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슴 한쪽 비워둔다면

photostory-寺

2017.2. 12. 치악산 남대봉 상원사

kyeong~ 2017. 2. 12. 15:24


상원사上院寺

강원도 전통사찰 제18호,   


강원도 원주시 신림면 성남로 930 (신림면)                 




대한불교조계종 제4교구 본사인 월정사(月精寺)의 말사이다.

신라 문무왕 때 의상(義湘)이 창건하였다는 설과

신라 말 경순왕의 왕사였던 무착(無着)이 당나라에서 귀국하여

오대산 상원사(上院寺)에서 수도하던 중 문수보살(文殊菩薩)에게 기도하여 관법(觀法)으로 이 절을 창건하였다는 설이 있다.


창건 이후 고려 말 나옹(懶翁)이 중창하였고, 월봉(月峯)·위학(偉學)·정암(靜巖)·해봉(海峯)·삼공(三空)·축념(竺念) 등의 선사들이 이곳에서 수도하였다.

조선시대의 여러 왕들은 이 절에서 국태안민(國泰安民)을 기도하게 하였다.

그러나 6·25전쟁 때 전소되어 폐허화되었던 것을 1968년 주지 송문영(宋文永)과 의성(義成)이 중건하였다.

현존하는 당우로는 강원도 문화재자료 제18호로 지정된 대웅전과 요사채, 객사(客舍) 등이 있으며,

 대웅전을 중심으로 동서에 신라 석탑의 양식을 따른 아름다운 삼층석탑 2기가 있다.


이 탑은 상원사의 창건과 동시에 세워진 것으로, 상륜부(上輪部)에 둥근 연꽃 봉오리 모양을 새겨 일반 탑에서 보기 어려운 양식을 나타내고 있다.

동쪽 탑의 바로 앞에는 화염문(火炎文)을 보이는 섬세한 불상의 광배(光背)와 연화대석(蓮華臺石)이 있어,

원래 이 절에 석불이 봉안되어 있었음을 추정할 수 있으며, 강원도 유형문화재 제25호로 지정되어 있다.

이 밖에도 절 뒤쪽 200m 지점에는 높이 1m의 지극히 단조로우나 매우 오래된 부도와, 무착이 중국에서 묘목을 얻어와 심었다는 계수나무 네 그루가 있다.



치악산 남대봉으로 산행하는 날

남대봉을 가기위해 산행신청을 하였다기 보다는 상원사에 가기 위해서 신청하였다.


치악산 등산로중에 가장 완만하고 편한길을 따라 5.1키로 2시간30분 가량 오르면 보은의 꿩 전설로 유명한 상원사에 이르게 된다.




높은 1000고지 산중턱 축대를 쌓고 그위에 앉아 있는 절집 상원사


잠시 보은의 꿩 전설때문에 더 오르고자 하는 사찰






상원사 초입에 이르면 가장 먼저 눈에 들어오는 종각과 계수나무

상원사에는

무착이 중국에서 묘목을 얻어와 심었다는 계수나무 네 그루가 있다.



이민온 계수나무과 종각의 풍경을 더 가까이서 찍어보고....



벼랑끝에 서있는 계수나무

스님 목탁소리를 들으며 우리 인간보다 더 먼저 득도를 하였는지도 모르겠다.

치악의 사철 거친 바람소리를 들으며 풍경소리 뎅그렁거리는 절집 마당에서 세월을 키워가는 저 나무

절집보다 오늘은 내눈에 더 많이 들어온다.



절집에 들어서려면 일주문으로 들어서야겠다.

길이 좁아서 길폭에 맞추어서 지어진 일주문

속세와 절집의 경계이기도 하다.



일주문에 달려있는 작은 종 '보은의 종'

은혜갚은 꿩의 전설을 기리기 위해 일주문에 종을 달아두었다.



높은 고지대

바람소리만이 윙윙대는 겨울

종소리를 들어보시라

가던 길을 멈추어 바람소리보다 더 울림이 큰 종소리

그 종소리를 듣는자는 은혜는 아니어도 마음을 청정하게 먹으리라 생각된다.




절집으로 조금씩 다가선다

검은 목조건물은 일본식 절집같기도 하고 일단 들어서서 돌아보기로 한다.





상원사 업무를 보는 종무소



종무소위 축대를 쌓고 그위에 산신각이 있다.


산신각은 정면 3칸, 측면 2칸의 맞배지붕 건물

 

여기에 주련이 있는데 다음과 같다.

 

靈山昔日如來囑   영산석일여래촉       그 옛날 영산에서 부처님의 부촉받아

威鎭江山度衆生   위진강산도중생       강산에 위엄 떨쳐 중생을 제도하고

萬里白雲靑裏   만리백운청장리       만리 뻗은 흰구름 푸른산 봉우리를

雲車鶴駕任閑情   운거학가임한정       구름 수레 학을 타고 한가로이 지내시네.


