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올해도 지리산의 산불방제기간이 4월로 끝이 났다
지리산은 5월부터 침묵의 시간을 끝내고 문을 열어 수많은 사람들과 호흡을 같이 한다
몇 년 전 지리산 종주를 하던 5월,
오후로 접어들면서 눈이 내리고 진달래꽃에 최상의 상고대를 연출했던 날을 잊을 수 없어
근로자의 날(올해부터 노동절)만 되면 지리산 진달래를 떠올린다
원래 2박 3일 종주를 계획했으나 차량편이 여의치 않아서
당일치기라도 반야봉까지라도 다녀오고 싶었다
출발하기 전날 지리산에 눈이 왔다는 소식을 듣고 혹시 상고대라도.... 기대를 해본다
근처의 산에는 진달래가 졌지만
5월초 지리산의 진달래를 거쳐서 5월 말에서 6월 초순의 한라산까지 가야
진달래 여정은 끝이 난다
이렇게 긴 레이스를 펼치는 진달래 덕에 봄이면 이산 저산 발걸음이 바쁘다
올해도 지리산이 빗장을 풀었으니 진달래가 보고 싶어 마음이 먼저 달려간다

노고단 1507m, 반야봉 1732m
- 산행일자: 2026.05.2. 토. /날씨 약간 맑음
- 산행코스:성삼재-무넹기 -편한길-노고단대피소-노고단고개-노고단정상(왕복)-임걸령-노루목-반야봉(원점회귀)
- 산행거리:20km
- 산행시간:03시~오후 4시(놀멍 쉴멍, 꽃구경)
- 성삼재로 갈 때:동서울터미널 심야버스:밤 10시 40분-새벽 2시 20분 도착
- 동서울로 올 때:오후 5시 10분 함양고속-동서울 오후 9시 40분 도착

동서울에서 밤 10시 40분 심야버스로 출발해
야심한 시간 2시 20분 성삼재에 도착했다
밤새 거친 운전실력을 자랑하는 버스기사 때문에 3시간 40분 만에 도착했다
해발 1090m 고지의 성삼재는 바람이 없고 잠잠한 날씨다
고지대라 약간 썰렁해서 웃옷을 더 걸쳐 입고 나니
삼월 열엿새날의 쟁반같이 둥근달이 첫눈에 눈에 들어온다
들판으로 나서니 하늘을 보고 달도 만나고 좋긴 참 좋다
깜박하고 랜턴을 챙기지 못했는데 다행히 저 달빛 덕으로 산을 오르면 되겠다

3시부터 지리산 문을 열기 때문에
여유롭게 산행준비를 마쳤다
현대문명의 발전은 산행예약 서비스도 편하게 도와준다
◆☎1670-9202
전화를 하고 탐방구간을 선택하면 AI 큐알코드가 바로 전송이 된다
현재 전화예약 가능구간은
북한산 우이령과 지리산 노고단

지리산개방은 새벽 3시
개방시간 5분 전에 문을 열어준다
대기했던 탐방객들이 봇물 터지듯 밀려서 산으로 들어간다
마치 산악전사들 같다
돌아갈 버스가 오후 5시경이라 서둘러 걸을 필요가 없는 우리는
급한 사람들에게 걸림돌이 될 것 같아 한쪽으로 비켜서서 기다렸다가
많은 무리들이 지나간 다음 달빛과 앞서거니 뒤서거니 지리산 품속을 걸었다

노고단대피소와 노고단 고개까지
빠른 길과 편한 길이 나누어져 있는데
5시 30분 일출시간을 맞추기 위해
시간이 더 오래 걸리지만 신작로길을 선택해
휘영 철 밝은 달과 설렁설렁 걸었다
어찌나 천천히 걸었는지 성삼재에서 노고단 대피소까지 1시간 소요
대피소중에 가장 좋은 화장실을 겸비한 노고단 대피소에서 잠시 쉬었다
성삼재에서 1.8km 지점 무넹기 분기점에서
노고단고개까지 빠른 길은 1.1km, 신작로 편한 길은 3.2km
올라갈 때 내려올 때 전부 편한 길을 선택하는 바람에 산행거리는 왕복 4km 길어졌지만
편한 길이라 산행의 피로도는 적은 편이다

