열두 개울
개울을 건너 초성리에 가는 동안
잎사귀 깔깔대는 소리 다 듣고
잔등을 타고 내리는 소나기소리 다 듣고
모난 돌 꼬여내는 물소리 다 듣고
주근깨 다닥다닥한 나리꽃 사춘기 시절 다 보고
외진 길 무명사 無名蛇 뒹굴다 꽃 숲에 잠들고
땡볕은 잠자리 꼬리 물고 개울에 자맥질한다
개울을 건너 덕둔리에 오는 동안
두부장사네 천이는 시갯또를 잘 만들었고
명숙이는 빨간 다우다 간다꾸를 입고 다녔고
영석이는 산너머 도평리로 이사하였고
묵 집 순옥이 등에는 동생이 매미처럼 업혀 있고
중사 아들 장면이는 경아를 때리고 다녔고
경아는 장면이를 피해 개울을 건너다녔다
자고 날때마다 넓어지는 개울
온종일 몇 번이라도 건너다닐 수 있는 다리가 놓였지만
꿈에서 본듯한 개울 같고
낯선 여름나기 같고
세월의 강줄기 그 여백에
허공을 건너는 소나기를 만난다
귀한 추억.
梁該憬
2010. 7.25 초성리에서 덕둔리까지
예전에
지나다니던 동네
낯선 여름나기꾼들이 가득했고
꽃또한 유년의 꽃이 아니라
화려한 무리들이 길섶에서 여름을 나고 있었어요
루드베키아....산골에도 외지무리들이 자리잡기 시작했어요
코스모스 같지만 이또한..
땡볕을 아랑곳하지 않고
그져 웃고 또 웃고
아...이젠 내가 외지인이 되었나요?
누구
무엇때문에
이름도 생소한 꽃들을 심어놓았는지 모르지만
참나리꽃 불러다 주세요
패랭이꽃도 불러다 주세요
선이 굵고 듬직한 들국화같은 이꽃도
꽃잎이 떨어져 내립니다
웃는 것도 잠시뿐
세월의 강을 건너가고 있습니다.
한적한 시골
땅에 코박고 오수를 즐기는 꽃
옆에서 심심해 죽는 꽃
못본체 지나가는 나그네
땡볕에 헤벌레 웃고 있는 루드베키아
벌도 안오고
나비도 안오고
가여운 도시인만 간간이...
아예 길바닥에 누웟네요
보는이도 드문데 누워서 논들...
수입이든 아니든
사실 미운것은 없어요
저리 누운것도 내눈을 끌고마는 그들.
길을 가로 질러 내리는 물줄기
열두 개울중의 하나
시원한 물줄기에 가던 길을 멈추고
풍덩 빠졌습니다
어릴적 생각나죠
함께 놀던
천이 명숙이 순옥이 영석이......
혹시나 이길을 걸어오지 않을래나...
올망 졸망 모여서 물놀이하는 돌맹이처럼
다시 그 동무들과 개울을 건너고
들꽃을 꽂고
매미소리보다 크게 이름을 부르고 놀았으면
시원한 목소리로 꼬여내는 물소리 덕택에
여기서 근사한 식탁을 차렸습니다
잠시 누워 물소리를 들으니
세상 별천지 였지요
저거 다 먹었어요
세상 부러운게 없어요
노랗고 빨갛고
옛벗은 어디로 갔지만
총 천년색 하루가 물길처럼 흘러갔습니다
꽃같은 세월이 흐려지고
언제 자랄지도 모르는 작은 이끼들
그렇지만 푸르잖아요
어디서든 푸르잖아요
꽃이 피거나
여름이 오거나
세월이 가거나
그대가 없는 길이라도
그때 그길은 늘 꽃길같습니다.
넓은 길을 가면서도
꽃이 핀 들길을 그리워하는 것이랍니다.
지금 나와 동행한 그대
또 그립고 그리워
꿈결같이 이길을 걸어갈지도 모를 일입니다.
'photostory- 路' 카테고리의 다른 글
관곡지-여름비 꽃상여 타고 가네 (0) | 2010.09.04 |
---|---|
비둘기낭 폭포-개망초꽃이 보고 있는지도 모르고 (0) | 2010.07.31 |
양떼목장- 잠자리 날개같은 안개가 지나는 여름 (0) | 2010.07.17 |
대관령 삼양목장-안개천국, 어디로 가야 하나 (0) | 2010.07.11 |
남한산성-그대가 있는 한 들꽃이며 나무며 사랑해야지 (0) | 2010.06.15 |