산신각은 산악숭배나 마을신앙과 관련되어 있다.

대체로 1평 정도의 집에 산신당이나 위패가 모셔져 있다.

산신각이라는 명칭 외에 산신당·산명당이라는 명칭이 사용되기도 한다.

산신은 보통 지역수호신으로서의 성격을 강하게 나타내고 있으며, 산뿐만 아니라 산 주변의 지역을 관장하는 신으로 여겨졌다.
한국의 불교사찰에 있는 산신각은 고유 신앙의 수용 차원에서 만들어진 것으로,

민간의 신앙이 두터운 칠성도 같이 모셔졌다.

명칭은 산신각·칠성각·삼성각 등으로 불린다. 현재 불교에서는 산신을 가람수호신과 산 속 생활의 평온을 지켜주는 외호신으로 받아들이고 있다.

산신각은 불교 밖에서 유입된 신을 모시는 건물이기 때문에 ‘전’이라 하지 않고 반드시 ‘각’이라 하며, 이는 한국 불교 특유의 전각 가운데 하나이다.


 

산신각 탱화

산신탱화(山神幀畵)     -불기 2536(1992)년 임신 10월 15일 점안-

이 산신탱화에서 특이한 점은 호랑이가 녹호(綠虎)라는 점이다.  

백호도 더러 있지만 녹호는 보기 드문일이다. 

이 산신각의 기가 좋고 녹호가 있다는 것이다.










 







심검당(尋劍堂)

검(劒)은 반야검(般若劒)을 말한다.

검 중에 취모리검(吹毛利劒)이 있는데 이 검은 날에 다 털을 올려 놓고 불면 털이 잘릴 정도로 날카로운 검이다. 

그러므로 심검당은 반야를 찾는 집이니 스님들의 수행처를 말한다.    

이 심검당은 상원사에 큰 행사가 있어 머물거나 기도하러 오시는 분들의 숙소로도 사용된다..


심검당 마루밑에 산신각과 심검당의 현판이 보관되어 있다.

새로 현판을 달면서 예전것을 보관해둔것 같다. 



      

 



상원다 대웅전




 대웅전과 심검당 사이의 아미타불 모습



대웅전옆에서 바라본 범종각



범종각과 3층석탑



치악산 상원사 범종 

 상원사 범종을 보면 상원사 보은의 종에 얽힌 전설이 생각나서 이 종이 그 종인가 생각할 지 모르지만

이 범종은 전설을 담은 종은 아니라고 한다. 

만약 그 종이 지금까지 전해졌다면

 보은에 대한 엄청난 학습효과가 있는 국보급일 것이다. 

그렇지만 그 전설을 가진 절이라서 이 종을 보면 자기 몸을 바쳐 보은하고자 했던 꿩들이 생각날 것이다.  

 

보은의 종에 얽힌 전설은 우리나라 온 사찰에 영향을 미쳐 이 소중한 전설을 기억하고 살린다는 의미

종(鐘)을 108번 치기 전에 종을 살린다고 하여 두 번을 먼저 가볍게 치는 전통이 생겨났다고 한다.  

 

이 종은 불기 2526(1982)년 9월 9일에 조성했다는 명문이 있다.



범종각

치악산 상원사 범종각의 주련


범종각의 주련(柱聯)은 다음과 같다.

願此鐘聲 遍法界 / 鐵圍幽暗 悉皆明 / 三途離苦 破刀山 / 一切衆生 成正覺

원차종성 변법계/철위유암 실개명/삼도고리 파도산/일체중생 성정각

원하옵건데 이 종소리가 법계에 두루 퍼져 / 철위산 깊고 어두운 무간지옥이 모두 밝아지며 /

지옥 아귀 축생의 고통을 여의고 칼산 지옥을 깨트리어 / 일체의 중생들이 바른 깨달음을 성취하게 하소서

 


어느 사찰이나 범종각이 가장 아름다운 풍경을 만들어낸다고 생각한다

가장 멋진 곳에서 눈에 띄기 좋게 위치하고 있다.


범종각의 풍경


바람한줄기 스윽 지나가면 좋을텐데

오늘따라 하늘은 가을처럼 푸르고 고요하기 이를데없다



범종각에서 바라본 치악의 풍경

이곳은 1000미터 고지에 위치하다보니

치악산이 아우르는 산맥들을 바라볼수 있는 곳이다.



원주시 신림면 성남리 방면의 풍경이다

오를때는 경사가 완만하여 쉽게 올랐는데 내려다보니 꽤 높이 올라왔다.






