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슴 한쪽 비워둔다면

photostory-山

20240107.일. 능경봉-고루포기산

kyeong~ 2024. 1. 9. 02:16

 

 

올겨울 들어 이 사람 저 사람 다 봤다는 상고대를 나는 못 봤다

상고대만 피해 다니는 겨울이다

남들 다 찍어오는 상고대를 못 봐서 샘도 나고 아쉽기도 하다

저녁뉴스에 대관령에 눈이 온다고 한다

능경봉을 간다는 산악회가 있어서 따라나서기로 했다

선자령 쪽이 더 맘에 들긴 하지만

능경봉과 고루포기산도 같은 줄기니 상고대를 볼 수 있으리라 예감했다

날씨가 영하로 급강하한다고 난리다

상고대를 본다는 설레임만 가득할뿐 다른건 문제가 되지 않는다

몇 겹으로 둘둘 껴입고 뒤뚱뒤뚱 새벽길을 나섰다

 

 

2024.01.07. 일. 날씨 맑음/영하 10도

산행코스:대관령 옛 휴게소-준공비-능경봉-행운의 돌탑-전망대-갈림길-오목골

산행시간:9시-14시(5시간)

산행거리:약 11킬로

 

 

영동고속도로 준공비

선자령을 수없이 드나드느라 익숙한 옛날 대관령

아흔아홉구비 옛길을 버리고

지금은 일곱 터널로 이어진 새로 난 고속도로가 있어서 

선자령이나 제왕산과 능경봉을 찾는 사람들이나 찾는 길이 되었다

 

 

준공비 앞에서 내려다본 옛 대관령 휴게소 풍경

하늘은 티 한 점 없이 푸르고

풍력발전 날개는 멈추어 있다

이때만 해도 거센 바람이 일 줄은 아무도 예측 못했다

어젯밤 예보에 대관령에 눈이 많이 온다는 소식만 듣고

무작정 온사람들이 많을 것이다

 

 

오늘은 오랜만에 능경봉과 고루포기산을 찍어볼 예정이다

설경과 알싸한 겨울 한기와 함께 이 겨울을 멋지게 누려볼 마음이다

 

 

제왕산과 능경봉 갈림길

오늘의 목적지는 능경봉으로...

 

 

휴게소에서 1.3km 온 지점

사람은 없는 것 같은데 초소가 하나 있다

능경봉까지는 대략 1km

눈이 많이 쌓인 것도 아니고 가뿐하게 갈 것 같다

 

 

능경봉가는 길에 

제왕산이 건너다 보인다

강릉으로 가는 옛길이 제왕산 허리를 돌아나가고 있다

 

 

눈이 온다고 해서 왔는데....

그림 같은 상고대가 기다릴 것이라 상상했는데....

눈이 온다는 예보가 있다고,

고지대라고,

상고대가 있는 것은 아닌가 보다

초입부터 바닥에 눈이 가득하지만 상고대는 일치감치 포기해야겠다

 

 

아이젠을 하고 걸으니 미끄럽지는 않으나

그래도 눈길이라 오늘은 조심을 많이 해야겠다

 

 

눈 쌓인 길 바위옆으로 돌아서

앞서가는 사람의 발자국이 오늘의 길라잡이다

 

 

상고대가 아니다

바람이 거친 곳마다

몰아친 눈이 나무에 붙어 있는 풍경이다

 

 

헬기가 내려앉을만한 공터

햇볕이 따스하게 내려앉는다

무심코... 이런 곳에서 하룻밤 노숙이 하고 싶은 생각이 든다

밤새 바람소리에 뒤척이더라도...

 

 

상고대는 없지만 이런 설경이라도 위안이 된다

 

 

출발한 지 2.4km

첫 번째 봉우리 능경봉 1123m

강릉시내가 훤히 내려다 보이는 전망 좋은 자리다

건너편 선자령은 1157m 

능경봉과 선자령은 높이는 별차이가 없다

휴게소가 800m 

약 300m 고도를 올라온 셈이다

 

강릉시내가 훤히 내다보이는 곳에서 

잠시 휴식을 한다

오늘 산행 중에 여기서만 휴식시간이 있었던 것 같다

바람도 없고 맑은 날씨덕에 오늘의 산행은 좋은 예감이 드는 날이다

 

 

딱 한그루 상고대

이나무라도 없었더라면 얼마나 허무했을까

 

 

산행시그널도 오늘의 풍경으로 끼워줬다

날씨가 좋은 날엔 모든 게 인심이다

저 멀리서 파도가 밀려올 것 같은 풍경이다

 

 

현 위치에서 다음 봉우리 고루포기산까지 이정표를 살펴 본다음....

