섬전체가 박물관처럼 느껴지는 강화도의 부속섬 "교동도"
2014년 7월 연육교가 생기면서
멈추었던 역사가 넓은 세상을 향하여 흘러가는 섬으로 바뀌었다.
교동도는 왕족의 유배지로서도 유명하지만 화개산에 오르면 북한땅이 눈 앞에 펼쳐진다.
멀게만 느껴지는 땅, 장막에 가려진 북한을 바라본다는 호기심이 생긴다
화개산에 올라 망원경으로 이리저리 살펴보면
그저 고요하기만한 바다건너 북한..
북한이 갑자기 가장 평화로운 섬처럼 느껴지는 것은 왜 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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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제 더 이상 섬이 아닌 교동도
또다시 역사가 흐르고 시간이 흐르는 섬
그 교동도 안에 내가 좋아하는 둘레길이 있어서 좋다.
강화나들9코스이자 교동도 둘레길은 2개
그중에 "다을새길"을 선택하여 친구 4명과 섬 탐방에 나섰다.
교동도(喬桐島)
인천광역시 강화군 교동면에 속하는 섬.
강화도 북서부에 위치하며, 동쪽으로 바다를 건너면 양사면과 내가면이 있고, 남쪽으로는 강화군 삼산면 석모도가 있다. 북쪽으로 불과 2∼3㎞의 바다를 끼고 황해도 연백군이 있다. 따라서 섬 북부에서는 황해도 땅을 쉽게 바라볼 수 있으며, 좀 높은 곳에서는 예성강 하구를 볼 수 있고, 맑은 날에는 개성 송악산도 바라볼 수 있어, 실향민들이 화개산 산정에서 북쪽을 바라보며 망향제를 지내는 곳이기도 하다.
교동도는 『삼국사기』에 따르면 달을참(達乙斬), 고목근(高木根), 교동(喬桐)으로 바뀌었다는 기록이 나온다. 달을참이란 ‘크고 높은 산이 있는 고을’이라는 의미를 가진 지명이라고 전한다. 대운도(戴雲島), 고림(高林)이라고도 불렸다.
6·25전쟁 이전에는 4개의 정기연락선이 있어 육지와 서해도서가 자유롭게 연락되었으나, 전쟁 이후 매우 불편해졌다. 그러나 서울과의 연결은 강화도 창후리에서 수시로 배가 있고, 연안도서를 연락하는 선편이 있으나 불편한 편이다. 육지와 격리된 섬인 까닭에 고려 중엽부터 조선 말기에 이르기까지 유배지로 이용되었고, 지리적 위치상 외세의 침범이 빈번했던 관계로 섬에는 많은 고적이 남아 있다.
1629년에 축조된 읍성지(邑城址), 1173년경 축조된 것으로 추측되는 화개산성지, 교동구현허(喬桐舊縣墟)를 비롯하여, 고려희종이 유배되어 기거하던 경원전(慶源殿)과 철종잠저소(哲宗潛邸所)·봉수대(烽燧臺)·단묘(壇廟) 등과 그 밖에도 많은 유적들이 있다. 또, 명승지로는 교동팔경이 있고, 화개사·교동향교 등은 화개산 남쪽에 있다. 오염원과 축산농가가 없어 맑고 깨끗한 농업용수로 농사를 지어 생산한 교동쌀이 이름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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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화군에는 부속섬이 참 많다.
석모도에도 가보았고 볼음도옆 아차도에도 가보았다
그리고 교동도에 두번째 방문이다.
첫번째 방문은 잠시 교동향교와 화개사 그리고 교동읍성만 보고 갔었고
이번에는 둘레길을 걸어볼 요량이다.
다을새길
2015.6.21.일. 맑음
월선포에서 시작하여 교동향교-화개사-화개산-대륭시장-남산포-동진포-월선포로 원점회기
16km의 거리 6시간 정도 소요되는 길이다.
교동교 입구에서 해군초소의 검문을 받는다
대표자 한사람이 신분증을 보이고 인원체크를 하면 출입증을 교부받는다.
교동교
2014년 7월 개통
교동도와 강화도간 연육교
"다을새"란 뜻은 교동의 옛지명으로 대운도(戴雲島 : 구름에 뜬 섬) 또는
달을 신(達乙新 : 하늘에 닿을 새)이라 하였으며 다을새는 달을신의 소리음이다.
월선포 선착장에서 출발(오전 9시 15분)
이른시간 탓인지 월선포 선착장에는 아무도 없다.
우리만 이섬을 찾았고
우리만 이길을 독차지 할 것 같은 기분이다.
우리만의 세상을 향하여 걸어가는건가?
