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슴 한쪽 비워둔다면

photostory-寺

2014.11.9. 부안 내변산 월명암

kyeong~ 2014. 11. 14. 00:30

 

 

 

내변산 산행중

바람처럼 스친 월명암

스친 바람이 무색투명하여 기억하는 것이 있을까만

그래도 눈을 감으면 그 아늑한 느낌은 아직 남아 있으니

기억을 더듬어 몇자 적어본다.

  

 

 

 

 

 

대한불교조계종 제24교구 본사인 선운사(禪雲寺)의 말사이다. 691년(신문왕 11) 고승 부설(浮雪)이 창건하였다.

조선 선조 때의 고승 진묵(震默)이 중창하여 17년 동안 머물면서 많은 제자들을 양성하였고,   

1863년(철종 14)성암(性庵)이 중건하였다. 1908년에 불탄 것을 1915년에 학명(鶴鳴)이 중건하였고,

1956년에는 원경(圓鏡)이 중건하여 오늘에 이르고 있다.

전국에서 몇 안 되는 산상무쟁처(山上無諍處)의 한 곳으로 대둔산 태고사(太古寺), 백암산 운문암(雲門庵)과 함께

호남지방의 3대 영지(靈地)로 손꼽히는 곳이며,

봉래선원(鳳萊禪院)이 있어서 근대의 고승인 행암(行庵)·용성(龍城)·고암(古庵)·해안(海眼)·소공(簫空) 등이 수도한 참선도량으로 유명하다.

현존하는 당우로는 정면 5칸, 측면 3칸의 인법당(因法堂)을 비롯하여 산신각(山神閣)·운해당(雲海堂)·수각(水閣)·요사채 등이 있다.

 

부속 암자로는 쌍선봉 쪽으로 약 100m 거리에 있는 묘적암(妙寂庵)이 있다.

이 중 운해당과 묘적암, 요사채는 최근에 주지 종흥(宗興)이 신축 또는 중수한 것이다.

특기할 만한 문화재는 없으나 묘적암 위쪽에 있는 2기의 부도(浮屠)가 주목된다.

사찰측에서는 이부도 중 왼쪽에 있는 석종형 부도가 부설의 사리탑이라고 주장하고 있다.

그 사실 여부는 알 수 없지만, 「부설전(浮雪傳)」에는 그가 죽은 뒤에 다비하여 사리를 묘적봉 남쪽 기슭에 묻었다는 기록이 있다.

절의 앞쪽으로는 의상봉(義湘峰)가인관음봉(佳人觀音峰) 등의 암봉들이 아름다움을 다투고 있고,

법왕봉(法王峰)에 올라 바라보는 일몰 광경이 빼어나다.

 

 

 

 

 

남여치에서 급한 경사를 따라 1시간 가량

숨이 가쁘도록 올라오면 월명암을 만난다

 

깊어 가는 가을 만큼이나

뿌리를 깊게 내린 무우밭이 싱그럽게 나그네를 맞이 한다

무우 하나 쑤욱 뽑아서 흙 툭툭 털고 우적우적 먹어 보고 싶은 충동이 이나

절마당가에 심은 것이라

부처님의 눈빛이 두려워 감히 손을 대지 못했다.

감나무에는 감이 없는 것을 보니

이 깊은 산중에도 계절은 오고 가는가보다.

 

산길은 있어도 찻길은 없는 월명암.

약 2Km의 산행을 해야만 다다를 수 있는 월명암을 일러 산상무쟁처(山上無諍處)라 한다.

‘ 다툼이 없는 곳’이니 적정처(寂靜處)다.

 

높지 않은 석축 위로 단풍나무와 어우러진 절집이 아담하게 앉아 있다.

 

 

 

 

 

 

 대웅전

 

“절간은 부처 잡아먹는 곳이다.”
1천3백여 년 전 부설浮雪 거사는 사람 사는 게 별거 아니라면서 이렇게 읊었다.