 

 

능경봉에서 고루포기산까지는 4.8km

대략 2시간은 가야한하다

 

 

능경봉에서 내려서면

행운의 돌탑이 있다

여길 지나는 모든 산우들이여 늘 행복하소서

 

 

스패츠를 하지 않았지만

지금까지는 푹푹 빠지는 눈은 아니다

급히 나오느라 겨울 산행준비를 엉터리로 하고 나온 날이다

 

 

눈으로 덮여 있는 세상....

건너편에는 석병산줄기가 흘러가지만

잡목이 많아서 좀처럼 풍경을 내어주지 않는다

능경봉에서 고루 포기까지 이어지는 능선은 훤히 뚫린 풍경을 좀처럼 볼 수 없다

여름에 온다면 갖가지 야생화와 시원한 숲길이라서 걸을만하다

 

 

앞서가는 사람을 열심히 쫓아가는 날

가도 가도 눈, 눈, 눈

정신없이 쫓아가는데 점점 힘이 들기 시작한다

 

 

일곱 터널 영동고속도로

그중 첫 번째 터널이 보이는 곳이다

 

 

오르막과 내리막이 이어지지만

카메라 들고 쉬어갈 만한 풍경이 없다 보니

부지런히 걸을 수밖에 없다

그런데 이때부터 바람이 일기 시작하고 날씨가 점점 추워진다

모자를 썼지만 머리가 시려서 점퍼에 달린 모자를 더 뒤집어썼다

바람이 큰 파도소리를 내며 숲을 흔든다

 

 

선자령 쪽으로 가는 사람은 많지만

이쪽은 발길이 뜸한 산이다

날씨가 영하 10 아래로 떨어지고 체감온도는 15도라고 한다

날씨가 변덕을 부리니 쉬었다 가는 사람은 없고

부지런히 내달린다

배가 고파도 먹을 시간이 없다

 

 

벚나무치곤 제법 수령이 오래된듯하다

산행시그널이 걸려있으니 당산나무처럼 보인다

 

 

하늘을 보니 구름 한 점 없이 푸른데

날씨는 정오로 향해갈수록 점점 매섭다

 

 

전망대에 이르면 또 한 폭의 풍경을 만날 수 있으니 

더 힘내어 걷고 또 걷고...

능경봉과 고루포기산 사이가 대략 5km 정도이다 보니 제법 긴 구간이다

 

 

오르락내리락

눈길이라 제법 힘이 든다

거기다 아이젠을 신었지만 눈 깊이가 있다 보니 먹히지 않아 가끔 미끄러지기도 한다

가뿐하게 출발한 발걸음이 점점 무거워지기 시작한다

 

 

가다 말고.... 뒤돌아 본 능경봉

제법 많이 온 것 같은데

고루포기산은 나타날 기미가 없다

 

 

점점 눈의 깊이가 깊어진다

스패츠를 안 한 불편함....

신발 속으로 눈이 들어가기 시작한다

일행들이 얼마나 빨리 달리는지

신발을 다시 정비할 시간이 없다

 

 

근처에 연리지가 있다는데..

살펴볼 생각도 못하고 그냥 달려 또 달려...

 

 

드디어 전망대다

오름길이 묵직하지만

힘내어 영차영차

 

이구간 산행 중 내가 가장 좋아하는 곳이다

 

 

전망대

능경봉에서 고루포기산 산행 중

시야가 가장 좋은 곳

횡계들녘이 시원하게 펼쳐져 있다

 

 

멀리 선자령과 그 주변 풍력발전단지까지 훤하게 보인다

눈 덮인 고산지대의 횡계

주변이 산으로 둘러싸여 있지만

제법 넓은 평야지대를 형성하고 있다 

 

 

당겨보니 선자령 표지석까지 보인다

칼바람의 참맛을 보려면 선자령에 오르면 된다

벌거숭이 민둥산이라 바람이 제대로 지나가는 곳이다

눈 내린 선자령을 다녀와야 겨울맛을 제대로 보는 느낌이다

 

 

오른쪽으로 오늘 지나온 4.8km 거리의 능경봉이 보인다

 

 

어느새 성질 급한 일행들이 도망가고 없다

얼른 따라잡아야지

고루포기산까지는 대략 1킬로...

