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슴 한쪽 비워둔다면

photostory- 路

2021.11.13~14 진천여행 농다리

kyeong~ 2021. 11. 30. 23:43

어제 김유신 사당과 보탑사 그리고 만뢰산을 걷고

하룻밤 노숙을 했다

공기좋은곳에서 영면에 들듯 숙면을 하고 나면 몸이 새털처럼 가볍다

진천의 가장 유명한 곳 농다리를 아니 다녀갈수가 없다

1000년의 세월과 역사와 바람과 공기가 느껴지는 이곳

다른 돌다리와 달리 위험하지도 물에 빠질 염려도 없이 넓직한 돌다리이다

 

진천농교 鎭川籠橋

 

충청북도 진천군 문백면에 있는 고려전기 임씨 선조가 축조한 것으로 전해지는 다리. 석교. 시도유형문화재

고려
충청북도 시도유형문화재 제28호
고려시대
다리, 석교
유적
충청북도 진천군 문백면 구곡리
예술·체육/건축
길이 93.6m, 교폭 3.6m, 교각의 두께 1.2m, 교각간(橋脚間) 80㎝. 충
청북도 유형문화재 제28호. 『상산지(常山誌)』에 의하면,
이 다리는 고려 초에 임씨 선조인 임장군이라는 인물이 만든 것이라 한다.

이 농다리는 당초 28수(宿)를 응용하여 28칸이었으나, 양측으로 2칸씩이 줄어 현재는 24칸이다.
교각에 사용된 석재는 대체로 30×40㎝의 사력암질(砂礫岩質)의 자석(紫石 : 붉은 돌)을 물고기 비늘처럼 쌓아올렸으며,
석회(石灰)로 보강하지도 않았으나 장마에도 유실됨이 없이 원형을 유지하고 있다.

교각 위에 놓은 판석은 70×170㎝, 두께 23㎝ 내지 95×175㎝, 두께 20㎝ 정도의 큰 돌판을 1매로 놓거나, 65×130㎝, 두께 16㎝의 것 2매를 나란히 놓았다.
교각에서 수면까지 76㎝, 수면에서 하상까지의 수심이 76㎝인데, 옛날에는 하상이 낮아 어른도 다리 밑을 서서 통과하였다고 하나 현재는 하상이 높아졌다.

따라서 하상을 발굴해보지 않고서는 교각의 길이나 기반부(基盤部)를 확인할 수 없으나, 판석 밖으로 양측에 교각이 1m 정도씩 내놓은 축교방법이 장마에 잠수되면서도 유실되지 않았던 것으로 보인다.

교각을 작은 돌로 쌓은 방법이나, 그 교각이 유실되지 않도록 축조한 토목공학적인 배려 등 전국적으로 유례가 없는 매우 귀한 석교이다.

사력 암질의 붉은 돌을 쌓아서 만들어진 다리로, 우리나라에서 가장 오래되고 긴 돌다리이다. 다리는 사력암질의 자석을 쌓아 놓은 다리로서, 28칸의 교각이다. 지방유형문화재로서 길이는 93.6m, 폭 3.6m, 교각 1.2m 정도이며, 교각 사이의 내폭은 80cm 내외이다.석회등을 바르지 않고 그대로 쌓았는데도 견고하며 장마가 져도 유실됨이 없이 원형을 유지하고 있다. 이 다리는 고려 초엽시대의 권신, 임장군이 놓았다는 돌다리로 규모도 크고 축조술도 특이하다. 정자, 산책로, 초평저수지까지 연결된 수변데크 등이 조성되어 새로운 관광명소로 자리잡았으며, 신비로운 다리모양과 주변풍경이 잘 어우러져 드라마 촬영지로도 등장한다.

