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슴 한쪽 비워둔다면

photostory-寺

2015. 4.4. 순천 선암사

kyeong~ 2015. 4. 17. 01:13

 

 

 

 

 

 

선암사(仙巖寺)

 

전라남도 순천시 승주읍 죽학리 조계산 동쪽 기슭에 있는 절.

한국불교태고종의 본찰이다.

신라 542년에 아도화상에 의해 창건했다고 전해지나 〈사적기〉에 의하면 875년에 도선국사가 창건했다고 한다.

1092년에 의천이 중창했으나 임진왜란 때 모두 소실되어 1660년에 재건을 시작했다.

1701년에 불조전이 완성되었고, 대웅전의 개수 및 승선교 축조 등 대대적인 확장과 정비가 이루어졌다.

1819년에 화재로 소실되었으나 중건했고, 1823년 다시 화재가 나자 해붕 등이 중수했다.
6·25전쟁 때 많은 건물과 문화재가 소실되었으며,

현재 경내에는 대웅전을 비롯하여 원통전·팔상전·천불각 등이 남아 있다.

중요문화재로는 3층석탑(보물 제395호)과 승선교(보물 제400호),

대각암부도(보물 제1117호), 북부도(보물 제1184호대각국사진영(보물 제1044호), ) 등이 있다.

사적 제507호로 지정되었다.

 

선암사라는 이름은 절주변에 있는 큰 바위에서 유래 되었는데 절 서쪽에 있는 10여장이나 되는 큰 돌이 평평해

옛선인들이 바둑을 두었던 곳이라 하여 '선암'이라는 절이름이 생겼다고 한다.

또 하나의 유래는 조선숙종때 호암선사가 선암사 뒷편 봉우리의 배바위에 올라 관세음보살을 친견하기를 기원하며

100일 기도를 올렸으나 이루지 못해 지성이 부족함을 한탄하여 아래로 몸을 날렸다.

이때 한여인이 코끼를 타고 하늘에서 내려와 선사를 받아 배바위에 내려 놓았다.

호암선사는 그여인이 관세음보살임을 깨닫고 원통전을 짓고 관세음보살을 봉안하였다.

그후 사람들은 신선이 내린곳이라 하여 선암사로 불렀다.

 

한자로 사찰을 우리말로 '절寺'이라고 하는데,이는 신라에 불교가 전해지면서

'호자墨胡子' 묵었던 '모례毛禮' 집이었기때문이었다는 설과

불교가 들어오면서인도의 예법인 오체투지와 관련이 있다는 것이다.

우선 모례의 집을 중국식으로 발음하면 털례가 되고 이것이 변형되어 절례가 되면서 절이 되었다는 설과

다른 하나인 오체투지 절복折伏의 측면에서 보아 '절'을 한다 하여 '절'이 되었다는 것이다.

원래 불교가 중국에서 들어오기전 중국식 예법은 '절'이 아닌 읍揖'이었고 그래서 '읍하다'가 있었던 것이다.

 

절에서 사용하는 단어중 총림叢林이 있다

총림叢林이란

선원(禪院), 강원(講院), 율원(律院) 등을 갖추고 수행승들이 모여 수행하는 큰 사찰

승려들의 참선을 위한 시설인 선원, 경전 교육 기관인 강원, 계율 교육 기관인 율원 등을 갖춘 사찰로써

우리나라 6 총림에는 대한불교 조계종의 해인사, 통도사, 송광사, 수덕사, 백양사와 태고총림 선암사가가 있다.

•우리나라의 5대 사찰:부산 범어사, 양산 통도사, 순천 송광사, 구례 화엄사, 합천 해인사
•우리나라의 3보 사찰:불보사찰 통도사, 법보사찰 해인사, 승보사찰 송광사

 

 

 

 

선암사의 삼무(三無)란?

 

1.사천왕문이 없다.-

조계산의 주봉인 장군봉의 장군이 지켜주기 때문에  호법신인 사천왕상을 만들지 않았다고 한다.

