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 어느 절집에 가더라도
봄풍경이 개심사보다 더 아름다운 곳이 있을까
아담한 절
기둥이며 해우소며
그리고 흐드러지게 피는 꽃이며
자연의 흐름에 맞게 세월을 흘려보내는 절집
이 절집에서는 말이 필요 없다
기도를 할 필요가 없다
단 몇분간만 돌아보면
누구나 가장 아름다운 마음으로 절집을 나서게 될 것이니
온 마음에 꽃으로 채운 그마음이 부처요 행복아니겠는가
조용한 발걸음이기보다는 들뜬 마음으로 돌아본 개심사
이번에는 절집소개를 하기보다는
눈에 보이대로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사월을 맞이하는 절집 풍경을 찍고 왔다.
그리고 또하나
예전에는 절집에 찾아들때에는 의례히
절집의 대문같은 일주문을 지나
절집의 현관문같은 해탈문을 들어서서
이곳저곳 당우를 살폈겠지만
이번에는 개심사의 뒷산 상왕산에서 내려와 절의 안쪽부터 살피며 밖으로 나왔다.
2015.4.25. 토요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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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심사 전경
(진,개심사 홈페이지 발췌)
개심사 開心寺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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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애석불을 지나
보원사지를 지나
상왕산을 걸어내려가 개심사 뒷문으로 절집에 들어섰다.
개심사에는 그 흔한 입장료가 없어서 참 고맙다.
상왕산을 내려서며 맞이하는 개심사
멀리서 보아도 아담한 절집이다.
가장 먼저 만나는 개심사 풍경
개심사 구석진곳
흙벽으로 된 낡은 건물
태풍이라도 불면 금방 넘어갈 것같은 집
해우소 옆에 위치하고 있다.
첫느낌은 개심사는 사찰의 규모나 단장에는 신경을 쓰지 않는 느낌을 가지며 절집에 들어섰다.
상왕산에서 절집으로 찾아들면 가장 먼저 만나는 건물은
개심사의 해우소
처음보다 많이 변했다
슬레이트 지붕에 진한 냄새가 풍기는 그런 화장실이었는데
태풍 곤파스로 인해 사라진 해우소를 이렇게 다시 지어서
기와를 얹고 손질을 많이 했다.
자연 친화적인 절집
저기 푸대자루에 든 낙엽으로 뒷처리를 하는 곳이다.
요즘 사람들...그리하라면 기절할일이겠지만
개심사는 지금껏 그리 해왔다.
범종각
범종각을 비롯해
개심사의 모든 기둥은 생김새가 모두 다르다
제멋대로 생긴대로 지붕을 떠받히고 있다.
그래서 더 정이가고 편안한 절집
해우소가 그랫듯이 기둥또한 자연에 순응하고 살라는 느낌이다.
부처님오신날이 가까워오는 탓인지
꽃처럼 흔들리는 연등
영산회괘불탱
보물 제1264호 (1997년 8월 8일)
1772년(영조 48)에 유성(有誠), 유위(宥偉), 성청(性聽), 보은(報恩), 상흠(尙欽) 등 11명의 화사(畵師)가 그렸다.
화기에 ‘대영산괘불탱(大靈山掛佛幀)’의 명칭이 있는 이 불화는
석가가 영축산에서 설법하는 장면을 그린 영산회괘불탱으로,
괘불이란 절에서 큰 법회나 의식을 행하기 위해 법당 앞 뜰에 걸어놓고 예배를 드리는 대형 불교그림이다.
화면을 가득 채운 석가불은 오른쪽 어깨가 드러난 우견편단의 옷을 걸치고 화면 중앙에 서 있으며
둥근 얼굴, 비대한 어깨, 유난히 길고 굵은 팔, 짧은 하체가 비현실적으로 보인다.
옷에는 둥글고 변형된 덩굴무늬가 빽빽하게 장식되어 있고,
석가모니불 뒤의 광배에는 모란 줄기와 연꽃무늬 등이 새겨져 있다.
석가의 머리 주변엔 7구의 화불이 둥글게 앉아 있으며,
옆으로는 2구의 비로사나불과 노사나불이 석가를 협시하고 앉아 있다.
석가의 몸통 주변에는 8구의 화불이 좌우로 앉아 있으며 맨 아래 부근에는 2구의 제석천과 범천이 손을 모은 자세로 석가를 향해 서 있다.
조선 영조 48년(1772)에 그려진 이 그림은 왕과 왕비, 세자의 만수무강을 위해 제작된 그림이다.
