팔월 하순쯤 지리산에는 산오이풀이 발등을 덮는다
흐드러지게 핀 산오이풀을 사진에 담고 싶었던 차에
산우 한분이 지리산으로 가잔다
가고 싶은 촛대봉 구간이 아니고 노고단에서 삼도봉 그리고 불무장등으로 이어지는 구간이다
그쪽도 지리능선이니 꽃들이 많을 거야.....
큰 카메라를 들었다가 넣었다가
망설이다 도상거리가 20km나 된다는 말에 욕심을 버리고 핸드폰으로 찍기로 했다
이젠 큰 산으로 가는 것에 부담을 느끼고 혼자는 엄두도 나지 않는다
그래도 함께 가자고 하는 벗이 있으니 그나마 행복이다
밤 11시
하룻밤은 설렘에 반납하고 지리산으로 가는 버스에 오른다
지리산 삼도봉
2024.09.01. 일. 날씨 맑음
산행코스:성삼재-노고단-노루목-(반야봉)-삼도봉-불무장등-통꼭봉-당재-목통마을
산행거리:19km
산행시간:03:10~15:00
어젯밤 11시에 출발한 버스는 성삼재에 3시에 도착했다
버스에서 정신없이 푹자느라
성삼재에 도착한 줄도 몰랐다
비몽사몽 허겁지겁 산행을 시작했다
폭염에 시달린 올여름
성삼재의 새벽은 고도가 높은 곳이지만
반팔로 걸어도 될 날씨다
걷는 동안 어떤 이는 부지런히 달려서 반야봉에서 일출을 보겠다고 하고
어떤 이는 노고단에서 일출을 보고 부지런히 따라잡자고 한다
반야봉까지 도상 거리는 성삼재 출발 기준으로 10.2km,
평균 등산 시간은 약 4시간 30분 정도이다.
성삼재~임걸령까지의 5.9km 구간은 길도 평탄하고 경사도 비교적 완만하여 수월한 산행이 가능하지만
임걸령 샘터를 지나면 조금씩 가파른 구간이 나오기 시작하고
반야봉을 1km 앞둔 노루목부터는 경사가 심해져서 등산 난이도가 어려움 단계로 올라간다.
일출시간은 6시
3시간 동안 반야봉까지 도저히 감당이 안 되는 거리
노고단의 일출을 선택하기로 했다
갈길이 멀어서 인가
마음 놓고 천천히 걷는 사람이 아무도 없다
느슨한 경사길임에도 숨이 차다
반야봉 일출을 포기하니
한편으로는 마음이 편해진다
무넹기를 지나서 지름길로 노고단 대피소 걸어 올랐다
하나를 포기하니 눈에 들어오는 것들이 있다
숲사이로 들어오는 별빛들
오름길이라 숨이 차서 헉헉대며 찍긴 했지만
다행히 핸드폰 카메라로 별이 잡힌다
많은 별들이 가득한 지리산의 하늘
오랜만에 별들의 잔치에 초대된 느낌이다
노고단 대피소에 도착하니 더 많은 별들이 우수수 쏟아진다
은가루를 뿌려놓은 듯한 하늘
별들 때문에 노고단 대피소 마당에서 한동안 서 있었다
이 많은 별들을 본지가 언제던가
아마도 몇 년 전 오세암에서 자고 마등령에 올랐던 그날 빼고는 기억이 나지 않는다
별들이 광활하게 펼쳐진 하늘을 올려다보며
노고단 고개로 오르는 길
쏟아지는 별들의 잔치 때문에
오늘 일출을 못 본다 해도 서운하지 않을 것 같다
5시에 노고단 입장이다
예약한 사람만 들어갈 수 있다
바람 한점 없이 고요한 시간
하늘을 원 없이 올려다보며 시간을 보낸다
어떤 이가 저 바리케이드를 몰래 넘어갔다가
cctv에 찍혀서 국공에게 벌금을 물었다
우리는 시간을 5시까지 지켜서 예약시 받아두었던 큐알코드를 찍고 입장했다
9월 1일은
음력으로 칠월 스무아흐레
그믐달이 새벽을 넘어가고 있다
노고단에서 별이야기를 한다
오른쪽에 북두칠성도 보이고
이사진을 넓게 찍어서 머리맡 벽에 붙여 놓고 잠들고 싶다
핸드폰으로 삼각대 없이 찍다 보니 흔들리는 게 아쉽지만....
