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슴 한쪽 비워둔다면

poem-아직도 모르지만

모르니까 (백암산)

kyeong~ 2017. 8. 23. 00:19


모르니까


가을비는 추적추적

백암산 붉은 단장 다 씻기겠네

여기까지 왔으니 오르기야 하겠지만

이 비에 산에 오른다는 것은 누가 보나 미친 짓

그냥 있으면 뭐하겠어

아직은 춥지 않아 견딜만하겠지


아직은 설익은 단풍

비는 그칠 줄 모르고

이거 꼭 올라야 하나

속으로야 어떤지 모르지만

동행하는 사람들이 말없이 오르니

그냥 올라야지

길을 모르는데 어디로 가겠어


능선에 오르자 싸릿가지처럼 내리는 비

옷 속까지 결국은 파고드는 습기

갈 길은 멀고 이정표에 눈이 갈 때

상왕봉, 여기가 어디인가

비의 긴장에서 벗어나

안개 천국에 들어섰다

저 부드럽고 웅장한 신의 솜씨에

겸허히 비를 빙자한 망설임을 내려놓는다


길을 나설 때만 해도

기대해 본 적 없는 풍경

안개가 흘러가듯이 천천히 다가서는 수려한 산하

그대여 비가 오는 날도 산을 오르라

망설임은 비가 오는 날의 풍경을 모르니까 하는 거다.


梁該憬

2016.10.16. 백암산 우중산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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