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슴 한쪽 비워둔다면

photostory-寺

2019.11.2.청송 주왕산 대전사

kyeong~ 2019. 11. 2. 23:35

 

 주산지와 주왕동천길을 걷고 잠시 시간이 있어서

대전사경내를 둘러보았다

가을의 한가운데에 들어있는 주왕산 대전사는 많은 사람들로 북적여서

사진을 남기기에는 어려운 점이 많다

금방 또 올 것 같지만 약속을 잡을수없어서 부지런히 경내를 둘러보았다

 

 

 

 

대전사大典寺

 

시대:고대/삼국                       
건립시기: 672년, 919년                

성격:사찰  

유형:유적 

소재지 :경상북도 청송군 부동면 상의리 200                       
종교·:철학/불교                       
요약  경상북도 청송군 부동면 주왕산(周王山)에 있는 남북국시대 통일신라의 승려 의상 관련 사찰.

 

내용 

대한불교조계종 제10교구 본사인 은해사(銀海寺)의 말사이다. 672년(문무왕 12) 의상(義湘)이 창건하였다는 설과

919년(태조 2)에 주왕(周王)의 아들이 창건하였다는 설이 있다. 그 뒤의 자세한 역사는 전래되지 않고 있으나,

조선 중기 실화(失火)로 전소된 뒤 중창하여 오늘에 이르고 있다.
현존하는 당우로는 보물 제1570호로 지정된 보광전(普光殿) 이외에도 명부전(冥府殿)·산령각(山靈閣)·요사채 등이 있다.

명부전 안에 있는 지장삼존 및 시왕상은 경상북도 문화재자료 제469호로 지정되어 있다.
부속암자로는 백련암(白蓮庵)·주왕암(周王庵) 등이 있다.
유물로는 보광전 앞의 삼층석탑 2기와 사적비·부도(浮屠) 등이 있으며, 현재의 사찰 오른쪽 밭에는 우물을 메운 흔적이 있는데,

이 우물은 다음과 같은 설화가 전한다. 원래 이 절에서는 부처님께 올리는 청수를 매일 냇가에서 길어다가 올리고는 하였다.
이를 귀찮아한 승려들은 조선 중기 앞뜰에 우물을 파서 그 물을 길어 청수로 사용한 뒤 화재가 나서 절이 불타버렸다.

그 뒤 성지도사가 와서 이 절의 지세가 배가 바다에 떠서 항해하는 부선형(浮船形) 혈(穴)인데,

여기에 우물을 파니 배 바닥에 구멍이 뚫어진 격이 되었기에 불이 나서 절이 타게 되었다면서 우물을 메우게 하였다고 한다.

 

 

 

 

대전사 표지석과 입장료

대전사는 일주문과 사천왕문이 없다

주왕산 가는 길에 거쳐가는 길처럼 대전사 마당을 거쳐서 산으로 가는 사람들이 많다

 

대전사 마당에 들어서면 대전사를 지키는 장군처럼

거대한 주왕산 암릉이 먼저 눈에 들어온다

만산홍엽의 계절이라 한층더 울긋불긋 아름다운 절집의 풍경이지만

오늘은 아침부터 날씨가 흐려서 사진이 선명하지 못하다

그날의 모든 순간이 중요하므로 흐리면 흐린대로 순수하게 찍어서 보관하기로 했다





병풍같은 주왕산을 뒷배경으로 대전사 가람배치도

 

마당에 들어서면 정면에 삼층석탑이 있고 석탑뒤로 대전사 중심전각 보광전이 자리하고 있다

왼쪽으로 나란히 보이는 건물은 관음전이다

 

대전사 삼층석탑

이 건물 앞쪽 마당에 석탑 하나가 있다.

많은 부분의 탑재가 없어져 최근에 새로 해 넣고 복원하였는데, 이 탑이 있어서  이 절의 연륜이 통일신라시대까지 거슬러 올라감을 알 수 있다

 

 

삼층석탑의 기단석 인물

기단석에는 다양한 인물이 새겨져있다

 

보광전

청송 대전사 보광전(靑松 大典寺 普光殿.보물  제1570호 .경북 청송군 부동면 공원길 226 (상의리))

대전사는 신라 문무왕(文武王) 12년(672) 의상대사(義湘大師)가 창건하였다고 전하며,

보광전은1976년 중수 시 발견된 상량문에 의하여 그 건축년대(1672년, 강희 11년 임자 5월초 119일, 현종 13년)가 밝혀져

임진왜란 때 불탄 것을 조선 현종 13년(1672)에 중창하였음을 알 수 있다.
청송 대전사 보광전의 건물 구조는 화강석 기단위에 화강석 초석을 놓고 약간 흘림이 있는 원주를 세워 구성된 정면3칸, 측면3칸의 건물이다.