 

[농다리에 관한 전설]

* 농다리

임장군은 매일 아침 세금천에서 세수를 하였는데, 몹시 추운 겨울 어느날 세금천 건너편에 한 젊은 부인이 내를 건너려는 모습을 기이하게 여겨 여인에게 물으니 여인이 답하기를 아버지가 돌아가셔 친정으로 가는 길이라고 하니, 장군은 여인의 지극한 효심과 그 모습을 딱히 여겨 용마를 타고 돌을 실어 날라 다리를 만들었다고 한다, 이 때 용마는 너무 힘에 겨워 그 자리에서 쓰러져 죽었다고 하며, 용마의 바끈이 끊어져 떨어진 돌을 그대로 두었는데, 이것이 용바위(쌍바위)라고 전해지고 있다

* 임연 오누이 힘내기 설화옛날 굴티 임씨네 집안에서

아들, 딸 남매를 두었는데 둘 다 훌륭한 장사라서 서로 죽고 사는 내기를 하였다. 아들(임장군)은 굽 높은 나무신을 신고 목매기 송아지를 끌고 서울로 갔다가 오기로 했고, 딸은 농다리를 놓기로 하여, 치마로 돌을 날라 다리를 놓기 시작했다. 그런데, 어머니가 가만히 보니 아들은 올 기미가 없고 딸은 거의 마무리가 다 되어갔다. 그래서 어머니는 아들을 살릴 묘책을 내어 딸에게는 뜨거운 팥죽 등 먹을 것을 해다주며 일을 늦추게 하였다. 결국 아들이 먼저 돌아온 것에 화가난 딸은 치마에 있던 돌을 내리쳤는데, 아직까지도 그 돌이 그대로 박혀있다. 약속대로 딸은 죽게 되었고, 딸이 마지막 한 칸을 놓지 못해서 나머지 한 칸은 일반인이 놓았다. 역사적으로 여장수가 놓은 다리는 그래도 있는데, 일반인이 놓은 다리는 장마가 지면 떠내려 간다고 한다.

농다리를 건너가면 거미줄처럼 길이 얼기설기 많다

처음에 왔을때에는 농다리를 건너 바로 살고개를 넘어서 초명저수지 데크길을 걸어서 하늘다리로 갔다가

다시 능선을 타고 농암정을 거쳐 진천 농다리로 돌아왔다

이번에는 오른쪽 천년정을 거쳐 미르숲길 그리고 임도를 거쳐서 살고개로 돌아와 초명저수지 데크길을 걸어볼량이다

많은 사람들이 찾아오니까 점점 길을 정비하고 볼거리를 만들어가는중이다

메타쉐콰이어길을 조성해두어서 그길도 잠시 걸어보기도 했다

어찌보면 길이 보이는데로 마구 아무렇게나 걸어도 좋은 곳이다

정석이 없는 마음데로 걷기 길이라고 보면 좋겠다

 

미르숲길 천년정에서 바라본 초명저수지와 하늘다리

 

미르숲전망대에서 본 중부고속도로

 

미르숲전망대에서 임도길을 따라 하산하여 현대모비스 야외 음악당까지 올수 있다

 

미르숲에서 임도길을 따라 하산

초명호수 데크길로 가는 길

 

중간중간 숲길따라 보이는 호수

 

살고개에서 바로 산길로 올라가면 만나는 농암정

철새들의 풍경

 

농익은 가을빛과 호수

 

어부일까 낚시꾼일까

 

수변길을 따라 걷다보면 하늘다리가 나오지요

 

은빛으로 부서지는 가을 호수

 

생거진천 사거용인 하늘다리

 

다음에 참고하기 위해 둘레길 안내판을 찍어보고...

 

하늘길에서 다시 농다리로 되돌아갔다

편히 걸을수 있는 데크길 누구라도 걸을수 있다

관광객이 많아서 북적이지만

호수는 마냥 조용하다

 

다시 농다리로 돌아오는 살고개에 서낭당 나무가 옛날처럼 그대로 서있다

 

몇년전만 해도 이곳에 사람이 없었는데 그사이 많이 홍보가 되었나보다

사람들이 참 많기도 하다

 

사람이 너무 많다보니 혹여 떨어질까 걱정도 된다

 

농다리가 있는 미호천을 따라 메타쉐콰이어길을 조성해두었다

 

여기는 작은 돌다리

이다리야 말로 빠지지 않게 조심해서 건너야 한다

 

일박이일 벗들과 진천여행을 했다

함께 떠날 벗이 있다는 것

갔어도 또 갈 마음이 생기는 여행지가 있다는 것

이게 삶의 의미처럼 옹이가 박혀버렸다

진천여행을 마치고 진천 장터에서 순대국 한그릇씩 뚝딱하고 인천으로 슈웅~

2021.11.14 일 by gyeong~