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슴 한쪽 비워둔다면

photostory-山

20240818.일. 횡성 어답산

kyeong~ 2024. 8. 20. 13:52

 

최장 열대야를 기록하는 올 여름
집에 있어도 그늘에 있어도 어디한곳 시원하지 않다
동네 낮은산을 오르는데도
숨이 차서 몇번을 쉬어야 오를 수 있다
폭염의 장벽에 갇혀 바람하나 들어서지 못하고 있으니
부채질이 무색할정도 대단한 기세를 부린다
올 폭염은 보이지 않는 재난이다
 
이런 염천에 700고지나 되는 산을 가려니 조금은 걱정이 된다
가족들 걱정하는 마음을 헤아려서 가지 말아야 된다는 생각을 하면서도
등산 배낭은 입을 크게 벌리고 준비물을 하나 둘 삼키고 있다
산은 머리로 가는 것이 아니라 마음으로 가는 것
머리가 마음을 이기지 못하고 이른 새벽 몰래 밖으로 나선다
병지방 계곡에서 발이나 담글까 하는 심정으로 나왔지만
그 다짐이 지켜질지는 의문이다





어답산/ 梁該憬


이 더위에 산에 가느냐고
뒤통수를 때리는 말을 등지고
어답산에 간다
날씨가 덥다고 정든 이를 멀리할까
어답산은 몇 번 본 친구이고
환상적인 물안개를 선물로 받았었다
잊기 전에 내가 먼저 찾아가야지
찜통더위에 코를 박으면서도
참고 오르는 건
두 팔 벌리고 기다리는 장송이 있어서지
태양아 얼마든지 내게 오라고
장송 앞에서 두 팔 벌리고 있어야지
그동안 꺼내놓지 못한 속내는
건너편 호수에 물그림자로 띄우고
체온보다 더 뜨겁던 여름은
나무 등걸에 올려놓고
오늘은 칠월 보름날
만난 김에
평각의 자세로 벌건 보름달도 봤으면 좋겠다



 

2024.08.18. 일. 날씨 맑음(27~34도)
산행지:횡성 어답산(御踏山 장군봉·789.4m)
산행코스-횡성온천-선바위-삼거리-어답산장송 전망대-낙수대-장군봉-산뒤계곡-병지방계곡-어답산관광지
산행거리:약 6km
산행시간:09시 40~15시 30분(놀멍 쉴 멍, 식사시간, 물놀이 포함)
 
 

산행시작:횡성온천입구 힐스프링 앞
주소:강원특별자치도 횡성군 갑천면 외갑천로 585번 길 5-7
 
 

출발은 갑천면의 삼거리에서 시작되는데
갑천(甲川)이라는 지명은 태기왕이 피가 묻은 갑옷을 벗어
이곳 갑천면을 가로지르는 계천桂川에서 씻었다고 해서 생겨난 지명이라고 전해진다. 
삼거리(三巨里)는 산수목(山水木)이라 해서 큰 산, 큰 물줄기, 큰 나무를 뜻한다
 
 

힐스프링 앞
에어컨 빵빵한 버스에서 내리니
오전부터 열기가 후끈 달아오른다
아침에 나설 때 병지방계곡에서 쉬려고 했던 마음은 까맣게 잊고
산행팀으로 따라나섰다
 
횡성온천 방향으로 100미터쯤 올라가면
 
 

횡성 온천 앞 넓은 마당에 어답산 진입 등산로 안내판이 있다
 
 

마당을 가로질러 어답산 산행 시작
 
 

간이 화장실과 위험 표지판
 
화장실을 좀 떨어진 곳에 설치했으면 어떨까
진입로 바로 옆이라 좋아보이지 않는다
 
 

산행 초입부터 보폭이 맞지 않는 통나무 계단의 시작이다
하도 더운 여름이라
바닥을 보니
숲속이지만 습기라곤 없고 더위를 먹었는지 늘어져 있는 느낌이다
 
 

대략 1시간쯤 올랐는데
경사도가 급해서 코를 박으며 오르는 것 같다
산행거리도 짧고 높이도 그리 높은 편이 아니라서 
쉽게 마음먹고 올 수도 있지만
이산의 경사도는 정상까지 급하기만 하다
 
 