 

2.협시보살상이 없다.

대웅전의 석가모니부처님은 항마촉지인을 하고 계시다

탐진치 삼독을 멸하시고 마구니에게 항복받으셨으며 항마촉지인을 하고 계셔셔

협시보살상이 없다.

 

3.어간문이 없다

대웅전의 정중앙에 있는 문으로

다른 사찰에는 정중앙의 문으로 출입이 가능하지만

선암사에는 부처님처럼 깨달은 사람만 정중앙문으로 드나들수 있다고 하여

어간문을 만들지 않았다고 한다.

 

 

 

선암사 주자창

남도삼백리길 "천년불심길" 구간에 속해있는 선암사

트랙킹 시간을 좀 넉넉히 내어서

천년고찰 태고종의 총본산 "선암사"를 둘러보는 것이 좋다.

 

 

유명사찰을 통과하려면 입장료를 통과의례처럼 내야지....

 

 

 

승답밭

 

우리나라 아름다운 길은 절집으로 가는 길이 가장 아름다울 것이다

오래된 송림이 있거나 맑은 계곡물과 아름다운 나무가 어우러져

절집에 당도하기도 전에 마음은 시냇물보다 더욱 맑게 반짝거리기 일수다

선암사로 오르는 길은 그저 평범한 신작로 같은 길이다

길이 넓다는 것은 그만큼 찾는이가 많다는 것이다

어느 큰 사찰이나 그 오르는 중간쯤 부도군이 사열하고 있는데

선암사도 예외없이 그렇다

 

 

부도군의 속에 눈길이 멈추는 탑

4마리의 사자가 받들고 있는 탑은

전남문화재자료42호로 지정된 "화산대사사리탑"으로

통일신라시대에 제작된 구례화엄사 3층사자석탑을 모방한것으로 추정된다

이 사리탑의 기단은 1986에 도난당하여 국제 인터폴에 수배 의뢰중이다.

 

 

선암사로 오르는 중간쯤 전통차 체험관이 있지만

그냥 지나치기로 했다

 

 

목장승이 가장 먼저 반기는  선암사 길...

측백나무와 고로쇠나무가 봄을 준비하는 길을 따라

부도밭과 전통차체험관을 지나

대략20분가량을 신작로를 따라 걸어오르면.....

 

 

선암사에 거의 다 왔음을 알려주는 승선교

아름다운 자태로 계곡에 걸려있는 승선교는

선암사의 대표적 풍경이다.

봄, 여름, 가을, 겨울, 어느계절에 오더라도

달력의 풍경처럼 눈에 익은 승선교에서 잠시 머물러 본다

 

 

 

선암사 승선교(仙岩寺 昇仙橋)

선암사의 부도(浮屠)를 지나 경내에 이르면 시냇물을 건너야 되는데 그 건널목에 놓인 다리가 승선교이다.

시냇물의 너비가 넓은 편이라서 다리의 규모도 큰 편인데, 커다란 무지개 모양으로 아름답게 놓여있다.

기단부(基壇部)는 자연 암반이 깔려 있어 홍수에도 다리가 급류에 휩쓸릴 염려가 없는 견고한 자연 기초를 이루고 있다.

다리의 아래부분부터는 길게 다듬은 돌을 연결하여 무지개 모양의 홍예(虹霓)를 쌓았으며,

그 짜임새가 정교하여 밑에서 올려다보면 부드럽게 조각된 둥근 천장을 보는 듯한 느낌을 준다.

홍예를 중심으로 양쪽 시냇가와의 사이는 자연석을 쌓아 석벽을 이루고 그 윗부분에도 돌을 쌓았는데, 모두 주변의 냇돌을 이용하였다.

다리 한복판에는 용머리를 조각한 돌이 밑으로 삐죽 나와 있어 장식적 효과를 주고 있는데,

예로부터 이것을 뽑아내면 다리가 무너진다고 전해오고 있다.



