왕곡마을 중요 민속문화재 제235호
통일전망대 -화진포-그다음 도착한 곳이 고성의 왕곡마을이다
강원도의 대표 여행지는 제법 많이 알고 있다고 자처를 했었는데
왕곡마을을 알게 된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산을 좋아하다보니 민속자료 쪽에는 관심을 두지 않아서 눈에 들어오지 않았던 것 같다
이번은 산행이 아니고 여행 삼아 온 것이니 둘러보기에 딱 좋은 곳이라 여기고 마을을 둘러보기로 했다
감명 깊게 보았단 영화 '동주'를 이곳에서 찍었다고 하니 더욱 관심이 가는 곳이다
강원 고성군 죽왕면 왕곡마을길 36-13
주소 죽왕면 오봉리 355 (지번)
033-631-2120
입장료는 없고 마을 입구에 주차를 하고 마음 가는 데로 이곳저곳 둘러보면 된다
하나의 마을처럼 보이지만
윗말은 함씨네 마을
아랫말은 최씨네 마을
그렇지만 한동네 사람처럼 사장 소박하고 정답게 살았던 마을이라 한다
동주를 찍었던 한옥과 한과를 만드는 곳... 그리고 정미소가 있다
골목골목 둘러보며 걷노라면 고향마을에 온것처럼 편안할 것이다
산이 빙둘러쳐져있고 제법 크게 형성된 마을이다
마을 입구에 왕곡마을에 대한 안내판이 서있다
고성 왕곡마을 중요민속문화재 제235호(2000.01.07) 송지호 북쪽에 들어선 왕곡 전통마을은 강원도 북부해안 지방으로 피서여행을 갈 때 꼭 한번 들러볼만한 곳이다. 해변과의 거리는 불과 1.5km인데 묘하게도 마을에서는 파도소리를 들을 수 없다. 다섯 봉우리로 이루어진 산들이 마을 둘레를 에워싸고 있기 때문이다. 이처럼 산들이 에워싸고 있는 덕에 한국전쟁 때에도 대부분의 집들은 폭격을 피할 수 있었다. 그리하여 오늘날까지도 고택들이 고스란히 보존되어 전통마을 분위기를 잘 간직하게 된 것이다. 안동 하회마을이나 순천 낙안읍성 마을처럼 규모가 큰 것도 아니고 번듯한 외관을 갖춘 집들이 많은 것도 아니지만 일단 마을 안에 들어서면 과거로의 시간 여행에 빠져든 듯한 느낌이 든다. 마을 어귀에 들어서면 대형 안내판을 끼고 있는, 수령이 150여 년을 넘은 노송 거목 10여 그루가 솔향을 뿜으며 여행객들을 반기고 있다. 마을에 거주하는 주민은 총 50가구이고 기와 32동, 초가 9동이 있다. 왕곡마을에서 순메밀국수집을 꾸려나가는 함승본씨는 "이 동네가 그리 부자 동네도 아닌데 기와집이 제법 많았던 것은 더 안쪽의 구성리 마을에 기와를 만드는 가마가 있었기 때문"이라고 설명한다. 이곳 기와집들은 방과 마루, 부엌과 외양간이 전부 한데 붙은 강원 북부 지방의 고유 가옥 구조를 보여주고 있다. 이런 구조는 추운 겨울이 긴 지방에서 찾아볼 수 있는 양식이다. 마을 위쪽에는 양근 함씨, 아래쪽에는 강릉 최씨가 집단으로 모여사는데 함씨가 최씨보다 조금 더 많다. 그밖에 전씨와 김씨 성을 가진 이가 각각 2가구, 박씨가 1가구로 구성되어 있다. 이곳은 효자각이 2개나 있는 효자 마을이기도 하다. 옛스런 분위기를 간직한 마을이라 때때로 드라마나 영화의 촬영 무대로 등장한다. TV 문학관 - 홍어를 비롯 배달의 기수 등 다수의 반공 영화가 이곳에서 촬영되었다. 마을 사람들은 엑스트라로 나선 경력들을 자랑하기도 한다. 왕곡마을 사람들의 주업은 논농사. 작게는 1천 평, 크게는 1만 평 정도의 논농사를 짓는다. 4년 전만 해도 감자를 많이 경작했지만 판로가 없어 지금은 식구들 먹을 정도로만 재배한다. 