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건리 이끼계곡을 향하여 길을 나섰는데
비가 내리기 시작한다
오다가 말겠지....싶어 그냥 터벅터벅 오르기 시작했다.
일단 길을 나서면 되돌아서 가기 싫은 이마음
늘 하늘은 나를 위하여 길을 열어줄 것이라는 믿음으로
되돌아서려는 생각은 않는다.
여름날의 오후시간
땡볕이 없으니 다행이다.
예전 이장님 댁이었고
여기서 부터 차량을 금지시키는 바리케이트가 있었는데
지금은 철거가 되었다.
차량은 더 진입을 할 수 있으나 이장님이 살던 빈집에 주차를 하고 걷기 시작했다.
느긋하게 걸어서 두어시간이면 이끼계곡에 도착 할 수 있다.
주인이 떠난 집 터에 밤이 영글어가고 있다
올해는 추석이 이르다는데....그래서인지 차례상에 오르는 밤톨이 더 친근하다.
주인 없는 농가에 꽃도 피고
매미도 살다가고......
다만 주인만...떠나고 없다.
주차를 하고 한 10여분 걸었을까 길모퉁이 또 빈집이다
집둘레에 도라지꽃도 피었고 개망초꽃도 여전히 피어있는데
사람들은 어디론가 떠나고 없다.
무너질 것 같은 축대
손질하지않은 무성한 잡초들
정겹던 길이 갑자기 쓸쓸하다.
빈 농가를 지나자 키 큰 전나무가 무성한 급경사의 길이 이어진다
아들이 아버지가 왔으면 힘들었겠다고 아버지 걱정을 하는데
괜히 서운한 생각이 든다.
엄마가 힘들다는 생각은 전혀 하지않는 괘씸한 아들같으니라구.
비가 그칠 것 같지 않다
멀리서 비가 자꾸 몰려온다
비상용으로 차에 가지고 다니던 우산은 하나인데....
아버지 염려를 먼저하는 괘씸한 아들이지만
그래도 우산을 아들에게 양보를 했다.
나는 비를 맞고 싶노라고.....
진담반으로.
성황당 나무가 있는 구시재...
이제 급경사의 아스팔트길이 끝나고
완만한 흙길이 시작된다.
차가 다닐만치 넓은 임도이지만
왼쪽으로는 절벽이다
그 깊이를 가늠하지 못할정도로 아찔한 절벽길이다.
잎이 넓은 칡위에 빗방울이 앉아 있다
칡꽃향이 짙은 팔월...
비가 오니 그 향기 점점 진하게 전해져 온다
칡꽃 너머로 먼산의 산줄기들이 다가선다
지대가 높은 곳이라 봉우리 끝이 눈앞에 보인다.
이길을 지나는 여행자들이
쉬어가는 시간에 저렇게 정갈하게 돌탑을 쌓았나보다
풍경이 된 돌탑....
손끝으로 흔들어 보았다. 꿈적도 하지않는다.
누군가의 손끝이 야무졌던 모양이다
비바람에도 잘 견딜수 있을 것 같다.
언젠가부터...저렇게 쌓은 돌탑이 바람에 무너지면 어쩌나...
마치 탑을 쌓은 사람의 정성이 무너지는듯한 느낌이 들어서
괜한 걱정을 하고 손으로 흔들어 보곤했었다.
나는 돌탑에 돌을 얹지 않는다
그리고 소원같은 것을 왠만하면 빌지 않는다
이렇게 아름다운 풍경속에 사는 것도 축복인데 무얼 자꾸 원해...
그냥 이렇게 걷다가 가는거지.
나는 산을 건너가고
그 산을 건너가는 가슴이 그냥 좋을 뿐이고...
저 칡넝쿨은 나무를 더듬어 건너가고 있다
팔월이 얼마나 좋았으면 꽃을 피울꼬
칡밭이다.
칡잎 아래서 피는 저꽃...