다리 중심석 아래의 조그맣게 돌출시킨 석재는 용의 머리 같기도 하다.

고통의 세계에서 부처의 세계로 건너는 중생들을 보호 수용하겠다는 의지가 담겨 있다.

 

승선교 상단부

하단부에 보는 풍경과 달리

상단부는 아주 평범하게 밋밋하다.

모르고 지나칠것 같은 모습이다.

 

임진왜란 이후 불에 타서 무너진 선암사를 중건할 때 이 다리를 놓은 것으로,

다음과 같은 전설이 전해진다.

조선 숙종 24년(1698) 호암대사가 관음보살의 모습을 보기 바라며 백일기도를 하였지만

그 기도가 헛되자 낙심하여 벼랑에서 몸을 던지려 하는데,

이 때 한 여인이 나타나 대사를 구하고 사라졌다.

대사는 자기를 구해주고 사라진 여인이 관음보살임을 깨닫고 원통전을 세워 관음보살을 모시는 한편,

절 입구에 아름다운 무지개다리를 세웠다고 한다.

무지개 모양으로 건설한 양식은 곧 보성 벌교 홍교(보물 제304호)와 같은데,

2개가 모두 지역적으로 가까운 곳에 있으므로 양식상 공통점이 있는 것은 당연할 것이다.

다만 돌을 쓴 방식이나 마무리수법이 오래된 양식이며,

그 구조 또한 보다 웅장한 느낌을 주는 것으로 미루어 영조 때에 만들어진 벌교홍교보다 먼저 만들어진 것으로 짐작된다.

 

 

 

강선루(降仙樓)

승선교와 강선루의 절묘한 어울림에서

눈을 돌려 다시 절집으로 발길을 돌리면

강선루가 가장 먼저 맞이한다

 

대부분의 사찰은 문루를 일주문 안쪽에 두는데

선암사의 문루는 일주문 밖에 두어 계곡과 어울림을 강조한 것이 이채롭다.

여기서부터 실질적인 선암사의 경내로 진입하는 영역이 된다.

 

 

선암사 문루 역활을 하는 팔작지붕 2층 누각이다.

2층은 계자난간을 둘렀고 정면3칸 측면1칸이고

1층은 정면 1칸, 측면1칸이다.

 

 

선암사 삼인당 [仙岩寺 三印塘]

 

전라남도 기념물 제46호.

장변과 단변이 2.2:1의 비를 갖는 기다란 계란 모양의 연못 속에,

장변 11m, 단변 7m의 크기를 갖는 계란 모양의 섬이 저부(底部) 가까이 4m의 거리를 두고 위치해 있는 중도형(中島形) 타원형 연못이다.

 

이와 같은 특이한 양식의 연못 형태는 국내외를 막론하고 찾기 힘든 것이다.

조선시대의 전통적인 정원에서는 직선적인 방지중도형(方池中島形)의 연못 양식이 지배적이었고,

통일신라시대에 조성한 불국사의 청운교·백운교 앞의 구품연지(九品蓮池)는 정타원형 못이다.

통도사의 구룡지(九龍池)는 구품연지와 비슷한 타원형 연못이기는 하나 모두 정형적인 정타원형 윤곽선을 가지고 있으며,

중앙에 가로지른 다리가 놓여 있는 것이다.

 

이상의 점에서 볼 때 선암사의 삼인당은 조선시대의 양식으로 보기는 어렵고,

조성연대는 훨씬 거슬러 올라가지 않을까 추정된다.

선암사의 사적에 의하면, 이 연못은 신라 경문왕 2년(862)에 도선국사가 축조한 것이며,

연못의 장타원형의 안에 있는 섬은 ‘自利利他(자리이타)’, 밖의 장타원형은 ‘自覺覺他(자각각타)’를 의미하는 것으로,

이는 불교의 대의를 표현한 것이라 한다.