마등령에서의 별잔치 이후 오랜만에 만나는 축제다
5시가 넘어서 노고단 정상으로 오르는 시간
구례 쪽은 불빛이 훤하다
벌써 하루의 시작이 되었나 보다
노고단 고개에서 10여분이면 오르는 노고단 정상
노고단老姑壇 노고단은 높이 1,507m이고, 지리산국립공원 안에 있으며, 지리산지의 동서 방향으로 연장되는 주능선의 서부를 이루는 봉우리이다. 천왕봉(1,915m), 반야봉(1,732m)과 더불어 3대 주봉이라고 하며, 지리산은 3대 주봉을 중심으로 병풍처럼 펼쳐져 있다. 남서쪽의 화엄사계곡을 따라 급경사로 된 코재(1,250m)에 오르면 노고단의 북서쪽으로 완만한 경사를 이루는 주능선이 나타난다. 노고단이 포함된 지리산국립공원은 우리나라에서 최초로 국립공원으로 지정되었으며, 넓은 면적의 산악형 국립공원이다. |
노고단이라는 지명은 할미당에서 유래한 것으로
‘할미’는 도교(道敎)의 국모신(國母神)인 서술성모(西述聖母) 또는 선도성모(仙桃聖母)를 일컫는다.
통일 신라 시대까지 지리산의 최고봉 천왕봉 기슭에 ‘할미’에게 산제를 드렸던 할미당이 있었는데,
고려 시대에 이곳으로 옮겨져 지명이 한자어인 노고단으로 된 것이다.
지리산의 주능선은 45㎞에 이르는데
천왕봉(天王峰, 1,915m), 반야봉(1,732m) · 토끼봉(1,538m) · 명선봉(1,586m) · 덕평봉(1,538m) · 영신봉(1,690m) · 촛대봉(1,713m) · 연하봉(1,710m) · 제석봉(1,806m) 등 높이 1,500m 이상의 높은 봉들이 분포한다
노고단 고개에서는 별이 초롱초롱했는데
봉우리에 올라서니 주변에 구름이 올라온다
일출을 기다리기에는 4~50분은 기다려야 할 것 같아 포기하고
반야봉으로 가는 길에 어디선가 일출을 보기로 했다
한쪽으로 훤하게 여명이 밝아 오는 것 같은 5시 30분
여기서부터 너덜길로 잠시 내려섰다가
피아골 삼거리에서 다시 오름길에 접어든다
여명이 밝아 오는 듯했지만
돼지령까지 가는 숲길은 컴컴해서 헤드랜턴에 의지해서 조심히 걸었다
여명이 조금씩 밝아오는 시간
그믐달은 아직도 갈길이 남았나 보다
서쪽하늘로 멀어져 가는 칠월 그믐달
금방 해가 뜰 것 같아
일출이 보일 것 같은 장소를 찾아 길만보며 부지런히 달렸다
여기까지 오는 동안 숲이 무성하여 세상밖이 보이지 않는다
누군가 그랬다
'지리산은 발림 붓으로 슬금슬금 펴 바른 듯하고,
설악산은 바늘처럼 뾰족하게 깎은 연필로 도화지를 찌르듯 그려낸 듯해 기억에 남는 양의 차이가 있다'
그래서 설악은 보느라 정신없는데, 지리는 안 보느라 정신이 없다고들 한다.
조용히 내면에 귀를 기울이며 걷느라 그렇다.
지리산이 만들어 낸 사색의 걸음 탓에 서점에서 국립공원의 산들을 검색하면
지리의 이름을 건 책이 가장 많은 것일지도 모르겠다.
돼지령에서 노고단 방향 능선
높은 곳 능선을 걸어도
마음만 높고 앞에 보이는 능선은 나지막이 길게만 느껴진다
돌탑을 볼 때마다 생각하는 것
볼품없고 쓸모없고...
