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월에 잠시
오월의 산속에는
보이는 것마다 꽃 아닌 게 없다
바람을 찌르던 솔잎에도
내미는 손끝마다 송화가 가득
산언저리를 떠받히던 돌 밑에도
꽃 같은 혀가 봄을 노래한다
꽃이 핀 자리에 우르르 몰려나온 잎들도
꽃처럼 고운 연둣빛이여
나무의 실핏줄이 터질 때마다
쏟아지는 저 연둣빛
연둣빛이 열리는 산 중턱에서
뒷짐을 지고 하늘을 보니
나는
허공을 향하는 오월 담쟁이
나이를 세어 무엇하랴?
梁該憬
2014.5.5. 삼척 쉰움산에서
우르르 꽃이 몰려 오고
우르르 몰려오는 오월 속에
연둣빛이 잔뜩이다
바람이 불때마다 저만치 밀려갔다가 밀려오는 연둣빛 파도를 따라
마음은 오월의 피는 잎이요 꽃이어라
돌이며
나무며
꽃이며
잎이며
세상 모든 것이 오월만 같으면 아름답지 않은 것이 어디 있으랴
연두빛에 취해서
바람 부는 것도 있겠다
솔잎 사이사이로 드나드는 오월의 향기여
산 꼭데기 저 허공을 향하여 오르는 담쟁이 순같은
오월의 기쁨...
녹색의 숲에서 수도하듯 서있는 저 고목에서도
새잎이 돋을 것 같다
쉰의 육신이 나이를 잊고
오월의 연둣빛이 되는 순간이다.
두타산 천은사(頭陀山 天恩寺)
사찰명: 천은사
소재지: 강원도 삼척시 미로면 내미로리 758번지
전화번호: 033-572-0333
대한불교조계종 제4교구 본사 월정사 말사
신라 경덕왕 때 창건된 천은사
신라 경덕왕 17년(758년), 서국에서 건너온 두타삼선(頭陀三仙)이 산의 세 곳에
연꽃(蓮花)으로 표식을 남겼는데,
이 표식을 좇아 남쪽에는 금련대(金蓮臺/현 영은사), 북쪽에는 흑련대(黑蓮臺/현 삼화사),
서쪽에는 지금의 천은사인 백련대(白蓮臺)를 건립하지만,
백련대가 온전한 절의 모습을 갖추기까지는 범일국사가 극락보전을 중창하면서부터이다.
고려 충렬왕 때, 동안 이승휴가 이곳 용안당에서 대장경을 다 읽었다는 뜻으로
백련대를 간장사(看藏寺 1304년)라 바꾸면서 세간에 알려지기 시작했다.
그러나 조선 선조 31년인 1598년 휴정(休靜 서산대사)이 중건할 때,
절의 남서쪽에 있는 봉우리가 검푸르다고 해서
흑악사(黑岳寺)로 이름을 바꾸고,
1899년 태조의 5대조인 양무장군의 능(준경묘)을 만들고 이 절을 원당사찰로 삼았는데,
이때 ‘하늘의 은혜를 입었다’는 의미로 천은사로 바꾼 것이 지금의 천은사로 불리게 되었다.
천은사는 1948년 화재로 전소되고 6·25전쟁으로 소실되었다가
1976년 주지로 부임한 일봉 스님이 중창하여 오늘에 이르고 있다.
경내에는 동안 이승휴의 사당인 동안사(動安祠)를 건립하고
1979년부터 매년 선생을 기리기 위한 다례제를 올리고 있다.
천은사 경내는 그다지 넓은 편은 아니다.
하지만 누각 아래 지금 사적 제21호로 지정된 이승휴유적지 대부분이
본래 천은사의 경내 안이므로, 통일신라 말에서 고려시대에 이르는 동안
매우 커다란 사찰이었음을 알 수 있다.
금당인 극락보전이 위쪽에 자리하고, 그 왼쪽에는 아담한 규모의 약사전이 있는데
현재 천은사에서 가장 오래된 건물이기도 하다.
극락보전 오른쪽 조금 위로 삼성각이 있다.
누각은 극락보전 맞은편에 자리하는데, 2층 규모로 건물 안쪽에
"보광루(?光樓)"라고 쓴 편액이 있다.
그런데 예전 기록에는 이 누각을 영월루(暎月樓)라고 한 곳도 있다.
보광루 옆에는 범종각이 있다.
이승휴의 사당이 있는 동안사
이승휴, 제왕운기
고려 후기 문관 이승휴가 쓴 역사 서사시
이승휴가 이 책을 쓰던 당시 고려 사회는 몽골과의 전쟁에서 져서 원나라의 지배를 받던 시점이며
무인들이 권력을 잡고 있던 시기였다.
지방의 문관이던 이승휴는 이런 현실을 극복하려면 왕의 어진 정치가 절대적으로 필요하다고 보았고,
이를 위해 역사의 교훈을 시로 기록했다.
내용 중에 충렬왕의 치세를 높이 평가하는 부분, 원나라의 비호를 고령 왕실의 영광으로 칭송한 부분 등은
왕권을 통한 정치와 통치력의 회복을 바라는 저자의 심정이 강하게 반영된 것이다.
또한 단군신화를 서술하며 단군을 민족의 공동 시조로 삼은 것은 사학사에 있어 매우 중요한 인식의 전환이었다.
1280년 저술해 1287년 왕에게 올렸고 이후 왕들에게 좋은 평가를 받았다.
제왕운기는 김부식의 삼국사기(三國史記), 일연의 삼국유사(三國遺事)와 함께 고려의 3대 역사책이다.
제왕운기(帝王韻紀)의 상권은 중국 역사, 하권은 단군 이후 충렬왕 때까지의 역사적인 사실을 2,160구의 한시(漢詩)로 쓰여 졌다.
우리가 중국과 다른 단일 민족임을 역설했다.
고구려와 발해가 우리 민족임을 역설했다.
제왕운기를 연구하면 사악한 중국의 동북공정의 이중성을 반박할 수 있게 할 것이다.
그의 저서로는 내전록(內典錄), 동안거사집(動安居士集)이 있는데
동안거사집에는 많은 시들도 수록되어 있다. 그는 위대한 시인이었던 것이다.
'photostory-山' 카테고리의 다른 글
정선 백운산 하이원 하늘길(2014.6.8) (0) | 2014.06.11 |
---|---|
가평의 축령柏林 잣나무숲길(2014.6.7.) (0) | 2014.06.10 |
가은산-강를 따라 파도를 타는 연둣빛, 이 봄을 위한 가장 아름다운 빛 (0) | 2014.04.23 |
월출산-달이 지나는 풍경, 달에게 집착하다. (0) | 2014.03.23 |
태백산-눈이 거처하던 곳마다 선한 볕이 파고들어 쌓인 눈이 성성하다 (0) | 2014.02.25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