‘三印’이란 제행무상인(諸行無常印)·제법무아인(諸法無我印)·열반적정인(涅槃寂靜印)을 뜻한 것으로,

이 연못은 불교의 이상을 배경으로 한 ‘삼인당’이라는 명칭과 독특한 양식 등이 선암사에서만 볼 수 있는 유일한 것이다.

 

선암사 찻집 선각당

 

 

초행의 선암사에 들다보니

일주문으로 들지 못하고 옆문으로 드니

선암사의 그 유명한 매화나무가 반겨준다

매화중에 가장늦게 피는 선암사 '선암매'

화사하게 맞이해주는 선암매에 취하여 이리저리 절집을 들러볼 요량이다.

 

오른쪽이 해천당

해천당은 절에 오는 객승이나 신도들이 묵는 곳이다.

해천당이라는 이름은 해천사라는 옛절이름에서 유래했다고 한다.

 

왼쪽이 적묵당

대중들이 모여서 공양한 곳이다.

절에서 공양간, 뒷간, 세면장을 삼묵이라고 한다

이는 공양이나 일을 볼때, 씻을때 항상 엄숙해야한다고 붙여진 이

 

 

산강수약(山强水弱)한 선암사의 지세 때문에 화재예방을 위해 영조 37년(1761)에

산 이름을 청량산(淸凉山)으로, 절 이름을 해천사(海泉寺)로 바꾸었던 데서 유래한 해천당 

절에오는 객승이나 신도들이 묵는 곳이다.

 

일제히 꽃을 피워 경내에는 매향이 가득한 이곳

이른 아침이라...

다행이 절집은 조용하다.

 

 

태고총림 선암사 성보박물관

1400년의 역사를 가진 선암사의 귀중한 유물을 보관하고 있는 곳으로

조선후기를 대표하는 서부도전감로탱을 비롯한 불화류, 화엄경사경, 경전류를, 법화경변상목판등

불교관련 문화재를 2000여점 보관하고 있는 곳이다.

선암사 초입 범종루 오른쪽에 위치하고 있다

 

성보박물관 후면

 

조계산 선암사 일주문

仙巖寺一柱門

전남 지방문화제 96호

 

기둥이 측면메서 보아 하나라고 일주문이라고 한다.

강선루를 지나 사찰에 처음으로 들어서는 문으로 실직적인 사찰의 경역을 의미하는 문이다

 

전면에 종서로 된 ‘曹溪山仙巖寺(조계산선암사)’라는 현판이 걸려 있다.

정유재란의 병화를 입지 않았다는 사전(寺傳)에 의해 건립시기는 조선 후기로 보인다.

 

앞에 9개의 돌계단을 설치하고 그 좌우로 용두(龍頭)와 비슷한 석상을 조각한 이 건물은,

다듬은 돌초석에 기둥은 민흘림의 기둥을 세우고 전후로 보조기둥을 세우도록 되어 있으나

위로부터 30㎝ 중간에서 보조기둥을 절단하였다.

 

또, 내부는 좁은 천장인데 공간에 첨차(檐遮)를 부착, 외부와 내부에서 포의 균형미를 꾀하였다.

 그리고 양 기둥 위인 주두에 꼬리를 두고 서로 중앙을 향하여

곧 구름의 조화를 일으킬듯한 용두를 조각하여 승(僧)과 속(俗)의 경계에 위엄을 더하고 있다.

 

 

조계산 선암사 일주문 후면

후면고청량산해천사(古淸凉山海川寺)라는 편액이 걸려 있어

옛산명과 사찰명을 기록하고 있다. 

 

범종루는 일주문 다음에 대웅전과 축을 이루는 건물로

1935년 잉월영, 이춘광스님에 의해 영성루터에 증층한 종루이다.

범종루에는 불전사물인 목어, 법고, 운판, 범종이 있다.

일반적인 사찰에는 일주문가 범종루 사이에 신중문(사천왕문)이 있는데 선암사에는 없다.