아무렇게나 나뒹굴고 있는 돌이지만
모아서 탑을 이루니 거기에 기대어 산을 건너다보고 사진도 찍는다
돼지령 1370m
노고단고개에서
50분을 열심히 달리다 울퉁불퉁한 능선이 부드러워지면 돼지령에 다온 것이다
돼 지령옆으로 살짝 비켜선 전망대 쉼터에서 천왕봉 쪽으로 밝아오는 일출을 바라볼 생각이다
골짜기를 타고 오르는 새벽공기를 가슴 가득히 들이켜 본다
돼지령이란 이름은
이곳에 원추리가 많이 서식하는데
원추리뿌리를 파먹기 위해 멧돼지가 많이 서식하고 있어서
돼지령이라 부르게 되었다고 한다
<<돼지령 평전에서 바라본 일출>>
살짝 운무가 있긴 하지만
지리산에 올 때마 다기 대하게 되는 운무가 없다
하루이틀 전 비가 왔으면 좋은데 가뭄이 길다 보니 운무가 장관을 이루지 못했다
건조한 일출과 은가루처럼 쏟아지는 별빛을 봤으니 지리산에 온 덕을 톡톡히 본 셈이다
반야봉 쪽의 모습
피아골 삼거리
피아골 영화 때문에 더욱 친숙하게 와닿는 지명이다
피아골의 유래
지나간 역사 속에 피아골에서 죽은 이의 피가 골짜기를 붉게 물들였기 때문에 붙여진 이름이라고도 하지만,
연곡사에 수백 명의 승려가 머물며 수행하여 식량이 부족했던 시설 척박한 토양에도 잘 자라는
오곡(쌀, 보리, 조, 콩, 기장) 중 하나인 피(기장)를 많이 심어 배고픔을 달랬다는 데서
'피밭골'이라 부르던 것이 점차 변화되어 '피아골'로 불리게 된 것이다.
임걸령 샘
오랜만에 지리산의 달달한 물한바가지 가득 마시고...
오늘의 걸어야 할 힘을 얻는다
♡임걸령 샘터는?
지리산의 지혜로움을 뜻하는 반야봉의 중턱에서 발원한 물이 흘러내려와서 임걸령에서 솟아난 샘
임걸령샘터의 물 한잔을 마시면 지혜로움을 얻을 수 있겠지.
피아골에서 삼도봉까지는 오르막이다
가파른 너덜길도 있고 목재계단도 있다
임걸령
1,320m의 높이에 위치한 고개
조선 선조 때의 좀도둑 임걸년은 화개장터에서 넘어오는 보부상을 털거나 지리산의 사찰을 털었는데,
그는 한참 강성했을 때는 지리산의 모든 사찰을 털었다고 전해진다.
임걸령은 그가 활동한 장소라 해서 임걸령이란 이름이 붙게 되었다.
임걸령에는 피아골 방면으로 내려가는 등산로가 있다.
삼도봉에서 하산길에 접어 들것이기 때문에
삼도봉까지 2km 남은 이정표를 보니 반갑다
반야봉을 들러서 가면 삼도봉까지 3km이다
임걸령에서 노루목으로 오르는 목재계단길
숲이 무성하여 하늘이 보이지는 않지만
지겹던 여름의 더위가 한풀 꺾여서인지
가파른 오르막을 걸어도 많이 덥지는 않다
숲 속으로 들어오는 눈부신 햇살을 맞이하며
이른 아침의 지리산 정기를 느끼는 길이다
노루목
노고단고개에서 4.5km
성삼재에서 9.2km
배낭을 벗어 놓고 반야봉에 올라간 사람들이 많은 것 같다
배낭이 여기저기 주인 없이 쉬고 있다
삼도봉이나 천황봉으로 갈 사람들은 벗을 필요가 없다
반야봉에서 이곳으로 내려오지 않고 뒤편으로 내려가는 길이 있기 때문이다
"노루목"이란 지명의 유래도 흥미롭다.
노루목이란 독특한 이름은 노루들이 지나다니던 길목이란 뜻도 있지만
반야봉의 지세가 피아골 방향으로 가파르게 흘러내리다가 이곳에서 잠시 멈춰
마치 노루가 머리를 지켜 들고 있는 형상의 바위 모양 때문에 붙여졌다고 한다.