거대한 본존불 입상의 두광(頭光 : 부처나 보살의 정수리에서 나오는 빛) 좌우에 비로자나불좌상과
노사나불좌상이 조그맣게 묘사된 것으로
미루어 비로자나불의 화신(化身)인 석가불로 추정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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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괘불탱은 사월초파일에만 감상할수 있다고 하니
부처의 마음에 이르게 되는 날
언젠가는 볼 수 있으리라.
(사진"개심사 홈페이지 발췌)
대웅보전
보물 제143호
절의 기록에 의하면 개심사는 신라 진덕여왕 5년, 백제 의자왕 14년 혜감국사가 지었다고 되어 있는데,
진덕여왕 5년(651)과 의자왕 14년(654)은 다른 해에 해당한다.
개심사는 백제 의자왕 14년(654) 혜감국사가 지었다고 전한다.
1941년 대웅전 해체 수리시 발견된 기록에 의해 조선 성종 15년(1484)에 고쳐 지었음을 알 수 있다.
현재 건물은 고쳐 지을 당시의 모습을 거의 유지하고 있는 것으로 여겨진다.
개심사 대웅전은 앞면 3칸·옆면 3칸 규모이며,
지붕은 옆면에서 볼 때 사람 인(人)자 모양인 맞배지붕으로,
지붕 처마를 받치는 공포가 기둥 위뿐만 아니라 기둥 사이에도 있는 다포양식이다.
이 건물은 건물의 뼈대를 이루는 기본적인 구성이
조선 전기의 대표적 주심포양식 건물인 강진 무위사 극락전(국보 제13호)과 대비가 되는 중요한 건물이다.
오층석탑 오른쪽에 있는 철기둥은
괘불 영산회상도(보물 1264호)를 내걸 때 사용하는 것이다.
기와지붕 수막새 위에는
백자연봉이 줄지어져 있으니
잘 살펴볼 일이다.
개심사 대웅전 내부
대웅전과 대웅보전, 원통전의 비교
대웅전(大雄殿)
대웅전은 선종(禪宗) 계통의 사찰에서 석가모니 부처님을 본존불(本尊佛)로 모시는 본당(本堂)을 말하는 것입니다. 대웅전은 가람의 중심이 되는 법당으로, 큰 힘이 있어 사마(四魔)를 항복시킨다는 뜻에서 붙여진 부처님의 덕호(德號)에서 유래하였다고 합니다.
대웅전 안에는 석가모니 부처님을 한 분만 모시는 경우도 있으나 대부분의 경우 좌우에 협시(脇侍: 좌우에서 모시고 시중드는 보살)보살을 두고 있습니다.
협시 보살을 함께 모시는 경우, 사바세계의 교주인 석가모니불을 가운데 두고 왼쪽에 문수보살(文殊菩薩), 오른쪽에 보현보살(普賢菩薩)을 협시로 봉안하는 것이 우리 나라 사찰의 일반적인 관례입니다. 협시 보살은 부처님보다 격이 한층 낮은 분이기는 하지만 이미 부처가 될 수 있는 수행의 경지에 도달한 분들입니다.
대웅보전(大雄寶殿)
대웅보전에는 대웅전과는 다르게 석가모니 부처님을 중심으로 좌우에 아미타불(阿彌陀佛)과 약사여래(藥師如來) 등 삼존(三尊)을 모시기도 합니다. 이렇게 세 분의 부처님을 모시는 경우에는 그 부처님을 삼존불(三尊佛)이라고 합니다.
협시 보살과는 달리 세 분 부처님은 격의 높고 낮음이 없이 모두 똑같이 거룩 하다고 합니다. 그리고 삼존불의 좌우에 다시협시 보살을 두어 불단(佛壇)을 장엄하게 하는 경우도 있습니다.
삼세불(三世佛)을 모시는 대웅전도 있는데, 삼세불이란 현재.과거.미래 세계의 부처님을 말하며 이분들을 모두 한 자리에 모신다는 말입니다.
현재의 세계를 대표하는 석가모니 부처님을 가운데 모시고 왼쪽에 미래를 대표하는 미륵불(彌勒佛)을 오른쪽에는 과거를 대표하는 정광불(定光佛, 연등불이라고도 하는데 오랜 예날에 출현하여 석존에게 미래에 반드시 성불하여 중생을 재도하라는 수기를 주신 부처님을 말합니다. )을 모시게 됩니다.