 

 

범종루 후면

 

목어는 물에사는 짐승을,

운판은 하늘을 나는 날짐승을,

법고는 축생을,

법고는 지옥의 중생을 제도하여

모든 중생이 극락왕생하기를 비는 곳이다.

 

만세루

선암사의 강당및 포행하는 공간으로

수많은 학승들이 여기서 강학을 하였다.

 

원래 초기 가람배치형식에는 대웅전의 뒷편에 있어야 할 위치이나

조선시대의 가람에서는 강당이 대웅전의 앞에 위치한다.

일반적인 전통사찰에서는 누문이 있고 누문 아래로 출입을 하나

선암사에서는 누의 좌우로 돌아가게 되어 있다.

 

육조고사(六朝古寺)현판

선암사 만세루에 걸려 있는 현판으로

조계산이 중국 선종의 육조 혜능 대사가 살던 곳이라는 뜻에서 육조고사라 하는데

이 현판은 선암사의 수선도량으로서의 가풍을 상징한다고 할 수 있는데, 

서포 김만중의 아버지인 김익겸이 쓴 것으로 알려져 있다.

 

 

 

범종각

 

응향각

대웅전 서편에 위치하고 있으며 스님의 요사채이다.

 

 

 

 

 

 

선암사 대웅전 (仙巖寺 大雄殿)

보물  제1311호 

 

대웅전은 조선시대 정유재란(1597)으로 불에 타 없어져 현종 1년(1660)에 새로 지었다.

그 후 영조 42년(1766)에 다시 불탄 것을 순조 24년(1824)에 지어 오늘에 이르고 있다.

석가모니불을 모신 대웅전은 선암사의 중심 법당으로,

그 앞에 만세루와 주축을 이루고 있으며 앞마당에는 순천 선암사 동ㆍ서 삼층석탑(보물 제395호) 2기가 나란히 서 있다.

앞면 3칸·옆면 3칸 규모의 대웅전은 자연석 기단 위에 민흘림 기둥을 세워 지어졌는데 기둥머리에는 용머리 장식을 하였다.

지붕 옆면이 여덟 팔(八)자 모양인 화려한 겹처마 팔작지붕집으로 지붕 처마를 받치면서 장식을 겸하는 공포가 기둥 위 뿐만 아니라

기둥과 기둥 사이에도 있는 다포식이다. 공포를 앞뒤면에는 각 3조, 양 옆면에는 각 2조씩을 배치하여 장엄하면서도 화려함을 나타내었다.

 특히 건물 안쪽 공포 구조에서는 화려한 연꽃 봉오리 장식으로 마감하여 조선 후기의 화려하고 장식적인 수법을 나타내고 있다.

선암사 대웅전은 다포계의 일반적인 수법을 따랐으나 화려한 건축양식과 장식성에서

조선 후기 중건 당시의 면모를 잘 간직하고 있어 학술적·역사적으로 중요한 가치가 있다.  

 

 

 

대웅전 내부

주불로는 석가모니불을 모셨고 후불탱화에는 영산회상도를 모셨다.

내부는 층단을 이루는 우물천장으로 단청을 하였으며

통문으로 연결하는 대들보는 굵고

박공면에서는 합각부분까지 용문양르로 장식하였다

 

대웅전과 동탑

석가모니불을 모신 대웅전은 선암사의 중심 법당으로,

그 앞에 만세루와 주축을 이루고 있으며 앞마당에는

순천 선암사 동ㆍ서 삼층석탑(보물 제395호) 2기가 나란히 서 있다.

 

 

 

선암사 동탑 금동사리구(보물955호)
1986년 동탑 해체복원시 동탑1층 사리공에서 금동사리함과 청자및 백자가 발견 되었다.

 

 

설선당과 서탑

 

동탑과 서탑 모두 조선중기 이후의 것이다.

 

설선당

대웅전 왼쪽에 위치하며 옛날에는 만일 염불을 했던 염불원이었으나

현재는 행자들의 교육과 생활을 하는 곳이다.