노루목에서 바라본 노고단 능선의 운해
오늘 가야 할 삼도봉
발 빠른 이들이 반야봉에서
일출을 보고 그 뒤편 묘향대까지 갔다가 삼도봉으로 하산하고 있다고 한다
노고단을 들렀다가 오느라 뒤쳐져서 반야봉은 생략하기로 했다
삼도봉에서 모두 만나서 거칠고 험한 불무장등으로 가야 하기 때문이다
산행 생략했던 반야봉
9월 1일 오전 6시~7시
반야봉에 올랐던 산우의 사진
천황봉 일출과 노고단 운무가 멋져서 가져왔다
반야봉은 낙조로 유명한데 오늘만큼은 일출이 대단한 장관을 연출했다고 한다
반야봉 般若峰
반야봉은 전라북도 남원시 산내면과 전라남도 구례군 산동면 사이에 있는 산으로,
높이 1,732m의 지리산 제2봉우리이다.
천왕봉, 노고단과 더불어 지리산의 3대 주봉 중 하나로 꼽히는 반야봉은 서부 지리산의 최고봉이다.
북쪽 능선을 따라 달궁계곡으로 이어지며 서쪽 기슭에는 하늘 아래 가장 높은 마을이라는 심원마을과 계곡이 있다.
남쪽으로 난 능선을 따라 약 900m 지점은 반야봉 삼거리인데, 지리산 등반에서 중요한 지점이다.
여기서 서쪽 노루목을 따라 날라리봉, 피아골 삼거리를 지나 노고단으로 이어진다.
반야봉 삼거리에서 동쪽으로는 삼도봉과 토끼봉을 지나 지리산 최고봉인 천왕봉까지 이어진다.
반야봉에서 바라본 지리산 일대의 낙조의 장관은 지리산 8경 중의 하나로 손꼽힌다.
반야봉을 생략하고 삼도봉으로 가는 길
너덜길이지만 보고 싶었던 산오이풀이 제법 있다
아침 햇빛에 맑고 선명한 분홍빛 자태를 뽐내며
그리운 임 기다리듯 길섶에 나와 있다
하이~ 산오이풀
내가 너 보려고 왔잖아..
전남, 전북, 경남, 세 개의 도가 만나는 삼도봉
삼도봉(三道峯)은 해발 1,500m
원래 이름은 낫날봉이었는데 정상의 바위 봉우리가 낫의 날을 닮았다 하여 붙은 이름이었다.
또 낫날봉이 변형되어 날라리봉, 늴리리봉 등 다양한 이름으로 불렸다.
1998년 10월 8일 국립공원관리공단에서
삼각뿔 형태의 표지석 (각 면에 전라북도, 전라남도, 경상남도라고 쓰여 있다.)을 세우면서부터
삼도봉으로 불리기 시작하였다.
삼도봉은 주릉상의 요충 지면서 그 산세는 섬진강으로 뻗어내리는 불무장등 능선의 시발점이다.
그 지명에 걸맞게 경남과 전남을 구분 지으며 섬진강까지 이어지는 삼도봉과 불무장등 능선은
삼도봉에서 해발 1,446m의 불무장등,
해발 942m의 황장산을 지나 촛대봉에서 잠시 솟았다가 화개장터 부근의 산자락을 끝으로 섬진강으로 잠긴다.
19번 국도를 가다 보면 화개장터에서 피아골 입구 못 미쳐 있는 검문소 부근이 바로 경남과 전남의 경계지점이다
삼도봉에서 바라본 반야봉
오랜만에 맑고 푸른 하늘을 본다
가을이 들어있는 하늘색이다
삼도봉에서 바라본 노고단
산 능선이 순해서 여기까지 오는 동안
힘든 줄도 모르고 즐겁기만 한 산행이다
천왕봉으로 가는 주능선을 벗어나
오늘 가야 할 불무장등 능선
길도 험하다는데 그 험함을 예고라도 하듯
이능선만큼은 안개가 가득하다
왼쪽이 불무장등-통꼭봉-황장산 능선
오른쪽이 노고단으로 가는 능선
한 번도 가보지 못한 불무장등 능선
여름철에 풀이 무성하여 길 찾기가 어렵다고 한다
다녀왔던 사람도 헷갈려서 선답자의 트렝글에 의지해서 간다
삼도봉에서 불무장등능선으로 내려서는 곳은
남쪽방향으로 목책이 둘러쳐 있어 옆으로 빗겨 들어선 다음 암봉을 내려서면
바로 절벽을 만난다
절벽쪽으로 안개가 가득해 시계가 보이지 않는다
다시 오른쪽 편으로 더듬더듬 내려가야 한다
우측방향으로 보면 경사진 바위가 나오는데 잘 보이지는 않지만
좌측은 벼랑으로 바위에서 미끄러지면 아마도 50년이나 100년이 지나도 올라오지 못할 것 같다.