또한 대웅전에 삼신불[三身佛]을 모시는 경우도 있습니다. 삼신불이란 법신불 (法身佛, 영원 불변의 진리를 몸으로 한 부처님), 보신불(報身佛, 오랜 수행의 과정을 거쳐 얻은 무궁무진한 공덕을 몸으로 한 부처님), 화신불(化身佛, 중생을 교화하기 위해 여러 가지 형상으로 변하는 부처님의 몸)을 일컫는 말인데 우리 나라에서는 선종(禪宗의 삼신설에 따라 법신불로 비로자나불(昆盧庶那佛)을 모시고, 보신불로 노사나불(盧舍那佛)을 화신불로 석가모니불(釋迦牟尼佛)을 봉안하는 것이 대부분 이라고 합니다.
이와 같이 삼신불을 봉안하고 있는 사찰은 화엄사상을 중요시하는 사찰임을 나타내는 것이라고 합니다. 사찰에 따라 시대에 따라 대웅전이나 대웅보전에 모시는 본존불인 석가모니 부처님은 같으나 좌우에 모시는 보살이나 부처님 등은 여러 가지로 변화가 많았다고 합니다.
원통전(圓通殿)
원통전(圓通殿)은 관세음보살을 모신 곳으로 관음전(觀音殿)이라고도 한다.
'나무 아미타불 관세음보살'이라는 말은 불교 신자가 아니더라도 귀에 익은 말인데, 관세음 보살은 자비의 화신이며 모든 중생의 번민을 모두 편안하게 해주는 권능을 가졌다. 그러므로 늘 관세음보살의 명호를 부르면 안락한 삶을 살 수 있다.
관세음보살은 '관세음보살(觀世音 菩薩)', '관자재보살(觀自在菩薩)', '관세음자재 보살(觀世音自在 菩薩)'이라고도 하지만 보통 관세음 보살이라고 부른다.
특히 중생들이 호소하는 소리를 눈으로 볼 수 있는 능력을 갖춘 이 보살은 마치 어머니와 같이 자비로운 보살이며, 온갖 중생들이 천태만상의 소원을 각각 호소해도 그 원들을 다 들어 주는 분이므로 너무나 바쁘고 부지런한 보살이다.
이와 같이 중생의 근기에 따라 여러 가지 형태로 나타나는 것을 보문시현(普門示現)이라고 한다. 그래서 관세음 보살상은 여러 가지 다른 모습으로 표현되며 그 종류가 33신이나 되는 많은 몸이 있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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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심사 심검당 開心寺 尋劍堂
충청남도 문화재 자료 제358호
서산 개심사 대웅전(瑞山開心寺大雄殿)의 전면 우측에 자리하며,
개심사 무량수각(開心寺無量壽殿)과 서로 마주 보고 있다.
1962년 건물을 해체 수리할 때 발견된 상량문에 의하면
개심사 심검당(開心寺尋劍堂)은 1477년(성종 8)에 3중창하였으며,
영조 때 6중창을 거쳤다고 한다. 1974년 보수하였다.
정면 3칸, 측면 3칸으로 총 9칸 규모의 건물이다.
지붕은 맞배지붕으로 전면은 겹처마로 되어 있고,
후면은 홑처마로 되어 있다.
원래는 12개의 기둥을 세워 구성한 건물이었으나 지금은 ‘ㄱ’자형의 방을 이어 붙인 형태이다.
자연석을 다듬은 기단에 약간 다음은 자연석 초석을 놓고
그 위에 배흘림이 가미된 원기둥을 세워 자연미를 잘 보여 주고 있다.
가구 형식은 2고주 5량으로 주심포계 양식이며,
초제공(初提栱) 및 주두 아래로 운각을 한 보아지 형식으로 되어 있어 익공계와 비슷한 점을 볼 수 있다.
공포(栱包)는 1출목 3포작이고 쇠서는 앙서형이다. 내부는 우물천장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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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심사에 가장 오래된 건물인 심검당
기도하고 마음청정하여야 하는 절집같지 않고
그저 아무데나 앉았다가 기둥에 기대어 마음껏 쉬어가도 좋은고향집 툇마루같은 곳이다.
여름날 기둥에 기대어 앉아 책한권 읽고 있어도 좋을 것 같은 곳이다.
끝방에는 설선당이라는 편액이 걸려 있다.
開心寺 無量壽閣
대웅전(瑞山開心寺大雄殿)의 전면 좌측에 자리하며 개심사 심검당(開心寺尋劍堂)과 마주 보고 있다.