계단+계단+계단+ 급경사
이번이 세 번째 오지만
점점 더 힘들어진다
 
문득
경제학에서 과거의 생각으로 시대에 당하지 말자 했던 것이 생각나는데
나는 나이에 당하고 있다는 걸 절감했다
 
 

이런.....
대략 1km 올라오는데 1시간 10분 소모했다
나이에 정말 당하고 있는 것 인정
 
 

선바위
이산에는 벤치가 많다
짧지만 쉬어가지 않으면 안 되는 산이라
벤치가 있는 곳마다 여유를 가져야 한다
 
정상까지 얼른 올라가 이 지긋한 더위를 식히고도 싶겠지만
벤치마다 앉아서 녹색의 힘이 보내는 기운을 얻어낸다
 
 

저 단단한 바위도 등기대어 세월을 보내네
나의 등짝은 산이다
심심해도 산에 가고
마음이 답답해도 산에 가고
벗이 그리워도 산에 가고
 
참 많이도 산에 기대어 살고 있다
나의 등짝 산에게 고맙다고.... 쓰담쓰담
 
 

미니 칼바위 능선
 
그래도 손 내밀어 잡을 밧줄이 있으니 
도움이 된다
밧줄을 잡고 올라가는 재미를 느끼며 
한걸음 한걸음 정상과의 거리를 좁히고 있다
 
 

출발한지 거의 2시간이 되어가는 지점
여기서부터는 경사가 조금씩 힘을 뺀다
산골의 산이지만 
횡성댐으로 인해 호숫길이 생기고
횡성호수 인근의 어답산을 오르는 사람이 늘었다 
 
 

산행하면서 어찌나 힘들었던지 주변의 꽃을 살필 겨를이 없었는데
오늘 처음으로 인사하는 원추리꽃
"이 낭자는 더위도 안 먹나 봐
왜 이리 고운 거야"
 
 

오른쪽으로  저 멀리 태기산 방향으로 흰구름이 멋지게 장식하고 있다
사진만 봐서는 가을 하늘 분위기다 
계절이 아무리 기세를 부려도
시간을 이길수 없다
이미 저쪽 모퉁이 가을이 기웃거리고 있을 것이다
 
 

드디어 어답산의 가장 멋진 뷰를 자랑하는 어답산 장송전망대
이곳은 비박인들의 명소이기도 하다
정오로 치닫는 태양은 쉼터마저 점령했다
바람이 조금이라도 불면 좋을 텐데 일 푼의 바람도 없는 날이다
2시간 동안 올라오면서 흘린 땀을 식히느라 데크에 털썩 앉았더니
일어서기가 싫다
 
 
 

횡성호수가 녹조 때문인가 푸른빛이다
이렇게 더운데 어딘들 탈이 나지 않겠는가
횡성 호숫길 5코스가 한눈에 들어온다
작년에 단풍이 든 가을날 호수길을 걸었었다
그래서 더 반갑다
5코스는
횡성호숫길 중에 찾는 사람이 가장 많은 길이다
한 폭의 그림 같은 호수에 비친 반영을 감상하며 걷는 코스로
전망대와 조형물이 곳곳에 있어서 사진 찍기 좋은 명소이다
횡성호수길 5구간은 2020년 문화체육관광부 ‘열린 관광지’로 선정되었다

 
 

2000년 횡성댐이 완공되면서 횡성호라는 인공호수가 만들어졌고
그 호수를 중심으로 총 31.5km 6개 코스의 횡성호수길이 조성되었다.
횡성호수길은
1코스 횡성댐 길(횡성대-대관대리 3.0km 약 1시간),
2코스 능선길(대관대리-횡성온천 4.0km 약 2시간),
3코스 치유길(횡성온천-화전리 1.5km 약 1시간),
4코스 사색 길(화전리-망향의 동산 7km 약 2시간 30분),
5코스 가족 길(망향의 동산 9.0km 약 3시간, 원점회귀코스),
6코스 회상길(망향의 동산-횡성댐 7.0km 약 2시간 30분)
이렇게 테마별로 구성되어 있다.
 