바닷가 답게 길에는 어획을 위한 어망이 손질되어 펼쳐져 있다.
강화 나들길 9코스(교동1코스, 다을새길)
"01"번부터 천천히 걷기 시작합니다.
둘레길을 만들때 왜 이리 복잡하게 설정을 하였는지...
섬안에 섬...길안에 또 길..어차피 다을새길로 기억할건데....
"교동 다을새길"이렇게 하면 편하고 좋을 것 같다.
목장승이 아니라 시멘트장승..
왼쪽길로 들어가면 폐허가 된 교동교회가 있다.
이섬은 시간이 멈추어 있던 섬.....
연육교가 생기면서 시간이 흐르기 시작한 섬
섬을 둘러보는 그동안 폐허가 된 가옥과 60-70년 그때로 돌아간듯한 가옥들이 많다.
지붕의 T.V안테나가 흑백티비시절을 연상시킨다.
마늘과 양파를 수확하는 계절...
길가의 밭에는 다 여문 마늘냄새가 달아오르기 시작하는 여름속으로 퍼져 나왔다.
한쪽에는 멸치처럼 작은 생선을 말리는데
공기도 좋고 볕이 좋아서 그런지 전혀 비린내가 나지 않는다
교동도의 먹거리 풍경...
아무데나 널어두어도 아무도 손대지 않는 마을이다.
폐허가 된 교동교회
마치 6.25전쟁이 지금 막 지나간듯한 ....그런 곳
의시시하다...
교동은 곳곳이 이렇게 허물어져가는 가옥이 많다.
아! 지금이 앵두가 익어가는 시절이었구나
오랫만에 앵두가 익어가는 것도 보고...
친구들은 길을 멈추고 저 앵두 모두 땄다.
딸기꽃도 피고 메꽃도 피고...
들길을 걸어야만 만날 수 있는 꽃
교동향교
볼것이 많지만 보수 공사중으로 안으로 들어갈수가 없다.
조선시대에는 국가로부터 전답과 노비·전적 등을 지급받아 교관이 교생을 가르쳤으나,
현재는 교육적 기능은 없어지고 봄·가을에 석전(釋奠)을 봉행(奉行)하고 초하루·보름에 분향을 올리고 있으며,
전교(典校) 1명과 장의(掌議) 여러 명이 운영을 담당하고 있다.
이사진은 먼저번 왔을때 찍어둔 사진으로 대신한다.
여기가 안양사가 있던 터라는데
쉬어가라고 나무의자도 만들어 두었고
큰 나무가 있었던 것으로 보아 오래된 절이 있긴 했나보다.
산열매가 익을대로 익어 나무의자에 떨어져있다.
일행중 경상도 두친구가 산초와 제피....두가지를 구분하느라 열심히 들여다보길래 한컷~
구 분 | 산초나무 | 재피(초피)나무 |
잎과 가시 | 마주나며 끝으로 갈수록 커진다. 잎이 매끈하다 가시가 서로 어긋나있다. | 잎 가장자리가 쪼글쪼글, 톱니 모양 가시는 서로 마주보고 있다. |
산부추와 머루꽃
화개산 중턱에 있는 사찰 화개사
강화도 일대에서 가장 유명한 특산품인 화문석은
고려시대 교동면 화개사의 스님들이 불공을 드릴때 앉았던 방석에서 유래된 것으로
교동 에서 자생하던 완초의 이용가치를 높이기 위 하여 완초(왕골)을 이용한 방석을 제작하기 시작하였으며
대한제국시대 후기부터 무늬를 가미한 방석이 본격적으로 제작 되었다.
먼저번 방문때에는 목단꽃이 피었었는데 이번에는 백합이 피었다.
화개사에서 만난 사슴벌레
화개사
고려때 창건한 목조건물로서 창건연대를 알 수 없다.
그러나 교동면 상용리의 "갈공사"에서 묵고 있던 무학대사, 낙공선사, 지공선사가 이곳 화개사로 공부하러 다니던 곳이라 전합니다.
당시에는 조그만 암자였던 것으로 화재로 불상 및 서적이 모두 소실된 것을 후에 다시 건립하였습니다.
또한 고려시대 목은 이색 선생이 교동을 아주 좋아하여 화개사에 머무르며 수양하고 글을 지었다 하며
화개산을 전국 8대명산중 하나로 꼽았다고 합니다.
(강화군홈페이지)
화개사마당에서 보면 강화 창후리 선착장과 별립산이 보이고...
스님의 옷인듯...