달이 뜨는 노고단고개
해가 뜨려면 1시간 넘게 남았다
휘영청 밝은 달밤
고갯마루에서 달을 보며 세상사 아무 고민 없는 새벽을 맞이한다
「짚방석 내지 마라 낙엽엔들 못 앉으랴.
솔 불 켜지 마라 어제 진 달 돌아온다.
아이야 박주산채(薄酒山菜)일망정 없다 말고 내어라」
문득 한석봉(한호)의 안빈낙도를 꿈꾸는 시가 떠 오른다
삶도, 술상도,
“적당히, 소박하게, 자연과 어울려 즐기면 된다”
해가 뜨려면 아직 멀었고
그림같이 고상한 달이 비쳐주는 허공 같은 고개에 앉아
달리 할 말이 없어 달만 바라보는 새벽이다

함께 온 벗은
구름 위에 올라앉은 보름달 삼매경이다
급하게 어느 구간까지 시간을 맞추는 산행이 아니라
느긋하게 가는 데까지 갔다가 다시 돌아오기로 하여서
지상낙원에 입성한 기분으로 지리산에 들었다

5시 노고단 문을 여는 시간
멀리 천왕봉쪽이 벌겋게 달아오르기 시작한다
노고단 정상으로 일출 보러 올라간다
하늘에 잔뜩 낀 구름층을 보니 일출의 환상은 일치감치 접고
여유시간이 많으니 진달래핀 노고단풍경을 보려고 올랐다

노고단 정상에 올라오니 바람이 어찌나 세었는지
모자가 날아갈 지경이다
올 들어 첫 번째 지리산 산행인데 바람이 너무 세게 맞이한다
내가 아무리 반가워도 그렇지 이렇게 잡고 흔들면 나 힘들단 말여
거센 바람을 피해 노고단 데크 밑으로 들어가 옹기종기 일출을 기다렸다
구름층을 보고가 미 해 뜨는 걸 포기했으면서도 동쪽에서 눈을 뜨지 못하는 건 왜인지
오월의 노고단 풍경
천왕봉 쪽으로 붉게 물들이다 마는 일출
진달래만 목 빼고 기다리는 시간이다
어제 내린 눈으로 진달래가 생기를 잃었지만
분홍빛이 살아 있어 노고단은 이제야 봄이다















4시부터 6시가 넘을 때까지
노고단의 진달래꽃놀이에 빠졌다
노고단의 일출과 진달래 풍경 삼매경을 끝내고
반야봉으로 향한다

항상 쉬어가는 쉼터에서
깊숙한 지리산의 호흡을 생각한다
지리산은 느리게 오는 봄 때문에
산객들의 봄은 길어서 좋다
동네 뒷산처럼 휘리릭 지나가는 봄이 아쉬울 때면
지리산에 오라
느긋하게 진달래가 피고 새잎이 돋고 있다
노루목에서 반야봉까지
노고단에서 새소리를 들으며 숲길로 걷다가
싫증이 날 즈음 노루목에 닿게 된다
반야봉을 향해 잠시 오르다 보면
천왕봉까지 바라보게 되는 풍경을 만난다

반야봉까지
노고단고개에서 5.5km
노루목에서 1km
노루목에서 반야봉으로 오르던 길
굽이 굽이 저 넘어 천왕봉이 있다
파노라마로 지리산의 능선을 담아 보았다
바로 앞 삼도봉에서 뻗어 내린 불무장등 험한 길이 주마등처럼 지나간다

연하천 넘어 벽소령 넘어 세석 넘어 장터목....
그곳에 쉬고 싶다는 생각이 굴뚝같지만
오늘은 여기까지만 왔다 가네
삼도봉-토끼봉- 영신봉.... 그래그래 또 갈 거니까 기다리시라

산이 깊어서 수목이 가득하다 보니
양지를 좋아하는 진달래는 보이지 않는다
사철 푸른 침엽수목 사이로 고사목이 쓰러지지 않고 서있다

병이 든 건지
수명을 다한 구상나무들이 많다
처음엔 멀리서 보고 자작나무인 줄 알았다
이런 무공해 산속에 살면서 무슨 연유로 저리 병이 드는 건지.
앞으로 뻗어있는 능선은 불무장등(좌)과 왕시루봉(우) 능선길이다

