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리암菩提庵
남해군 상주면 보리암로 665 (상주리 2065)에 위치한 절
보리암은 신라 신문왕 3년(683년) 원효대사가 세웠다는 사찰이다. 관음도량 기도처로 금산에 위치 하고 있다. 처음 세울 때는 보광사로 하였다가 조선 현종 때 보리암으로 변경하였다. 옛날 인도 월지국에서 김수로왕의 왕비 허태후(허황옥)가 가졌왔다는 관세음보살상이 있다. 조선 태조 이성계가 이 사찰에서 기도를 하고 건국을 하였다고 한다 한려해상국립공원 내 금산에 위치한 보리암은 해수관음상, 범종각, 보광전, 만불전, 3층 석탑, 간성각 등이 있다. 기암절벽과 바다가 보이는 절경도 유명하여 관광객이 찾아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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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리암의 유래
신라시대 원효대사가 이곳에 초당을 짓고 수도하였고
후에 이성계가 이곳에서 백일기도를 한후 조선왕조를 열게 됩니다.
이에대한 감사와 보은의 뜻으로 현종때부터 이곳을 왕실의 초상으로 삼고
산을 錦山, 사찰을 菩提庵으로 바꿔 부르기로 했다고 합니다.
금산 보리암은 강화 보문사, 양양 낙산사 홍련암과 더불어
우리나라 3대 기도처중 한곳이자 해수관음성지 입니다.
보리암의 관음상이 이성계에게 어떤을 전달하고 또한 이씨조선 건국에 얼마만큼의 작용을 했을지 짐작이 갑니다.
해수관음성지:관세음보살이 상주하여 기도와 소원이 잘 이루어지는 곳을 의미함
금산의 전설 -
본래 보광산이었던 이곳이 금산으로 부르게 된 전설은 이러하다.
『태조 이성계가 왕이 되려고 백두산과 지리산에서 기도를 하였으나 효험을 얻지 못하고,
다시 금산에서 백일기도를 하였는데,
어느 날 꿈에 금산의 산신령이 나타나 이성계를 왕으로 만들어주는 대신에 보광산 전체를 비단으로 싸 달라는 요구를 하였다.
이성계는 이를 수락하였고 이내 왕이 된 이성계는 산신령과의 약속을 지키기 위해 보광산 전체를 비단으로 감싸고자 하였다.
그러나 산 전체를 비단으로 둘러싼다는 것이 불가능하다는 것을 깨달은 이성계는
기지를 발휘하여 비단 금(錦) 자를 써서 금산(錦山)으로 이름을 바꾸었다고 한다.』
여기서 이성계의 꿈 이야기를 빼 놓을 수 없다.
어느 날 이성계는 기이한 꿈을 꾸게 된다.
꿈속에서 이성계는 쓰러져 가는 큰 기와집에 들어갔는데 그 집이 너무 낡아 곧 붕괴될 것만 같았다.
불안한 마음에 그 집에서 나왔는데, 나오면서 보니 이상하게도 자신의 등에 서까래 3개를 지고 나오는 것이었다.
그 꿈이 하도 이상하여 무학대사에게 해몽을 부탁하게 된다.
꿈 이야기를 들은 무학대사는 그 꿈은 장군이 왕이 될 꿈이니 절대 남에게 발성하지 말라고 당부한다.
낡은 큰 기와집은 썩을 대로 썩어있는 고려를 뜻하고
서까래 3은 한문 석 삼자(三字)이며 三자 중간에 이성계가 서게 되면 그것이 바로 임금왕자(王字)가 된다는 설명이었다.
서울에서 밤 11시 30분에 출발하여 4시30분경 보리암 주차장에 도착했다
일출시간까지는 대략 2시간여 있어야 하므로
차에서 잠시 눈을 감고 일출의 시간을 기다렸다.
보리암(菩提菴)
보리암은 ‘깨달음을 얻어 도에 이르는 곳’이란 뜻이다.