화개사와 화개사 지킴이 노송
화개사에 오르는 길에 이런 안내판이 있네요
2개의 샘이 있었던 것 같은데 보이지 않는 샘
일반 봉수대처럼 굴뚝형이 아니고
낮은 돌성곽처럼 보이는 교동 화개산 봉수대
청동기 시대의 암각화라는데 선명하지 않아
일반인으로서는 의미를 찾기 어렵다.
259.6미터의 낮은 산
그렇지만 교동도 전체가 보이고
멀리 석모도와 주문도 볼음도...
그리고 장막의 땅 북한이 보이는 중요한 곳이다.
그동안 역사속에 갇혀 시간이 멈추었던 섬 교동도에서
북한을 바라보는 느낌은 신비하고 궁금함이 많다.
화개산에서 바라본 석모도
교동도에는 작은 섬이지만
논이 많다
밥맛이 좋기로 유명한 교동섬의 쌀....
그맛을 아는 사람은 안다.
정상에 정자가 있어서
탁트인 풍경을 바라보며 쉬는 사람이 많다.
남산포 선착장쪽 교동도...
화개산 정상에는 산불 감시초소가 있는데
사람은 없다...
고구리 저수지쪽...
극심한 가뭄때문에 저수지가 바닥을 보이고 있다.
강건너가 황해도 연백군...
그리고 예성강 하구가 있다.
하늘도 맑고
망원경으로 자세히 바라보면 참 고요하고 우리와 별반차이가 없는 평화로운 땅이다.
율두산쪽...
교동교
머루따러 와야겠다...
머루가 참 많이도 달렷다.
펼쳐진 시원한 평야가 좋아서 이리저리 많이도 찍었다.
화개산 북쪽길
내려오는 내내 산딸기밭이다
친구가 연신 하는 말 "또 많네" 몇번이나 했던말인지...
딸기밭이 발목을 잡아서
산을 내려올수가 없었다
많아도 많아도...그렇게 많을수가..
내년 유월 셋째주를 꼭 기억해야겠다.
점심 먹은 도시락에 금밤 가득채운 산딸기...
화개산을 오르다보면 큰돌 작은돌들이 흘러내리듯 많은 곳들이 있는데
화개산성의 돌이 무너져 흘러내렸다고 보면 것 같고
내산성과 외산성이 있다.
이 표지판 앞에서 멈추어 효자묘자리 쪽으로 올라보니
그냥 지나면 모를정도 봉분을 가진 분묘가 있다.
효자묘 안내판과 효자묘
약간의 평지에 망초꽃이 분묘의 화단인듯...그득하게 피어 있다.
여기도 산딸기가 가득
하도 많아서 이젠 따는 것을 포기하고...
화개약수와 화개약수앞 나무에 걸어둔 목판 글....
샘터를 지키는 이야기가 쓰여 있다.
내려오는 길
친구들이 동심으로 돌아가 머리를 만지듯....
천화문
하늘이 맑아서 빛나는 곳인가...
한증막의 역사는 깊다..
조선시대부터 있었던 것이다.
연산군의 유배지가 가까운 것을 보니 혹 연산군의 치병과 목욕에 이용되었던 것은 아닐까.
해가 기니 딸기를 따느라 시간을 보내고도 시간이 많은 것 같다
이곳저곳 아낌없이 답사를 하기로 했다.
연산군 유배지 150m 멀리 않다.
터만 있고
비석은 세운지 얼마안되는것 같다
연산군유배지 옆에 씌여있는 글"위리안치"
사전을 찾아보니
위리안치(圍籬安置)는 중죄인에 대한 유배형 중의 하나이다.
죄인을 배소에서 달아나지 못하게 하기 위해 귀양간 곳의 집 둘레에 가시가 많은 탱자나무를 돌리고 그 안에 사람을 가둔다.
그럼 이근처에 가시덤불이 많아야하는데
내려오면서 산딸기가 그래서 많았을까
온산이 산딸기가 가득하고 가시또한 얼마나 많은지.
나리꽃이 피기전...
꽃대가 참 실하다.
약을 쳤는지 어떤지는 모르지만
살구가 잘 익어서
그맛이 기가 막히다.
다시 말하지만 이섬의 유월은 횡재한 느낌의 길이다.
폐가와 개망초...
느티나무
길가에 물망초꽃이 가득한 것은 처음이다.
접시꽃도 붉고 붉어서 목이탄다.
교동의 중심가라고 할 수 있는 대룡시장
티비 1박2일 프로그램에 나오면서 많이 알려진 시장이다.
이발관을 비롯해 가게 안을 기웃거리는 것이 주인들은 귀찮은 모양이다
팔아줄 생각이 아니면 그냥 조용히 지나갔으면 좋겠다는 생각이다.