이런 대로 저런 대로 되어가는 대로此竹彼竹化去竹
바람 부는 대로 물결치는 대로風打之竹浪打竹
죽이면 죽 밥이면 밥 이런 대로 살고粥粥飯飯生此竹
옳으면 옳고 그르면 그르고 저런 대로 보고是是非非看彼竹
손님 접대는 집안 형편대로賓客接待家勢竹
시정 물건 사고파는 것은 시세대로市井賣買歲月竹
세상만사 내 맘대로 되지 않아도萬事不如吾心竹
그렇고 그런 세상 그런 대로 보내세然然然世過然竹
 
가녀린 미풍에도 사각거리는 대나무에 인생을 견준 유명한 팔죽시八竹詩다.

대나무 소리 음운을 따라 ‘대로’ 읽은 재치와 일상적 삶을 초탈한 도통경지가 엿보이는 선시禪詩다.

국문학계에서는 통일신라시대의 생활상과 시장 모습까지 살필 수 있는 의미 있는 시작으로 평가하고 있다.

고대 우리말 형태를 가늠해 볼 수 있게도 한다.


 

눈에 보이는 바가 없으니 분별할 것이 없고
귀에 소리 없는 참소식을 들으니 시비가 끊이는구나
분별과 시비를 모두 놓아버리고
다만 마음의 부처를 보며 스스로 귀의를 하소 

(부설거사의 열반송)

 

대웅전 내부

 

 

열정각과 월명암 요사채

 

저기 좁은 건물안에는 뜨거운 우물이 있다는걸까..

문은 잠궈두지 않았는데

열어보지 못하겠다

내 것이 아니라기 보다....

그냥 절간에 오면 무엇이든 조심스럽고 어렵다는 생각이 들어서 그냥 지나쳤다.

 

지나가는 산객들을 위해

요사채 마루에 따듯한 차가 준비되어 있다

일행을 따라가야가 하기때문에

여유로이 앉아서 차한잔 할 수 없었음이...조금은 아쉽다.

 

요사채 뒷면에

굽이 굽이 내변산 산마루를 그려 두었다.

 

 

범종각

범종각 옆의 전나무...

일주문이 없는 이곳

일주문처럼 버티고 서있다.

 

그냥 사시사철 풀이 나고 자라는 것 같은데...

꽃밭이라.....

그래 꽃이 피면 꽃밭인것이지

봄이면 어떤 꽃이 피길래

여름이면 또 어떤 꽃이 피길래...

 

 

깊은 산중

절간 마당에 국화가 피어있다

 

 

관음전

 

관음전 측면

 

관음전 내부

 

관음전 뒤..사성선원(四聖禪院)

수행공간이라 일반인의 출입을 금하는 곳

사성은

부설거사, 그부인 묘화, 아들 등운, 딸 월명

 

 

사성선원 편액

 

 

주지스님의 거처

 

 

 

하늘에 기대어 절간을 지었기에
풍경소리 맑게 울려 하늘 멀리 퍼지네
나그네 마음도 도솔천에나 올라온 듯
「황정경」을 읽고 나서 적송자를 뵈오리다.

 

이매창(李梅窓, 1573~1610)이 지은 ‘월명암에 올라서’(登月明庵)라는 시다.

 

물을 아껴쓰라 하면서도

지나는 나그네에게 목축여 가라고 바가지를 걸어두었다

 

 

 

부설전浮雪傳

시도유형문화재 140

부설전 문화재 사진

전북 부안군에 있는 월명암을 창건하였다는 부설거사에 관한 이야기를 한문으로 기록한 것이나,

누구에 의해서 기록된 것인지 알 수 없다.

 내용을 보면 부설거사가 태어나서 죽을때까지의 행정과 그가 쓴 4부시(賦詩),

그리고 8죽송(竹頌)으로 되어 있는데 4부시와 8죽송의 글씨체가 서로 다르다.

한지 7장을 1면으로하여 총 15면으로 되어 있으며,

1면은 10행이고 매행은 14자이다. 총 2,616자이다.

 

 

         

 

 

 

 

부설거사 팔죽시八竹詩

 

此竹彼竹 化去竹 이런대로 저런대로 되어가는대로

風打之竹 浪打竹 바람 부는대로 물결 치는대로

粥粥飯飯 生此竹 죽이면 죽 밥이면 밥 이런대로 살고

是是非非 看彼竹 옳으면 옳고 그르면 그런대로 보고

賓客接待 家勢竹 손님 접대는 집안 형편대로

市井賣買 歲月竹 시장 물건 사고파는 것은 세월대로

萬事不如 吾心竹 세상만사 내 마음대로 되지 않아도

然然然世 過然竹 그렇고 그런 세상 그런대로 보낸다.