쌍계사의 말사(末寺)로, 강원도 낙산사 홍련암, 강화도 보문사와 함께 우리나라 관음신앙의 3대 성지(기도도량)로 이름 높다.
희미하게 길이 보이고
15년전 왔던 그 길을 따라 조심조심 보리암에서 맞이하는 일출을 기대하며 올라갔다.
보리암으로 가는 길목
탁트인 곳, 전망 좋은 곳에서
해뜨기전 너무나 조용한 상주해변을 바라다 보았다.
구름이 내려앉은듯한 섬, 섬, 섬..
보리암 금산각(錦山閣)
불교용품 파는 곳이 보입니다.
일출명소로 알려진 곳이라
사람들이 아침일찍부터 찾아드는 곳이다.
제2주차장에서 900미터 대략15분 걸어가면 "해수관음성지 보리암"이 있다.
10여분 산위로 올라가면 금산의 정상에서 맞이하는 일출이 더욱 시원하게 보이겠지만
발목을 삔것이 조심스러워 욕심을 버리고 보리암에서 일출을 맞이하기고 한다.
오랫만에 찾아온 보리암
15년전보다 사찰의 규모가 커진 것을 알 수있습니다.
조용한 절집 마당을 예고도 없이 찾아들었다.
절집이 좋은 이유는 연락없이 찾아 들어도 좋고
빗장이 없어서 좋다
누구라도 찾아들어 바라보고 싶은 것
원하는 것을 간직하고 돌아갈 수 있다는 것이다.
이른 새벽 고요한 마음으로 남해바다위로 솟아오르는 해를 기다렸다.
보리암 간성각(看星閣) - 뜻을 그대로 풀이하면 별을 보는 전각이라는 의미인데, 현재는 종무소로 이용하고 있다.
보광전(普光殿)
보광전(普光殿) - 예성당과 마주하고 있는 보광전은 보리암의 중심법당이다.
안에는 관세음보살을 모셔 놓았다. 좌우에는 남순동자 해상용왕이 있다.
편액은 보광전이지만 실지는 관음전 혹은 원통전인 셈이다.
참고로 보광전에는 법신불인 비로자나불을 모시나
화신이나 보신이 깨달음을 얻어서 ‘법신’으로 광명설법을 할 수 있기에 어떤 부처님을 모셔도 된다고 한다.
즉 보광전에는 어떤 부처님이 모셨는가는 안에 모신 부처님을 참배해야 알 수 있는 것이다.
예를 들면 상주 남장사 보광전에는 비로자나불,
남해 보리암 보광전에는 관세음보살,
경주 분황사 보광전에는 약사여래불,
해인사 원당암과 지리산 실상사 보광전에는 아미타불을 모시고 있다.
보광전에 모신 관세음보살과 좌우에 남순동자 해상용왕
나무상주 시방불
나무상주 시방법
나무상주 시방승....
예성당(禮聖堂) -
예성당은 정면에서 보면 단층이지만 실지는 2층 구조이다.
예성당은 보광전에서 참배하지 못하는 분들이 이 곳에서 참배할 수 있도록 조성된 공간이며 강당으로도 사용되고 있다.
예성당은 설법전이라고도 한다.
반대편에서 보면 예성당은 '보리암' 편액도 걸려 있다.
그것은 현재의 건물을 짓기 전에 있던 편액을 그대로 그곳에 걸어 두었다고 한다.
또 보리암 편액 옆에는 '영성당(迎聖堂, 성인을 맞이하는 집)'이라는 편액이 걸려 있다.
예성당(禮聖堂)편액
예성당에는 부처님을 모시지 않았다.
대신에 이렇게 창을 내어 보광전이 바로 보일 수 있도록 하여 이 곳에서 보광전을 바라보며 기도할 수 있도록 하여 놓았다.
예성당 측면모습
일출의 시간....