마음대로 엉기고 설켜있는 전깃줄
정비를 하지 않아서 복잡하게 얽혀있다.
우린들의 삶도 저렇게 엉켜서 살아가지만 자기몫을 다 하고 살고 있으리라.
약사 없이 약을 파는 약방
그리고 옛날 빵집의 대표 간판 거북당
거북당 주인이 집을 비워두지 고고 아무래도 도너스나 꽈배기라도 팔아야겠다고 한다.
함께한 마음이쁜친구는 저기 약방에서 약 몇가지를 구입했다.
시골장터와 다를 바 없는 먹거리
교동에는 새우를 많이 판다
돌아오는 길
새우몸통이 실한 것으로 한됫박에 20000원
그리고 감자 10000원어치를 샀다.
시장구경을 끝내고 농가를 빠져나오는 길에도
살구와 오디가 익어가고 있다.
화개산 위에서 바라보았던 교동평야를 걷는다.
모내기후의 교동평야
바람도 시원하고 막힘없이 탁트인 평야가 마음을 열어준다.
논둑길 풍경
땅콩밭
교동은 땅콩과 벼와 고구마가 주요작물이다.
밤은 또 얼마나 열리려고 저렇게 빼꼭하게 꽃은 피었는지...
남산포로 가던길...폐가에 누군가 저렇게 글을 새겨두었다.
북한과 대치하고 있는 땅, 저 글이 그냥 지나칠수가 없다.
주인은 떠나고 집은 허물어져가고 있지만
집을 지키는 작은새와 담쟁이
남산포에는 이런 사적지도 있고....
남산포항
남산포항...
정리가 되지 않아 좀 지저분한 생각도 들고 냄새도 난다.
이내 돌아서 가던길을 재촉하고
버린것 같은 드럼통...
혹시 저기에 새우젓을 담근것은 아니겠지...
이깡통은 왜 여기에 다려 있을까
별게 다 궁금하고
남산포항을 나와서 걸어가는 길...
화개산이 저기 있다
여기소보니 제법 높은것 같네
교동도의 유월은 얼마나 흡족한지
앵두에 딸기에 살구에 오디까지...
횡재한 느낌이 들정도로...많다.
배는 언제 커서 익으려나..
교동읍성喬桐邑城
둘레 약 430m. 높이 약 6m. 인천광역시 기념물 제23호.
이 성곽은 강화도 서편의 교동도에 축조된 고을성으로 1629년(인조 7)에 쌓은 것이라 한다.
성을 쌓은 목적은 예로부터 서해안의 방어를 위한 것이었으며
조선시대 후기에는 이 성 안에 삼도수군통어영(三道水軍統禦營)의 본진이 주둔하여 왔다.
원래 이 성에는 세 곳에 문루를 갖춘 성문이 있었는데 동문에는 통삼루(統三樓), 북문에는 공북루(拱北樓),
남문에는 유량루(庾亮樓)란 문루가 있었다고 한다.
닫혀있던 섬답게..
군데군데 군 방어시설물이 있다.
좀 피곤하고...발바닥도 아파올 무렵
생각지도 못했던 초원길이 나타났다
갈대밭 사이로 한동안 걸었다.
동진포에서 월선포까지 제방길이다.
나는 쪼맨한 카메라
함께잘 다니는 저친구는 대포카메라..
비대칭이지만 오랫동안 조화롭게 걸어가는 친구...
붉은게도 있고 뻘색깔 게도 있고
색은 다리즈만 그들의 행동이 빠른 것근 같다.
쉼터지만 잡초에 갇혀있는 벤취~
이렇게 갈대로 무성한 제방길이 끝나면 월선포 선착장
16km를 다 걷고 원점회기한 것이다.
내 좋은 동무들과 푸짐한 하루를 보내고 돌아오는 길
낙지 연포탕으로 여행의 마무리를 했다.
이집이 어디였는지...
명함을 가지고 오지 못했다.
장화리 근처였는데....
갑자기 궁금증이 발동하여 검색삼만리
드디어 찾았다..
검색의 끼가 강한 내 손꾸락...
행운갯벌낙지
인천시 강화군 화도면 해안남로 2238
지번주소:강화군 화도면 여차리 743번지
032-937-889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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들판 먹거리와 평온한 교동풍경
그리고 돌아오는 길 디저트로 보는 장화리 풍경
여행의 마침표 낙지 연포탕...
항상 하는 말이지만 이렇게 여행을 차지고 돌아오는 길은
좋아서 미칠것 같다.
여행은 희망이다
희망은 살아가는데 있어 가장큰 에너지이다
왕성한 에너지가 있어서 나는 늘 행복하다
2015.6.21. by gyeon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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