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르니까
가을비는 추적추적
백암산 붉은 단장 다 씻기겠네
여기까지 왔으니 오르기야 하겠지만
이 비에 산에 오른다는 것은 누가 보나 미친 짓
그냥 있으면 뭐하겠어
아직은 춥지 않아 견딜만하겠지
아직은 설익은 단풍
비는 그칠 줄 모르고
이거 꼭 올라야 하나
속으로야 어떤지 모르지만
동행하는 사람들이 말없이 오르니
그냥 올라야지
길을 모르는데 어디로 가겠어
능선에 오르자 싸릿가지처럼 내리는 비
옷 속까지 결국은 파고드는 습기
갈 길은 멀고 이정표에 눈이 갈 때
상왕봉, 여기가 어디인가
비의 긴장에서 벗어나
안개 천국에 들어섰다
저 부드럽고 웅장한 신의 솜씨에
겸허히 비를 빙자한 망설임을 내려놓는다
길을 나설 때만 해도
기대해 본 적 없는 풍경
안개가 흘러가듯이 천천히 다가서는 수려한 산하
그대여 비가 오는 날도 산을 오르라
망설임은 비가 오는 날의 풍경을 모르니까 하는 거다.
梁該憬
2016.10.16. 백암산 우중산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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