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슴 한쪽 비워둔다면

photostory-寺

2017.3.19. 강진 만덕산 백련사

kyeong~ 2017. 3. 19. 12:18



힘들어도

밤을 새워 갔어도

산행후에는 언제나 내가 좋아하는 사찰이 반기고 있어서

먼길을 마다않고 달려가는 이유이다

산을 알고난후 강진과 해남땅이 갈수록 정이 드는데

그곳에는 빼어난 산줄기와 동백과 꾸미지않은 수수한 사찰이 있기때문이다

빼어난 절경의 산자락에 고즈넉히 남해바다를 향해 앉아있는 사찰을 만나면

유독 발길을 돌리기 싫어서 한동안 마음을 내려놓기 일쑤이다

암릉길이라 험한 산길임에도 불구하고 밤을 새워 무박산행을 자처한 이유는

언제가 가보았던 잊을수 없는 백련사가 자리하고 있기때문에 그리움을 안고 그곳으로 달려갔다.



백련사白蓮寺

전라남도 강진군 도암면 만덕리 만덕산에 있는 절.

대한불교조계종 제22교구 본사인 대흥사의 말사이다.

일명 만덕사라고도 하며 〈사기 寺記〉와 정약용의 〈만덕사지 萬德寺誌〉에 의하면

839년(문성왕 1) 무염국사가 창건한 뒤 1170년(의종 24) 승려 원묘가 중건·주석하면서 획기적인 발전을 이룩했다고 한다.

1208년(희종 4)에 천태종의 묘의를 얻은 원묘의 제자 원영은 1211~32년에 걸쳐 80여 칸의 대가람을 완공했으며,

 이곳에서 요세가 실천 중심의 수행인들을 모아 백련결사를 조직했다.


고려말에는 왜구에 의해 페허화되었으나 조선 세종 때 효령대군(孝寧大君)의 보호 아래 가람을 재건했다.

현존 당우로는 대웅전·시왕전·나한전·만경루·칠성각·요사채 등이 있다.

그외 유물로는 만덕산백련사사적비와 원묘국사중진탑이 있으며,

절 주위에 천연기념물 제151호로 지정된 백련사의 동백림과 정약용의 다산초당이 있다.



전남 강진군 도암면 만덕리 246

만경루는 오랜 세월 많은 이들의 사랑을 받아온 누각으로,

만경루에서 바라보는 백일홍 너머 구강포 바다는 남도의 정취를 물씬 느낄 수 있는 풍경을 자랑한다.

예전에는 스님들이 이곳을 선방 삼아 수행을 했으나 지금은 템플스테이 수련 공간으로 쓰이면서

백일홍이 활짝 피는 날 ‘만경루 작은 음악회’ 등의 문화행사 공간으로도 활용되고 있다. 

멀리 보이는 푸른 바다 티끌 없는 거울이나 


울 옆의 긴 대 바람에 소리내고 

난간 앞의 그윽한 꽃 눈 속의 봄이라.


조선 성종대의 문인 김유가 백련사 만경루에 올라 쓴 시이다. 



대웅전에서 바라본 범종각

대웅보전(전라남도 유형문화제 제 136호) Main Buddha Hall

1760년 큰 불이 일어나 대웅보전이 소실되자 월인당 총신 스님은 왈찰(曰刹), 지정(智正), 혜철(惠哲), 태화(太和), 신증(愼證), 규연(圭演), 찰연(察演), 윤철(閏哲), 연징(蓮澄), 붕관(鵬寬) 스님 등과 함께 대웅보전 중건을 서원하고 시주를 모아 이듬해 4월 8일 불사를 시작해서 1762년 4월 13일 대웅보전을 완성합니다. 

새로운 법당에 모셔진 삼존불(아미타불, 석가모니불, 약사여래불)은 1710년 목조로 조성된 부처님으로 얼굴에 드러난 온화한 미소는 당시 불상을 조각했던 조선사람들의 순박하고 지극한 마음을 시대를 넘어 느길 수 있게 하는 힘이 있습니다.

법당 내부에는 아름다운 벽화와 조각들이 곳곳에 숨겨져 있어 옛 선조들의 아름다운 신앙심을 느낄 수 있습니다.

백련사 대웅보전에 모셔진 삼존불

아미타불, 석가모니불, 약사여래불이 순서대로 그려져 있고

부처님의 상수제자인 가섭존자와 아난존자께서 이 세 분의 부처님을 보시고 있습니다.

대웅보전 벽화 Wall Painting of the Buddha Hall

묘법연화경에 보면 영축산에서 부처님께서 설법하실 때 하늘에서는 만다라, 만수사 꽃비가 내리고

하늘의 노래를 좋아하는 긴나라와 하늘의 음악을 담당하는 건달바 등이 천상의 음악을 연주하며 부처님께 공양을 올렸다고 합니다.

그리고 부처님의 제자인 아라한들과 하늘 신, 보살, 사부대중들이 이전에 없었던 일에 기뻐 합장하며

한마음으로 부처님의 가르침을 들으며 기뻐했다고 합니다.

백련사 대웅보전의 아름다움 벽화는 묘법연화경에 나오는 이러한 내용을 근거로 스님들이 직접 그린 것으로 추정됩니다.



삼성각에는 독성탱화와 칠성탱화, 

그리고 1931년에 그려진 산신탱화가 모셔져 있다. 