 

어답산 장송
연세가 300세이다
 
박혁거세 왕의 자세로,
아님 태기왕의 자세로 앉아
횡성호를 바라고 보고 계신다
 
이곳은 오른쪽으로 지는 석양도 아름답지만
밤을 새우고 맞이하는 운해는
지리산에서 맞이하는 운해가 부럽지 않다
그래서 다시 올 수밖에 없는 장소이다
 
 
 

왕의 두 팔로 호수를 품는다
산행출발지의 마을이 삼거리(三巨里) ,
3개의 큰 것이 있는 마을이다
이곳에 오르면 그 이유를 알게 된다
산. 수. 목
어답산이 그러하고(왕의 전설이 있으니)
횡성호수가 그러하고
이 장송이 그러하고....
 
 

이제 정상까지는 능선이려니.....
산이 힘들수록 희망사항은 많아진다
 
 

다시 두 번의 내리락 오르락....
 
 

정상이 가까워졌지만 속도를 내지 못하는 우리 벗들
조금 가다 쉬고 또 쉬고...
그게 옳은 산행이다
몸을 극도로 힘들게 하기보다는
몸을 달래며 산행을 해야  오래도록 함께 할 것이다
 
 

건너편으로 삼거리 마을의 평온한 풍경이 좋아 보인다
삼거저수지의 보약같은 물을 먹고 자라는 벼가 알곡을 채우고 있는 중이다
 
 

어답산 두 번째 포토죤 낙수대
이곳 바위에 앉아 낚시를 했다는데.....
믿거나 말거나....
정상에는 뷰가 없기때문에
여기서 마지막 풍경을 감상하느라 시간을 보냈다
 
 

하늘이 어찌나 맑은지
멀리 치악산까지 링크를 걸어보는 날이다
횡성과 원주는 지척이라 치악산까지는 남쪽으로 30km가 안 되는 곳이다
작은 마을과 흰구름
그리고 푸를 대로 푸르러 검은빛이 도는 산천
이곳에 정자하나 짓고 싶다
 
'검은빛'하니 의미야 다르지만
기형도 시인의 '검은 잎' 시의 제목만 살짝 빌리고 싶은 순간이다
 
 

그늘에서 조금 더 앞으로 나아가 거침없이 확 트인 풍경 하나 남기고...
아무리 보아도 횡성호수와 삼거리 마을 풍경이 참 좋다
 
 

오른쪽으로 고개 돌려.... 저 너머~너머~에 용문산이...
 
 

낙수대에서 바라본 정상 장군봉
 
 

어답산 장군봉(御踏山·789.4m)은
강원도 횡성군 갑천면 삼거리(三巨里) 북단을 병풍처럼 에워싸고 있는 산이다.
어답산이란 이름에 대해서는
옛날 진한(辰韓)의 태기왕(泰岐王)이 신라시조 박혁거세에 쫓겨
이 산 부근에 와서 지체 높은 사람이 사용하는 의자를 뜻하는 어탑(御榻)을 놓고 앉았다는
기록(한국 지명총람)에서 기인된 것으로 보고 있다.
또는 태기산(1,261m)으로 태기왕을 쫓던 박혁거세가 이 산에 잠시 들렀다는 설도 전해진다.
 
 
근데...
왕이 봉우리는 밟지 않은 모양이다
그랬으면 어답봉이라 했을텐데
태기왕을 쫓던 장군이 여기서 앉아 쉬어서 장군봉인가....
 
얼마나 더웠던지 대략2시간이면 도착하는 거리를
거의3시간을 소모했다
 
 

예나 지금이나 
권력이나 명성이 있으면 흔적을 남기나 보다
아니면 우리가 권력이나 명성을 쫓다 보니 
그 심리를 이용한 지명이 많아졌는지도 모르겠다
근처의 태기산도 그러하고...
 
 

내가 산에 오면서 가장 좋아하는 점심시간
이배낭 저배낭에서 나오는 정상뷔페를 즐긴 후 병지방 계곡 쪽으로 하산시작
 
여기서 산뒤계곡까지 1.2km
이 이정표는 하산 중간지점의 이정표와 거리가 다르게 표시되어 있다
 
 

처음부터 마음을 놓을 수 없는 가파른 길이다
1km 내내 줄을 잡고 하산하는 길이다
군대는 안갔어도 산을 다니면서 만만찮은 유격훈련을 한다
 
 

앙칼진 곳도 있고
 
유격훈련하는 것처럼
험한 길을 잘 내려가는 걸 보니
여군으로 갈 걸 그랬나 싶다
 
 

