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슴 한쪽 비워둔다면

photostory-寺

사찰기행-홍천 수타사(2013.11.17)

kyeong~ 2013. 12. 12. 00:41

 

 

 

            

 

 

● 수타사 [壽陀寺]

강원도 홍천군 동면 덕치리 공작산에 있는 절.

대한불교조계종 제4교구 본사인 월정사의 말사이다.

 

이 절의 효시는 신라 708년(성덕왕 7)에 원효가 우적산(牛跡山)에 창건한 일월사(日月寺)이다.

그뒤 영서지방의 명찰로 꼽혔으며, 1457년(세조 3)에 지금의 위치로 옮긴 뒤 수타사(水墮寺)라고 절 이름을 바꾸었다.

 임진왜란 때 소실된 것을 1636년(인조 14)에 공잠(工岑)이 재건했다.

1644년 학준(學俊)이 당우를 확장한 이래, 계철(戒哲)·도전(道佺)·승해(勝海)·정명(正明)·정지(正持)·천읍(天揖) 등이

불사(佛事)를 꾸준히 계속하여 1683년(숙종 9)에는 옛 모습을 되찾았다.

 

현재와 같은 절 이름이 된 것은 1811년(순조 11)이며, 1861년(철종 12) 윤치(潤治)가 중수한 이래 오늘에 이르고 있다.

현존 당우로는 대적광전(강원도 유형문화재 제17호)·흥회루(興懷樓)·봉황문(鳳凰門)·심우산방(尋牛山房)·요사채 등이 남아 있다.

이밖에 월인석보(月印釋譜 : 강원도 유형문화재 제18호), 3층석탑, 4기의 부도, 사리탑 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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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타사로 들어가는 초입에

뽕나무가 소나무에 살림을 차린 모습이 있다

잎이 모두 진 계절이라 사진상으로 잘 보이지 않겠지만

소나무 홈에 뽕나무가 자라는 모습이 신기해서 사진에 담아봤다

 

 

수타사 [壽陀寺]의 11월 풍경

 

 

 수타사 삼층석탑

지금의 수타사 맞은편에 위치한 수타사 삼층석탑은

강원도 문화재 자료 15호로 수타사의 이전 일월사 당시의 절터라고 전하고 있습니다.
높이 1.5m의 화강암 3층 석탑으로 고려시대 후기의 작품으로 추정하고 있습니다.
역사가 말해 주듯이 2층과 3층의 몸돌은 없어졌고 3층 지붕돌에 철주를 세웠던 구멍이 있고

지금 윗부분에 있는 둥근돌은 탑과 관계없는 것을 올려놓았다고 합니다.

 

   

수타사 삼층석탑앞에서

가을이 남긴 흔적을 찍어 보았다.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가을 흔적을 보는 듯하다.

 

 

봉황문(鳳凰門)

수타사의 정문으로 양쪽에 소조사천왕상을 모시고 있다.

 

 

   

소조사천왕상

지방유형문화제 121호

 

 

 

흥회루(興懷樓)

대적광전을 향하여 예배를 드리거나 법회를 보던 곳이다.

밖에서 경내로 들어올 때 봉황문 다음에 위치한 흥회루(興懷樓)는

 1658년(효종 9)에 처음 지은 건물로 맞배지붕에 앞면 5칸, 옆면 3칸의 규모를 하고 있다.

누라면 보통 2층으로 되어 있으나 이 흥회루는 단층으로 지었다.

 

 

 

주심포 맞배지붕의 이 건물 안에는 목어·법고·범종이 있다.

1.5m 남짓의 목어는 용 모양이 아니라 물고기 형태로 여의주를 물고 있는 게 특징이며,

 돼지코에 여덟 개의 이빨을 드러내고 있다.

 

법고는 두드리는 부분에 암·수의 소가죽을 대었고, 나무 부분에 용을 그려 놓았다.

특히 눈에 띠는 것은 법고를 받치고 있는 법고대(法鼓臺)다. 아래로부터 4개의 단을 설치하고

그 위에 활짝 핀 연꽃을 조각하였으며, 가운데 부분에 팔각형의 보주를 놓았다.

보주 위에는 연꽃의 연밥 모양을 얹어 놓고 다시 4개의 단을 만든 다음 심자형의 대를 만들어 그 위에 북을 올려놓은 것이다.

이는 수미산 형태의 법고대로서, 수미산 꼭대기 위에서 울려 퍼지는 법음(法音)을 상징적으로 나타낸 가치 있는 작품이다.

 

 

수타사(壽陀寺): 범종(梵鐘) 

범종각에는 1670년에 만든 범종이 있다.

높이 1미터가 조금 넘는 이 종은 조선시대 범종 양식을 따르면서도 몇 군데 특이한 모습을 보이고 있다.

현재 보물 제11-3호로 지정되어 있다.  

