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3.8.1. 목요일
성공회강화성당
(聖公會江華聖堂)
대한성공회 강화성당(江華聖堂)은 1900년 11월 15일에 준공된 대한성공회 서울교구 소속 성당이다. 강화읍에 있기 때문에 강화읍성당이라고도 한다. 강화도에서 최초로 세워진 성당이기도 하다.
한옥 형식으로 된 건물로 유명하다. 정면 4칸, 측면 10칸 규모의 2층 건물로, 목골조를 사용하고 벽돌을 쌓아올린 기와집이며, 2층은 바닥이 없는 통층구조이다. 로마의 바실리카 양식을 본떠 지은 것으로, 외형상으로는 불교 사찰 분위기를 풍긴다.
한국에 서양건축이 도입되던 시기의 초기 건축으로, 한국 그리스도교 역사의 한 단면을 엿볼 수 있다. 특히 서양식 장식이 거의 없는 순수한 한식 목조건물이면서
지붕과 내부구조는 한국적 건축양식을 많이 가미하였기 때문에 그리스도교의 한국 토착화를 뚜렷하게 상징하는 듯하다.
1981년에 경기도 지방유형문화재 111호로 지정되고, 강화군이 인천광역시에 편입 되면서 인천광역시 지방유형문화재로 변경 되었다가 2001년 1월 4일에 성공회 강화성당이라는 이름으로 사적 424호로 지정 되었다.
보호면적은 6,452㎡이며, 대한성공회 유지재단 등이 소유 및 관리하고 있다. 성당주변에는 강화군청, 강화읍사무소, 용흥궁, 강화초등학교, 고려궁지 등이 위치해있다. 2009년에는 사회에 불만이 가득한 30대 남성에 의해 방화가 시도 되었으나 감시원에 의해 발각되어서 화재를 면한 사건이 발생하였다.
역사 1896년(고종 33년) 강화에서 처음으로 한국인이 세례를 받은 것을 계기로 1900년 11월 15일 대한성공회의 초대 주교인 찰 존 코프(한국이름 고요한)가 건립하였다. 대한성공회에서 가장 오래된 역사를 지니며, 현존하는 한옥 교회 건물로서도 가장 오래된 것이다. 또한 한국인으로서는 1915년 첫 성공회 사제가 된 김희준 신부를 배출하였으며, 당시 한글로 기록된 사제 서품장은 예배당 내에 보존되어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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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공회 강화성당의 외벽의 모습
경복궁 교태전의 후원(아미산)을 연상 시킨다.
처음에는 용흥궁인가 싶었는데 용흥궁은 성공회 맞은편에 위치하고 있었다.
정문을 찾기위해
외벽을 타고 돌아가니...정문이 보인다.
이 언덕위에서 성당의 종소리가 강화읍에 은은히 울려퍼지며
순박한 강화 사람들의 마음속 깊이 안식을 안겨주었으리라는 생각을 해보았다.
외삼문은 솟을대문에 팔작지붕으로,
현판에는 성공회강화성당(聖公會江華聖堂)이라는 글이 한문으로 쓰여져 있다.
글자도 오른쪽에서 왼쪽으로 한자 형식을 취하고 있다.
일본 성공회에서
일본을 대신하여 일제 침략으로 인해 손실 되었던
정문 난간과 종을 복원해 주었다는 내용이 적혀 있다.
궁궐 도편수가 주도하여 지어졌고
초대주교 고요한이 축성하였고
서양식 바실리카 건축양식을 응용하여 토착정신이 드러나게 지었다는 안내문
천주성전이라는 한자가 한옥과는 어울리지만
성당과는 어울리지 않고 사찰의 느낌을 받는다
보통 한옥에는 홀수칸인것에 비해 짝수 칸으로 되어 있으며
가운데 두칸은 본당
양쪽 칸은 복도이나...잠겨져 있어서 내부는 들어가 볼 수없다.
전체 모양은 배모양의 방주와 닮아 있는데
노아의 방주처럼 이 성당이 세상을 구원하는 방주가 되라는 뜻이 담겨져 있다고 한다.
높은 언덕위에 떠있으니 어찌보면 물위에 떠있는 것으로 보이고
회화나무는 닻이며
외삼문은 뱃머리로
성당건물은 배 본체로 보면 되겠다.
성당의 현판에는 천주성전(天主聖殿)이라는 글이 한문으로 쓰여있고
팔작지붕과 돌로 되어 있는 십자가가 세워져 있다.
그 내외부는 서양식 장식이 거의 없는 전형적인 한옥의 형식을 따르고 있다.
정면 4칸, 측면 10칸의 바실리카식 평면구성으로, 내부공간은 교회기능에 충실하도록 연출하였다.
초기 성공회선교사들의 토착화 의지가 나타나 있는 성당건물이다.
한옥처럼 기둥에는 주련이 있고 한자로 글귀가 쓰여 있다.
하느님의 가르침이 두루 흘러 만물과 동포의 즐거움이요,
백성을 깨닫게 하니 영생을 가르치다라는 내용이 담겨져 있다.
성당건물 후면
외삼문을 지나면 종각에 미사시간을 알려 주었던 동종이 걸려 있다.
일반적으로 절에서 보던 종과는 달리
십자가 문양과 교회를 알리는 문양이 그려져 있다.
교회에서 울리는 종소리...
그 울림은 과연 어떠할까
사제관 역시 영락없는 한옥의 형태이다.
순교하신 신부들의 묘비와 백주년 기념비가 서있다.
1910년 한국을 강제로 병합한 일본제국은 식민통치 말기
1943년 태평양 전쟁 수행을 위해
국민 총동원과 더불어 전쟁물자 공출을 이유로 교회 정문 난간과 종을 강제로 압수해 갔다
한일 성공회 교류를 통해 과거 일제가 일으킨 침략전쟁을 참회하는 뜻으로
2010.11월 강화읍 교회 축성 110주년 기념일에 침략으로 허물어진 정문과 종을 복원하였다.
초대주교 고요한 기념비
대영국 알미수녀 기념비
성당 뒷편 문
용흥궁 공원으로 내려가는 문이다.
내려오는 길에 널려있는 쓰레기...
이 귀한 곳에 쓰레기라니...
누가 이렇게 양심을 버리고 갔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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