 

 

대웅전앞에서 바라 본

만세루와 동.서탑

 

 

대웅전과 동탑

 

심검당 (尋劍堂)

 대웅전 오른쪽의 건물로 옛날에는 하선원으로 사용했던 건물이다.

현재는 스님들의 강원으로 사용하며

내부구조는 2층으로

이층은 스님의 수행공간 , 수장의 공간이며

서울, 경기지방의 양반집 안채와 같은 형태를 이루며 ㅁ자형의 건물이다.

 

 

심검당 (尋劍堂)

지혜의 칼을 찾는 집이라 하여 심검당이라고 한다.

심검당의 검은 마지막 무명(無明)의 머리카락을 단절하여 부처의 혜명(慧明)을 증득(證得)하게 하는 취모리검(吹毛利劍)을 상징한다.

사찰 내에 적묵당(寂默堂)이 심검당과 함께 위치할 경우에는 적묵당은 선원으로,

심검당은 강원으로 이용되는 경우가 많다. 이곳은 순수한 수행처이므로 외인의 출입이 허용되지 않는다.

건물벽면에는 水자와 海를 새겨두었는데 화재예방의 의미라고 한다.

 

지장전

지장보살및 명부의 십대왕이 모셔져 있다.

전각의 중앙에는 지장보살을 모시고 협시로 도명존자와 무독귀왕을 모셨다.

향좌에는 2.4.6.8.10왕이 모셔져 있고 햐우에는 1.3.5.7.9.왕이 모셔져 있다.

 

 

대웅전에서 바라본

조사전(左), 불조전(中), 팔상전(右)

 

조사전

 조사전은 중국에서 선을 전한 '달마대사'를 시작하여 '육조혜능' '마조도일'등의 중국5대선사의 진영과

태고종의 종조인 '태고보우국사' 그리고 선암사의 선을 널리 알린 '침굉헌변선사'진영을 모신 전각이다.

 

조사전 내부

 

불조전佛祖殿

전남 지방유형문화제 295호

대개 사찰의 불조전에는 사찰의 개창자나 중창자, 중수자와 역대 유명한 선조사 스님들의 진영이 모셔져 있으나

선암사의 불조전은 과거 7불과 미래 53불 등 60분의 부처를 모시고 있다.

 

과거 7불과 미래 53불 등 60분의 부처를 모시고 있는 불조전 내부

 

 

 

 

팔상전八相殿

팔상전에는 석가모니의 전생부터 열반에 이르기까지 일대기를 압축하여

여덟장면의 그림으로 표현한 팔상도를 모시고

아미타 부처를 주존으로 화엄탱화 좌우로 팔상도를 봉안했다.

 

 

 

 

 

 

 팔상전 내부

선암사 팔상전에는 아미타부처님을 주존으로 모시고 뒷면에는 화엄탱화가 있고

양측면에는 팔상도가 봉안되어 있으며

뒷면에는 33조사도가 그려져 있다.

대부분의 불조전에는 영산회상도가 등장하는데 선암사 불조전에는 화엄탱화가 등장한다.

 

 

 

 

 

삼전 三殿

팔상전 우측에 직각으로 배치되어 있다.

세전각인(판전 불조전, 팔상전)을 관리하는 스님이 사는 곳이라 하여 삼전이라 한다.

 

 

 

 

원통각 圓通閣

전남 지방문화제 169호

선암사에서 제일 아름다운 건물인 원통각

관세음보살을 모셔 관음전이라고 하며 1698년에 중창한 것을 1759년 화재로 소실,1761년에 재중창하였고

2번의 중수를 거쳐 오늘에 이르렀다.

 

원통각의 뜻은 주원융통한 자비를 구한다는 뜻이다.

원통각의 관세음 보살은  호암스님께서 조계산 배바위에서 100동안 기도를 했으나

친견하지 못하여 떨어져 죽으려 할때 홀연이 누군가가 나타나 대사를 구해주었는데

그가 바로 선암사 관세음보살이었다고 한다.