 

 

종의 머리 부분에는 거칠게 새겨진 용과 함께 음관이 갖추어져 있는데,

이 음관은 고려 후기 원나라의 영향을 받아 한 때 사라졌던 것을 임진왜란 이후

우리나라 전통 종을 되살리고자 하는 의도에서 다시 부활시킨 것이다.

‘한국종’의 특징을 회복해 가지고자 했던 그 당시의 주체정신이 이 종에도 반영되어 있다.

 

종의 몸체 가장 윗부분의 천판에는 별다른 문양이 없으며,

어깨 부분에 해당하는 상대에는 ‘옴마니반메훔’의 여섯 글자가 범어로 새겨져 있다.

천판 바로 밑에 사방으로 새겨져 있는 네모의 유곽에는 화려한 당초문이 조각되어 있고,

 유곽 안에는 여섯 잎의 별모양 꽃판 이에 낮게 솟아 있는 유두 9개가 있다.

이 유곽과 유두는 중국종에서는 아예 찾아 볼 수 없는 우리나라 범종의 한 특징이다.

 

유곽과 유곽 사이에는 연꽃을 들고 구름 위에 서 있는 인물상이 조각되어 있는데,

발 밑에 연화대가 없는 것으로 보아 공양천인상(供養天人像)임을 알 수 있다.

흔히 조선시대의 종에 지장보살 또는 관세음보살이 새겨지는 것과 비교한다면

이 종의 천인상은 정형에서 조금 벗어난 것이라고 불 수도 있다.

 

 특히 종을 치는 부분의 당좌에는 매우 특이한 조각이 새겨져 있다.

거의 대부분의 당좌는 연꽃 모양으로 묘사되기 마련인데,

이 종에서는 여덟 잎의 둥근 연꽃 바깥 쪽에다 불꽃 모양을 새기고,

다시 사방으로 꽃 같기도 하고 꽃잎 같기도 한 조각을 새겼기 때문이다.

그리고 가장 밑부분의 하대에는 화려하게 조각된 당초문·보상문·연화문과 함께 4마리의 용이 새겨져 있다.

곧 사해용왕(四海龍王)을 조각해 놓은 것이다.

 

전체적으로 볼 때 임진왜란 이후의 조선시대 범종 중에서는 대표작에 속할 뿐 아니라,

당시로서는 매우 정성을 기울인 가치있는 종이라 하지 않을 수 없다.

 

 

 

 대적광전( )

수타사의 큰 법당으로 아침예불과 저녁예불을 드리는 곳이다.

대적광전 주불로는 비로자나부처님이 모셔져 있으며

영산회상도가 후불탱화로 그려져 있다.

 

 

대적광전 지붕의 청기와 두장

 

대적광전 내부의 닫집은 장중하고 정교하며 화려하다

수타사에 들러 이 닫집만 보아도 찾아온 보람을 느낄수 있다

 

이닫집에는 황룡 풍령 극락조 악기등을 만날수 있으며 

가장 주목되는 것은 서까래밑의 "적멸궁"이라고 쓰여진 편액이다.

이것은 궁전속의 가장 중심이 되는 궁궐이라는 뜻이며

한없이 고요한 빛의 궁전이고 열반의 즐거움이 깃들어 있는 궁궐 '적멸궁' 이라는 의미이다.

 

 

법당앞 답도옆에는 법신 불전에 지극한 정성으로 공양물을 올리기 위한

청수대로 사용하였을듯한 석조물(높이 8척)이 놓여 있다.

 

 

대적광전에서 바라본 풍경

 

 

 

 

원통보전(圓通寶展)

관세음 보살을 모신 전각으로 사시 예불을 드리는 곳이다.

 

정면 3칸, 측면3칸의 팔작지붕으로 주불로 목조 십일면관세음보살님을 모시고

좌우 불단에 소천불좌상이 봉안되어 있다.

 

   

원통보전의 지붕이 특이하다.

 

 

 

 

 

 심우산방(尋牛山房)

주지스님이 거처하는 요새채이다.

편액은 탄허스님의 친필이다.

 

 

 

 삼성각(三聖閣)

치성광여래, 나반존자, 산신 세분의 성인을 모신곳이다.

 

 

 

 백련당

수타사 종무소로 쓰이는 요사채이다.

 

 

 

 

 

 

 봉황문의 열린 문으로 보장각이 보인다.

 

 

 보장각(수타서 성보 박물관)이 소장하고 있는 월인석보는

사진촬영을 할 수없다.<문화재청 자료>

 

 

수타사로 가는 길의 풍경들>

 

 

 

 

 

 

 

 

11월 중순

홍천에는 나뭇잎이 잎을 떨구고 겨울로 접어들고 있었다.

 

어머니와 오남매

 온가족이 홍천에서 하루를 묵고

어머니가 좋아하는 수타사에 들렀다.

어머니와 그리고 내 혈육의 손을 잡고

이틀간 부처님 품안처럼 편안한 나들이을 하였다.

2013.11.1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