지붕은 전면에만 부연을 단 겹처마의 맞배지붕이고, 구조는 2고주 5량가구이며,

다포계 양식으로 외 2출목 3제공, 내 2출목 3제공을 이루는데 전면은 앙설형이고

배면은 교두형으로 되어 있어 조선 중기 이후 목조건축양식의 특징을 보여주고 있다.


청송 대전사 보광전은 건축연대가 명확한 조선중기 다포양식의 목조건물로서 공포양식 등에 있어서 중기의 특성을 잘 나타내고 있으며,

특히 내부단청과 벽화는 회화성이 돋보이는 빼어난 작품으로 건축당시의 원형이 비교적 잘 보존되어 있는

조선중기 불교미술의 중요한 자료로서 국가지정문화재(보물)로서 역사적, 예술적, 학술적 가치가 충분하다. (출처:문화재청)

 

 

 

보광전은 보물 제 1570호이다

보광전은 임진왜란때 불탔던 것을 조선 현종 13년인 1672년에 보수해 오늘에 이른다

대정사 보광전 내부에는 자비의 부처인 아미타불을 모시고 있다

공포의 모양은 조선 중기 이후 목조 건축 양식의 특징을 잘 보여주고 있다


보광전 내부

내부단청과 벽화는 회화성이 돋보이는 빼어난 작품으로 건축당시의 원형이 비교적 잘 보존되어 있는

조선중기 불교미술의 중요한 자료로서 국가지정문화재(보물)로서 역사적, 예술적, 학술적 가치가 충분하다. (출처:문화재청)



보광전 내부

석조여래삼존불(문수보살 석가여래좌상, 보현보살)


왼쪽 관음전과 오른쪽 보광전

 

 보광전옆 관음전




관음전 내부

관음전은 관세음보살을 주불로 모신 불전이다

보살을 모신 전각으로 자비의 화신인 관음보살이 중생의 고뇌를 씻어준다

관음전은 관음보살이 모든 환난을 구제하는 보살일뿐만 아니라 그가 세운 서원이 중생에게 이롭고,

불가사의한 인연과 신력으로 중생을 돕는다는 믿음때문이다

관음보살의 보관을 자세히 보면 부처의 모습이 새겨져 있다

이는 아미타불이다

아미타불은 관음보살의 스승이다



관음전에서 바라본 대전사 풍경


관음사와 보광전 축면모습

그뒤로 수선당과 봉향각이 있다



 관음전 뒷쪽의  대전사 수선당 脩禪堂

몸과 마음을 참선하는 수선당


대전사 봉향각 奉香閣

봉향각앞에 이르니 스님이 문열고 차한잔하고 가시게...할것 같은 느낌이다

봉향각 편액에서 차향기가 흐르는 것 같다


 

 보광전 오른쪽 뒷편 산령각山靈閣




대전사 명부전冥府殿

 사찰에서 저승의 유명계를 상징하는 불교건축물.

유명계의 심판관인 시왕(十王)을 봉안하고 있으므로 시왕전(十王殿)이라고도 하며,

지장보살(地藏菩薩)을 주불(主佛)로 봉안하고 있으므로 지장전(地藏殿)이라고도 한다.

이들 중 주존불인 지장보살은 불교의 구원의 이상을 상징하는 자비로운 보살로 모든 인간이 구원을 받을 때까지 자신은 부처가 되는 것을 미루겠다는 대원을 세웠고,

천상에서 지옥에 이르는 육도(六道)의 중생을 낱낱이 교화시켜 성불하도록 하는 역할을 맡았기 때문에, 명부전은 조상의 천도를 위한 근본 도량으로 널리 이용되고 있다.

또 시왕은 지옥에서 죽은 자가 지은 죄의 경중을 가리는 10명의 왕이며,

일반적으로 대표적인 지옥의 왕이라고 생각하는 염라대왕도 이 10명의 지옥왕 가운데 다섯번째 왕이다.


원래 불교에서는 사람이 죽으면 그날로부터 49일까지는 7일마다,

그 뒤에는 100일·소상(小祥)·대상(大祥)까지 열 번에 걸쳐 각 왕에게 살아 있을 때 지은 선악의 업을 심판받게 된다고 하여

죽은 사람의 명복을 위하여 절에서 재(齋)를 모시게 된다.