삼성각은 불교가 한국의 민간신앙을 받아들여 만들어진 전각으로,

만덕산 삼성각은 예로부터 큰 인물이 많이 나온다고 해서 자손들을 위해 기도하는 부모들이 끊이지 않았다고 한다. 

특히 산신탱화는 일제 강점기에 그려진 것으로 소나무 아래에서 부채를 들고 있는 산신령과

까치 호랑이, 그리고 지팡이 끝에 물병을 매달고 있는 동자가 민화풍으로 친근하게 묘사되어 있다. 





삼성각에서 바라본 만경루

목백일홍꽃이 흩날리고

저곳 만경루에 앉아서 차한잔 나눌수 있는 시간이 주어진다면 더 없이 좋겠다.


명부전쪽에서 바라본 만경루



백련사 명부전

‘명(冥)’이란 보고 들을 수 없음을 의미한다. 

그래서 명부란 저승 세계를 말하며, 명부전은 세상 모든 중생들의 아픔을 아파하며

지옥의 중생들까지 구제하겠다는 뜻을 품은 지장보살을 모신 전각이다. 

한국에서는 죽은 이들의 넋을 인도하여 극락왕생하도록 기원하는 지장보살에 대한 신앙이 성행했으며,

이 전각에는 지옥의 심판관인 시왕을 비롯해 권속으로 무독귀왕, 도명존자, 판관, 녹사, 인왕 등이 모셔져 있다. 



명부전과 시왕전 중수기 현판 탁본

백련사의 명부전 안에는 1775년에 정암 즉원(晶麙 卽圓, 1738~1794) 스님이 쓴 <시왕전중수기> 현판이 함께 모셔져 있다. 



백련사 명부전 내부1

이 전각에는 지옥의 심판관인 시왕을 비롯해 권속으로 무독귀왕, 도명존자, 판관, 녹사, 인왕 등이 모셔져 있다. 



명부전 내부2



명부전 내부3



응진전과 천불전



응진전


‘응진(應眞)’이란 존경받고 공경받을 만하다는 뜻이다. 

응진당은 나한전이라고도 불리며, 석가모니 부처님을 중심으로 16나한상과 영산회상도를 봉안하고 있다. 

16나한은 수행을 통해 모든 허물이 사라지고 번뇌가 없이 자유로운 마음을 가지신 분으로,

미륵보살이 다시 이 세상에 오기 전까지 이곳에 머물면서

불법을 호소하고 불자를 구제하라는 부처님의 명을 받들어 아직 이 땅에 현존한다는 이야기가 전해진다. 



응진전 현판아래 동물은?



응진전 내부







천불전



천불전 내부



천불전에서 바라본 백련사 풍경과 강진만



천불전에서 바라본 백련사 경내풍경



강진땅을 향하여 깊숙히 들어온 바다와 백련사

오래도록 이 풍경이 그리울 것이다.


만덕산 백련사 사적비 보물 제1396



다산 정약용이 편집한 <만덕사지>에 이 사적비를 가리키며

“옛 비는 유실되어 그 소재를 알 수 없고 귀부만 남았는데,

탄기 스님이 다른 돌로 비를 세우면서 옛날 비석의 귀부를 사용하였다”는 기록이 있는 것으로 미뤄보면,

이전에 비석이 세워졌으나 유실된 후 1681년 탄기 스님이 이를 재건한 것으로 보인다. 


귀부와 비석의 양식을 보더라도 건립 연대가 다른 것을 명확히 알 수 있는데,

귀부의 보존 상태는 매우 양호하며 조각 기법도 뛰어나 고려 전기의 작풍이 고스란이 드러난다.

 비석은 전형적인 조선 시대 석비의 양식을 잘 보여주고 있다. 

 

사적비 전면에는 백련사의 역사가 기록되어 있고, 뒷면에는 당시 불사(佛事)에 참여한 사람들의 이름이 적혀 있으며,

양 측면에는 아름다운 초화문이 양각되어 있다.

또한 비석 정상에는 등을 맞댄 채 서로 반대 방향을 보고 있는 두 마리의 용이 매우 사실적으로 조각되어 있다.

현재 보물 제1396호로 지정되어 있다.



돌아서 나오며 바라본 백련사 풍경



동백림속에 앉아 있는 해탈문



저 해탈문보다

동백림이 더 해탈문같은 백련사

천년기념물151호로 지정된 1500여그루의 동백숲을 들어서는 순간

인간은 속세를 잊어버리고 해탈을 시작하는 순간이 된다.



만덕산 백련사 일주문

원칙대로라면 일주문부터 들어서서 해탈문을 통과해 대웅전으로 가겠지만

만덕산에서내려오면 역순으로 만나게 되는 전각들이다.




백련사 절집을 빠져나오면 동백숲사이로 다산초당가는 길이 있다

동백숲을 따라 대략 2키로 떨어진 지점에 있다

동백숲을 따라 산등성이 하나 넘어가면 되는 일이지만

산행이 험하여 지쳐있는 탓에 그냥 돌아서기로 했다.



백련사사를 둘러싸고 있는 동백림

천년기념물 151호로 지정될 만큼 동백림의 규모는 대단하다

대략 1500여그루가 자라고 있다고 한다.



멀리 강진이나 해남땅을 밟는 이유는 동백림이 있기때문이다

백련사를 찾는 이유도 거대한 동백림이 있어서 꽃길을 걸을겸 절집을 드는 것이다.

그래서 백련사를 편집하면서 흐드러지게 피지는 않았지만 동백꽃이 피고지는 길을 오려보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