이 전하고 있다.

    적석사를 오르는 길목 오른쪽에 자리한 적석사 사적비는 숙종 40년(1714)에 세워진 것으로

    전체 높이가 3m94cm이고 비신의 높이 3m4cm, 너비 69cm이다.

    사적비의 재질은 화강암이고, 지붕모양의 뚜껑돌이 얹혀 있으며 비신의 상부에

    ¨고려산적석사지비(高麗山積石寺之碑)¨라는 비의 제목이 있다.

     비문에는 불교의 전래 및 사찰의 증건 ·중수상황과 고려시대 몽고 침입에 대항하여

    강화에 도읍을 옮겨 올 때 임금의 거처로 사용했다는 기록 등이 있다.

     

     

     拈花微笑 염화미소
    석가가 연꽃을 따서 제자들에게 보였을 때 그 뜻을 오직 마하가섭(摩訶迦葉)만이 알고 미소하였으므로

    불교의 진리를 가섭에게 전하였다는 故事에서

    문자나 말에 의하지 않고 마음에서 마음으로 전하는 일을 이르는 말.

     

    적석사에 바라본 마을 풍경

     

     

    적석사로 가는 길

    승용차가 다닐수 이도록 포장은 되어 있지만

    경사도가 급하며 만약 마주오는 차라도 있다면 ::::

     

    낙조대에서 바라본  내가 저수지

     

     

     

     혈구산이 보입니다.

     

      

     

     

     

     

     

     

     

     

     

                강화읍에서 7번 도로를 이용해 내가면 외포리 방향으로 달리다 나래현고개를 넘는다.

    이 고개 우측에서 보면 미군의 레이다 기지가 보이는 산이 고려산이고

    그 능선 자락 하나가 길게 뻗어 바다 방향으로 향하는데 이 산이 낙조봉이다. 이 낙조봉이 있는 마을이 고천리다.

    고천리 길 우측으로 적석사를 알리는 간판이 나타난다.

    이 길을 따라 대략 200여미터를 들어가면 삼거리가 나오고 좌측은 마을과 적석사 가는 길이고

    우측으로는 대략 2킬로미터 지점에 고천리 고인돌이 있음을 알리는 간판이 나타난다.


    고천리 고인돌은 고려산 정상에서 서쪽 능선을 따라 350미터 지점 내려가면 고천리 일원 3개군 18기의 고인돌이 나뉘어 군집해있다.

    우리나라 고인돌 분포 평균 고도보다 훨씬 높은 곳에 위치한 이 곳의 탁자식 고인돌 무덤 1기 외의 고인돌 무덤은

    대체로 인위적인 훼손보다는 자연적인 붕괴가 이루어져 원형이 많이 훼손된 상태이다.

    인근 능선상에 고인돌 석재를 채석한 흔적이 있어 고인돌 축조과정을 밝히는데 매우 중요한 단서로 학술적인 가치가 매우 크다.

    고인돌은 대부분 평지에 자리하고 있다.

    그런데 이곳 고천리의 고인돌은 정확하게 8부에 해당하는 능선을 타고 있다.

     

     

     

     

     

     

     

    강화 고천리 고인돌군

    북방식 고인돌로 원형 보존이 된 것이 1기뿐이다.

    유네스코 등재번호 69

     

     

    고려산 8부 능선쯤에 원형 보존 된 이 고인돌을 찾기위해

    찌는 듯한 더위때문에 고생을 좀 했다

    표지판을 따라 가긴 했지만 생각보다 쉽지는 않았다.

    1기만이 원형보존 되어 있다고 해서

    이 고인돌을 찾아 낸 순간...더위는 어디로 갔는지

    기도하듯...한참이나 바라보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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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고려산의 아름다운 여름 꽃