 

 

불조전 뒤편 원통전

 

원통전 사분합문 四分閤門

원통각 중앙사분합문의 빗살문과 모란꽃살문

 

 

내부에는 '인人' '천天' '대복전大福田'이라는 순조의 친필현판이 걸려 있었는데

정조가 후사가 없자 선암사 원통전과 대각암에서 100일 기도를 하여 순조를 낳자

금병풍, 은향로등을 포함하여 선암사에 하사한 것이다.

 

 

 

첨성각 瞻星閣

원통각 왼편의 건물로 원통각을 관리하는 스님이 사는 요사채이다.

첨성각의 의미는 별을 보는 전각이라는 뜻으로

스님들이 별이 보이는 새벽에 일어나 열심히 수행하라는 의미이다.

 

 

장경각 藏經閣

각종 경전을 보관한 장경각.

장경각의 원래 명칭은 성수전으로 왕실의 명복을 기원하는 전각이었다.

 

 

 

응진당으로 오르는 문각

담앞에 사각연못이 있다.

고령의 매화가 웃고 있다.

 

 

 

 

응진당眞堂

호남제일선원이라는 문각을 지나면

응진당을 중심으로 좌측으로 달마전과 벽안당, 우측으로 진영각과 미타전이 있으며

응진당 뒤로 산식각이 있다.

 

응진당엔 삼존불과 16나한을 모시고 있으며

삼존불로는 주불로 석가모니와 미륵보살과 제화갈라보살이 협시봉안되어있

 

 

응진당은 석가모니 설법장인 영산회상에서 유래한 전각으로 유마경, 증일아함경등에서 나오는

제자를 모셔야하나 조선시대에는 16나한을 모시는 것이 일반적이어서

나한전, 영산전이라고도 부른다

16나한은 득도한 수도자들이 특별히 석가의 수기를 받아 미륵불이 하생할때까지 열반하지 않고

이세상의 불법수호를 위암받은자들이다.

 

응진당은 선암사 경내에 별도로 설치된 조그마한 승원이다.

 

 

응진당 좌측 달마전

암사의 선방으로 쓰이는 달마전

뒷편은 스님들의 요사로 쓰이는 벽안당

 

응진당 우측 진영당 

진영당은 선암사의 중창자나 크게 깨닳은 스님들의 진영을 모셔놓은 곳. 

진영당 뒷편건물은 승방으로 쓰이는 미타전

 

 

 

 

종정원 宗正院

선암사 종정원, 종정 혜초스님이 머무는 공간이다.

각황전과 무우전의 입구이기도 하다.

 

종정원 입구의 홍매화가 자태를 뽐내고 있다.

이곳에 홍매화가 피는 줄 모르고 왔다.

탐매 여행자들은 시간을 맞추어 선암매를 보기 위해

이곳에 온다는데

그냥 왔어도 선암매의 절정을 보고 간다.

 

 

 

무우전(無憂殿)

선암사 종정원, 종정 혜초스님이 머무는 공간이다.

출입이 금지된 곳이다

 

천년을 보아도 정이갈 돌담을 따라

선암사의 그 유명한 매화가 한창이다.

 

 

 

각황전覺皇殿(펌사진)

전남지방문화재 177호

무우전과 각황전은 외부인 출입금지구역이라 아쉬운 곳이다.

 

각황전은 원래  장육전이다.

부처님의 몸을 일컬어 '장육금신'이라 한다.

장육륙전에는 석가여래의 모습인 장육존상을 봉안했을것이고

신라 황룡사 금당 장육존상대석에서 유래를 수수 있다.