해풍이 불어오는데다 일교차가 심한 기후 탓인지 잡곡 농사도 잘 안 돼서 밭에서조차 밭벼를 재배한다. 왕곡마을 방문을 마치고 가볼만한 인근 해수욕장으로는 송지호, 삼포, 백도해수욕장 등을 들 수 있다. 특히 백도해수욕장과 삼포해수욕장 중간에 들어선 자작도 해수욕장은 최근에서야 이름이 알려지기 시작한 피서지다. 동해안의 해수욕장 치고는 해변 길이가 4백m 정도로 짧은 편이지만, 내륙쪽으로 활처럼 깊게 휘어들어 수심이 얕아 익사사고 한번 없었다고 민박집 주인들은 자랑한다. 바다로 1백m를 나가도 깊이가 어른 가슴 정도에 불과하다. 가족 단위 피서지로 인정을 받은 뒤 최근에는 해변가에 콘도식 민박집들이 여럿 들어섰다. 2004년부터 10월 중순 "고성왕곡마을 민속체험축제"가 개최되어 과거로의 여행을 가족과 함께 즐길 수 있다. |
꼭 올것이라 기다렸던 것처럼 마을 입구에는 허리 굽은 노송이 반기고 있었다
오래된 마을로 두런두런 이야기를 나누며 들어섰다
마을약도가 있지만
어디를 가겠노라 지정한 것이 아니니
마음 가는 데로 발가는데로 걷다가 집으로 돌아가면 되는 곳이다
이곳은 초가집 5채 와가3체를 한옥체험으로 운영하고 있은 곳이라 한다
집집마다 이름을 지어 두어서 이정표를 보고 찾아가야 하지만
우리는 마을 구경을 온터라 이곳저곳 마음 가는 데로 걸어볼 요량이다
특별히 설명할 필요가 없다
기와집과 초가집이 어우러져 있는 왕곡마을
옛 마을 이긴 하지만 양반마을이 아니라고 거창한 가옥은 없는 곳이다
기와집이 많은 것은 근처에 기와를 굽는 마을이 있기 때문이라고 한다
한옥체험을 할 수 있는 마을이라서 찾는 사람이 많은 곳이라고 한다
평민들이 모여 살았던 마을이다 보니 담장이 없는 집이 많고
평민들의 마음처럼 오밀조밀 소박하게 모여 살았다
옛날 옛날 한 옛날에 이 땅에 처음 사람이 집을 짓기 시작했을 때 집의 중심은 부엌이었다.
동그랗게 생긴 움집 한가운데 화덕을 만들고, 여기서 밥을 짓고 겨울 추위를 녹였다.
가족이 모두 불가에 둘러앉아 마주하고 있으니 부엌일에 여자와 남자가 따로일 수 없었다.
남녀가 평등한 시절이었다.
하지만 세월이 흐르고 흘러 문명이 발달하고 문화가 정교해지면서 부엌은 집의 변두리로 밀려나기 시작했다.
조선 시대로 오면 부엌은 안채의 한 귀퉁이로 완전히 밀려나는 처지가 되고 만다.
그리고 높은 사랑채를 지어 올린 사내들은 집의 중심을 차지하고 앉아 거만하게 수염을 쓸어내렸다.
그것이 우리가 아는 전통 한옥이다.
그런데 오래전 집의 역사가 시작되던 그때처럼 부엌이 집의 중심을 차지하고 있는 곳이 있다.
달팽이집처럼 휘휘 감긴 강원도 한옥
왕곡마을은 양반이 아닌 양민이 살아온 곳이어서 양동마을의 향단이나 관가정처럼
이 집만이 특별하다 할 만한 집이 없고 모두 그만그만하다.
특별히 어느 집을 내세워 집안의 내력과 건축적인 의미를 미화할 필요가 없는 민속 주택이니,
굳이 어느 한 집을 국가 문화재로 지정할 까닭도 없었다.
마을 전체를 중요 민속문화재 제235호로 지정한 연유다.
그래서 한옥을 하나하나 떨어뜨려 감상하기보다는 마을 전체를 하나로 묶어,
그 안에서 이루어지던 삶을 더불어 감상하는 편이 좋다.
한옥체험을 위해 찾아오는 분들에게는 요긴한 이정표
한옥체험을 할 수 있는 가구는 8가구
처음 온 사람들을 위해 체험 가구 이정표를 만들어 두었다
왕곡마을 큰상나말 집
왕곡마을 집은 거의 큰상나말집과 같은 구조다.
한 지붕 아래 방, 고방, 마루, 부엌, 외양간이 통으로 들어간 양통 집이다.