목적지까지 얼마 남지 않았다

 

 

그런데 눈이 푹푹 빠지기 시작한다

눈이 깊다

좀 고민이 된다

스패츠 없이 고루포기산을 가야 할까

거기다가 바람이 휘청 일정도로 점점 기세를 더한다

잠시 갈등이 오고 간다

눈이 발 속으로 들어가 동상이 염려된다

이때 바람소리는 거센 파도소리처럼 힘이셌다

 

 

고루포기산 500미터를 남기고 포기를 했다

위에 사진은 일행이 찍은 사진 빌려옴

 

 

고루포기산에서 보이는 풍경(빌려옴)

눈이 없는 계절

안반데기 고랭지 배추밭으로 유명한 곳이다

 

 

정상 500미터를 남기고 눈이 너무 많고

바람이 거세서 하산 결정

오목골로 내려가기로 했다

 

★혹여 이글을 보는 분

이곳으로 계절 불문 내려가지 말고

이지점에서 고루포기산 방향으로 200 더 진행하면

오목골 방향 하산길이 또 나온다

그 길이 하산하기에 훨씬 수월하다

잠시 착각으로 이 길을 선택하는 바람에 위험천만한 하산길이 되었다

잘 아는 길이라 여겼지만 순간의 선택이 아찔한 선택이 되기도 한다

 

 

나처럼 포기하고 하산하는 일행

 

 

우와...

하산길 예감이 좋지 않다

거의 러셀 수준이다

발걸음을 옮기기 힘들 정도다

거기다가 경사도 급하고

안전보호용 밧줄도 없다

 

 

눈이 깊다

요때까지만 해도 두려움은 없을 때다

 

그 후 70도 급경사에 

잡을 곳도 없고

아이젠은 속수무책이다

약 500미터가량은 엉덩이가 젖거나 말거나 미끄럼을 타고 하산을 했는데

 

 

중간즈음에서 앗찟할정도 무서운 사고가 있었다

앞서가던 이가 미끄러져내려가다가 나무를 잡고 겨우 멈쳤는데

나도 그 자리에서 미끄러지며 가속이 붙어서 아래로 마구 내려가는 것이다

아.... 눈 속에 처박혀 죽는구나를 생각했다

 20미터 정도 미끄러져 내려갔을까

다행히 아래에 있던 두 남자가 온몸을 나를 막아서 잡았다

1초 동안 죽는다는 생각을 했던 것 같다

하늘에서 보낸 사람 같았다

그 후 일어설 기력도 없이 후들거려서 미끄럼을 타며 겨우겨우 개울이 있는 곳까지 내려왔다

산을 다니면서 이렇게 무서운 경험은 처음이다

카메라 후두가 달아나고 스틱이 달아나고..... 엄청나게 무서웠던 순간이다

그날밤 가위에 눌려서 잠을 못 잘 정도였으니.

 

 

오목골 개울은 바람도 없고 참 조용하다

그냥 주저앉고 싶은 날이다

 

 

끝까지 나를 살피며 내려가준 산우

좀 전 급경사에 비해 편한 길임에도 발걸음이 부들부들 거 린다

 

 

눈 덮인 개울을 지나서...

 

 

잘못 디디면 개울로 떨어질 것 같은 길도 지나고...

 

 

휴 다 왔다...

나... 살아서 내려왔구나 

당분간 눈이 오는 날은 이 길을 다시는 안 올 것 같다

 

 

산행종료 오후 1시 50분

예상보다 40분 일찍 도착했다

고루포기산을 포기한 때문이다

오늘은 천지신명께 무조건 감사한 날이다

70도 정도 급경사에 안전시설이라고는 없는 눈길을 썰매를 타고 내려왔으니

이보다 아찔한 순간이 어디 있을까.

산에서 이렇게 사고가 나는구나.....

모든 신께 감사함을 전하고 이름도 얼굴도 기억나지 않는 나를 구해준 두 남자분

다음에 혹여 어디서 만날 수 있을지 모르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