 

 

  부설거사 사부시(浮雪居士 四浮詩)  

 

  妻子眷屬森如竹(처자권속삼여죽) 사랑하는 처자권속 대숲처럼 빽빽이 둘러있고

 金銀玉帛積如坵(금은옥백적여구) 금은보석 보배들이 산더미 같이 쌓었어도

 臨終獨自孤魂逝(임종독자고혼서) 죽을 땐 오직 홀로 외로운 넋만 떠나가니

 思量也是虛浮浮(사량야시허부부) 생각하여 헤아리면 이 모두 헛되고 덧없네

 

 

 朝朝役役紅塵路(조조역역홍진로) 날마다 번거롭고 속된 세상사에 매달리어

 爵位纔高已白頭(작위재고이백두) 벼슬 겨우 높아지니 어느새 머리는 허얗구나

  閻王不怕佩金魚(염왕불파패금어) 염라대왕은 벼슬아치라도 두려워하지 않으니

 思量也是虛浮浮(사량야시허부부) 생각하고 헤아리면 이 모두도 헛되고 덧없네

 

 錦心繡ㅁ風雷舌(금심수구풍뇌설) 아름다운 마음과 뛰어난 글재주 혼을 빼는 말솜씨

 千首詩經萬戶侯(천수시경만호후) 천편의 시와 문장 수많은 사람을 호령하는 제후의 권력

 增長多生人我本(증장다생인아본) 여러 생에 걸쳐 나 잘났다는 생각만 더욱 늘어나니

 思量也是虛浮浮(사량야시허부부) 생각하고 헤아리면 이 모두 헛되고 덧없네

 

 

 假使說法如雲雨(가사설법여운우) 설법이 아무리 뛰어나 구름과 비를 부르고

 感得天花石點頭(감득천화석점두) 하늘에서 내리는 눈과 돌조차 알고 머리를 끄덕여도

 乾慧未能免生死(건혜미능면생사) 껍데기 지혜로는 생과 사의 고통을 면치 못하리니

 思量也是虛浮浮(사량야시허부부) 생각하고 헤아리면 이 모두 헛되고 덧없네

      

 

 

 

 

  

 

 

 

월명암(月明庵)과 부설거사(浮雪居師)

 

 

부설거사는 신라 진덕여왕(제 28대) 때의 이름 높은 고승이었다.

이웃 김제 만경에서 태어났다 하며 속명은 진광세(陳光世)라 했는데,

어려서 출가하여 이 곳 변산의 월명암에서 영조(靈照), 영희(靈熙)와 함께 수도를 하였다 한다.
하루는 영조, 영희와 상의하여 더 크고 깊은 오대산(五臺山)에 들어가 도를 닦기로 하고 길을 떠나 가는데

고향인 만경(萬頃) 못 미쳐 두능이라는 데를 지나다 날이 저물어 구씨라는 사람의 집에서 하룻밤을 묵어가게 되었다.

그런데 이 구씨(具氏) 집에는 묘화(妙花)라는 벙어리 딸이 하나 있었는데

원래 부처님 곁에 피어 있는 연꽃 한송이를 꺾은 죄로 벙어리가 되어 이승으로 추방된 절세의 미인이었다.
그런데 이 벙어리 묘화가 하룻밤 묵어 가는 세 수도승 가운데 부설을 보더니 첫눈에 반하여 깊은 연정을 느끼게 되었다.
다음날 아침에 세 사람이 떠나려 하자 갑자기 벙어리의 말문이 열리며 염치를 무릅쓰고 부설에게 결혼하여 줄 것을 간청하는 것이었다.

그러나 큰 뜻을 품고 수도의 길을 떠나는 부설이 들어 줄 리가 없었다.
「그대의 마음은 고맙긴 하나 나는 오대산으로 수도의 길을 떠나는 사람이오.

어찌 한 여인의 작은 소망을 위하여 장부의 큰 뜻을 꺾으려 하오」하고 일언지하에 거절하였다.

그랬더니 묘화가 하는 말이
「그대의 큰 뜻을 어찌 꺾으려 하겠습니까?