「개심사사적기(開心寺事蹟記)」에 의하면 1613년(광해군 5)에 모든 전각을 중수하였다고 하나 확인할 수 없다.
1981년 보수하였다. 원래 전각의 이름이 무량수전이었는데 요사채로 쓰이면서 무량수각으로 바뀐 것 같다.
정면 6칸, 측면 3칸으로 총 18칸 규모의 겹처마 팔작지붕 건물이다.
자연석 기단 위에 자연석 주초를 놓고 그 위에 원기둥을 세웠다.
가구 형식은 2고주 5량가이며, 창방 위로는 각 칸에 화반(花盤)을 놓아 주심도리를 받치고 있다.
공포(栱包)는 전면에만 두었는데 이익공(二翼工) 형식으로, 초익공(初翼工)은 앙서 위에 연화를 새기고
이익공은 수서 형태로 위아래에 연봉을 새겼다. 내부 천장은 반자 위 종이 바름으로 하였다.
2011년 현재 개심사 무량수각(開心寺無量壽閣)의 소유자 및 관리자는 개심사이다.
전각의 이름에 걸맞게 아미타불을 봉안해야 하는데 현재 요사채로 쓰이고 있다.
큰 방에는 관음보살상이 봉안되어 있다.
전면의 각 기둥에 『나옹집(懶翁集)』 답매씨서(答妹氏書)의 내용을 적은 주련이 걸려 있다.
무량수불(無量壽佛)과 관련된 전각은 보통 ‘전(殿)’자를 붙이는데, 개심사 무량수각은 ‘각(閣)’자를 붙인 점이 특징적이다.
[출처] 한국학중앙연구원 - 향토문화전자대전
무량수각 내부
무량수각앞에서 파는 초
부처님께 불 밝히고...
안양루(安養樓)
안양루는 개심사의 강당인 셈이다
내부에는 법고와 운판과 목어가 걸려 있다
안쪽 편액에는 안양루(安養樓)라고 씌여 있고
바깥쪽 편액에는 :'상왕산개심사(象王山開心寺)'라는 편액이 걸려있는데
해강 김규진 선생의 글씨이다
대웅전에 바라본 안양루
안양(安養)은
본래 불교 용어로 극락을 뜻한다.
안양루를 지나야 석가모니불이 계신극락세계(대웅전 앞마당)에 이르게 되는 것이다.
개심사는 대웅전으로 들어가는 문이
안양루 옆으로 나있는데
그 이름이 해탈문이다.
안양루옆 해탈문이다
절의 규모가 그리 크지 않아서 해탈문을 들어서면
정면에 대웅전
좌측에 심검당(尋劍堂) 우측에 무량수각(無量壽閣)이 한눈에 들어온다.
해탈하기 위해 절집으로 들어서는 것이 아니라
해탈을 접고 속세를 향하여 돌아오는 것이 되는셈이다
하기사 우린 그저 절집 구경하는 떨돌이니까
해탈이 무엇인지 가슴깊이 새겨 본적도 없다.
작년 방문때 찍었던 해탈문
대웅전과 심검당 사이에서 바라보는 풍경
명부전으로 가는 길
개심사의 휘어진 기둥이 눈이간다
심검당의 주춧돌을 비롯해 개심사의 주춧돌은
잘 다듬어진 돌이 아니고, 자연석을 그대로 쓴 것이다.
꽃속에 묻혀 있는 안양루
명부전(冥府殿)
「개심사사적기(開心寺事蹟記)」에 의하면 1613년(광해군 5) 인정, 부익, 현오 등 3대사에 의해 창건된 것으로 알려져 있다.
하지만 1889년(고종 26) 김설세가 작성한 「개심사중창수리기(開心寺重創修理記)」에
“순치삼년명부전신설(順治三年冥府殿新設)”이란 기록이 보이므로 1646년(인조 24) 창건된 것으로 보인다.
명부전은 지장보살을 중심으로 염라대왕등 10대왕을 모신 전각이다.
1984년 5월 17일 충청남도 문화재 자료 제194호로 지정되었다.
개심사 명부전의 창문은 다른 사찰에 비해 높고 가로로 누워 있다.
입식공간이 아니었을까....짐작을 해본다.
명부전 내부
무독귀왕-지장보살-도명존자
내부에는 지장보살상과 시왕상을 안치하였고,
출입문 좌우에는 등신대의 사자상(使者像)을 세웠다.
전면의 각 기둥에는 『지장경(地藏經)』의 내용을 적은 주련이 걸려 있다.
전각 안에 봉안된 지장보살의 영험이 높아 많은 사람이 찾고 있다.