대문 없이 앞마당이 훤히 트여있는 것도 낯설게 보인다
왕곡마을의 재난방지 및 소방 방지 시스템 설치가 완료돼
와가인 ‘큰상나말 집’, 초가인 ‘성천 집’에서 아궁이에 불을 지피는 땔감 체험과 아랫목 찜질체험이 추가됐다.
숙박체험은 왕곡마을 홈페이지(www.wanggok.kr)를 통해 온라인 예약제로 운영되며, 가옥별로 숙박료는 성수기(해변운영 기간) 5만∼10만 원, 그 외 기간 2만 5000∼5만 원이다.
카드사용도 가능하다고 한다
시인 윤동주
바람과 별과 시
나라를 생각하는 시인
감명 깊게 보았던 영화였는데 이곳에서 찍었다고 한다
윤동주가 살았던 북간도 생가의 배경이 된 곳이다
별을 생각하게 하는 시인 윤동주
이곳이라면 여름밤 초롱초롱한 별을 하늘 가득 담아놓고 감상할 수 있을 것 같다
왕곡마을 부엌 운 산간지방이어서 부엌을 비교적 크게 만들어 겨울과 봄에 불어대는 찬바람을 피하여 집 안에서 일할 수 있게 했다. 그러지 않았다면, 살을 에고 지나가는 바람과 어울려 살기가 쉽지 않았을 것이다. 부엌 안쪽에 붙은 뒷문을 밀고 나가면 뒷마당이다. 뒷마당에는 꽤 높은 담장이 둘러쳐져 있다. 북풍을 막고, 집안 살림을 위한 최소한의 사적인 공간을 뒷마당으로 확보한 것이다. 말하자면 이곳의 담장은 재산을 지키기 위해 사람을 대상으로 쌓아 올린 것이 아니다. 그렇다고 북풍을 막기 위한 것만도 아니다. 담장으로 가려진 뒷마당에는 여름나기에 꼭 필요한 과학이 숨어 있다. 뜨거운 앞마당과 그늘진 뒷마당의 기압 차이를 유발해서 집 안으로 바람을 불러들인다. 물론 집 안에 공기가 자연스럽게 들고나게 하는 환기통 구실도 한다. 방이 겹쳐진 양통집이어서 방 안의 공기 순환이 제대로 되지 않으면, 건강을 해치기 쉽기 때문이다. 이 모든 것의 중심에 부엌이 있다. 부엌문이 안과 밖을 연결하고 집 안의 어디든 부엌을 지나야 갈 수 있다. 여성의 발언권이 세지면서 주방이 집의 중심으로 변해가는 요즘의 주거문화가 이곳에는 조선 시대 내내 있었던 것이다. 때때로 한옥이 가진 여성성을 이야기했지만, 생활 속에서 만들어 낸 왕곡마을의 한옥이야말로 우리 집이 가진 여성성의 원시적인 모습을 잘 보존하고 있다. |
다시 마을길로 주욱 올라가 보기로 한다
위쪽으로 올라가면 한과를 만드는 집이 있다고 한다
왕곡 한과를 만드는 집은 마을 가장 윗부분에 자리하고 있다
시식을 해보니 맛있어서
만 원짜리 한 박스를 사서 오고 가는 길에 간식거리가 되었다
왕곡 한과는 고성 왕곡 민속마을의 전통한과 기능보유자인 김명자 씨로부터 한과 제조기술을 이어받은
막내아들과 며느리가 만들어낸 맛과 품질이 우수한 전통 한과다.
어르신들뿐 아니라 어린이와 젊은이들에게도 각광받고 있는 왕곡 한과는 고급 물엿을 사용해 달지 않고,
멥쌀, 찹쌀, 흑미 등의 주재료를 모두 국내산으로만 사용한다.
고급스럽고 부담 없는 맛으로 선물용으로도 인기가 좋은 제품이다.
판매처 왕곡마을
- 주소 강원도
- 문의/안내(033) 637-3429
- 홈페이지 www.wanggok.kr
- 정보 등록 2014.08.11.
- 정보 확인 2017.11.29.
유명 연예인들이 한과체험을 했나 보다..