 

선암사 뒷간

 

 

정호승 "선암사"

눈물이 나면 기차를 타고 선암사로 가라
선암사 해우소에 가서 실컷 울어라
해우소에 앉아 쭈그리고 앉아 울고 있으면
죽은 소나무 뿌리가 기어다니고
목어가 푸른 하늘을 날아 다닌다
풀잎들이 손수건을 꺼내 눈물을 닦아주고
새들이 가슴 속으로 날아와 종소리를 울린다
눈물이 나면 걸어서라도 선암사로 가라
선암사 해우소 앞
등 굽은 소나무에 기대어 통곡하라

 

시집(눈물이 나면 기차를 타라)중에서, 창비, 1999

 

 

그냥 떠나도 4월 순천의 길은 무작정 눈물이 날 것 같은 풍경이다.

수백년 된 매화가 웃고

길마다 벚꽃이 눈물처럼 흩날리는 계절

무작정 떠나와 이 뒷간에서 행복해서 눈물이 날것 같다.

 

 

 

천연기념물 제486호인 선암매

 

 

 

천연기념물 제486호인 선암매

순천 선암사의 홍매화는 천연기념물로 유명하다.

선암사 아담한 전각 사이사이 동백과 금식나무, 벚나무, 철쭉 등이 합장하듯 서있는데,

주인공인 홍매화는 조금 더 안쪽으로 들어가야 만날 수 있다.

 

대웅전을 지나 각황전과 무우전이 있는 종정원 돌담을 따라 걷다보면 20그루의 홍매화가 나란히 자리한다.

모두 350년 이상 수령을 자랑하는 고목으로,

이 중에서도 봄이 오면 가장 먼저 꽃을 피우는 토종 매화 ‘선암매’는 천연기념물 488호로 지정됐다.

정확한 수령은 알 수 없으나 사찰에 전해오는 이야기에 따르면

천불전 와송과 함께 600여년 전 심어졌을 것으로 추정되고 있다.

무량수전앞 와송

각황전 선암매와 함께 600여년 전 심어졌을 것으로 추정되고 있다.

 

 

 선암사 그 외 풍경들...

설선당에서 대웅전쪽으로 진입하는 길...

 

누군가 낙화한 동백꽃을 나무 위에 올려놓았다.

 

선암사 뒷편에서 본 풍경


 

노령의 매화도 아름답지만 돌담길을 따라 반기는 동백또한

남녘에서 만나는 아름다운 풍경이다.

 

 

 

 

색깔이 특별한 동백

 

 

 

 

처진올벚나무

 

일주문옆 동백의 낙화

 

큰개불알꽃

 

동자승...

 

 

 

 

 

(선암매에 취해서....)

선암매를 찍을 때에는 기교를 부리지 마라

저 긴세월을 살아온 나무가 꽃을 피울때에는

그저 경건히 마음으로 읽어라

어찌 꽃잎에만 눈이 가겠는가

마디마디 담겨져 있는 저 세월의 깊이가 더 감격스럽다.

꽃이야 봄에 잠시 다녀가겠지만

저 허리굽은 등걸은 사계의 모든 것을 지니고 살아온 모습이다.

 

아주 자연스럽게 돌담에 비친 모습

기왓장에 떨어지는 모습

꽃과 꽃이 만나 어우러지는 모습

모두가 천년을 이어갈 기념물이 풍경이다.

 

 

 

 

 

 

 

 

 

 

 

정호승의 시처럼 눈물이 날 것 같다

무작정 떠나온 길에 눈물반 꽃반이다.

막연히 송광사에 가려고 천년불심길을 택했고

선암사에서 부터 걸어가려고 길을 나섰다.

 

송광사에 가기도 전에 주저 앉을것만 같다

뚝뚝 떨어지는 동백보다

가슴 밑바닥까지 날아든 선암매의 자태때문이다.

어찌 이리 고운 자태로 수백년을 지내왔는지...

왜 이제사 내품에 날아들었는지...

 

부지런히 걷고

부지런히 세상 구석구석을 살펴보노라면

비밀스러이 간직되어있던 풍경이 모두 내것이 되리라.

 

2015.4.4. 선암사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