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슴 한쪽 비워둔다면

poem-아직도 모르지만

그렇게 말하고도(2014.8.30.지리산 촛대봉)

kyeong~ 2014. 9. 4. 21:32

 

 

 

 

 

그렇게 말하고도

 

 

지리산 저 끝 천왕봉에는

안개 때문에 길이 가물가물하다

이 끝, 촛대봉에 서 있는 나는

발뒤꿈치를 바위에 붙이고 머뭇머뭇

길이 아니라 더는 갈 수가 없네

 

온천지에 구절초가 저리 웃고 있는데

뉘라서 저 꽃을 밟으며 천왕봉으로 향할거나

지리산의 등에 오른 구절초

구름처럼 흘러서 천왕봉으로 가네

가을에는 이렇게 서 있어야지

구절초가 지나가는 길목마다

아찔한 향기에 취해서

바람도 몽롱해지는 그 날

어서 빨리 잎이 내려 길을 묻었으면 좋겠다

모든 이들이 발길을 멈추고

천왕봉으로 가는 구절초만 원 없이 놀다 가게

 

가을에는 지리산에 오지 말아야지

작년에 그렇게 말하고도

지금 구절초가 지나는 길의 풍경이 되어.

 

梁該憬

2014.8.30. 지리산 촛대봉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