해수관음상에서 바라본 예성당
반대편에서 보면 예성당은 '보리암' 편액도 걸려 있다.
그것은 현재의 건물을 짓기 전에 있던 편액을 그대로 그곳에 걸어 두었다고 한다.
또 보리암 편액 옆에는 '영성당(迎聖堂, 성인을 맞이하는 집)'이라는 편액이 걸려 있다.
선은전쪽에서 바라본 예성당
만불전(萬佛殿),극락전(極樂殿) -
만불전으로 내려가는 계단 입구에는 원래 있던 바위와 계단이 함께 어우러져 있는 것을 볼 수 있다.
극락전 입구 돌기둥은 승천하는 용의 모습을 조각해 놓았다.
안에는 아미타불을 중심으로 관세음보살 대세지보살이 협시하는 형태이며,
그 주위에 만분의 부처님을 모셔 놓아 극락전을 만불전이라고도 부른다.
(좌)대세지보살 (中)아미타불 (右)관세음보살
해수관음상에서 바라본 만불전
극락전은 깎아지른 듯한 절벽에 층층이 쌓아올렸고,
안에는 작은 불상 만 개가 모셔져 있어 만불전(萬佛殿)이라고도 한다.
범종각(梵鐘閣) -
보리암 범종각은 보광전 옆에 나란히 위치하고 있다.
범종각 뒤편에 있는 바위가 화엄봉이다.
범종각 옆으로 난 길과 보리암 요사채 옆으로 난 길을 이용해 제석봉, 단군성전, 쌍홍문 등으로 연결될 수 있지만
지난 12호 태풍 나크리로 인해 석축이 윳실되는 바람에 지금은 출입을 통제하고 있었다.
보리암 범종에는 경봉 스님의 ‘원음종(圓音鐘)’이란 제목의 시가 새겨져 있다.
원음종(圓音鐘)
南海錦山無限景(남해금산무한경) 남해 금산의 끝 간 데 없는 경치에 天邊雲外此鐘聲(천변운외차종성) 하늘가 구름 밖 이 소리 퍼져 가네 森羅萬象非他物(삼라만상비타물) 삼라만상이 모두 다른 것 아닐진대 一念不生猶未明(일념불생유미명) 한마음 나지 않아 여전히 미명일세 |
경봉스님 말씀중에서...
마음에 와 닿는 글이 있어서 옮겨보았다.
물처럼 살거래이
만물을 살리는 게 물인기라
제 갈길을 찾아 쉬지 않고 나가는게 물인기라
어려운 고비를 만날수록 더욱 힘을 내는게 물인기라
맑고 깨끗하여 모든 더러움을 씻어주는게 물인기라
넓고 깊은 바다를 이루고 고기를 키우고
되돌아 이슬비가 되는게 바로 물인기라
사람도 이 물과 같이 우주만물에 이익을 주어야 하는기라
물처럼 살거래이
바보가 되거라
"바보가 되거라
사람 노릇하자면 일이 많다.
바보가 되는데서 참 사람이 나온다."
"업장을 녹이는 방법이 한 가지 있다.
누가 자기를 보고 잘못한다고 나무라면
설혹 자기가 잘 했다고 하더라도,
"예, 제가 잘못했습니다"
하고 절을 한 번 하면 그때가 바로 업장이 녹아질 때다.
잘못했다고 나무라는데
'나'라고 하는 것이 가슴에 꽉 차 있으면
업장이 녹아질 수가 없다.
그만 다 비우고
'내가 잘못했습니다'라는 한 마디와 함께
아무생각없이 절을 하는 그때가
다겁다생에 지은 죄악이 막 녹아질 때다."
이유없는 참회는 바보의 행위일지 모르지만 ,
바보가 될 때 모든 업장은 해탈과 자유의 문이 열리는 것이다.