팔월이 좋아서 피는 저 꽃...
아마도 난 칡꽃이 필때면 이곳에 오고 또 올 것 같다.
길을 따라 피고 있는 칡꽃...
무건리 이끼계곡으로 가는 임도의 매력은
금강송을 보면서 걷는다는 것이다.
가장 멋진 소나무들이 살고 있는 이곳
비를 타고 전해져 오는 송진냄새가 좋다.
빗줄기가 굵어지니 길이 질퍽거린다
이내 물이 고이고 흙탕물이다
옷도 젖고
신발도 흙탕물에 빠졌다.
칡꽃이 타잔놀이를 하고 있다.
정면에 저렇게 민둥산이 나타나면 큰말이다
여기에서 오른쪽 작은 무궁화 나무가 있는 길로 접어들면 된다
비가 와서 좁은 산길로 내려가자니
풀잎이 스쳐서 옷이 더 많이 젖기 시작했다.
여기쯤 예전에 소달국민하교 무건분교가 있었는데
산사태때문에 폐교가 되고 그자리에 무궁화 나무가 학교 터를 지키고 있다
올해도 여전히 무궁화는 피고 있었다
예전 이곳을 지키던 작은 악동들의 기억하면서.
칡꽃이 난장판이다
꽃을 밟고 지나갔다.
꽃이지만...떨어지니 밟히고 마네
사람도 이렇게 낮아지면 밟히게 되던데.
이러저리 칡꽃을 따라 길을 걸었고
무성한 빗방울을 따라 길을 걸었고
아들과 비를 맞으면서도 즐거운 이야기를 하면서 길을 걸었다
칡넝쿨속에 들어가 잠시 비를 피하면서
빵을 먹었다
칡넝쿨안에서 웅크리고 앉아 비를 맞으며 먹는 빵맛을 아는가요
비가 와도 길을 걷는 엄마
아들이 엄마를 탓하지 않아서 다행이다.
함께 즐기는 것인지
즐겨주는 것인지..
이 칡동굴에 앉아서 잠시 이야기를 나누었다.
간혹 친구들 중에 부모님께 마구 대하는 친구가 있는데
그 모습이 무척 싫다고 한다.
군생활에서도 후임들에게
-남자다운 자식이 되라
-부모에게 첫째 둘째 셋째가 효도라는 것을 잊지말라고 했단다..
말은 그렇게 하는데 가끔 에미 속을 뒤집어 놓기 일쑤다...ㅎㅎ
그렇게 급경사를 한동안 내려오면
성황골 용소폭포가 치맛자락 펄럭이며 나그네를 맞이한다.
이끼계곡을 보러왔으니 얼마나 많은 사진을 찍었을까
이리저리 마구 셔터를 눌렀다.
비를 맞은 카메라 셔터가 말을 듣지 않느다..
상단폭포까지 올라가 한동안 웅장한 물소리에 취했다.
아들이 신기한 모양이다
이런 비경때문에 아들은 늘 군소리 없이 따라나선다.
장가 가기 전까지 얼마나 같이 다닐 수 있을까.
그래도 따라다녀주니 얼마나 기특한지.
부디 많이 다니고
많은 이야기를 나누고
이 아름다운 세상에
부모와 자식의 연으로 만나 행복하게 살다가 갈 수 있기를 ....
날이 어둑해지려고 해서
서둘러 다시 돌아가는 길
길이 올때 보다 더 진창이다.
진흙길을 걸었더니
흰양말이 흙색깔이다
빈 농가를 보면 자꾸 걱정이 된다...
저집 쓰러지면 안되는데...누군가 와서 살았으면 좋겠다
옥수수와 도라지를 심어 놓고 누군가를 기다리고 있었으면 좋겠다.
소재말 주인이 떠나고 없는 마당에
꽃은 이렇게 아름답게 집을 지키고 있다.
.
.
.
아들과 걷던날의 일기...
-en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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