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녕 우포늪 천년보호구역
창녕 우포늪 천년보호구역우포늪은 국내 최대의 자연늪이다. 경남 창녕군 대합면 주매리와 이방면 안리, 유어면 대대리, 세진리에 걸쳐있는 70만평. 끝이 보이지 않을 정도로 광활한 늪지에는 수많은 물풀들이 머리를 내밀고 있다. 부들, 창포, 갈대, 줄, 올방개, 붕어마름, 벗풀, 가시연꽃 등이 무더기로 자라고 있다. 늪에 반쯤 밑동을 담그고 있는 나무들이 '원시'의 분위기를 자아낸다. 개발이란 미명아래 국내 많은 늪은 사라지고 이제 늪의 모습을 제대로 갖추고 있는 곳은 국내 한 곳. 바로 우포늪뿐이다.
뭍도 아닌 물도 아닌 늪, 그대로 간직한 마지막 자연늪인 우포는 산으로 둘러싸여 개발이란 탐욕의 칼날을 피할 수 있었던
이젠 보존해야할 우포... 우포늪은 1997년 7월 26일 생태계보전지역1)중 생태계특별보호구역(환경부고시 1997-66호)으로 지정되었으며 국제적으로도 1998년 3월 2일 람사르협약2) 보존습지로 지정되었다. 그리고 1999년 8월 9일 습지보호지역3) 으로 지정하여 관리하고 있다. 이제 우포는 세계인이 지켜보는 가운데 보존해야 할 곳이 된 것이다.
1) 생태계보전지역(자연생태계보전지역) : 환경부장관이 자연환경 보전지구에서 자연생태계의 보전이 특별 히 필요한 지역에 대하여 설치한 자연생태계 보호구역 (자연환경보전법 제15조).
2) 람사르협약 : 물새 서식지로서 특히 국제적으로 중요한 습지에 관한 협약.
3) 습지보호지역 : 자연상태가 원시성을 유지하거나 생물다양성이 풍부한 지역 등 특별히 보전할 가치가 있는 습지를 보호지역으로 지정한 곳이다. 이 지역은 1999년 2월에 제정된 습지보전법에 의해 보호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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햇살의 품이 넉넉한 날
자전거를 타고 돌아보는 것도 좋은 곳입니다.
여기에서 우린 왼쪽길
전망대가 나오는 곳으로 갑니다.
어릴적 많이 걸었던 길
흙냄새 폴폴 나는 신작로같은 길을 따라 갑니다.
나무는 숨소리를 멈춘듯했고
새들은 어디에 앉아 있는지 조용한 계절입니다.
얼마걷지 않아 가파른 계단을 따라 오르면
전망대가 나옵니다.
망원경으로 맞이하는 철새들
철새들을 관찰하는 전망대입니다.
우포늪에는 왕버들이 많아요
싱그러운 잎들이 무성한 계절에 온다면
참 아름다울 것 같습니다.
갈림길에서 헐린 건물이 있는데
헐린 건물 안에서
그냥 한번 찍어 봤어요
여기서 부터 길이 좁아지고
풀이 무성하고
풀, 나무, 길, 모두 지멋대로 나있는 느낌이 들기 시작합니다.
아무렇게 있어도
누가 손대지 않아도 좋은 길
이렇게 가꾸지 않아도 아름다운 세상
자연 그대로
그대의 마음에도 손대지 않은 그런 마음이 좋더라구요
둑을 넘어 습지 않으로 들어왔습니다.
겨울이라 살얼음도 있고
지멋대로 누워있는 풀들....
멀리서 유유히 떠있는 철새들
누구하나 쉬어가라는 사람 없어도
멈추어 멀리 새떼를 바라봅니다.
나무위에 까치집이 보입니다.
어느 새는 나무위에 잠들고
어느 새는 물위에 잠이 듭니다.
각기의 보금자리가 다르지만 놀이터는 같을지도 모릅니다
잎이 다 떨어지고 텅빈 나뭇가지를 까치집이 지킵니다.
평온한 마음을 가지면
아무렇게나 꺾이고 누워있는 풀들마져 그림이 됩니다.
내가 무심코 밟아 놓고도
그림처럼 찍어봅니다.
내게 밟힌 것
밟히지 않은 것
멀리 있는 것
가까이 있는 것
세상은 모두 내안에 있습니다.
강가의 풍경처럼....
왕버들의 군락지..
손이 시렵지 않을때 자전거를 타고 한바퀴돌아도 참 좋겠어요
전망대 풍경
얼지않은 물위를 찾아
옹기종기 모여있는 철새들...
디카로 찍은 것이라
새들의 세세한 모습들을 찍지 못해서 아쉽습니다.
망원렌즈가 있었다면 ...
아쉬움이 많이 남습니다.
서로 다른 이름의 새들끼리
사이좋게 모여 있습니다.
청둥오리와 큰기러기가 어울려 놀고 있습니다.
사이좋게 모여있는 철새들
머리푸른 새는 청둥오리
우포늪 생태관
←산토끼 원본 악보 '영인본'
산토끼 현재 악보↓ |
산토끼 노래의 탄생 일화
산토끼 노래는 일제 강점기인 1928년 가을
창녕군 이방면에 있는 이방보통학교(현 이방초등학교)에 재직하던 이일래 선생이 직접 노랫말을 쓰고 곡을 만들었다.
당시 이 선생은 딸 명주(당시 1세)양을 안고 학교 뒷산에 올라가 지는 해를 바라보다가
바로 앞에서 산토끼가 깡충깡충 뛰노는 모습을 보고
"우리 민족도 하루빨리 해방이 되어 저 산토끼처럼 자유롭게 살 수 있으면 얼마나 좋을까"라고 생각하면서
그 자리에서 가락을 흥얼거렸고 집으로 돌아와 곧바로 오선지에 곡을 만들고 가사를 붙여 만든 것으로 전해진다.
이렇게 탄생한 '산토끼'는 처음에 이방초등학교 전교생들이 부르기 시작했고
이웃학교를 거쳐 전국 퍼지면서 민족혼을 고취하는 역할을 했다.
하지만 이 노래는 토끼 형상인 우리 국토를 연상시키고 민족감정을 유발했다는 이유로
일제가 부르지 못하게 하는 수난을 겪기도 했다.
이후 이 선생이 일제의 탄압을 피해 자신을 숨겼고 해방과 6·25 전쟁 등 격변기를 거치면서
'산토끼' 노래는 작사·작곡 미상으로 남아 있다가
1938년에 출판된 '조선동요 작곡집'의 영인본이 1975년도에 나오면서 뒤늦게 그가 만든 노래임이 세상에 알려졌다.
영인본에 실린 노래 가사는
'산토끼 토끼야 너 어디로 가나/깡충깡충 뛰어서 너 어디로 가나/
산고개 고개를 나 넘어가아서/토실토실 밤송이 주우러 간단다'로 돼 있다.
훗날 부르기 쉽고 어감이 편리하게 노랫말이 약간 바뀌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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