해수관세음보살상
연화좌 위의 해수관세음보살은 보관에 아미타불을 모시고 서 있으며
왼손에는 정병을 들고 신비스런 미소를 지으며 서 계신다.
뒤에 보이는 바위가 화엄봉이다.
해수관음성지 보리암 -
한국의 해수관음 성지는 예로부터 남해 보리암, 양양 낙산사, 강화군 석모도 보문사, 여수 향일암 등을 꼽아왔다.
관음성지는 <관세음보살님이 상주하는 성스러운 곳>이란 뜻으로
이곳에서 기도발원을 하게 되면 그 어느 곳 보다 관세음보살님의 가피를 잘 받은 것으로 널리 알려져 있다.
이곳에서 기도를 하면 한가지 소원을 이룬다고 하는데
자신을 위한 기도보다 타인을 위한 기도를 해야한다고 한다.
삼층석탑(三層石塔, 경남 유형문화재 제 74호)-
이 탑은 금산(錦山) 정상의 절벽에 위치하고 있으며 비보(裨補, 도와서 모자라는 것을 채움)의 성격을 지니고 있다.
보리암과 인접해 있기 때문에 보리암 전 삼층석탑으로 불리고 있다.
전설에 따르면, 683년(신문왕 3)에 원효대사가 금산에 처음으로 절을 세운 것을 기념하기 위해
가락국의 수로왕비인 허태후(許太后)가 인도에서 가져온 파사석(婆娑石)으로 탑을 만들었다고 한다.
또 다른 이야기에 의하면 허태후가 가져온 부처의 사리를 이곳에 안치하기 위해 탑을 세웠다고도 한다.
그러나 이 탑은 화강암으로 만들어졌고, 양식 또한 고려 초기의 것이기 때문에 전하는 이야기와는 사실상 거리가 멀다.
이 탑의 형식은 커다란 돌 하나로 된 단층 받침(基壇)을 세우고 면석(面石)에는 모서리기둥을 새겼으며,
그 위에 3층의 탑신을 올린 모습이다. 각 층 몸체의 사면에는 모서리기둥(우주,隅柱)을 새겼다.
지붕돌의 처마에는 4단의 받침이 있으며, 약간의 경사를 두면서 자연스럽게 처리하였다. 꼭대기 부분에는 구슬 모양의 보주가 남아 있다.
삼층석탑은 나침반의 작동이 잘 되지 않은 곳으로도 유명하다.
즉 석탑위에 나침반을 올려놓으면 북쪽을 가리켜야 할 바늘이 남쪽으로 향한다고 한다.
그러다가 석탑 주위를 벗어나면 나침반은 제 기능을 되찾는다고 한다.
탑 안에 부처님 진신사리가 있어서 그렇다고도 하고 추측해 보자면 자성체를 함유한 바위로 탑을 조성하여서 그런 것으로 보인다.
* 비보(裨補) : 풍수지리상 나쁜 기운의 지역에 탑, 장승 등을 세워 나쁜 기운을 억누르고 약한 기운을 보충하는 일.
해수관음상 주변에는 큰 바위가 많이 있고
문인들이 많이 찾아들었던듯 글씨가 많이 새겨져 있다
자성체를 띤 바위인듯 동전이 붙어 있다
문득 이런 생각이 들었다
우리 민족은 자신의 흔적을 남기를 좋아하나보다...
글씨를 새기고
돌탑을 쌓고
동전을 붙이고....
무얼 그리도 얻고자 함이 많아 구석구석 남기는 것일까
바람처럼 왔다가
아니온듯 돌아서면 안될까
예성당 옆 계단으로 10여분 좁고 가파른 길을 따라 내려가면 선은전을 만날 수 있다.
전에 왔을때에는 일행과 멀어지는 것 때문에 10여분 거리에 있는 시성계 기도터 "선은전"을 지나쳤다
하지만 이번에는 꼭 가보리라 마음먹고 가파른 계단을 내려가는데
두번이나 연이어 삔 발목이 걱정이 된다
그래도 마음먹은 것은 꼭 이루고 싶은 마음...