한과체험 방송을 타고 영화를 찍은 곳인데
이토록 모르고 지냈다니
내 인생은 산만 미쳐서 살았던 인생인가 보다
왕곡 한과에서 내려다본 왕곡마을
이제 아래로 내려가서 저 아랫마을까지 걸어가 보기로 했다
윗마을에서 내려다본 왕곡마을
북방식답게 겨울을 대비한 장작이 가득하다
같은 담장 안에 초가집과 기와집이 공존하고 있다
우람해서 볼만한 굴뚝 이 마을에서 여성이 한옥의 중심이었다는 사실은 굴뚝에서도 엿볼 수 있다. 남쪽 지방에는 굴뚝이 아예 없거나 매우 낮아 볼품이 없지만 이곳의 굴뚝은 우람하고 제법 아름다워 볼만하다. 서양 문화에 익숙한 우리에게는 굴뚝이 남성을 연상시키기도 하지만, 애초 우리나라에서 굴뚝은 남성보다는 여성을 상징했다. 연기의 색깔이 젖빛이라는 것도 굴뚝의 여성성을 이해하는 데 도움이 된다. 왕곡마을의 굴뚝은 이곳 한옥의 구성물 중에서 조형성이 가장 크다. 나름대로 독특한 조형미도 갖추어 집집마다 큼지막하게 붙은 굴뚝은 이 마을의 상징처럼 여겨진다. 부엌이 집 안에서 여성의 위치를 나타낸다면, 굴뚝은 집 밖에서 여성의 위상을 보여 준다. 궁궐 굴뚝이 가지는 정교함은 없지만 규모만은 그에 못지않다. 굴뚝을 기와로 꾸미고, 끝에는 항아리까지 씌워놓아 장식성도 충분히 갖추었다. 한옥의 아궁이는 난방과 부엌일을 한꺼번에 해결한다. 그렇기에 굴뚝의 규모와 높이로 그 집의 열 이용 상황을 진단할 수 있다. 산골의 한옥에서는 부엌의 연기를 빼기 위해 부엌 쪽의 합각을 비워 놓는 것이 보통이지만, 이곳은 복원을 하며 합각을 메워 다양한 모습을 연출하고 있다. 합각과 굴뚝이 만드는 여러 가지 문양을 즐기는 것은 왕곡마을 기행에서 빼놓을 수 없는 볼거리다. |
한옥에는 저마다 표정이 있다.
한옥 감상은 그 표정을 읽어 내는 일이다.
왕곡마을의 한옥은 방들이 사슬처럼 이어지는 오밀조밀함이 특징이다.
그 안에서 숨 쉬던 우리 민초의 애환을 읽어 내는 것은 이곳 한옥을 감상하는 의미를 더 크게 한다.
때로 그 속에 소 울음소리가 섞이기도 했을 것이다. 양민의 생활 속에서 생겨난 집이니 집 어디에서도 화려함을 느낄 수는 없다.
나무가 풍성한 산속에 살다 보니 대갓집처럼 큰 부재로 집을 지어 내부 구조가 우람하기까지 하지만, 임부(姙婦)가 양쪽 손에 무언가를 잔뜩 들고 등에 아이까지 들쳐 업은 모습이라고 할까?
생활의 냄새가 짙게 배어 있다.
왕곡마을 한옥에서 도시의 성형미인을 기대할 수 없지만, 수수한 여인에게서 느껴지는 담백함만은 기대해도 좋다.
그 담백함은 어쩌면 이성계를 반대했던 함부열이 자기가 죽은 후에도 자식들이 이성계에게 해코지당하지 않기를 바라며 이 깊은 산중에 자리를 잡았던 마음에 닿아 있다.
그의 바람대로 후손들은 출사를 하지 못했지만 자자손손 이어져 왔다. 어쩌면 권력무상의 깨우침이 핏속으로 전해 내려온 것인지도 모른다.
동주 촬영을 했던 정미소
평야가 제법 많은 마을인가보다
정미소까지 갖춘 마을이다
정미소 내부
양곡마을
윗말 양근함씨
아랫말 강릉최씨
서로 사돈을 맺으며 지냈다고 하니
이보다 더 정답게 살았던 마을이 있을까
가족들과 다시 온다면 이마을의 따뜻한 이야기며
특별히 큰 굴뚝이야기며 오손도손 이야기를 나누며 걷고 싶다
한시간 남짓 마을을 둘러보고 오늘의 숙소 송지호 해변으로 출발했다
오호 이곳에 두백산이 있었나보다
산이름만 보면 눈이 번쩍 뜨인다
1킬로도 안되는 산정상 가고도 싶은데 저무는 해를 막을수 없어서 아쉬운 마음을 접고
숙소로 향했다
송지호 서낭바위 다음편에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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