길 정비가 잘 안 되어 있지만
밧줄에 의지하여 길에 집중하며 하산
 
 

힘든 와중에도 바위에서 잠시 휴식
 
 

사진에서 느껴지는 것보다 훨씬 급경사
 
급경사를 오르느라 숨이 폭발할 것 같은 길
벌벌 떨며 오르던 암릉길
올라가는 게 훨씬 부럽게 느껴지는 급경사 하산길....
그런 길을 수없이 밟으며 산행을 했다
오늘은 어답산에서 어려운 하산길을 맞이하고 있다
그래도 어느 한 사람 낙오됨 없이 우리는 참 산행을 잘해요
 
 

1km 이상 걸었던 느낌이었는데
에게~~ 고작 600미터 내려왔다 
그 600미터를 한 시간이나 헤매다니 
 
정상의 이정표에는 하산 1km가
여기서는 합 1.2km
 
 

산디계곡(산뒤계곡)까지 무사히 안착
 
 

임도길 오른쪽으로는 산디계곡이  흘러내리고 
임도를 따라 내려가면 병지방계곡이 시원하게 펼쳐져 있다
 
 

무지개
비도 안 왔는데 웬 무지개?
 
이것은 산행 중에 종종 보게 되는 "브로켄 현상"이다
주변에 계곡이 있어 작은 수분이 있다 보니 
뒤에서 비치는 태양 때문에 일어나는 현상이다
 
브로켄현상이란
 ‘브로켄의 환영’이라고 하는 브로켄(Brocken) 현상
사물의 뒤에서 비치는 태양광이 구름이나 안개에 퍼져,
보는 사람의 그림자 주변에 무지개 같은 빛의 띠가 나타는 일종의 대기광학 현상이다. 
독일의 브로켄산에서 처음 발견되어 브로켄이라는 이름이 붙여졌다.
그 모습이 요괴와 같아서 브로켄의 요괴라는 이름이 붙여졌다.
발푸르기스의 밤에 브로켄 산에서 마녀들이 연회를 벌인다는 이야기가 있는데
이는 브로켄의 요괴현상을 보고 마녀들의 연회라고 생각한 것이다.
 
 

산디계곡(산뒤계곡) 맑은 물
계곡물이 무척이나 맑은데
바로 위에서 물장난을 하다 보니 탁하게 찍혔다
 
 

여름산행 후 정점은 
신발 벗고 양말 벗고
계곡물에 퐁당이다
산을 오르느라 배출했던 땀이
다시 땀구멍으로 수분 보충하는 순간이다
해질 때까지 마냥 앉아서 놀았으면 좋겠다
 
 

산뒤계곡의 임도를 걸어 나오면
더 큰 하천을 만나는데 병지방리계곡이다
병지방리(兵之坊里)는 태기왕이 이곳 마을을 지날 때 병사들이 그 뒤를 따라간 곳이라는 설에서 생긴 지명이다.
 
하천에는 끝날 줄 모르는 여름을 즐기는 피서객들이 가득하다
강원도 깊은 산자락의 맑은 물이 넓은 계곡을 가득 채우는 이곳에서
여름을 나기를 하는 일은 탁월한 선택이다
 
 

도로를 따라 끝날 줄 모르게 주차된 차량만 보아도
이곳이 얼마나 좋은 곳인 줄 알게 한다
하산 종료 지점: 강원특별자치도 횡성군 갑천면 병지방리 543-1
 


휴대폰에 횡성 폭염주의보 문자가 울린다
이런 날 청춘도 아니고 겁 없이 산행을 했다
아니다 이 더위에도 산행을 했으니 우린 아직 청춘인가
혼자가 아니라서 오를 수 있었던 것이다
이끌어주고 보살펴주는 벗들이 있어서 가능한 일이다
산 위에서 바라보았던 횡성호수가 생각난다
멈추어 있으면 물이끼가 끼고 변색이 되는 것이다
멈추지 않고 여전히 길을 나섰던 덕에 
이 염천의 날씨에도 산행할 청춘의 용기를 얻는 것이다 
무리하지 말고 멈추지 말고 꾸준히 걷다 보면 우리의 청춘은 오래도록 지속될 것이다
 
20840818 by gyeong~