우리가 어른이 돌아가시면 지내는 49제가
바로 이 명부신앙에 따라 열분의 시왕에게 재판을 받을 때를 위해 제사를 지내는 것인데
7일마다 한번씩 7번해서 49제가 되고
1년, 2년, 3년에 제사를 지내고 탈상을 함으로써 10번 제사가 마무리 된다고 한다.
[출처] 한국학중앙연구원 - 향토문화전자대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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명부전 내부
출입문 좌우에는 등신대의 사자상(使者像)을 세웠다.
명부전앞 청벚꽃
4월에 개심사에 온 이유는
전국에서 하나뿐인 청벚꽃이 피고
빨강 하양, 분홍색의 왕벚꽃이 절집을 뒤덮는 모습을 보기위해서다.
명부전옆 스님 요사채
감로수에서 바라본 개심사 풍경
흔히 절간 돌틈에서 흘러나오는 그런 약수가 아니라서
마셔볼 생각은 안했지만 어느 관광객은 그래서 한바가지 목을 축이고 싶은가보다
어디를 보아도 반듯하고 잘 다듬어진 것은 없다
못생긴 계단이지만 정겹고
아무렇게나 자란 담쟁이지만 우리네 마음같아서 마음대로 자라고 하늘을 보고 싶다.
굽은 나무도 쓸모가 있고
모난돌도 쓸모가 있다
개심사에서 얻고가는 의미이다.
꽃의 나라
부처의 정원 같은 개심사
돌아서기 싫은 풍경이다
신의 정원같은 곳에 앉았으면 하루해가 늘 짧다.
석탄일이 한달여 남았지만
봉축등과 꽃과 사람과....
봄은 개심사의 잔칫날이다.
초입에서 찍었던 범종각
아무리 봐도 저 휘어진 기둥과 어우러진 연등...
카메라 셔터를 누루는 중독은 그칠줄 모른다.
아마도 이 개심사를 찾는 누구라도
이범종각앞에서 한참이나 반한듯 서있으리라
일주문을 걸어올라와 등에 땀이 날 즈음 만나는 연못
바로 코끼리가 왕인 상왕산 음료수인 연못
직사각형 형태의 인공연못은 바로 부처님을 상징하는 코끼리가 마시는 물인 것이다.
이제 그 연못을 건너면 어느세 세상 시름을 반쯤 다 잊은 셈이다.
개심사 연못 위에 놓인 외나무다리는 개심사를 찾는 사람들은 대부분 한두 번씩 건너보는 다리이다.
예전에는 더 좁은 다리였는데, 요즘은 비교적 넓어졌다.
예전에 좁았던 나무다리는 양쪽에서 동시에 건널 수가 없을 만큼 좁았다.
그래서 한쪽에 사람이 먼저 올라오면 반대 쪽에서는 그 사람이 다 건너오기까지 기다려야 했다.
절에 놓인 짧은 나무다리이지만, 양보와 상대에 대한 배려를 생각하고,
실천할 수 있는 기회를 준다는 것을 생각하면
개심사의 어떤 것보다 개심사의 진정한 의미를 담고 있는 명물이라고 할 수 있다.
왼쪽에는 세심동洗心洞(미쳐 찍지 못했지만)
오른쪽에는 개심사開心寺
마음을 씻는 골짜기에서 마음을 열라는 절
그동안 찌들었던 마음을 마음을 열고 잘 씻고 가라는 뜻의 사찰인것같다.
내려오는 길
내포문화숲길이라는 둘레길에 개심사가 포함되어 있다는 안내판을 만났다.
내포문화숲길로 다시금 개심사도 만나고 싶다.
개심사 일주문
절에 비해 일주문이 크고 화려한 느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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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행에서의 마무리는 맛집이다. 개심사에 내려오니 정돈 된집은 없고 허름한 식당들이 반겨준다.
충청도라서 그런가 식당주인의 느린 서빙은 탐탐치가 않았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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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심사에서 얻고가는 것은
굽으면 굽은대로
휘어지면 휘어진대로
세상에 쓸모없는 것은 없고
개심사 연못의 외나무다리를 건너는 것 같이
내가 먼저가 아니라 타인이 먼저라는 배려하는 마음이고
생긴대로 어여삐 여기고 살아가면
세상에 마음이 열리지 아니할 것이 어디 있겠는가
흐드러지게 핀 왕벚꽃과 청벚꽃에 흠뻑 빠져서 신의 정원에서 쉬었다 가는 하루인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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