대웅전(大雄殿)      -강원도 문화재자료 제18호-

 

정면 3칸, 측면 3칸의 팔작지붕 건물로 불기 2532년(1988) 경덕 스님에 의해 재건되었다. 

안에는 석가삼존불이 모셔져 있다.

 

       여기에 주련이 있는데 다음과 같다.

 

       靑山疊疊彌陀窟   청산첩첩미타굴       첩첩한 푸른 산은 아미타불 법당이요,

       蒼海茫茫寂滅宮   창해망망적멸궁       망망한 푸른 바다 부처님의 적멸보궁

       物物拈來無罣碍   물물염래무가애       물물은 오고 감에 걸릴 것이 없는데

       幾間松亭鶴頭紅   기간송정학두홍       솔밭의 학머리를 몇 번이나 보았는가!



                                                                우보처 보현보살       본존 석가모니불       좌보처 문수보살

 

중앙에 본존 석가모니불(釋迦牟尼佛)을 중심으로

좌우에 문수보살(文殊菩薩)과 보현보살 (普賢菩薩)이 협시하고 있다.

문수보살은 지혜(智慧)를 보현보살은 행원(行願)을 상징 한다.




상원사의 성보(聖寶) 광배(光背).    - 강원도 유형문화재 제25호 -


탑과 탑 사이에 광배(光背)가 모셔져 있다. 

이 광배가 있는 것으로 보아 상원사에는 훌륭한 석조여래좌상(石造如來坐像)이 있었을 것으로 추측하고 있으나 

광배의 주인인 석조여래좌상은 행방을 알 수 없다.

불상의 가슴 뒷부분에 해당하는 곳에는 원이 조각되어 있고,

그 주위에는 쌍잎의  팔엽(八葉) 연화문(蓮華紋)이,

다시 그 주위를 영기문(靈氣紋)이 새겨져 있으며, 가장 바깥쪽에도 화염문(火炎紋)이라는 영기문이 새겨져 있다. 


그런데 석탑을 보수하던 중 신라시대에 조성된 것으로 보이는 금동불(金銅佛) 4불이 출현하여

이 광배도 석탑이 조성되었을 때 조성된 것으로 보고 있다.


대웅전 앞에 있는 2기의 삼층석탑

『대웅전 앞에 있는 2기의 삼층석탑은 통일신라시대 후기 석탑의 정형을 따라 2중으로 된기단(基壇)위에

세 층의 옥개(屋蓋)를 올렸는데 옥개석의 낙수면은 가파르고 처마 부분의 반전은 거의 없으며,

옥개석 받침이 단(段)을 분명하게 조각하지 않는 등 빼어난 모습을 갖추고 있지는 않다.

 

상륜부(上輪部)에는 노반(露盤)ㆍ복발(覆鉢)ㆍ보주(寶珠)가 남아 있는데, 원형의 큰 보주에 연꽃 무늬를 새겨 넣어 특이한 느낌을 주고 있다.

 

강원도에서는 법당 앞에 2기의 석탑을 세운 이탑일금당(二塔一金堂)의 가람배치법을 취한사찰을 거의 찾아볼 수 없다.』    

-전통사찰총서 상원사편에서-



 

석탑 2기 중 북탑(南塔)

 

이탑일금당(二塔一金堂)이란 대웅전 앞에 2기의 석탑이 건립된 가람배치로, 쌍탑가람(雙塔伽藍)이라고도 한다.





석탑 2기 중 북탑(南塔)


 

상원사 석축아래 보은의 유래비가 서있다.




"상원사의 전설"

이 절은 은혜갚은 꿩과 뱀의 전설이 생겨난 곳이기도 하다.

치악산 기슭에 수행이 깊은 승려가 있었는데,

어느 날 산길에서 큰 구렁이가 새끼를 품고 있는 꿩을 감아 죽이려는 것을 보고 지팡이로 구렁이를 쳐서 꿩을 구하였다.

그 날 저녁 여인 혼자 사는 집에서 하룻밤을 지내게 되었는데,

그 여인은 죽은 구렁이의 아내로서 원수를 갚기 위해 사람으로 변신하여 그를 유인한 것이었다.

그 여인은 자정이 되기 전에 폐사가 된 상원사의 종을 세 번 울리게 하면 죽은 구렁이가 승천할 수 있으므로

그 승려에게 종을 세번 울리면 살려주겠다고 하였다.


그러나 시간상 도저히 산정까지 올라갈 수 없었으므로 포기한 채 죽음을 기다리고 있는데 종이 세 번 울려왔다.

구렁이는 기뻐하면서 이것이 부처님의 뜻이므로 다시는 원한을 품지 않겠다는 말을 남기고 어디론지 사라졌다.