그대는 불도를 깊이 닦아 수많은 중생을 구제하려 한다면서 어찌 소녀의 소박한 소망 하나 들어주지 못하고

그로 인하여 내가 죽게 되면 장차 큰 뜻을 편다 하여 무슨 뜻이 있겠나이까?」
하면서 죽기로써 매달리면서 앞길을 막는 것이었다.
뒷 날 많은 중생을 구제하기에 앞서 우선 눈앞에 있는 이 불쌍한 소녀부터 구제하라는 묘화의 끈질긴 요구에 감동한 부설은 자기의 뜻을 굽혀 묘화와 결혼하기로 하였으며 두 친구 영조와 영희는 오대산으로 떠났다. 부설은 묘화와 결혼하여 아들. 딸 남매를 낳고 살면서 아내와 더불어 쉬지 않고 공부를 계속하였다. 그가 사는 마을의 하늘엔 언제나 하얀 눈이 떠돌아 다녔다 하여 사람들은 두능리 마을을 부설촌(浮雪村)이라 부르게 되었으며 부설거사의 법명도 여기에서 땄다고 한다.

이렇게 아들 딸 낳고 끊임없는 수도생활에 힘쓰며 살아가는데 하루는 오대산으로 공부하러 갔던 영조, 영희 두 친구가 찾아 왔다.

 반갑게 맞이하는 부설을 보고 두 친구가 하는 말이
「우리는 오대산에 들어가 공부를 훌륭히 마치고 돌아오는 길이네만

그대는 여자에게 빠져 낙오자가 되어버렸으니 참으로 아깝고 가엾은 일이네」하고 비웃음 반, 위로 반으로 말하는 것이었다.
이 때 묘화부인이 옆에서 듣다가 하는 말이
「그렇다면 내 남편과 당신들이 그동안 누가 더 깊은 공부를 하였는지 한 번 시험해 보기로 합시다」
하여 서로가 합의가 되었다.

그리하여 병 세 개에다 물을 가득 담아 벽에 걸어놓고

그들에게 방망이로 병을 처보라 하니 병이 깨어지면서 병속의 물이 방바닥에 쏟아졌다.

이어서 부설이 방망이로 남은 병을 치니 병만 깨어져 방바닥에 떨어지고 병모양을 한 물은 그대로 벽의 공중에 매달려 있는 것이 아닌가!
이를 본 영조와 영희는 자신들의 공부가 부끄러워 아무 말도 못하고 어디론지 자취를 감추고 말았다.

묘화 내외는 그 길로 두 남매를 데리고 지난날 공부하였던 변산의 월명암 근처에다 부설암을

낙조대 밑에다는 묘화부인을 위하여 묘적암(妙寂庵)을 세웠으며,

그의 아들 등운(登雲)을 위하여는 월명암 뒤에 등운사를 세우고

딸 월명각씨(月明角氏)를 위하여는 지금의 월명암(月明庵)자리에 월명암을 지어

 일가족 네 사람이 각기 한 암자씩을 차지하고

수도에 힘써 불도를 깨우쳐 널리 펴니 이때부터 변산에서 불교가 크게 융성하게 되었다고 한다.

 

 

 

 

 

 

 

 

 

 

 

풍경도 보이지 않고

아무 생각없이 걸어오르게 하던 길 2km

 

산에 갈때에는 아무 생각없이 떠나라

특히 절에 갈때에는 아무런 기대없이 떠나라

아무 생각없이 올라야

산 속에서 작은 숨소리를 내고 있던 절간에

마음을 쉬 얹어 놓게 되는 법

마음이 홀가분하여야

작은 산봉우리에서도 마음은 새털처럼 가벼워 지나니...

 

좁은 산길을 따라 숨소리만 안고 올라선 월명암

작은 이마음 월명암에 보시하듯 얹어 놓고 가노니....

돌아서 가는 마음

다음을 기약하지 않으리

내 발길은 천 길을 돌아 어디로 떠날지도 모르는 일

다시 또 온다는 약속이 혹여라도 빈말이 될까싶어 기약을 하지 않는다.

 

가을 낙엽처럼 들린 월명암

가을 낙엽처럼 가볍게 어디론가 흘러간다.

 

2014.11.8. 변산 내변산 월명암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