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렇게 말하고도
지리산 저 끝 천왕봉에는
안개 때문에 길이 가물가물하다
이 끝, 촛대봉에 서 있는 나는
발뒤꿈치를 바위에 붙이고 머뭇머뭇
길이 아니라 더는 갈 수가 없네
온천지에 구절초가 저리 웃고 있는데
뉘라서 저 꽃을 밟으며 천왕봉으로 향할거나
지리산의 등에 오른 구절초
구름처럼 흘러서 천왕봉으로 가네
가을에는 이렇게 서 있어야지
구절초가 지나가는 길목마다
아찔한 향기에 취해서
바람도 몽롱해지는 그 날
어서 빨리 잎이 내려 길을 묻었으면 좋겠다
모든 이들이 발길을 멈추고
천왕봉으로 가는 구절초만 원 없이 놀다 가게
가을에는 지리산에 오지 말아야지
작년에 그렇게 말하고도
지금 구절초가 지나는 길의 풍경이 되어.
梁該憬
2014.8.30. 지리산 촛대봉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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