정신을 차리고 보니 그가 있었던 곳은 숲에 싸인 자갈밭이었다.

먼동이 트고 상원사로 올라가 보니 종루 밑에 꿩과 새끼들이 피투성이가 된 채 죽어 있었다.

이와 같이, 꿩이 죽음으로써 은혜를 갚았다고 하여 이 산을 치악산으로 불렀다고 한다.




상원사가 보고 싶어서 찾아온 치악산

바랬던 마음보다 더 큰 마음으로 상원사절집을 거쳐간다

힘든 산행임에도 불구하고 산행에 오르는 것은 혼자서는 엄두도 나지않을 높은 산자락의 산사를 만날수 있기 때문이다

깊이 알지는 못했지만 이곳에서 산자락을 내려다보니

저절고 큰마음과 깊이마음이 생겨난다.

산행중에 만난 절집치고는 제법 오랜시간을 할애해서 머물다 간다

참 감사한 마음이다

상원사를 빠져나와 남대봉으로 서둘러 제촉한다.




남대봉으로 가는 길

해우소마져 푸른하늘아래 풍경이 되어 있다.

가고 싶었던 상원사를 만나고 나니 절로 발걸음이 가볍다

험한 산이라고 알려져있지만 이길로 오르는 치악은 왠만한 산꾼이면 쉽게 오를수 있는 길

오래 오래 마음에 남아있을 풍경이다.

2017.2. by gyeong~



상원사 편집을 마치고

사진을 찍지는 못했지만 상원사편집을 위해 검색을 하던중 또다른 전설이 있어서 내용을 남겨본다.


(용마바위 펌사진)

상원사에 대한 자료를 조사하다가 상원사에는 용마바위 전설도 있다는 것을 알게 되어 다른 홈페이지에서 빌려온 내용


-용마바위 전설-

 

치악산 상원사에서 동남간으로 제천땅 백련사라는 절이 있는데 이 절의 주지스님은 여자를 좋아했다고 합니다.

그는 스님이면서도 아내를 두고 세속적인 생활을 하고 있었는데 이 스님은 치악산 남대봉 기슭에 있는 상원사의 주지도 겸했답니다.

이 스님은 백련사와 상원사를 용마(龍馬)로 왕래했는데, 용마가 번개처럼 날쌔어 두 절을 오갈 수 있었다고 합니다.

불제자로써 마땅히 불도에만 정신을 쏟아야 할 터인데도 여자를 너무 좋아하여 백련사에는 본처를 두고 상원사에는 소실을 얻어 살고 있었다고 합니다.


주지스님이 상원사에 가는 날이 잦아져 백련사에 있는 본처가 뒷조사를 해봤더니,


상원사에 젊은 소실을 두고 있는 사실을 알았습니다.

아무리 스님과 몰래 살고 있는 처지이기는 하나 본부인은 기심과 질투심이 저주와 증오로 바뀌면서

어떻게 해서든지 이를 막아야 되겠다는 결심을 하기에 이르렀습니다.

화가 난 본처는 내놓고 싸울 수도 없어 속으로만 앓고 있다가 스님이 타고 다니는 용마를 굶겨 죽이기로 작정했습니다.


 "저 놈의 말만 없으면 스님은 첩이 있는 상원사를 자주 가지 못할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떠오르자 되도록 말에게 죽을 적게 먹이기로 했습니다.

하루 저녁은 스님의 눈치가 소실집을 가려는 눈치가 보이자 바로 이때다 하고 저녁 말죽을 반의 반으로 줄여 먹였습니다.

아니나 다를까 밤이 되자 슬슬 부인의 눈치를 살피던 스님이 여느 때와 같이 슬그머니 빠져나가 마굿간으로 갔습니다.

그리고 말잔등에 올라 앉아서 상원사 용마바위로 향했습니다.

그런데 이날따라 말죽을 적게 먹여서 시장기를 참고 있었던 용마는 여느 때와 같은 방법으로 힘을 낼 수가 없었습니다.

한 번 뛰었다 하면 천리도 마다 않는 용마였지만 도무지 기운이 나지 않았습니다.

겨우 상원사까지 이르러 그래도 뛴다고 뛴 것이 힘이 미치지 못하여 앞발만 상원사 바위에 걸쳤다가 떨어지고

주지님은 말이 바위에서 떨어지는 순간에 바위 끝에 손을 짚고 뛰어 오를 수가 있었습니다.



그 후 이것이 본처의 소행임을 알고 소실과 상원사에서 여생을 보냈다고 합니다.

지금도 그 때 스님의 손자국과 용마의 발자국이 선명히 남아 있고

말이 떨어지며 흘렸다는 핏자국이 또한 남아 있어 후세 사람들은 이 바위를 "용마바위"라고 불렀다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