정상에 다다를 즈음 하늘이 맑아진다
울창한 수목을 피해 바위틈으로 올라앉은 진달래가 곱게 빛난다
저 바위로 기어 올라가고 싶지만
바리케이드가 있어서 하지 말라는 건 안 하는 착한 학생이 되어 본다

드디어 정상
10시 즈음의 반야봉
부지런한 산꾼들이 반야의 능선들을 즐기고 있다
새벽녘 노고단의 거센 바람과는 달리
반야봉은 고요해도 너무 고요하다
늘 급하게 지리 주능선을 달리느라 오랜만에 반야봉에 왔다
마음 같아서는 중봉을 거쳐 묘향암에 가고 싶은데
길을 막아두어서 금단의 선을 넘으려니 부담스럽다

오랜만이다 반야!!
멀리서 짝궁뎅이 반야님을 얼마나 바라보았는지 아실라나
내 마음속에는 언제나 지리산이 웃고 있고
지리산의 지혜를 안고 있어 더 그리운 반야님
◆반야(般若)는 지혜를 뜻합니다.
지혜는 지능이 높다거나 똑똑하다는 게 아닙니다.
편견 없이 사물이나 현상의 참모습인 실상(實相)을 본다는 의미입니다.

般若峯은 지명에 대한 전설이 많다
◆ 지리산에서 불도를 닦고 있던 반야가 지리산의 산신이면서 여신인 마고할미와 결혼하여
천왕봉에서 살았다는 전설이 있고,
◆ 어떤 도력이 있는 스님이 뱀사골에 있는 이무기를 물리치고
사찰의 안녕을 이루면서 반야심경에서 이름을 따 반야봉이라고 지었다는 설도 있다.
◆ 마고할미가 지리산에서 불도를 닦고 있던 반야를 만나서 결혼한 뒤
천왕봉에 살다가 슬하에 여덟 명의 딸을 두었는데,
그 뒤 반야가 더 많은 깨달음을 얻기 위하여 처와 딸들을 뒤로하고 반야봉으로 들어갔다고도 한다.
산의 지명은 불교에서 지혜를 뜻하는 말인 반야(般若)에서 유래되었다.
지리산에 사찰이 입지 하면서 붙여진 이름으로 추정된다.

반야봉 철쭉은 좀 더 있어야겠다
이곳이 분홍빛으로 물들면
이곳에 오는 사람들이 환장할 텐데...
환장에 자신 있는 난 철쭉이 만발할 때 이곳에 온다면 대환장파티를 할 것만 같다
1700 고지의 반야봉
이곳저곳 뻗어있는 능선을 바라보며 하산을 잊고 멀건히 있다
햇빛을 그대로 내리받는 반야정상
그늘이 없어도 지리의 적당한 온도때문에 발걸음을 재촉할 필요가 없다
노고단 센바람보다는 반야의 보드라운 온도가 더 살가운 날이다

반야봉(般若峰,1732m)은
지리산 제2봉으로 반야봉에서 바라보는 낙조가 아름답다고 하여 반야낙조(般若落照)는 지리십경의 하나로 꼽힌다.
지리산에 있는 대부분의 봉우리가 주릉에 있는 것과 달리 주릉에서 벗어난 곳에 위치하고 있다
다시 왔던 대로 돌아가야 할 시간
산은 왔다가 다시 그 길을 갈 수 있다
인생은 되돌아갈 수 없어도 말이다
오면서 못 본 것 가면서 눈에 들어와 쉬어가는 시간이 되기도 한다
올 때 먹었던 임걸령 샘터 물맛을 갈 때도 맛보았다
가족들에게 물맛을 보여주겠다고 물통에 물을 가득 채워왔다


"지리산은 발림 붓으로 슬금슬금 펴 바른 듯하고,
설악산은 바늘처럼 뾰족하게 깎은 연필로 도화지를 찌르듯 그려낸 듯해 기억에 남는 양의 차이가 있었다.
그래서 설악은 보느라 정신없는데,
지리는 안 보느라 정신이 없다고들 한다.
조용히 내면에 귀를 기울이며 걷느라 그렇다."
몇 년 전 지리산 후기를 쓸 때 옮겨 썼던 말 그대로 다시 옮겨 담아본다

볕 잘 드는 곳에 식재한 진달래
이 진달래밭이 무성해질 때까지
지리산에 올 수 있었으면 참 좋겠다

진씨 성을 가진 달래양의 집성촌
고만고만할 때 함께 살기 시작해서 장승이 되어서도
등기대며 옹기정기 정감 있게 살아가는 진달래마을
나무들이 나이가 들어서 그런가
진달래꽃이 무성하지 않다고 생각했는데.....