이것이 바로 욕심임을 알지만 그래도 조심조심 계단을 내려갔다.
선은전 가는 길
양옆으로 조릿대 사이로
가파른 길이 나있다.
선은전 가는 길
단풍이 곱다
선은전(璿恩殿)
태조 이성계가 선유제(임금이 되기를 비는 제사)를 지내던 곳이다.
선은전(璿恩殿) -
구슬선(조선시대 이씨의 한 계파인 선파, 즉 이성계)
은혜은
이성계가 은혜를 잊지 않고 갚았다는 의미의 선은전은 이성계가 기도하던 기도처라고 한다.
이성계가 수행하던 자리인듯...
남해 금산 영웅기적비(南海 錦山 英雄紀蹟碑, 경남 문화재자료 제 277호) -
조선 태조가 이곳에서 기도를 하던 중 산신의 영험에 의해 보위에 오를 수 있었다는 전설이 깃든 유적지임을 기념하여 세운 비석이며,
지역민의 상소에 따라 1903년(광무 7년) 5월 고종황제의 명을 받은 의정부 찬정 윤정구가 비문을 짓고 세웠다.
태조가 이곳에서 산신의 호응을 받아 조선을 개국할 수 있었던 데 대한 보은으로 보광산을 금산으로 바꾸어 부르도록 하였으며
1859년9철종 10)에 내려진 태조의 전패(殿牌)를 사찰에 모셨다는 내용이 기록되어 있다. 높이 1m, 폭 60Cm이다.
이씨기단(李氏祈壇)
종무소 앞에서 아래쪽으로 나 있는 대나무 사이의 길을 따라 내려가싸다 다시 허리를 조금 올라가면 선은전과 이씨기단이 나온다.
선은전은 건물이고, 그 뒤에 암벽에 붉은 글씨로 ‘이씨기단’이라고 써놓았다.
바래길5코스 "화전별곡길"에서 바라본 보리암
보리암에 가게되면 꼭 일출을 보라!!
바람도 멈추고
파도도 멈추고
나그네 여기서 발을 멈추고....
모두 숨을 죽이고 바라보는 일출
바다가 해을 낳는 산고를 잊었는가
출렁임이라고는 없는 바다
숨소리조차 멎은 이시간....
마음에서 탄식의 숨소리가 절제를 하고 있다.
상주해변...남해 다도해상에서 일출을 본다
해수관세음 보살이 손을 뻗어
바다에 손을 담그듯이
내마음이 바다에 와 닿는다
마음이 닿아있는 바다에서 해를 건지니
올해는 가는 곳마다
기쁨이요 행복이다
우연히 만난 해....
우연히 기쁨을 얻은셈이다
보리암 제1주차장옆 호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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친구7명과 남해여행을 가자고 1달전부터 계획을 세웠다
그날까지 1명도 빠지는 사람없이 금요일 밤11시 금정역을 출발하였다
다행히 운전을 하겠다고 하는 친절한 남자친구들 덕에 여자친구들은 금정역에서 남해까지
밤새도록 수다를 늘어놓으며 5시간을 달렸다.
참 좋은 친구들....올해에 가장 기억에 남을 남해행 여행이 되겠다.
남해의 가장 유명한 여행일번지 보리암에 가장먼저 도착했다
아직도 세상만물이 잠에 든 시각....조용히 해가 뜨기를 기다렸다.
가장 먼저 만난 보리암의 일출을 비롯해...
2014.10.24.금-금정역 밤 11:30분 출발
2014.10.25.토-보리암-몽돌해변에서 시작한 바래길 트랙킹-해오름 예술촌-독일마을-팬션1박-
2014.10.26.일-다랭이지켓길-삼천포-금정역--
남해의 아름다운 여행보따리를 풀어 놓을까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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