가문비나무가 있는 벼랑 너머는 길고 긴 불무장등이 펼쳐졌을 텐데
안개가 불무장등 능선을 가리고 있다
아침이슬로 등산화 바닥이 젖어 아주 조심스럽게 바위를 타고 내려온다
이끼가 낀 미끄러운 벼랑을 내려서게 되는데 조심스럽게 내려섰다
몇 번의 암릉을 내려서면 위험지역을 벗어나게 되는데 안개 때문에 조망은 포기했다
벼랑을 지나면 산죽지대가 이어지다가 주변 수목은 잡목들로 원시 고목은 없는 편이다.
목책을 넘어 조심스럽게 암봉을 내려서면 반달곰활동지역이라는 붉은색 경고 현수막이 있는데
현수막을 보며 제발 만나지 않기를 마음속으로 기도한다.
불무장등으로 가는 길은
이런 고목이 몇 군데 길을 막고 있다
이 길은 낮은 자세로 길이 끝날 때까지 가야 한다
가보면 안다
도저히 편안한 발걸음을 할 길이 없다
흰듬등
흰듬등은 무슨 뜻일까?
지리산에는 봉우리 峰(봉)을 쓰는 봉우리가 많지만 어쩌다 고개 嶝(등)을 쓰는 봉우리가 있다
왕시루봉 능선에도 ‘문바우등‘이라는 봉우리가 있고
오늘 지나는 능선에도 이곳 흰듬등과 능선의 주봉이 되는 불무장등이 있다.
흰듬등
듬이란 벼랑, 낭떠러지기를 뜻하는 경상남도지방의 방언이라고 한다.
그러면 흰 바위가 있는 고개를 뜻하는 것 같다
흰 바위절벽봉이라고 하면 이해가 빠를 듯하다.
사전을 찾아보면 흰듬등의 어원을 쉽게 알 수 있는데
이 능선을 지난 사람들은 보면 언제 흰듬등을 지났는지도 모른다
등로 양쪽으로 대단하지 않은 바위가 있고 조망은 없다
흰듬등을 지나 불무장등으로 가는 길은
키 작은 산죽밭으로 이어진다
같이 가는 산우님이 산죽은 꽃이 피고 2~3년 후면 죽는다고 하는데
아무리 살펴보아도 죽은 산죽이 보이지 않는 걸 보니
이곳의 산죽은 꽃이 핀 적이 없나 보다
아... 아름다운 석부작
까치고들빼기
같이 가던 산우가 이곳이 하도 아름다워 바위 사이에 털 썩 앉아서 사진을 찍었었다
바위와 이끼와 까치고들빼기가 만든 아름다운 화원
아무리 걸어도 산죽만 가득한 산에 아름다운 꽃밭을 만나니
길을 아니 멈출 수가 없다
오늘 산행은 죽은 나무들이 왜 이리 길을 막는지
죽은 나무들을 끌어다 일부러 길을 막아둔 것 같다
불무장등으로 올라가는 길
길이 애매하여 그냥 치고 올라갔는데 다 올라가서 보니 우회하여 오르는 길이 있다
산행을 때로는 감각으로 오르는 경우가 허다하다
不無長嶝 1446m
무슨 뜻일까? 아무리 되새겨 봐도 알 수가 없다.
한국농어민신문에 연재되는 「조용섭의 지리산 이야기」 23편 불무장등이야기를 보면
그런대로 답이 될 만한데 그 내용은 이러하다.