바닥을 보니 진달래가 우수수 떨어져 있다
진달래나무 숲이라 바람을 막았나 보다
떨어진 진달래가 그 자리에서 꽃수를 놓고 있다

무성한 진달래 숲 사이로 노고단이 빼꼼히

오전 6시쯤 이곳을 떠났다가
반야봉에서 돌아오는 길
8시간 만에 다시 만나는 노고단 진달래 풍경이다
다시 들어가 보려고 했는데
예약인원이 꽉 차서 들어갈 수가 없다
한번 들어갔던 예약자는 재 입성 불가

구례 방면 화엄사계곡
노고단을 내려와 성삼재까지
신작로 같은 편한 길을 이리저리 돌아서 걸었다
화엄사에서 무넹기로 오르는 길
멀리 화엄사와 구례읍이 내려다 보인다
◆무넹기는 물이 부족하여 노고단 부근 계곡물의 일부를 화엄사 계곡으로 돌렸다고 하여
'물을 넘긴다'는 뜻에서 '무넹기'라 불리고 있다.

성삼재 주차장
고리봉-만복대-정령치로 이어지는 능선이
이곳에도 오라고 손짓하는 것 같다

구례로 가는 길
오후 5시 10분
동서울로 가는 버스를 기다리며
오랜만에 한가하게 성삼재 주변을 내려다보았다

기차를 타고 구례로 온다면 성삼재로 오는 버스를 이용할 수 있다
밤길을 거친 운전솜씨로 달리는 버스 기사를 생각하니
기차를 타고 오는 방법도 좋은 것 같아 시간표를 저장해 둔다
야생화

족두리풀

족두리풀

개별꽃

개별꽃과 노랑제비꽃

말발도리

숙은처녀치마

복자기나무꽃(나도 박달나무)
지리산 산행을 예약해 두고
몸에 이상이 생겼다
망설임은 폼이고 다녀와서 더 아프더라도
가고야 말 것이라는 고집이 망설임을 방어하고 있었다
고집을 부리는 이유는 내 안에서 떠나면 안 될 것 같은 우주하나를 품고 있기 때문이다
인간이 소설에 매혹되고 가수를 따라다니는 것은 현실과 다른 상황에서 매료되는 세계가 있기 때문이다
우리는 개연성이 풍부한 세상, 현실 못지않은 기막힌 세상을 갈구하고 살아간다
수없이 산행을 하다 보면 생애 딱 한 번만 벌어지는 풍경과 그 풍경 속에 영화처럼 서있기도 한다
그때 그 황홀감과 순간을 기대하며 떠나고 또 떠나는 것이다
떠나는 이유가 산이건 여행이건 말이다
뇌과학자 정재승 카이스트 교수는 이렇게 말한다
정신질환까지는 아니더라도
누구나 생각이나 행동측면에서 병적인 구석이 있다
이상하게 집착하고 한없이 일을 미루게 하고
쉽게 기억을 잃어버리기도 하며
한동안 우울에 깊이 빠지기도 한다
나는 왜 그런 걸까?
내 삶은 그로 인해 어떻게 변하게 될까?
사랑을 복원하고 관계를 회복하고 일상을 돌이키고 싶다면
난 뭘 해야 할까? 이런 의문이 들 때마다
우리는 엄마 자궁처럼 어두운 극장에 들어가 영화 속에서 답을 찾는다
그리고 그 안에서 문득 나를 발견한다
영화 속 인물에 공감하기도 하고 때론 적대감을 표출하기도 하지만
무엇보다 우리가 얻게 되는 건 연민과 동정의 눈물이다
“
결국 뇌과학자는
'영화는 인생이고, 스크린에는 고스란히 내가 투영돼 있다'
라는 사실을 발견하는 자일뿐이다
”
20260502. 성삼재에서 by gyeong~

거리는 핸드폰 오류
약 20킬로 산행
발바닥이 불나는 산행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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