이 때 명부전에서 재를 모시게 되는 까닭은,

지장보살의 자비를 빌려 시왕의 인도 아래 저승의 길을 벗어나 좋은 곳에서 태어나게 하고자 하는 데 있다.

명부전에 봉안하는 후불탱화는 소재회상도(消災會上圖)로, 지장보살 뒤에는 지장탱화를 봉안하고 시왕 뒤편에는 명부시왕탱화를 봉안한다.

궁극적으로 이 명부전은 지장신앙과 명부시왕신앙이 결합되어 불교적으로 전개된 법당이다.

명부의 시왕은 일차적으로 불교의 수호신으로 신중신앙(神衆信仰)에 속해 있었지만,

나중에 시왕이 지니고 있던 원래의 모습인 명부 심판관의 성격이 다시 강조됨에 따라 독립된 것이 명부전이다.


대전사 명부전 내부

 대전사 명부전에 봉안되어 있는 불석(佛石)제의 지장삼존상과 시왕상 일괄로,

지장삼존상(3軀), 시왕상(10軀), 판관(2軀), 사자(1軀), 금강역사상(2軀) 등 모두 18구로 구성되어 있다.

이 가운데 지장삼존상과 시왕상은 이미 경상북도 문화재자료로 지정되어 있으며 나머지 5구는 미지정 상태이다.

도명존자와 무독귀왕에서 발견된 조성발원문에 의하면, 1703년에 수연(守衍)이 수화승으로 조성하여 대전사 명부전에 봉안하였음을 알 수 있다.

수연은 17세기 대표적 조각승인 승호(勝湖)의 제자인데,

이 불상들은 수연이 제작한 작품 가운데 현전하는 가장 오래된 예로서 조선시대 불교조각사 연구에 중요한 학술적 의미를 지닌다.

조성발원문을 통해 조각가, 제작연대, 원 봉안처를 분명히 알 수 있을 뿐만 아니라

작품 상태 또한 양호하므로 불상(18구)과 조성발원문(2매)을 일괄하여 유형문화재로 지정한다.[


보광전 오른쪽으로 위치한

응진전과 수월당

응진전應眞殿

사찰에서 석가모니를 본존으로 모시면서 그 제자들에 대한 신앙세계를 함께 묘사한 불교건축물. 당우

석가모니를 중심으로 좌우에 아난(阿難)과 가섭(迦葉)을 협시로 모시고,

다시 그 주위에 16나한상을, 끝부분에 범천(梵天)과 제석천(帝釋天)을 함께 봉안한다.

때로는 아난과 가섭 대신에 미륵보살과 갈라보살(羯羅菩薩)을 안치하여 삼세불이 이루어지게 배열하는 경우도 있다.

이와 함께 안치되는 16나한은 수행이 완성되어 이미 성자의 위치에 오른 수많은 아라한(阿羅漢)들 중 말세(末世)의 중생에게

그 복덕을 성취하게 하고 정법(正法)으로 인도하게 하겠다는 원(願)을 세운 성자들이다.

이들이 일찍이 많은 영험담과 함께 민간에서 크게 신봉되어 나한신앙을 형성하게 됨에 따라 사찰 중요 당우의 하나인 응진전에 봉안된 것이다.

후불탱화(後佛幀畫)로는 주로 영산회상도(靈山會上圖)나 16나한도가 많이 봉안된다.



응진전 내부

 

 스님들의 요사채 수월당



대전사 보광전 맞은편의 탐진당(探眞堂, 종무소)


탐진당 주련




 

 회연당(會緣堂)


새로 짓고 있는 범종루

아직 단청을 칠하지 않아서 뭔가 허전한 느낌이다


범종루 편액


마당 돌수조에 띄워놓은 국화꽃이 예뻐서...

철이 지나서 연꽃은 지고 없나보다


대전사 마당의 돌탑


주왕산을 오면서 대전사마당을 여러번 지났지만

이제사 대전사 전각을 이리저리 살펴보았다

항상 산행위주로 마음만 불가에 닿아있다보니 마음과 행동으로 합장을 하지 못했었다

부처님은 언제나 내곁에 있으리라는 믿음과 다 이해해주리라 생각했다

다음에도 또 그런마음으로 바쁘게 지나게 되겠지만

이렇게라도 대전사에서 부처님의 마음이 닿아 있는 전각을 살피고 나니 조금은 편해진다

2019.11.2. 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