『이 ‘불무장등’이라는 특이한 이름은 백과사전 등에 한자어로 ‘不(아님)’과 ‘無(없음)’의 長嶝(장등, 길고 높은 봉우리 혹은 고개)으로 표기되고 있다. 이중으로 부정되는 이 이름은 단순한 한자어 풀이로는 무엇을 의미하는지 도무지 알 수가 없다. 그런데 구례 화엄사 강사를 지냈던 백운스님이 1988년 10월 1일 불일회보에 기고한 ‘지리산의 내력-지명에 나타난 불교’ 글을 보면 그 이름에 대한 의문에서 벗어날 수 있다.
백운스님은 1930년대 화엄사의 진응강백이 지은 ‘지리산지’를 번역 소개하며 자신의 견해를 밝혔는데, 내용을 요약하면 대략 다음과 같다. “지리산은 문수보살의 일신이며, 팔만 권속과 더불어 항상 머물며 설법하는 곳이다. 나는 이에서 여러 해를 두고 의심했던 것을 일시에 떨쳐버렸으며 지이(智異)라고 일컬은 것을 깨달았다.
문수는 오로지 반야(般若)를 주관하며, 반야는 제불의 어머니(諸佛之母)이다.”그래서 문수보살의 지혜를 상징하는 ‘반야’로 봉우리의 이름을 취했으며, 반야가 의미하는 ‘제불의 어머니’에서 따온 ‘불모(佛母)’에서 불무장등 이름의 의문이 풀리게 되는 것이다. 즉 반야봉에서 이어지는 높은 산인데, 반야와 같은 의미인 불모로서 이름이 지어졌고 불모는 불무로도 읽기에 불무장등이 되었다는 것이다.』
요약하면 지리산 자체는 문수이고, 문수는 곧 반야를 주관하고,
반야는 제불의 어머니, 즉 佛母로 반야봉에서 이어지는 긴 능선의 봉우리라는 것 같다는 것이며
불모는 오랜 세월이 흐르며 불무로 불리게 되어 오늘날 불무장등으로 불린다는 그런 뜻이다.
불무장등 정상은 5~6평 되는 공간으로 특별한 지형지물은 없고,
주변으로는 잡목이 빼곡하여 사방 어느 곳도 조망은 전혀 없다.
지도에서 보듯이 불무장등은
전라남도와 경상남도의 경계를 가르는 능선이다
삼도봉에서 당재까지 걸었으니
불무장등 능선의 절반쯤 걸었던 셈이다
불무장등 이전까지의 길은 양반길이다
불무장등을 내려서면
조릿대 숲이 무성하여 아예 길이 없다
키 큰 남자 산우들이 치고 나가면 뒤따라 가야 하는데
긴팔 긴바지가 아니었다면 온몸이 댓잎에 베어서 상처가 날뻔했다
대숲이 너무 울창해서 산우들이 길을 잘못 들었다가 겨우 찾아오기도 했다
희미한 길이지만 중간에 갈림길이 있었는데
오른쪽으로 내려가면 피아골이라고 한다
왼쪽으로 내려서야 황장산으로 이어지는 통꼭봉이 이어진다
이 길을 여름에 갈 때에는 반드시 선답자의 트렝글을 다운로드하고 가야 헤매지 않는다고 한다
내 키보다 커서 까치발을 들고 찰칵
키 큰 대나무숲에 길이 보이지 않아 이리저리 가방이 걸리고 옷도 걸리면서
숲을 헤치며 빠져나가야 한다
마른나무를 헤치며 뚫고 지나며
기어가거나 토끼걸음으로 길게 빠져나가기도 한다
난 앉아서 엉덩이로 밀면서 빠져나갔더니
엉덩이가 공사판 엉덩이로 바뀌었다
1시간 20분쯤
길도 아닌 길을 겁먹어가며 오다 보니
통꼭봉에 도착했다
통꼭봉 조금 아래에 통신시설이 있어서 누구나 알아보기 쉽다
통꼭봉 정상에도 조망이 없어 모두들 그냥 지나친다
통꼭지봉 혹은 통꼭봉
삼도봉에서 시작된 능선을 따라 내려서며 이름을 가진 3개의 봉우리를 지나는데
흰듬등. 불무장등, 통꼭지봉이 모두 이름이 특이하다.
통꼭지봉의 유래
「정유재란(1597년) 때 인근 의병, 승병들이 왜병들에게 쫓겨 이곳까지 올라와 패전의 슬픔으로 통곡했다 하여
통곡봉으로 불렸다고 하기도 하고, 불무장등 능선 전체로 보면 이곳이 여인의 젖가슴이 되는 곳에 해당된다고 하여
통꼭봉이라고 한다,」고, 그런가 하면 화개 사람들은 「목통골 배나루 평전을 꼭지가 달린 통을 타고 올라왔다가 꼭지가 걸린 곳이라고 해서 통꼭지봉이라고 부른다.」
이름을 지어낸 것 같아서... 믿거나 말거나...
통꼭봉에 올라갈 때에는 느슨하게 올라갔지만
내려설 때에는 아주 급경사다
나무뿌리를 밟고 미끄러질뻔했다
정신없이 가파른 산길을 내려섰다
급하던 능선을 내려와 금줄을 넘어서
국립공원을 벗어났다
이쪽에 곰이 많이 서식하고 있나보다
곰 감시카메라도 군데 군데 설치되어 있다
이선을 넘어가면 벌금을 부과한다고 적혀있지만
무사히 잘 넘어왔다..
삼팔선을 넘어온 용사처럼 느껴지는 순간이다
이런 산길을 내가 오다니.... 용사의 느낌이 드는 건 당연하다
지금까지의 고난을 보답이라도 하듯
미끈한 소나무밭이 마음을 쉬게 한다
솔밭 한편에 앉아서 선두를 놓칠까 정신없이 따라오느라 먹지 못했던 간식거리를 찾아서 허기를 채웠다
얼마나 급하게 달렸던지 두병이나 넣어온 물이 절반은 남았다
커피도 타서 마시고 이온수도 마시며 몸을 달랬다
고사리 밭을 지나서...
당재에 도착했다
삼도봉에서 이곳 당재까지 대략 7~8km를 정신없이 따라붙었다
황장산으로 가는 길목이다
목통마을이나 농평마을에서 올라와 황장산을 오르고
황장산 산줄기는 십리벚꽃길로 유명한 화개면으로 길을 내려서게 된다
황장산도 언젠가는 오르겠지
이곳에서 황장산 줄기만 올려다보고
우리는 목통마을로 내려선다
이정표를 보니
예전에는 삼도봉에서 황장산으로 산행을 많이 했나 보다
당재에서 목통마을까지는 1km 조금 넘고
거기서 칠불사 주차장까지 1km 남짓 걸어야 한다
험한 길을 쫓아오느라 다리 아픈 줄도 몰랐는데
이제야 다리가 저려 온다
완만한 길임에도 걸음은 속도를 내지 못한다
위로가 되는 건
내려오는 길에
귀한 뻐꾹 나리를 보아서 꽃구경도 할 겸 한참이나 쉬었다
뻐꾹나리
목통마을 농가에서 제피나무를 키우고 있다
산에서 많이 보던 나무라 이렇게 밭에서 키울 줄을 몰랐다
목통마을 개울가에서 지리산 땀을 모두 씻어 버리고
늦게 내려오고 있는 산우들을 기다렸다
산행후의 땀을 씻는 맛은 카스한잔하는 것과 같다
반야봉을 생략했어도
대략 19km를 걸었던 산행이다
걸으면서 이 길을 왜 왔지.... 후회도 들었고
그렇다고 뒤돌아 갈 수도 없었다
한번 들어선 인생이 뒤돌아 갈 수도 없듯이
뒤돌아설 수 없는 험한 등로에서 인생을 생각한다
매일 걸어왔던 인생길이 어느날 아침 낯설고 새롭다
그 험한 등로에서 수 없이 인생을 생각하지만
아직도 모나고 희미하고.... 알 수 없는 길을 가고 있다
아마도 난 앞으로도 수없이 알 수 없는 길에서 생각에 잠길 것이다
산에 오는 일은 참 익숙한 일이다
그 익숙한 일을 한 달에 몇 번씩 하면서도 가끔씩 산은 참 낯설기도 하다
새롭고 낯섬의 '뷔자데'
그래서 산은 항상 처음인 것처럼 걷는다
20840901 by gyeong
<<지리산 불무장등 초행길에 얻은 야생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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